2017416

금문교회 부활주일예배

조은석 목사

 

안식 후 처음 일주일

요한복음 20:1-29

 

1.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

2.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

3.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새

4.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가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

5. 구부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

6. 시몬 베드로는 따라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7.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쌌던 대로 놓여 있더라.

8.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내려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9. (그들은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10. 이에 두 제자가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가니라.

11.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12.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13. 천사들이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이르되,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14.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더라.

15.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16.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18.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24. 열 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에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이 놀라운 사실이 더욱 큰 은혜가 되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이 나의 부활이 되는 까닭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20

 

No Cross, No Crown!

 

십자가 죽음이 있고 부활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죽어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활신앙입니다.

 

어떻게 예수님의 죽으심과 그 부활이 내게 죽고 사는, 새롭게 태어나는은혜가 되었습니까? 사람은 누구의 삶도 죽음도 참여하지 못하지 않습니까? 그저 방관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사실은 슬픔이요 부끄러움 아닙니까?

 

그러나 하나의 예외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삶과 죽음에 직접 개입하셨습니다.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신 그 사건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요한복음 1:4-5

 

그러나 부활사건으로, 사람들은 그분께서 우리에게 오신 분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령충만하여 바로 그 사실을 깨달은 무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시고 교회로 모였습니다. 교회의 첫 번째 선포내용은 인생이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 살리셨다!”입니다.

 

부활신앙으로써 십자가를 깨닫게 되었고, 그로써 성육신의 깊은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땅에 내려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써 비로소 우리가 누구인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교만하나 실은 비참한 자요, 지혜 있다 하나 아무런 지식도 없는 자라는 것, 옳다 주장하나 결국 죽음 밖에는 길이 없던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과 죽음에 간섭하고 들어오신 예수님

그 뿐 아니라, 우리를 죽음에서 건지고 생명을 주신 예수님,

오늘 그 예수님을 뵙는 주일, 부활주일입니다.

 

2017년 부활주일 말씀은, 요한복음 201-29절입니다. 1-25절까지는 부활하신 그날 새벽부터 저녁 때에 이르는 말씀입니다. 26-29절은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때, 부활하신 주님을 뵙지 못한 도마가 포함된 그 모임에 주님께서 나타나신 말씀입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이 다루는 시간은 비록 중간이 생략되었지만, 안식 후 처음 일주일입니다. 안식 후 첫날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요한은 20장에서, 예수님 부활의 증인들을 차례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맨 마지막에 의심이 많은 제자 도마에 이르기까지, 제자들은 모두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고 믿었습니다.

 

9절에 암시된 것처럼, 제자들이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진작부터 알았더라면,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만나 뵙기 전에도 그들은 믿음을 가졌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을 으로 보지 못하고도 믿습니다. 우리에게는 약속의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른 기독교 신앙은 말씀의 신앙입니다. 말씀을 읽고, 알고, 믿는 신앙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 사실을 드러냅니다.

 

부활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아직 어두울 때였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왔습니다. 그녀는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았습니다.

 

그 길로 달려가, 시몬 베드로와 주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 곧 요한에게 보고했습니다.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가. 우리는 모르는 일 아니냐?” 했습니다.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함께 달려갑니다. 다른 제자, 곧 요한이 더 빨리 무덤에 도착합니다. 몸을 구부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습니다. 주님께서 없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따라왔습니다. 그는 무덤에 들어갔습니다. 세마포가 놓였고, 머리를 쌌던 수건은 딴 곳에 쌌던 그대로 놓여 있습니다. 예수님의 몸이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요한도 무덤 안에 들어갔습니다. 보았습니다. 그리고 믿었습니다.

 

두 제자는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 곁에 남았습니다. 울고 섰습니다. 무덤 안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님의 시체 놓였던 머리 편과 발 편에 각각 앉았습니다. 천사들이 말합니다.

 

-어찌하여 우느냐?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 말 후에 막달라 마리아가 돌이켜 보니, 예수님께서 무덤 곁에 서 계십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예수님이신 줄 마리아는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막달라 마리아는 그분께서 예수님이신 줄을 몰랐습니다. 동산지기인줄 알았습니다. 부활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마리아야!

-랍오니!

 

예수님께서 마리아의 이름을 불러주셨습니다. 그러자, 마리아가 몸을 돌이켜 주님을 향하며 대답했습니다. “선생님!”

 

주님께서 막달라 마리아의 이름을 불러주셨습니다. 그러자 그녀가 주님을 알아보았습니다. 놀랍지요? 그런데 이것은 요한복음 기자의 신학입니다.

 

인간에게 어떻게 예수님께서 오셨는지, 어떻게 주님이 되셨는지 분명하게 소개합니다.

 

영접하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요한복음 1:12-13

 

막달라 마리아는 인간적으로 아무것도 아닌 자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그의 이름을 불러주셨을 때였습니다. 주님의 음성을 알아본 바로 그 때였습니다.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내느니라.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요한복음 10:2-4

 

요한복음은 예수님과 우리를, 목자와 양의 관계를 들어 설명한 책입니다. 참고로, 마태복음은 예수님을 위대한 교사로, 마가복음은 능력 있는 전도자로, 누가복음은 청지기 증인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양입니다. 그가 목자 되신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이 누구신지 알아본 것은 오히려 당연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이십니다.

 

그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한복음 1:1c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그 말씀을 주신 분께서 하나님이심을 알아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계하며 권하라.

디모데후서 4:2

 

말씀 음성을 들은 막달라 마리아의 영적 눈이 떠졌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알아보았습니다. 동산지기에서 랍오니로 변했습니다. 말씀의 능력입니다.

 

이렇게 하여,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 부활의 첫 번째 증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을 본 막달라 마리아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요한복음 20:17b

 

기억하십시오. 주님께서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하셨습니다. 그리고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형제들이 믿어야 할 내용 그 자체입니다.

 

형제들은 예수님의 육신의 형제들을 말할까요? 분명히 그들이 포함되었습니다. 야고보와 유다 등 그의 형제들은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 교회에 합류하였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막달라 마리아가 받은 사명은 큽니다.

 

그런데 형제들은 모든 사람들을 다 포함하는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의 일생을 우리는 추측할 수 있습니다. 천국으로 올라가는 그 날까지 그녀는 누구에게나 예수님 부활의 메시지와, 주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심을 증거 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신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내려온 자 외에 올라간 자 없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복음 3:13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 중에 올라감이 두 차원 있습니다. 첫째로, “하늘에 올라가심승천입니다. 이 땅에 내려오심, 즉 성육신 하신 주님께서만 가능하신 일입니다. 아울러, 광야에서 모세가 뱀을 든 것처럼 주님께서도 들리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십자가 죽으심입니다. 이 두 차원을 하나로 겹쳐 읽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심은 하나님 나라로 올라가심의 그림자입니다.

오늘 막달라 마리아가 받은 사명은 놀랍습니다. 이 땅에 속하여, 이 땅의 고난을 당하며 살아온 여인 막달라 마리아가, 누추한 땅 그 자리에 내려오셔서 사랑하여 주신 주님께서 이제 하늘나라로 올라가시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땅에 오신 주님께서 사랑을 베푸셔서 살 길을 허락하셨고, 그 주님께서 천국에 올라가심으로써 천국소망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아십니까? 대부분의 학자들은 막달라 마리아는 누가복음에 기록한 죄 많은 여인과 동일한 인물로 추정합니다. 마태, 마가, 요한은 옥합을 깨뜨린 여인이 주님의 장례를 준비한 것으로 묘사합니다. 그들은 그 여인이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어 드린 것으로 묘사합니다.

 

그러나 누가는 자기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사랑해 주신 그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 향유를 부어드린 여인을 소개합니다. 그 여인은 발에 붓고 머리털로 씻었습니다.

 

말하자면, 마태-마가-요한은 일치된 여인을 소개하는데, 요한복음 12장에서 그 이름을 마리아로 드러냅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아니라 베다니마리아입니다. 죽은 나사로의 누이며, 마르다의 동생입니다.

 

다른 여인이 누가복음에 소개됩니다. 옥합을 깨뜨려 주님께 부은 사건은 두 차례입니다. 하나는 장례를 위하여, 다른 하나는 죄 용서와 사랑에 감격하여. 두 번째의 경우가 막달라 마리아의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가 바로 막달라 마리아라면, 이 세상 가장 낮은 곳에 처하여 멸시와 천대를 받고 살아간 절망의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여자는 예수님의 사랑을 크게 받은 사람입니다. 모든 죄를 용서 받은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요한복음 8:1-11간음 현장에서 잡힌 여인이었다거나 일곱 귀신 들린 여인” (16:9; 8:2)이었다는 것은 모두 추측입니다. 성경 근거가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를 부르셔서 교만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본질입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전서 1:27-29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두려워하는 그들이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약한 자들이었습니다.

 

주님께서 그들에게 평강을 전하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요한복음 20:19d, 21a

 

그리고 하나님께서 당신을 이 세상에 보내심과 같이, 주님께서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신다고 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으라.

요한복음 20:22d

 

성령충만은 선교파송의 절대조건입니다. 주님께서 성령과 동일어인 을 내쉬시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죄용서의 은혜를 전하셨습니다. 성령충만한 사람들은 용서하는 사람들입니다. 베드로에게 주신 말씀처럼, 일곱 번씩 일흔번도 용서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한없는 용서를 전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디두모라는 도마가 현장에 없었습니다. 그는 의심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7일 후에 다시 나타나셨습니다. 손가락과 손을 사용하여 주님을 확인하라고 허락하셨습니다. 그러자 그가 나의 주님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고백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는 복되도다.

요한복음 20:29b

 

육신의 눈과 손가락 손을 사용하는 대신, 말씀을 알고 믿는 것이 더욱 복된 일이라는 뜻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습니다.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그 말씀은 곧 하나님이십니다.

요한복음 1:1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무지한 인간의 지혜로는 결코 닿을 수 없는 엄청난 비밀 말씀이 우리에게 가능성으로 오셨습니다. 육신의 몸을 입고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께서 그 가능성 자체이십니다.

 

주님을 영접하고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았습니다.

요한복음 1:12

 

오늘 우리는 막달라 마리아, 베드로, 요한, 다른 제자들, 그리고 도마에게 차례대로 나타나신 부활의 주님을 뵙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오늘 우리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예루살렘 성지순례를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바위 틈을 지나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갑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믿음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입니다. 말씀을 읽고, 이 말씀을 주시는 음성을 알아보는 것, 그것이 양들이 해야 하는 일입니다.

 

주님의 음성이 오늘 우리에게 있습니다.

 

주 음성 외에는 참 기쁨 없도다.

날 사랑하신 주 늘 계시옵소서.

찬송가 4461

 

나갑시다. 세상에 전합시다. 우리 주님 부활하셨습니다. 무덤 문을 열고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하늘에 오르셨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무덤에서 세상으로, 그리고 궁극적으로 하늘로 향해야 합니다. 아니, 하늘로 향한 소망을 품고 세상으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전합니다.

 

사랑하는 주님께서는 무덤에 계시지 않고 부활하셨습니다.

지금 그분께서는 영광 중에 천국에 계십니다.

하늘에 오르신 주님께서 그 모습 그대로 다시 이 땅에 오십니다.

재림의 소망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아멘.

 

우리는 승천하신 주님의 약속을 믿습니다.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요한계시록 22:20b

 

주님을 믿는 우리는 죽어도 삽니다. 살아서 믿으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한복음 11:25-26

 

부활신앙은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우리가 굳건히 지켜야 할 신앙입니다.

 

 

기도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부활의 은혜를 허락하사, 주님의 영광을 보게 하신 기쁨에 감사드리옵나이다. 이 세상 살면서, 막달라 마리아처럼 누구에게나 주님의 부활 소식을 전하는 증인 되게 하옵소서. 참 목자로 우리에게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환영합니다. 예수님의 뒤를 따라 주님의 양을 먹이는 참 목자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양을 위해 목숨을 내려놓는 좋은 목자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