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826

금문교회 주일예배

조은석 목사

 

여호와여, 보게 하옵소서!

열왕기하 6:1-23

 

1.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 이르되, 보소서. 께 거주하는 이 곳이 우리에게는 좋으니

2. 우리가 요단으로 가서 거기서 각각 한 재목을 가져다가 그 곳에 우리가 거주할 처소를 세우사이다,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가라하는지라.

3. 그 하나가 이르되, “청하건대 당신도 종들과 함께 하소서,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내가 가리라,“ 하고

4. 드디어 그들과 함께 가니라. 무리가 요단에 이르러 나무를 베더니,

5. 한 사람이 나무를 벨 때에 쇠도끼가 물에 떨어진지라. 이에 외쳐 이르되, “아아, 내 주여, 이는 빌려 온 것이니이다,” 하니,

6. 하나님의 사람이 이르되, “어디 빠졌느냐?” 하매, 그곳을 보이는지라. 엘리사가 나뭇가지를 베어 물에 던져 쇠도끼를 떠오르게 하고,

7. 이르되, “너는 그것을 집으라,” 하니, 그 사람이 손을 내밀어 그것을 집으니라.

8. 그 때에 아람 왕이 이스라엘과 더불어 싸우며, 그의 신복들과 의논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아무데 아무데 진을 치리라,” 하였더니,

9. 하나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왕에게 보내 이르되, “왕은 삼가 아무 곳으로 지나가지 마소서. 아람 사람이 그곳으로 나아오나이다,” 하였더니,

10. 이스라엘 왕이 하나님의 사람이 자기에게 말하여 경계한 곳으로 사람을 보내, 방비하기가 한두 번이 아닌지라.

11. 이러므로 아람 왕이 마음이 불안하여 그 신복들을 불러 이르되, “우리 중에 누가 이스라엘 왕과 내통하는 것을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하니,

12. 그 신복 중의 한 사람이 이르되, “우리 주 왕이여, 아니로소이다. 오직 이스라엘 선지자 엘리사가 왕이 침실에서 하신 말씀을 이스라엘 왕에게 고하나이다,” 하는지라.

13. 왕이 이르되, “너희는 가서 엘리사가 어디 있나 보라. 보라, 내가 사람을 보내어 그를 잡으리라.” 왕에게 이르되, “보라. 그가 도단에 있다, 하나이다.”

14. 왕이 이에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보내매, 그들이 밤에 가서 그 성읍을 에워쌌더라.

15. 하나님의 사람의 사환이 일찍이 일어나서 나가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읍을 에워쌌는지라. 그의 사환이 엘리사에게 말하되,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하니

16.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17.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18. 아람 사람이 엘리사에게 내려오매,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원하건대 저 무리의 눈을 어둡게 하옵소서,” 하매, 엘리사의 말대로 그들의 눈을 어둡게 하신지라.

19. 엘리사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는 그 길이 아니요, 이는 그 성읍도 아니니,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가 찾는 사람에게로 나아가리라,” 하고, 그들을 인도하여 사마리아에 이르니라.

20. 사마리아에 들어갈 때에,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여, 이 무리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들의 눈을 여시매, 그들이 보니, 자기들이 사마리아 가운데에 있더라.

21. 이스라엘 왕이 그들을 보고, 엘리사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가 치리이까? 내가 치리이까?” 하니,

22. 대답하되, “치지 마소서. 칼과 활로 사로잡은 자인들 어찌 치리이까? 떡과 물을 그들 앞에 두어 먹고 마시게 하고, 그들의 주인에게로 돌려보내소서,” 하는지라.

23. 왕이 위하여 음식을 많이 베풀고, 그들이 먹고 마시매 놓아 보내니, 그들이 그들의 주인에게로 돌아가니라. 이로부터 아람 군사의 부대가 다시는 이스라엘 땅에 들어오지 못하니라.

24. 이 후에 아람 왕 벤하닷이 그의 온 군대를 모아 올라와서, 사마리아를 에워싸니

25. 아람 사람이 사마리아를 에워싸므로 성중이 크게 주려서, “나귀 머리 하나에 은 팔십 세겔이요, 비둘기 똥 사분의 일 갑에 은 다섯 세겔이라하니,

26. 이스라엘 왕이 성 위로 지나갈 때에, 한 여인이 외쳐 이르되, “나의 주 왕이여, 도우소서!

27. 왕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를 돕지 아니하시면 내가 무엇으로 너를 도우랴? 타작 마당으로 말미암아 하겠느냐? 포도주 틀로 말미암아 하겠느냐?” 하니라.

28. 또 이르되, “무슨 일이냐?” 하니, 여인이 대답하되, “이 여인이 내게 이르기를, ‘네 아들을 내놓아라. 우리가 오늘 먹고 내일은 내 아들을 먹자,’ 하매,

29. 우리가 드디어 내 아들을 삶아 먹었더니, 이튿날에 내가 그 여인에게 이르되, ‘네 아들을 내놓아라, 우리가 먹으리라,’ 하나, 그가 그의 아들을 숨겼나이다,” 하는지라.

30. 왕이 그 여인의 말을 듣고 자기 옷을 찢으니라. 그가 성 위로 지나갈 때에 백성이 본즉, 그의 속살에 굵은 베를 입었더라.

31. 왕이 이르되, “사밧의 아들 엘리사의 머리가 오늘 그 몸에 붙어 있으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실지로다!” 하니라.

32. 그 때에 엘리사가 그의 집에 앉아 있고, 장로들이 그와 함께 앉아 있는데, 왕이 자기 처소에서 사람을 보냈더니, 그 사자가 이르기 전에, 엘리사가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이 살인한 자의 아들이 내 머리를 베려고 사람을 보내는 것을 보느냐? 너희는 보다가, 사자가 오거든 문을 닫고, 문 안에 들이지 말라. 그의 주인의 발소리가 그의 뒤에서 나지 아니하느냐?” 하고,

33. 무리와 말을 할 때에, 사자가 그에게 이르니라. 왕이 이르되, “이 재앙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왔으니, 어찌 더 여호와를 기다리리요?”

 

 

모든 사람이 보는 시대입니다. 누구나 볼 수 있는 때입니다.

 

무엇을 보는가? 사실을 보는가, 거짓을 보는가? 이것이 문제입니다.

 

오늘 말씀인 열왕기하 6장은 세 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중에 세 번째 이야기는 채 미완성입니다. 720절까지 가야 그 이야기의 결말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성경의 각 장 구분은 그 자체로 완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환기시켜 드릴 필요가 생겼습니다. 구약은 주후 10세기에 대략 장절이 구별되었지만, 신약은 1551년 프랑스 인쇄업자 로버트 스테파누스가 정한 것을 오늘까지 따르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두 번째 이야기에 집중해서 전하겠습니다. 그러나 본문이 다루는 모든 내용을 큰 그림으로 설명해 드릴 것입니다.

 

1-7절은 쇠도끼가 물 위에 떠오른 사건입니다. 빌어온 쇠도끼가 물에 빠졌습니다. 안타까워 하는 그에게, 나뭇가지를 베어 던지지 물에서 도끼가 떠올랐습니다. 이 사건은 가난한 자의 궁핍을 돌아보시는 하나님과, 그의 종 엘리사의 모습입니다.

 

8-23절은, 아람 군대가 이스라엘을 칠 때의 이야기입니다. 아람 왕이 신하들과 전투작전을 짤 때마다, 엘리사가 그들의 계획을 이스라엘 왕에게 보고했습니다. 번번이 작전에 실패한 아람 왕이, 엘리사를 잡아 죽일 계획을 세웠습니다.

 

많은 군사가 엘리사가 있는 성읍을 포위했습니다. 엘리사의 사환이 아침 일찍 일어나, 아람 군대를 보았습니다. 그가 주인에게 보고하며 외쳤습니다.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기겁할 노릇이었습니다. 이제는 꼼짝없이 죽었구나! 그런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달랐습니다. 그에게 말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죽음 앞에서 두려워 하는 것이 인지상정 아닙니까? 그런데 엘리사는 지금 그의 사환에게 그 두려움을 물리치라고 지시합니다. 왜요?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숫자로 쳐도, 우리가 더 많다, 그런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의 사환이 그들만 볼 뿐 우리 쪽을 보지 못하는 데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른 종류의 눈이 필요했습니다.

 

엘리사의 기도를 들어 보십시오: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 보게 하옵소서!”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의 눈을 열어 주셨습니다. 비로소 그가 보았습니다.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습니다.

 

두 개의 눈이 있습니다. 육신의 눈이 그 하나며, 영의 눈이 다른 하나입니다. 육신의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영의 눈은 하나님께서 열어 주셔야 비로소 작동합니다. 육신의 눈이 보는 것은 현상뿐입니다. 그러나 영의 눈이 보는 것은 영의 실체를 볼 수 있습니다.

 

진실은 무엇입니까? 영의 눈으로 보는 것이 진실입니다.

 

이제 엘리사가 다시 기도를 드립니다. “원하건대, 저 무리의 눈을 어둡게 하옵소서.” 이번에는 육신의 눈을 어둡게 해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아람 군대는 모두 눈이 멀었습니다.

 

엘리사는 그들을 이끌어 사마리아로 향했습니다. 이스라엘 왕이 나와 맞았습니다. 그가 말합니다. “내 아버지여!” 얼마나 고마웠으면 선지자를 왕이 아버지라고 불렀을까요?

 

내가 치리이까? 내가 치리이까?

 

눈 먼 군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냥 치면 맞을 뿐이요, 죽이면 죽을 뿐이지요. 그래서 왕이 두 번이나 거듭 물은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생각이 달랐습니다.

 

치지 마십시오. 칼과 활로 잡은 자라고 해도 칠 수가 있습니까? 더욱이!

그들에게 음식을 주시고, 먹고 자기 주인에게 돌아가게 하십시오!

 

아람 군대가 음식을 많이 먹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왕에게 돌아갔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멀었던 눈이 회복되었는지 여부는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이, 이후로 아람 군대가 이스라엘 땅을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영원히 못 온 것이 아니라, 단지 한 동안 뿐이었지만!

 

여기서 우리는 눈을 뜨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오, 눈을 멀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겠습니다. 엘리사의 사환은 그의 영의 눈을 뜨고, 하나님의 영의 군대를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을 셀 수 없이 많은 하나님의 군대로 지켜 보호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람 군대의 눈을 멀게 하셨습니다. 창세기 19장에, 천사들이 소돔 성의 주민들의 눈을 멀게 한 사건을 읽습니다. 그들은 롯의 집에 몰려들어, 천사들을 내보내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들과 우리가 상관하리라! 그러자 롯이 나가서 문을 뒤로 닫으며, 폭도들을 만류했습니다. 내 집에 들어온 손님에게 행패 부리지 마시라! 그 대신 그는 자기의 딸들을 제시했습니다. 그렇지만 폭도들은 손님들을 요구했습니다. 바로 그 때 천사들이 롯을 집안으로 끌어들이고, 폭도들의 눈을 멀게 했습니다. 그들은 나갈 문을 찾느라고 손으로 더듬었습니다.

 

우리에게 눈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오, 보지 못하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메섹에서 사울의 눈을 멀게 하셨다가, 얼마 후에 다시 보게 하셨습니다. 그가 다시 보게 될 때는 그의 영안도 함께 열렸습니다.

 

우리가 보는 시대를 살아갑니다. 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세계 곳곳의 교회들이 모니터화면을 전면에 내걸고 있습니다. 상업세계는 시각효과를 특별하게 강조합니다. 듣는 것이나 상상력이 필요한 문화를 버린 이런 문화는 보는 것이 전부!”라는 거짓 메시지를 바탕에 깔고 있습니다.

 

지금 당신이 보는 것 외에 숨은 것은 없다!

 

다 보여준다는 사람은 대개 사기꾼입니다. 사람이 어찌 다 보여줄 수 있다는 말입니까? 왜냐하면 세상의 실체 중에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이 더 많고,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

For God does not show favoritism.

로마서 2:11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A man is not a Jew if he is only one outwardly, nor is circumcision merely outward and physical. No, a man is a Jew if he is one inwardly; and circumcision is circumcision of heart, by the Spirit, not by the written code. Such a man's praise is not from men, but from God.

로마서 2:29-30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For in this hope we were saved. But hope that is seen is no hope at all. Who hopes for what he already has? But if we hope for what we do not yet have, we wait for it patiently.

로마서 8:24-25

 

따라서 시각으로 드러난 것 외 모든 것을 다 부정하는 그런 논리는 거짓입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은, 보이지 않은 실체의 일부제한된 조건 아래드러난 것 뿐입니다. 그런데 보는 것 자체가 전부라고 여기면, 거기 인간의 삶과 죽음이 다 걸려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엘리사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입니다. 그의 사환이면, 적어도 그것을 배웠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무명의 그 청년은 육신의 눈으로 본 것을 가지고 떨었습니다.

 

엘리사는 보다 큰 군대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하여, 그 큰 하나님의 군대를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 사환이 그 군대를 보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무엇이 우리를 두렵게 합니까?

 

세상은 으로써 우리를 통치합니다. 그 위용을 자랑함으로써, 우리가 순종하게 만듭니다. 우리의 선택의 범위를 정하고, 어쩔 수 없이 그 사회의 그 질서를 따르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을 이겨야 합니다. 보십시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Do not conform any longer to the pattern of this world, but be transformed by the renewing your mind. Then you will be able to test and approve what God's will is--his good, pleasing and perfect will.

로마서 12:2

 

하나님의 뜻을 분별함! Test and approve what God's will is! 이것은 영의 눈을 떠야 가능한 일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He said, "Go and tell this people: Be ever hearing, but never understanding; be ever seeing, but never perceiving. Make the heart of this people calloused; make their ears dull and close their eyes. Otherwise they might see with their eyes, hear with their ears, understand with their hearts, and turn and be healed."

이사야 6:9-10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열어 주셔야 그 귀도 열리고, 그 눈이 밝아짐을 뜻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고는, 보는 것을 보았다고 할 수 없고, 들은 것을 들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본 것이 사실이 아니며, 들은 것이 실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모든 우리가 보는 것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 실체도 하나님께서 내신 것입니다. 그것을 보는 눈도 하나님께서 지어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하나님께 달렸습니다.

 

세 번째 이야기입니다.

한동안 아람 군대가 이스라엘 땅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벤하닷 왕이 옛날을 잊고, 그의 군대를 모아 이스라엘로 진격했습니다. 수도 사마리아를 포위했습니다. 그 안에 사람들이 굶주렸습니다.

 

나귀 머리 하나에 은 팔십 세겔이요,

비둘기 똥 사분의 일 갑에 은 다섯 세겔

 

이것은 물가가 얼마나 올랐는지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늘 베네수엘라의 인플레 현상이 뉴스거리지만, 이스라엘과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왕이 성 위로 지나갑니다. 한 여인이 부르짖어 말합니다. “나의 주 왕이여, 도우소서!” 왕의 대답입니다. “여호와께서 너를 돕지 않으시면 무슨 수로 내가 너를 도우랴? 타작마당도, 포도주 틀도!”

 

그리고 묻습니다. 무슨 일이냐? 그러자, 그 여인의 말입니다. 다른 여인과 싸움이 일었는데, 어제는 내 아들을 먹자고 하며 내일은 자기 아들을 먹자고 제안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제 먹었는데, 오늘 자기 아들을 숨겼다는 것입니다.

 

왕이 그 말을 듣고 자기 옷을 찢었습니다. 왕은 이미 안쪽에 베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나라가 망한 것입니다!

 

왕이 원망합니다. 하나님께서 돕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공격했습니다. “엘리사의 머리가 오늘 그의 몸에 붙어 있으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실 것이다!”

 

이런 맹세는 진즉에 아합의 아내 이세벨이 엘리야에 대하여 했던 것과 같습니다.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내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May the gods deal with me, be it ever so severely, if by this time tomorrow I do not make your life like that of one of them.

열왕기상 19:2

 

이세벨은 내일 이맘때!” 했는데, 이스라엘 왕이자 아합의 아들 여호람은 오늘그랬습니다. 그 차이는, 그만큼 긴박성이 컸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엘리사의 도움을 얻어 아람 군대의 작전내용을 다 파악하여 대비하던 일이 멀지 않은 과거였습니다. 사마리아를 에워쌌던 아람 군대를 눈 멀게 하시고, 철수시킨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한 것이 오래 전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가 그 모든 은혜를 다 잊어버리고, 엘리사의 목을 베겠다고 결정한 것입니다. 사람을 보냈습니다.

 

지금 사마리아는 포위되었습니다. 백성이 먹을 것이 없어서 아이를 삶아 먹고, 싸움이 그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왕이 하나님께 도움 청할 일을 버리고, 하나님의 종을 죽이려고 사람을 보냈습니다. 기도할 시간에 살인을 하는 격입니다. 감사할 때 원망하고 있습니다.

 

당시 엘리사는 자기 집에서 장로들과 대화하던 중이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내 멀리를 베려고 사람을 보냈다. 그의 사자를 문 안으로 들이지 말라. 그 주인의 발소리가 그 뒤에서 난다!”

 

다 알고 있었습니다. 엘리사는 앞서 아람 왕이 신하들과 전투작전을 짤 때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호람의 말이, “이 모든 재앙이 여호와께로부터 왔다. 그러니 어찌 여호와를 기다릴까!” 그런 자포자기였습니다.

 

분석은 맞았습니다. 모든 재앙이 여호와께로부터 났습니다. 그러면 마땅히 여호와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것이 바른 예배인간의 신앙입니다. 욥이 그랬습니다.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You are talking like a foolish woman. Shall we accept good from God, and not trouble?

욥기 2:10

여호람이 신앙인이었더라면 사람을 보내 엘리사의 목을 가져오라는 명령을 내리는 대신, 엘리사를 청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렸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멸망했을 때, 예레미야는 이렇게 썼습니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It is good to wait quietly for the salvation of the Lord.

예레미야 3:26

 

그런데 사실을 말하면, 영의 눈을 뜬 사람이 하나님을 기다릴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은 자가 하나님을 기다릴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는 자의 태도는 기다림이라고 했습니다. 앞에 인용해 드린 로마서 9:25입니다.

 

그처럼 극도의 고난 중에, 왕이 베옷을 감춰 입을 수밖에 없고, 백성이 아이들을 삶아 먹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때, 도리어 기다림으로 예배드리는 자가, 그가 진정한 예배인간입니다.

 

예배드릴 수 있을 때, 그 때만 예배 드리면 우리의 예배가 나은 것이 무엇입니까? 예배드릴 수 없을 때, 오히려 땅에 엎드린 욥을 기억해야 합니다.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오,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At this Job got up and tore his robe and shaved his head. Then he fell to the ground in worship and said: "Naked I came from my mother's womb, and naked I will depart. The Lord gave and the Lord has taken away; may the name of the Lord be praised. In all this, Job did not sin by charging God with wrongdoing.

욥기 1:20-22

 

오늘 본문에 이런 욥 같은 자가 있습니다. 엘리사입니다. 그는 다들 절망할 때,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의 사환의 눈을 떠서 영의 하나님 군대를 보게 기도한 그대로, 그의 기도는 왕을 포함한 모든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군대를 보게 하는 기도를 드렸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의 믿음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절박하십니까? 안팎으로? 포위되었고, 내분이 일어나는 사마리아처럼? 그럴 때 여호람 왕 같은 인물이 되시겠습니까? 하나님을 원망하고, 누군가 희생양을 찾아, 그를 죽이려고 사람을 보내는? 아니면 엘리사 같이 되시겠습니까? 욥처럼?

 

선택은 자유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온전히 여러분에게 임할 것입니다. 죽음이거나 생명이거나!

 

 

기도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이 시대는 절망과 신음소리가 가득합니다. 실직자들의 좌절이 높고, 전쟁과 기근으로, 난민의 울부짖음이 온 땅을 덮습니다. 하나님, 저희가 이 자리에서 예배 드리며, 하나님을 기다립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립니다. 주여, 저희를 도와주시옵소서! 우리를 구원하러 이 땅에 오신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