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28

금문교회 주일예배

조은석 목사

 

예루살렘 vs 산당

열왕기하 12:1-21

 

1. 예후의 제7년에 요아스가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사십 년간 동치하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시비아라. 브엘세바 사람이더라.

2. 요아스는 제사장 여호야다가 그를 교훈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되,

3. 다만 산당들을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였더라.

4. 요아스가 제사장들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성전에 거룩하게 하여 드리는 모든 은, 곧 사람의 통용하는 은이나 각 사람의 몸값으로 드리는 은이나, 자원하여 여호와의 성전에 드리는 모든 은을

5. 제사장들이 각각 아는 자에게서 받아들여, 성전의 어느 곳이든지 파손된 것을 보거든 그것으로 수리하라,” 하였으나,

6. 요아스 왕 제이십삼년에 이르도록 제사장들이 성전의 파손한 데를 수리하지 아니하였는지라.

7. 요아스 왕이 대제사장 여호야다와 제사장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성전의 파손한 데를 수리하지 아니하였느냐? 이제부터는 너희가 아는 사람에게서 은을 받지 말고, 그들이 성전의 파손한 데를 위하여 드리게 하라.”

8. 제사장들이 다시는 백성에게 은을 받지도 아니하고, 성전 파손한 것을 수리하지도 아니하기로 동의하니라.

9. 제사장 여호야다가 한 궤를 가져다가, 그것의 뚜껑에 구멍을 뚫어 여호와의 전문 어귀 오른쪽, 곧 제단 옆에 두매, 여호와의 성전에 가져 오는 모든 은을 다 문을 지키는 제사장들이 그 궤에 넣더라.

10. 이에 그 궤 가운데 은이 많은 것을 보면, 왕의 서기와 대제사장이 올라와서,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대로 그 은을 계산하여 봉하고

11. 그 달아본 은을 일하는 자, 곧 여호와의 성전을 맡은 자의 손에 넘기면, 그들은 또 여호와의 성전을 수리하는 목수와 건축하는 자들에게 주고

12. 또 미장이와 석수에게 주고, 또 여호와의 성전 파손한 데를 수리할 재목과 다듬은 돌을 사게 하며, 그 성전을 수리할 모든 물건을 위하여 쓰게 하였으되,

13. 여호와의 성전에 드린 그 은으로 그 성전의 은 대접이나 불집게나 주발이나 나팔이나 아무 금 그릇이나 은 그릇도 만들지 아니하고,

14. 그 은을 일하는 자에게 주어, 그것으로 여호와의 성전을 수리하게 하였으며,

15. 또 그 은을 받아 일꾼에게 주는 사람들과 회계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성실히 일을 하였음이라.

16. 속건제의 은과 속죄제의 은은 여호와의 성전에 드리지 아니하고 제사장에게 돌렸더라.

17. 그 때에 아람 왕 하사엘이 올라와서 가드를 쳐서 점령하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오고자 하므로

18. 유다의 왕 요아스가 그의 조상들 유다 왕 여호사밧과 여호람과 아하시야가 구별하여 드린 모든 성물과, 자기가 구별하여 드린 성물과, 여호와의 성전 곳간과 왕궁에 있는 금을 다 가져다가, 아람 왕 하사엘에게 보냈더니, 하사엘이 예루살렘에서 떠나갔더라.

19. 요아스의 남은 사적과 그가 행한 모든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20. 요아스의 신복들이 일어나 반역하여 실라로 내려가는 길 가의 밀로 궁에서 그를 죽였고,

21. 그를 쳐서 죽인 신복은 시므앗의 아들 요사갈과, 소멜의 아들 여호사바드였더라. 그는 다윗 성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아마샤가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예루살렘 vs 산당. 오늘 말씀의 제목이며 주제입니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다윗이 여부스 족속에게서 점령한 개인 땅입니다. 열두 지파의 중립지대였습니다. 열두 지파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성전을 세우셨습니다. 다윗(1011-971)이 모든 준비를 마쳤고, 주전 960년에 솔로몬(971-931)이 성전을 완공, 봉헌했습니다.

 

다윗이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그 자리에 성전이 서기 훨씬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는 하나의 성전을 예비하셨습니다. 모세 때였습니다. 출애굽 제2세대에게 전한 설교인 신명기가 한 하나님, 한 성전, 한 백성을 중심신학인데, “한 성전이 곧 예루살렘입니다.

 

산당은, 예루살렘을 제외한 모든 제의처소(worshiping sites)입니다. 한문자처럼, 산에 있는 사당 같은 형태로, 주로 높은 데 위치했습니다. 그래서 영어로 high places라고 부릅니다.

 

히브리어는 바마(bamah)입니다. 크게 두 가지로 나눕니다. 첫 번째는, 예루살렘 밖 모든 지방이 지역에서 인정하는 산당입니다. 여기는 제사장이 있고, 제사장은 지역의 종교만 아니라 정치-경제적인 지도력도 장악했습니다. 십일조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지방의 토호 정치세력과 결탁했습니다. 아니, 제사장이 이미 토호세력 중 하나였습니다.

 

두 번째 산당은, 개인이 각 가정에 설치한 것입니다. 집집마다 무슨 우상 같은 것을 두고 섬겼는데, 그것을 통틀어 바마, 곧 산당으로 포함합니다.

 

오늘 본문이 다루는 산당은 이 두 가지가 다 있습니다. 예루살렘 예배가 거룩하고 온전하기 위해서는 모든 산당이 제거되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예루살렘과 산당이 공존할 수 없습니다. 요아스가 예루살렘을 거룩하게 하는 개혁을 실시했지만, 산당 제거에는 실패했습니다. 어째서 그런 실패가 나왔는가? 그 산당개혁의 실패는 어떤 파급효과를 낳았는가? 오늘 주목해야 할 질문입니다.

 

특히 오늘은 종교개혁 501주년 주일입니다. 지난 1년 동안 한국교회는 교회세습을 필두로 수많은 교회개혁의 대상을 대면했습니다. 오늘 금문교회에서 선포되는 이 말씀은 우선 금문교회가 하나님의 교회로 어떠한가 말씀의 빛으로 돌아보고, 온 세상에 선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계 교회를 진단하며, 내일의 교회를 전망할 것입니다.

 

왕이 될 때 겨우 일곱 살이었던 요아스(Joash, 835-796) 왕 이야기입니다. 그는 남유다의 제8대 왕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아하시야(Ahaziah)가 북 왕국의 쿠데타 주동자 예후의 손에 죽은 이후, 한 살이었던 그가 6년 동안 성전에 숨어 지냈습니다. 그의 고모 여호세바(Jehosheba)가 그와 그의 유모를 숨긴 것입니다. 제사장 여호야다(Jehoiada)가 합력했습니다. 6년이 지난 때, 곧 요아스가 7세 되던 해, 제사장 여호아댜가 주도한 개혁이 성공했습니다. 요아스의 할머니 아달랴(Athaliah)가 그동안 여왕 노릇을 했는데, 여호야다와 그를 따르는 자들이 죽였습니다.

 

요아스(Joash)40년 동안 유다를 다스렸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의 통치 이야기입니다.

 

그를 신앙의 눈으로 평가할 때, 그는 여호야다가 후견하는 동안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영적인 삶은 완전하지가 않았습니다. 심지어 여호야다가 살아 있는 동안에도 요아스는 산당을 제거하지 않았습니다.

 

산당을 제거하는 데 성공한 것은 히스기야(Hezekiah)와 요시야(Josiah) 등 극히 소수에 이릅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그 개혁이 남유다에 국한되었지만, 요시야는 남북을 아우르는 대이스라엘 개혁이라는 점에서 남다른 것입니다.

 

산당을 제거하는 것. 그것은 종교적으로, “한 성전에서 여호와를 섬기라는 신명기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미 수 차례 말씀드린 것처럼, 신명기 신학은 한 하나님, 한 성전, 한 백성등 세 하나로 요약이 가능합니다. 이 신명기 신학은 여호수아서부터 열왕기하에 이르는 예언적 역사서기술의 역사관입니다.

 

그런데 이것, 산당을 제거하는 것은 또한 정치-경제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산당을 제거하면, 각 산당을 중심으로 형성된 지방토호세력들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교적인 의미만 아니라 정치-경제적인 의미에서도 중앙집권을 강화하는 길입니다.

 

요아스가 산당을 제거하지 못한 것은, 그의 정치가 지방 토호세력들의 견제를 이겨내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아울러 종교적으로 볼 때, 산당은 이방신들을 섬기거나, 여호와를 섬길 때도 이교적으로 섬기는, 변질된 신앙을 뒷받침하는 중심세력이었습니다.

 

그 외에, 산당의 정치적 의미는, 왕을 견제하는 지방 세력의 집산지라는 데 있습니다. 산당 제사장들의 지원을 받은 토호세력은 거의 독립적인 군사력까지 확보했습니다. 산당의 경제적 의미는, 각 산당이 지역의 십일조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산당이 경제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산당을 제거하지 못한 것은, 요아스의 종교개혁이 몸통은 전혀 손을 대지 못하고, 꼬리만 자른 그런 셈이라는 반증입니다.

 

산당이 그대로 있었다는 것은, 비록 요아스가 40년 동안 길게 통치했지만, 그의 왕권은 대단히 취약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 취약한 모습이 심지어 예루살렘 성전 관리에도 드러납니다. 4절부터 16절까지 상세한 언급은, 요아스가 성전 수리를 시도했지만, 끝내 목적한 그대로 이루지 못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럴 즈음에, 아람 왕 하사엘이 예루살렘을 침공했습니다. 요아스는 싸워보지도 못하고 화친을 청했습니다. 많은 선물을 주어 그가 물러가게 했습니다.

 

그의 조상들, 곧 여호사밧, 여호람, 아하시야 등이 마련한 성물과, 자기가 드렸던 성물과, 성전의 곳간은 물론 왕궁에 있는 금을 다 하사엘에게 바쳤습니다. 그러자 하사엘이 물러갔습니다. 군대를 끌고 온 왕이 그대로 물러갈만큼 요아스가 바친 물건은 어마어마했습니다.

 

그만큼 요아스는 취약했습니다. 안에서도 힘을 발휘하지 못했고, 바깥에서 쳐들어오는 아람 왕에게도 모든 재물을 긁어모아 바쳐서 물러가게 했습니다.

 

더욱이 그는 신복들에게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들의 이름이 상세히 기록되었는데, 시므앗(Shimeath)의 아들 요사갈(Jozabad), 그리고 소멜(Shomer)의 아들 여호사바드(Jehozabad)였습니다. 암살자들의 이름이 그들의 아버지 이름까지 거론하여 언급된 것은 참 특이한 일입니다. 이들의 계략이 얼마나 구체적이고 집요했던가, 반면에 요아스가 얼마나 힘없이 당했는가, 보여주는 사실입니다.

 

북이스라엘에서는 신하가 왕을 죽이는, 소위 혁명이 잦았습니다. 남유다는 별로 경우가 없습니다. 요아스 외에 아몬(Amon)이 신하들에게 생명을 잃었습니다. 아몬은 요시야 왕의 아버지입니다.

 

그런데 요아스는 부하들에게 죽었지만, 그의 아들 아마샤(Amaziah)가 왕이 되었습니다. 소위 다윗 혈통아니고는 유다에서 왕이 될 자가 없다는 신학적 동의가 유다 안에 널리 퍼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니, 그보다는, 하나님께서 다윗의 집에 등불을 영원히 끄지 않으시겠다는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정리합니다.

요아스는 한 살 때 부친을 잃었습니다. 북이스라엘에서 새로 권력을 잡은 예후가 죽인 것입니다.

 

그런데 재앙은 꼬리를 물었습니다. 요아스는 그의 형제들을 잃었습니다. 놀랍게도 그 주범은 할머니 아달랴였습니다. 아달랴는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북이스라엘에 퍼트리려는 야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손에 의해 움직인 예후의 힘이 남유다에 미치지 못하도록 스스로 권력을 장악한 것입니다. 남유다를 바알과 아세라의 우산 아래 두려는 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아스를 구출한 두 사람이 하나님의 손에서 났습니다. 그의 고모 여호세바와 제사장 여호야다였습니다. 요아스가 성전에서 6년을 숨어 지냈고, 7년에 여호야다가 주도한 종교개혁이 일어났습니다. 이 개혁은 정치개혁으로 이어졌습니다. 일곱 살 요아스가 왕으로 등극했고, 아달랴는 죽임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요아스는 40년 동안 통치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정직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개인영성은 국가영성으로 확대되지 못했습니다. 그는 왕이었습니다. 왕이면 나라를 책임지는 지도자입니다. 그의 개인영성은 반드시 국가영성으로 확장되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인간을 두려워했습니다. 지방토호세력들이 각 산당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었는데, 요아스는 그들의 세력 안에 안주했습니다.

 

그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그가 원하는 성전의 수리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요아스가 제사장들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성전에 거룩하게 하여 드리는 모든 은, 곧 사람이 통용하는은이나, 각 사람의 몸값으로 드리는 은이나, 자원하여 여호와의 성전에 드리는 모든 은을 제사장들이 각각 아는 자들에게서 받아들여 성전의 어느 곳이든지 파손된 것을 보거든 그것으로 수리하라하였으나, 요아스 왕 제23년에 이르도록 제사장들이 성전의 파손한 데를 수리하지 아니하였는지라.

열왕기하 12:4-6

 

보십시오, 명령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입니다. 철저히 무시당하고 있습니다! 누가요? 제사장들이! 무엇을요? 성전수리를! 이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이었습니다. 사방 곳곳에 산당이 존재하고 있는데, 그 산당으로 세력이 분산되고, 영적 순수성이 파괴되었는데, 무슨 성전수리가 동의되겠습니까? 심지어 제사장들 중에서도!

 

제사장들이 다시는 백성에게서 은을 받지도 아니하고, 성전 파손한 것을 수리하지도 아니하기로 동의하니라.

열왕기하 12:8

 

이번에는 여호야다가, 궤 하나를 성전 전문 어귀 오른쪽에 두어, 자유로 헌금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 보십시오.

 

여호와의 성전에 드린 그 은으로 그 성전의 은 대접이나 불집게나 주발이나 나팔이나 아무 금 그릇이나 은 그릇도 만들지 아니하고

열왕기하 12:13

 

또한 실질적으로 성전 수리나 성전 내 기구 만드는 일은 진전이 없고, 인건비만 충당되었을 뿐입니다. 또한 제사장들의 배만 불렸습니다.

 

속건제의 은과 속죄제의 은은 여호와의 성전에 드리지 아니하고, 제사장에게 돌렸더라.

열왕기하 12:16

 

왕이 분명히 정직하고 선한 뜻으로 성전수리를 기획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지지하고 구체적으로 실시하는 자들이 없었습니다. 산당을 그대로 둔 데 이유가 있었습니다. 왕궁 바깥에 실질적으로 나라를 이끌어가는 세력들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영적으로나 정치-군사-경제적으로나!

 

뿐만 아니라, 아람 왕이 침공했을 때, 군사를 동원하여 전쟁을 치를 수 있는 리더십도 그에게는 존재하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선물공세를 선택했습니다. 사실 그것은 그가 가진 유일한 카드였던 것입니다.

 

적용합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드림, 그것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입니다. 산당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인간 세력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이 제공하는 우산 아래 들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영적인 홀로서기를 하면, 하나님의 성전을 수리할 때도 힘을 낼 수가 있습니다. 외국 군대가 쳐들어와도, 온 백성을 하나로 결집하여, 진지를 구축할 수가 있습니다. 성문을 걸어 잠그고 전투를 준비할 수가 있습니다. 을지문덕이나, 강감찬, 이순신, 그런 장군들이 다른 어떤 강점 때문에 전투를 이긴 것이 아닙니다. 내부를 하나로 결속한 지도력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영적 지도력은 거룩함입니다. 산당을 제거하는 거룩함.

 

그렇게 되면, 내부 반란으로 목숨을 잃는 요아스의 전철을 밟지 않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싸움은 내분이 아닙니다. 적은 밖에서 옵니다. 요아스가 신하들에게서 죽임을 당했다면, 그는 전혀 모른 채 암살 당했을 수도 있지만, 대개는 다가오는 운명을 직감하고 나름대로 대책을 세웠으나 역부족이었을 가능성이 더 큽니다. 이미 암살자들의 이름이 알려진 바 아닙니까?

 

이런 점에서, 오늘 우리가 열왕기하 12장에서 배우는 것은, 요아스가 잃어버린 것, 그가 지니지 못하고 놓친 것, 그것을 우리가 회복함입니다. 개혁의 철저함, 온전한 헌신, 그리하여 헤렘”(herem, 전멸 total destruction)에 이르는 온전한 헌신(total devotion)입니다.

 

오늘 우리가 당하는 대부분의 문제와 고통은 우리가 남긴 것들 때문입니다. 요아스의 패인은 그가 남긴 산당들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을 멸절시켰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십니다. “한 성전!” 그렇다면 그는 당연히 산당제거에 목숨을 걸었어야 했습니다. 훗날 히스기야나 요시야처럼!

 

한 성전! 그것은 예루살렘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몸과 일치하셨던 그 예루살렘! 그 예루살렘에 바쳐진 어린양처럼, 영문 밖에서 십자가에 죽으신 그 예루살렘! 예루살렘에 집중해야 합니다. 산당이 아니라, 산당을 둘러싼 인간 세력이 아니라!

 

예루살렘은 하나님 중심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러나 산당은 인간세력의 중심지에 다름 아닙니다.

 

오늘 어떤 교회들이 문제를 일으킨다면, 그것은 예루살렘이라기보다는 산당의 개념이 더 들어맞기 때문입니다. 산당은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 1세가 시작했습니다. 벧엘과 단에 세워, 예루살렘과 예각을 세운 것입니다.

 

오늘 어떤 산당이라도 하나님께서 계신 곳, 하나님의 이름을 두신 곳, 유일한 하나님의 성전을 대항하는 것입니다. 그런 산당은 철저하게 부서지고 파괴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권세로, 하나님의 통치로 그렇게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 각자에게 산당은 무엇입니까? 영적 거룩함을 해치는 모든 인간관계와 물질입니다. 우상숭배를 가능하게 하는 어떤 장치입니다. 요새 아이폰(i-phone)으로 대변되는 자기중심주의입니다.

 

2005년 스탠포드 졸업식 축사 때 한 스티브 잡스의 말입니다:

 

여러분의 시간은 한정되었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타인의 사고의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 도그마(dogma)에 빠지지 마십시오. 타인의 목소리가 여러분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잠재우도록 내버려두지 마십시오.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분의 가슴과 직관에 따르는 용기를 갖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슴과 직관은 여러분이 진정으로 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습니다. 다른 모든 것은 부차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오늘 스마트폰 문화, 자기 손에 세상을 가지는 문화를 이끈, 압축된 연설입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그가 주장하는 것은, 인간은 스스로 신이라는 말 아닙니까? 에덴동산에서 뱀이 하와에게 말한 그대로, 하나님처럼 눈이 밝아지는 그 목표를 버리지 말라는 주장 아닙니까?

 

성경은 하나님, 타인의 주장에 자기를 복종하라고 명령합니다. 신명기 28장 말씀처럼, 그것이 살 길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순종하면 복을 받지만, 말씀을 거역하면 저주를 피할 수 없습니다.

 

어제 최광서 목사님 새벽설교처럼, 모세는 이스라엘이 축복을 선포하는 그리심산과 저주를 선포하는 에발산 사이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Either, Or! 키에르케고르(S. Kierkegaard)처럼, 우리는 무서운 하나님 앞에 선 단독자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속지 마십시오. 우리는 스스로 구원할 길이 없는, 완전한 죄인일 뿐입니다. 죄인인 내 안에는 절망과 죽음 뿐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믿고, 그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이 살 길입니다.

 

이 산당들을 철저하게 무너뜨려야 합니다. 한 성전 예루살렘에서 온전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성전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신령과 진정의 예배를 드리는 중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실 것입니다. 아멘.

 

노력하고 힘써 진리를 붙들어야 합니다. 내 힘으로 되지 않습니다. 성령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찾고, 구하고, 두드려야 합니다. 주님께서 주실 것입니다. 날마다 성경책을 읽고 묵상하고, 그 말씀을 실천하는 길을 걸어야 합니다. 좁은 길, 좁은 문입니다.

 

세습을 포함하는 모든 부정과 부패를 버리지 못한 교회는 스스로 예루살렘으로 향하지 않고 돌아서서 스스로 산당이 되어버린 적폐입니다. 보십시오! 개혁대상 제1호입니다. 오직 말씀,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이런 구호로 종교개혁의 기치를 세운 것이 501년 전입니다. 이제 우리는 말씀 외에 무엇이 있습니까?

 

인생은 짧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는 영영합니다. 짧은 인생이 교회를 소유할 수 있습니까? 교회가 우리를 품습니다. 교회는 개인이 세운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피로 세우셨습니다.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모두 그분의 종입니다. 성령충만으로, 날마다 겸손하게 예배드리는 것이 옳습니다. 주님께서 부르시는 그 날까지. 아멘.

 

금문교회는 세속화의 최첨단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 시대를 거쳐, 오늘 데일리시티에 있습니다. 우리의 사명은 큰 교회 성장이 아닙니다. “좋은 교회말씀에 선 교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믿는 교회입니다. 그것이 온 세상의 길을 역행하는 바른 길이요, 그것이 빛을 잃은 온 세상에 빛이 되는 것입니다. 맛을 이미 상실해 버린 교회들 중에 소금교회가 되는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아멘.

 

 

기도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저희들이 우상숭배를 하는 산당, 하나님 예배를 우상숭배처럼 하게 만드는 산당을 제거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