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3일
GTU 한인학생회 개강예배 설교
SPR
시편 78:1-72
시편은 모두 150편인데, 분류법이 다양합니다. 혹자는 시편 78편을 “출애굽시편”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본문 의 중심 내용이 출애굽 사건 리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는 이를 “창조@출애굽 시편”이라고 부릅니다. 여 기 본문에 창조가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78:23절을 공동번역으로 읽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하늘의 구름에게 명령하시어 하늘의 문들을 열게 하시고.
그런데 가만 읽으면 시편 78편은 “신명기”를 꽤 닮았습니다. 신명기는 기억하라, 순종하라, 나다, 이런 네 개의 덩어리로 구성되었습니다. 그 기억의 내용이 출애굽 사건입니다. 그런데 그 출애굽은 “창조@출애굽”입니다.
시편 78편에서 출애굽 사건을 돌아보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이 시편의 최종편집이 포수기 이후라는 건 대개 동의합니다. 포수기 이후에, 적어도 1,000년 전으로 소급해 올라가 모세 당시의 출애굽을 기억해야 할 무슨 이 유가 있습니까? 역사에서 단 한 차례 일어났던 주전 1447년의 출애굽, 이집트 제18대 왕조 제5대 파라오 투 트모세 3세 때 일어났던 그 사건을 왜 기억해야 합니까? 바벨론에서 돌아온 유대 공동체가?
그 질문은 모압 광야에 모인 이스라엘에게도 물어야 합니다. 모세가 설교로 증거한 것은, 이스라엘 제2세대가 출애굽 사건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율법은 대개 창세기-민수기에 이미 선포한 것을 요약 수정 반포한 것입니다. 십계명이 그 예입니다. 출애굽기 20장의 십계명은 신명기 5장에 재수록되었습니다. 열 가지 내용은 같지만, 배경이 다릅니다. 클레임은 같은데 리즌이 다릅니다. 출애굽기에서는 창조가, 신명기에서는 출 애굽이 그 리즌입니다. 지키라는 명령 전제로 주어진 기억 내용이 신명기는 출애굽 사건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 문 시편 78편과 신명기가 같은 꼴이라는 말입니다.
시편 78편만 아닙니다. 신명기 이후 상당히 많은 성경 기록이 신명기 패턴을 닮고 있습니다. 이사야서가 한 예 입니다. 이사야도 출애굽 사건 기억을 리즌으로 요구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실 것을 선포합니다. 제2의 이집트인 바벨론으로부터!
오늘 본문 시편 78편을 최종 편집하고 예배 때 읽었던 포수이후 유대 공동체는, 이집트, 바벨론을 거쳐 페르시 아를 새로운 출애굽 대상으로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이 일관되게 밑금 긋는 제2, 3, 4 출애굽은 단지 강대국이라는 정치괴물만 말하지 않습니다. 궁극적으로 이는 죄, 죽음, 어둠으로부터 구원의 탈출을 말합니다. 그래서 신명기, 이사야, 시편으로 이어가는 이 기억-명 령 행진은 신약으로 이어갑니다.
복음서는 구원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새 창조 사역을 소개합니다. 바울은 은혜와 평강을 전함으로써, 십자 가와 부활을 증거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 피조물 만드시는 새 창조사역입니다. 요한은 계시록에서 새 하늘 과 새 땅 창조를 구원의 궁극적 내용으로 선포합니다.
그런데 출애굽 기억은 출애굽이 품고 있는 창조기억이 이미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출애굽 기억은 창조 @출애굽 기억입니다.
오늘 제목이 SPR입니다. 이것은 Separation, Placement, Rest의 머리철자 모음입니다. 창조의 처음 3일, 그 다음 3일, 그리고 제7일, 이렇게 삼등분 한 각각의 날에 해당합니다.
아울러 이는 출애굽의 세 덩어리이기도 합니다. 애굽으로부터의 탈출, 가나안 정복, 그리고 예배입니다.

 키에르케고르는 “현재가 되지 못할 과거는 기억할 가치가 없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모든 역사기술의 기본입니 다. 모세오경을 하나의 신학-문학적 단위로 봅니다. 그러면 창세기는 역사책입니다. 출애굽을 기다리는 공동체 에게 창조 이야기는 기억해야 할 과거입니다. 그 과거가 현재가 되는 것, 그것이 출애굽입니다. 이런 점에서 출 애굽이라는 역사적 사건은 여호와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역입니다.
시편으로 국한해도, 78편만 아니라, 모든 시편이 다 창조@출애굽 시편입니다. 이사야서만 아니라 예레미야, 에스겔, 소예언서 등 모든 예언서에서 그 뿌리를 발견합니다. 욥기 같은 지혜서도 그렇습니다. 욥의 세 친구와 엘리후는 창조만 기억하는데, 욥은 창조@출애굽을 기억합니다. 그의 기억에 따라 욥은 예배인간입니다.
시편 78편은 이런 점에서 예배시편입니다. 모든 예배하는 자는 “구원”을 기다립니다. 그 구원의 양상은 새 창 조일 것입니다. 성경의 증거입니다.
오늘 우리가 구원을 기다립니다. 온 세상을 내다보아도, 모든 영혼이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립니다. 그래야 하는 데, 모르거나 무시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걸 알려야 합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그 구원이 어떻게 올까? 자기의 구원을 절망하는 자들이 수도 없습니다. 다른 건 다 믿겠는데, 자기의 변화를 도저히 믿지 못하고, 끝끝내 절망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에게 새 창조를 선포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사명입니 다. 모세에게 “에흐예 아셀 에흐예” 하셨던 여호와 하나님께서 새 창조를 이루셨습니다. 이스라엘을 새롭게 바 꾸셨습니다.
오늘 시편 78편에서 이스라엘이 기억해야 할 것을 오늘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그들이 순종해야 할 것을 우 리가 순종해야 합니다.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판단을 우리가 따르고, 그분의 정의를 우리가 실시하는 것입니다. 강물처럼 흘러가도록!
워런트입니다. 에흐예 아셀 에흐예! 예수님의 언어로 ‘에고 에이미!’ 그렇습니다. 하늘에 하나님께서 계십니다. 이 혼탁한 세상에서, 다들 어둠에서 방황하는데, 오늘 우리가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순종하며 살아가야할지, 그것이 분명하고 분명해졌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