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224

금문교회 성탄주일예배

조은석 목사

 

 

크리스마스 테러

마태복음 2:13-18

 

13. 그들이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14. 요셉이 일어나 밤에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15.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16.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들을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기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17.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18.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함이 이루어졌느니라.

 

 

우리교회가 샌프란시스코 주립대학 근처 1011 Garfield Street에 있을 때였습니다. 15년 쯤 전입니다. 버클리 GTU의 구약학 교수 Norman K. Gottwald 박사가 우리교회를 방문해서 성탄주일 설교를 했습니다.

 

그분은 오늘 본문을 가지고 크리스마스 테러라는 제목을 잡았습니다.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 지역에서 발생한 유아학살을 주목하고, 당시 성탄 계절에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던 유아학살문제를 지적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같은 주제를 가지고 말씀을 전합니다. 같은 성경의 사건을 배경으로 삼았지만, 그간 갓월드 박사의 설교 이래 세계정세가 변했기 때문에, 같은 주제로 설교해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 당시에 어린아이들이 학살당했습니다. 예수님 때문입니까? 헤롯 때문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아이들을 비롯한 모든 인간을 사랑하러 오셨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그 때 그 자리에서 수많은 어린아이들이 살해되었습니다. 헤롯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헤롯대왕(Herod the Great)입니다. 헤롯은 유대인이 아니라 이두매인이었습니다. 그가 돈을 주고 왕 직을 샀습니다. 그가 또 다른 유대인의 왕이 탄생했다는 소식에 분노했습니다. 본래 헤롯대왕은 권력을 위해 살인을 서슴지 않던 자였습니다. 그는 아내도 죽였고, 자식들도 여럿 죽였습니다.

 

그러나 헤롯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시의 모든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헤롯의 통치 아래 살면서 어느 정도 그의 폭력에 동조했습니다. 말하자면 헤롯이 헤롯이 되고, 그의 폭력 통치가 가능해진 것은 당대 사람들이 그것을 적극적으로 막아서지 않은 까닭도 큰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베들레헴 지역의 어린아이들은 헤롯이 다 죽였다기보다는 그 시대 그 사람들이 가담한 살인행위였습니다.

 

권력을 위해 어린아이들이 손쉽게 희생되는 구조, 그것은 오늘도 발견하는 것입니다. 이 추운 겨울에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우리가 성탄주일을 보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어린아이들이 희생되는 오늘의 현실을 돌아봅니다.

 

헤롯 이래 지난 2천년 동안 어린아이들의 희생은 당연시되어 왔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빛에서 우리를 다시 돌아보아야 합니다.

 

13. 그들이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마태복음 2:13

 

박사들이 떠났습니다. 천사가 요셉에게 말했습니다.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한다.”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요셉은 이제부터 헤롯을 피해야 합니다. 이 유대 땅 어디에서 그와 그의 군사들을 피한다는 말입니까? 방이라도 붙으면 모든 백성을 피해야 합니다. 신고하지 않으면 모두가 다 위험해지기 때문입니다.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라.” 애굽이 대안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과 마리아, 그리고 아기에게 애굽으로 내려가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야곱의 식구들이 가뭄을 피하여 애굽에 내려갔던 일이 연상되는 대목입니다.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언제까지나 거기 살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시하실 때가 있는데, 그 때까지만 한정적으로 피할 일이었습니다. 출애굽 때와 같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 내려갈 때, “한시적조건이 달렸습니다. 요셉이 유언에서 말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그들을 방문하고 방문하실 때까지였습니다.

 

14. 요셉이 일어나 밤에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15.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마태복음 2:14-15

 

요셉은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말씀을 이해했고, 그 말씀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지체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 밤에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떠났습니다.

 

15. 이는 주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마태복음 2:15

 

그런데 이것 보십시오. 요셉이 의도했거나 하지 않았거나 하나님의 명령은 호세아가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에 이미 예언된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거늘

When Israel was a child, I loved him, and out of Egypt I called my son.

호세아 11:1

 

결과적으로 요셉은 천사의 명령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순종한 것이었습니다. 참고로 호세아 선지자는 주전 8세기에 북 이스라엘에서 사역한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 오시기 700년도 훨씬 더 전에 예수님께서 애굽에 내려가셨다가, 거기서 다시 올라오실 것이 예언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그 모든 것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다 이루는 것입니다.

 

16.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들을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기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마태복음 2:16

 

헤롯 같이 악한 영에 사로잡힌 사람이 또 있을까요? 그가 박사들에게 속은 것이 아니라 그가 박사들을 속이려고 하던 것이 아닐까요? 자기의 의도가 탄로 나면 악한 자들은 분노를 표출합니다.

 

그래서 그는 무시무시한 명령을 내립니다. 베들레헴과 그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들을 다 죽이게 한 것입니다. 아기들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하나하나 따져 물어서 누가 그리스도인지찾는 수고도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혹시라도 누가 그리스도인지추적하는 과정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알게되고, 그래서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는 놀라운 가능성이 없지 않았을 터. 그러나 악한 영에 사로잡힌 헤롯은 아예 그런 가능성 자체를 싹을 잘라 버렸습니다.

 

그냥 산술적기준을 따라, 아이들을 죽였습니다. 그것도, 방금 태어난 신생아 예수 그리스도를 소급하여 2년까지 올렸습니다!

 

이런 못된 인간이 저지르는 죄악의 행태는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오늘날에도 그런 악의 패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7.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18.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함이 이루어졌느니라.

마태복음 2:17-18

 

그런데 그의 이런 행위도 이미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예언 된 바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라마에서 슬퍼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 때문에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어져서 위로 받기를 거절하는도다.

예레미야 31:15

 

예레미야는 주전 7세기에 활동했던 예언자였습니다. 여기 인용한 말씀은 그가 적어도 주전 600년 전 경에 유일하게 남은 남 유다에서 예언활동 하던 시기에 선포한 말씀이었습니다. 라헬은 야곱의 아내로서, 요셉과 베냐민의 어머니였습니다. 그 여자가 자식이 없어서 슬퍼하며 살았던 것은 창세기 30장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목숨처럼 사랑하던 야곱도 전혀 위로가 되지를 못했습니다. 라헬은 오직 하나님만 대하여 부르짖었습니다.

 

야곱의 아내 라헬의 사건이 그로부터 1200년 지난 예레미야 때 유다의 정황을 두고 예언-성취의 관계가 되었습니다. 예레미야 때의 예언이 600년 간격을 두고 예수님 때 예언-성취가 된 것입니다.

 

헤롯의 악행이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놀라지 않으십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미 아신 바 된 악한 자의 전형에 불과합니다. 이는 우리도 헤롯 같은 인간을 놀라움의 대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이미 죄악에 취한 자들의 행태로써 모두에게 말씀의 빛으로 드러난 자에 불과합니다.

 

오늘날 헤롯 같은 인물은 누구입니까? 그런 이들의 몹쓸 죄악에 대하여 놀람대신 기도묵상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하지만, 오늘 그런 자들이 누구인지, 알고, 깨닫고, 그런 자들을 상대하는 영적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요셉이 헤롯에 대하여 취했던 반사행동 같은 것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말씀 명령을 따라 헤롯을 피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 다음에 기록되어 나타나지만, 헤롯이 죽은 후에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가나안 땅으로 복귀했습니다. 물론 그 귀환 마을이 베들레헴이 아니라 나사렛이었지만, 그 나사렛 조차 이는 나사렛 사람이라 칭함을 받으리라는 말씀예언을 따른 것이었습니다.

 

시리아 난민사태를 두고 보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부류가 어린이들입니다. 아프리카의 난민촌에 가면 어린이들이 가장 불쌍합니다. 전쟁이 아니더라도 기근과 같은 사회적 위기상황이 발생한 어떤 나라, 어떤 지역을 가도 어린아이들이 가장 취약합니다. 사회는 어린아이들을 돌볼 사회보장 같은 장치를 제대로 만들지 못합니다.

 

미국도 그렇습니다. 놀랍게도 전체 어린아이의 10%가 영양실조입니다. 이것은 비슷한 나라들 중에서 최악입니다. 미국이 특별히 나쁜 나라라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어떤 나라라도 어린아이들의 희생을 오히려 당연시 여기는 나쁜 풍조가 퍼져 있습니다. 성경의 빛에서 보면 이것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에 감동 받은 상태라고는 결코 볼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들을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People were bringing little children to Jesus for him to place his hands on them, but the disciples rebuked them. When Jesus saw this, he was indignant. He said to them, "Let the little children come to me, and do not hinder them, for the kingdom of God belongs to such as these. Truly I tell you, anyone who will not receive the kingdom of God like a little child will never enter it." And he took the children in his arms, placed his hands on them and blessed them.

마가복음 10:13-16

 

헤롯의 태도와 예수님의 모습은 전혀 상반되고 있습니다. 이 헤롯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 데는 그런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 아이를 소중하게 여기셨습니다. 한 사회가 어린 아이들을 귀하게 여기고, 그들의 영적 성장과 그들의 교육과 그들의 건강상태와 그들의 안녕을 먼저 구해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정신입니다. 헤롯 편에 선다면 아이들을 학대하고, 아이들을 노동 시키고, 아이들의 영적 상태를 무시하겠지만, 심지어 죽이겠지요. 예수님의 편에 선다면 아이들을 용납하고, 아이들을 안고 축복하겠지요.

 

왜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어린 아이들이 받드는 그대로 천국을 받드는 자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이 세상에서 소외되고, 무시 당하고, 죽임을 당합니다. 누구든지 아이들 생각한다면 결코 전쟁선포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누구든지 아이들의 미래를 고려한다면 무리한 개발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환경을 파괴하는 그 어떤 야만적 행동도 멈추고 말 것입니다. 자기들 세대가 평안하면 그만이라는 근시적 착상은 결코 어린 아이들을 배려함이 아닙니다. 우리는 내일을 생각하고, 고려하고, 배려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날들은 우리의 어린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때이기 때문입니다.

 

크리스마스 테러.

 

크리스마스 계절인데, 지금 전 세계는 아이들이 극심한 고난 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북한 땅이 그렇습니다. 영양실조에 저체중은 물론 뇌 영양 공급 부족으로 판단력도 마비된 아이들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습니다.

 

중동 지역, 특히 팔레스타인에서는 어린 아이들의 꿈이 폭탄을 안고 이스라엘 진지로 뛰어드는 전사가 되는 데 있습니다. 이게 무슨 평화로운 나라입니까? 예루살렘이 그 뜻이 평화의 기초라면, 지금 예루살렘은 전혀 그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탄의 찬양이 거리를 가득 메웁니다. 이것도 상업화 된 것이라서 영적 공해입니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것은, 전 세계에서 성탄절 특수도 그 효과가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진리와 교회의 영적 영향력이 갈수록 그 힘을 잃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서 헤롯 같은 인물들이 아이들 핍박하는 일이 더 큰 기세를 모으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며, 예수님의 사랑으로 아이들을 돌보는 사람들이 그 힘을 잃고 있습니다. 이 슬픈 계절에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기도입니다. 주님, 저희들에게 평화를 주시옵소서. 아무런 힘이 없어서, 스스로 방비하지 못하는 저들에게 친히 구주가 되어 주시옵소서.

 

가정에서 아이들이 바르게 대우 받습니까? 부모들의 혈기와 분노와 미움이 아이들의 영적 삶에 가시가 되지는 않습니까? 사랑을 배우는 대신 혈기와 각종 죄악을 먼저 배우는 것이 아닙니까? 밥만 먹이는 것이 양육이 아닙니다. 배울 것을 배우게 하고, 들을 것을 듣게 하며, 꿈 꿀 것을 꿈꾸게 하는 그것이 양육입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Fathers, do not exasperate your children; instead, bring them up in the training and instruction of the Lord.

에베소서 6:4

 

아이들을 분노하게 하는 것은 아이들의 평화를 부수는 행위입니다. 아이들의 선한 양심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기의 욕심을 버리고 예수님의 뜻을 따라, 말씀의 교훈과 훈계로 길러야 합니다. 그것이 가정폭력을 막는 일입니다. 묻습니다. 가정폭력의 가장 큰 희생자는 아이들 아니었습니까?

 

예수님 탄생 때, 아이들이 죽었습니다. 이 아이들은 기독교 순교의 역사에서 그 첫 번째 페이지를 장식했습니다. 이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죽었으므로, 이들은 천국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름으로 죽어가는 아이들이 아니라, 예수님을 알고 그 말씀을 증거 하면서 그들의 삶을 바치는 소중한 인생들을 보고자 하는 것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아이들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양육하고 길러야 합니다. 오늘 금문교회는 이런 소중한 믿음의 공동체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려고 기도합니다.

 

성탄의 아름다운 때, 어린 아이들의 학살 사건을 읽어야 하는 우리는 슬프기 그지없습니다. 말씀에서 읽고, 현실에서 신문으로 읽습니다. 이런 때, 교회는 말씀의 빛 아래 서서, 말씀을 이해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는 요셉같은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

 

거룩하고 자비로우신 아버지 하나님. 어린 아이들을 사랑하시는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어린 아이들이 사랑 받는 나라, 그런 가정, 그런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