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22

금문교회 주일예배

조은석 목사

 

말씀묵상: 에스겔 37:1-6

 

믿음에서 사랑까지

베드로후서 1:1-21

 

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2.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5.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8.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하려니와

9.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

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11.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12. 그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서 있으나, 내가 항상 너희에게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13. 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나게 함이 옳은 줄 여기노니

14.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 같이 나도 나의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15. 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내가 떠난 후에라도 어느 때나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17.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18. 이 소리는 우리가 그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난 것을 들은 것이라.

19.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20.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베드로는 베드로전서에 이어 베드로후서를 기록하여 교회에 보냅니다. 베드로후서 1장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는 두 가지를 전합니다. 1-11절에서 그는 믿음--지식-절제-인내-경건-형제우애-사랑으로 이어가는 덕목을 전합니다. 이것이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함이기 때문입니다.

 

12-21절에서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통해 들은 하나님의 음성과, 성경말씀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뜻을 증거합니다.

 

먼저, 순서를 따라 말씀을 증거합니다. 1-11절 중에서, 1-2절은 인사말입니다. 여기에서 베드로는 스스로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라고 인정합니다. 종은 주인 아래 있어서, 주인의 명령을 절대 복종합니다. 사도는 친히 가까이에서 교육 받고, 그 지시를 따라 준행하는 자입니다.

 

그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편지를 기록하고 전한다고 말합니다. 수신자는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입니다.

 

베드로전서는 그 수신인이 이런 자들이었습니다.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비두니아등지에 흩어진 나그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

베드로전서 1:1b-2a

 

바울의 서신들은 대개 그 수신자가 제한적이었던 데 반하여, 베드로는 대단히 폭이 넓습니다. 더욱이 베드로후서에 이르면, 아무런 제한이 없습니다.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입니다.

 

편지를 기록하는 베드로와 모든 수신인을 포함하는 우리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베드로후서 1:3

 

예수님께서는 신기한 능력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분께서 그 능력으로써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무엇을 주셨습니까?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모든 선한 것을 그분으로부터 받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For who makes you different from anyone else? What do you have that you did not receive? And if you did receive it, why do you boast as though you did not?

고린도전서 1 Corinthians 4:7

 

그렇군요! 우리는 그 엄청난 선물을 모두 다받았습니다. 우리가 오늘 누리고 있는 것들 중에 받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스스로 만든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빈 손으로 이 세상에 나온 것 아닙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를 자랑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 Everything we need for life and godliness. 우리가 살아갈 때 절대로 필요한 것들입니다. 다른 것은 없어도 됩니다. 아니,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이 모든 소중한 것들을 모두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셨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The Lord is my Shepherd. I shall not be in want.

시편 Psalm 1:1

 

그러면 묻습니다. 왜요? 왜 이 모든 것을 주셨습니까?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Through our knowledge of him who called us by his own glory and goodness.

베드로후서 2 Peter 1:3b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 소중한 선물들을 모두 받은 것은, 우리가 알았기 때문입니다. 누구를 말입니까?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입니다.

 

그러므로 묻습니다. 예수님을 아는 것. 이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입니까? 다른 것은 몰라도,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알기만 한다면, 우리는 그 놀라운 지식으로써 하나님의 모든 선물을 예수님 안에서 다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예수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But whatever was to my profit I now consider loss for the sake of Christ. What is more, I consider everything a loss compared to the surpassing greatness of knowing Christ Jesus my Lord, for whose sake I have lost all things. I consider them rubbish, that I may gain Christ, and be found in him, not having a righteousness of my own that comes from the law, but that which is through faith in Christ--the righteousness that comes from God and is by faith.

빌립보서 Philippians 3:7-9.

 

베드로는 예수님을 알았습니다. 3년 동안 그분 곁에서 최측근으로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 깨달음은 그가 친히 구하여받은 정보가 아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찾아오셔서그를 붙들어 주셔서, 그에게 드러내 주신” “계시였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스스로 깨달은 진리가 아니라, 친히 찾아오셔서 그의 마음에 주신 그 믿음 자체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분 아니십니까?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Let us fix our eyes on Jesus, the author and perfector of our faith.

히브리서 Hebrews 12:2a

 

모든 것은 예수님께로부터 났습니다. 당신께서 그 을 허락하셨습니다. 자체가 되셔서 우리에게 찾아오신 것입니다. 베드로를 찾아오셨던 바로 그 모습대로 우리 모든 사람들을 하나씩 하나씩 찾아오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아는 예수 그리스도는, 으로써 우리에게 그 생명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다 주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부족함이 전혀 없습니다.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아멘!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써 우리에게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허락하셨습니다.

 

그 약속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So that through them you may participate in the divine nature and escape the corruption in the world caused by evil desires.

베드로후서 2 Peter 1:4b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기!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이것은 하나님께서 창조출애굽을 통해 계시하신 첫 번째 사역내용입니다. “성별”(Separation)이며 거룩”(Holiness)입니다. 창조: (히브리어, Adama)에서 취하여 인간(히브리어, Adam)이 되게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출애굽: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을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신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faith)을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in Jesus Christ),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through Jesus Christ), 예수 그리스도로써(by Jesus Christ)!

 

그런데 그 믿음(faith)”(goodness)이 더해져야 합니다.

이 뜻은, 믿음이 불완전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구원을 이루는 정도로 크고 놀랍고 위대한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이 빠져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 뜻에서 이 더해져야 한다는 말씀이지, 본래 믿음이 어떤 불완전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덕은 지식(knowledge)이 더해져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goodness)이 불완전해서 지식이 더해져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덕은 하나님의 속성을 품은 것입니다. 참으로 소중합니다. 그런데 거기서 지식이 빠져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덕 자체는 완전합니다. 그러나 지식 없는 덕은 불완전합니다.

 

그 지식은 절제(self-control)가 더해져야 합니다.

아울러 절제없는 지식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절제 없는 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그는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밤낮 설교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 절제는 인내(perseverance)가 더해져야 합니다.

절제가 좋습니다. 그러나 인내가 없다면 절제하다가 폭발하고야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내하는 절제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 인내는 경건(godliness)이 더해져야 합니다.

인내하는 모습은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경건이 없다면, 그 인내는 견디는 것뿐입니다. 보기에 안쓰럽지요.

 

그 경건은 형제우애(brotherly kindness)가 더해져야 합니다.

경건한 사람이 형제우애가 없다면 어떨까요? 형제는 굶고 있는데 자기의 경견이 무슨 유익이 있을까요?

 

그 형제우애는 사랑(love)이 더해져야 합니다.

형제우애가 좋지만, 사랑이 빠진다면, 그건 형식뿐입니다.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에서 사랑까지. 우리는 이 모든 여덟 가지의 덕목을 골고루 갖추어야 합니다. 이 여덟가지를 다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뜻인데, 순서를 따라서, 각각 부족한 것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결국 사랑을 더하고 나면, 역순으로 갈 때, 모든 것이 다 풍성해지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믿음에서 사랑으로 가는 것은, 결코 없어서는 안 될 것을 추적해 나가는 것입니다. 반대로, 사랑에서 믿음으로 간다면, 그건 가장 소중한 것이 각각의 미덕에 덧입혀지는 것입니다.

 

진리는 우리가 이미 알고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그것을 항상 우리가 생각나게하기 위해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본래 성령님께서 하시는 역사 중 하나가 말씀을 생각나게 하심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때에, 즉 언제나 어디서나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나게 하심이 보혜사 성령님의 사역입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But the Counselor, the Holy Spirit, whom the Father will send in my name, will teach you all things and will remind you of everything I have said to you.

요한복음 John 14:26

 

바로 이런 점에서 베드로는 그 자신이 보혜사 성령님에 충만하여 이 권면의 편지를 쓰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가 장막을 벗어날 때가 이른 줄을 알고 있습니다. 물론 이 장막육신의 장막,” 을 말합니다. 그 몸을 벗어난다는 것은 그의 죽음, 순교를 의미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 같이

나도 나의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Because I know that I will soon put it aside, as our Lord Jesus Christ has made clear to me.

베드로후서 2 Peter 1:14

 

묻습니다. 언제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그의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했다고 예고해 주셨습니까?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하시니.

I tell you the truth, when you were younger you dressed yourself and went where you wanted; but when you are old you will stretch out your hands, and someone else will dress you and lead you where you do not want to go." Jesus said this to indicate the kind of death by which Peter would glorify God. Then he said to him, "Follow me!"

요한복음 John 21:18-19

 

베드로는 그가 갈릴리 바다에 다시 나갔을 때, 밤새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고생했던 그 새벽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153마리 물고리를 잡게 하셨습니다. 아침을 차려놓고 초청하셨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어떤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지 예고하신 것입니다.

 

요시야 왕이 말씀을 발견하고 개혁을 시작할 때, 선지자 훌다가 예언한 것은 그의 죽음을 포함하는 메시지였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 그의 죽음까지 예견해야 옳습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성도 여러분! 우리를 부르심은 우리가 어떤 죽음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릴 것인가를 포함합니다.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아기 예수님께서 어떤 죽음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릴 것인가가 포함된 메시지입니다. 동방 박사들이 가지고 온 세 가지 예물은 모두 예수님의 죽으심을 준비한 예물이었습니다. 황금은 부자들과 함께 묻힌 무덤을, 유향은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한 어떤 여인이 부은 향유를, 몰약은 예수님의 시신에 바를 몰약을 미리 보여준 것입니다.

 

오늘 아침, 우리가 베드로를 통해 다시금 이 사실을 깨닫습니다. 우리는 어떤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인가? 예수님 복음을 위해 고난 받는 것이 기쁜 일입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Rejoice and be glad, because great is your reward in heaven, for in the same way they persecuted the prophets who were before you.

마태복음 Matthew 5:12

 

베드로는 그가 떠난 후, 곧 그의 순교 후에도 교회들이 베드로를 통해 허락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게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말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서 있으나

내가 항상 너희에게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베드로후서 1:12

 

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내가 떠난 후에라도 어느 때나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베드로후서 1:15

 

우리의 죽음내지 순교에 맞물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두 가지 주제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강림하심입니다. 우리는 죽어도 다시 살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보이신 그 십자가와 그 부활의 능력으로써! 또한, 우리 주님께서 강림하실 그 때에, 우리가 죽었더라도 부활할 것입니다. 무덤을 깨치고!

 

그러므로 우리가 이 육신의 장막을 벗을 때도 두려워하지 않는 근거가 여기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먼저 하나님 나라에 갔습니다. 베드로처럼, 그들의 소망은 예수님의 능력강림하심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소망의 근거도 이것입니다.

 

우리는 이 두 가지 주제가, “교묘하게 만든 이야기가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오히려, 베드로가 친히 그 변화산에서 들은 것입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This is my Son, whom I love.

베드로후서 1:17b

 

이것은 마태복음 17:1-8, 마가복음 9:2-13, 그리고 누가복음 9:28-36에 기록하게 하신 말씀입니다. 마태복음에 따르면 베드로는 그 영광을 보는 중에 초막 셋을 짓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This is my Son, whom I love; with him I am well pleased. Listen to him!

마태복음 17:5b

 

베드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그리고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 것을.

 

오늘 베드로가 진리가운데 서 있으면서, 그 진리를 그가 사랑하는 교회에 전파하는 것은,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교회가 살 길입니다.

 

베드로는 말합니다. “더 확실한 예언이 있다고.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베드로후서 2 Peter 1:19

 

이것은 무슨 말입니까? “등불은 무엇이며 샛별은 또 무엇입니까? 베드로가 그 변화산에서 들었던 그 음성과 비교할 때, “더 확실한 예언이라는 것입니다. 경황 없는 중에 귀로 들은 것보다는 친히 성령님께서 주장하셔서 글로 쓰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는 것입니다.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Above all, you must understand that no prophecy of Scripture came about by the prophet's own interpretation.

베드로후서 2 Peter 1:20

 

이제 베드로는 성경해석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사사로이 풀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그런 자들이 있어 교회 안팎을 어지럽히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로부터 오늘에 이르도록 교회는 각종 거짓 교사들이 들끓고 있습니다.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For prophecy never had its origin in the will of man, but men spoke from God as they were carried along by the Holy Spirit.

베드로후서 2 Peter 1:21

 

성경말씀은 사람의 글이 아닙니다. 성령님께서 감동하셔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아 글로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사사롭게 풀어내서는 결코 안 됩니다.

 

결론입니다

 

믿음, , 지식, 절제, 인내, 경건, 형제우애, 사랑. 이 여덟 가지 덕목을 교회가 지켜나가야 합니다.

 

이것은 베드로 스스로가 말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성경말씀에 드러난 하나님의 뜻입니다. 성도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자입니다. 교회는 성장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어제와 같은 방식으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믿음으로 시작하여 사랑으로까지 가야 합니다. 그 길에, 덕이, 지식이, 절제가, 인내가, 경건함이, 형제우애가 따라와야 합니다. 성도의 가는 길은 순교의 길까지입니다. 허무하게 죽음으로 마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는 순교의 제단 위에 산 제물로 바쳐져야 하는 것입니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For I am already poured out like a drink offering, and the time has come for my departure.

디모데후서 2 Timothy 4:6

 

긴박성 인식. Sense of urgency. 이것은 성도들이 언제나 준비하고 있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우리는 그 날과 그 시를 아무도 모릅니다. 언제든지 장막을 벗을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 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친히 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성령충만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늘 묵상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말씀 안에서 자라가야 합니다.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우애를, 형제우애에 사랑을.

 

 

기도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육신의 장막을 벗을 날이 가까이 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예수님의 증인으로서 살아가는 성도들이, 언제나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그 말씀을 지켜 살아가게 하옵소서. 믿음에서 사랑에 이르도록, 그 은혜의 길을 끝까지 가게 하옵소서. 순교의 그 날까지 주여 성령님께서 모든 저희의 발걸음을 주장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