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0

금문교회 주일예배

조은석 목사

 

세례요한과 나

누가복음 3:1-38

 

1.

디베료 황제가 통치한 지 열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 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 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 왕으로

2.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3. 요한이 요단 강 부근 각처에서 와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4.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5.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6.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함과 같으니라.

7. 요한이 세례 받으러 나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9.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10. 무리가 물어 이르되,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11. 대답하여 이르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12. 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13. 이르되,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 하고

14. 군인들도 물어 이르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르되,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

15.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생각하니,

16.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17.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18. 또 그밖에 여러 가지로 권하여 백성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였으나,

19. 분봉 왕 헤롯은 그의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과, 또 자기가 행한 모든 악한 일로 말미암아 요한에게 책망을 받고

20. 그 위에 한 가지 악을 더하여 요한을 목에 가두니라.

 

21.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 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22.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23.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하실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 사람들이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위는 헬리요

24. 그 위는 맛닷이요, 그 위는 레위요, 그 위는 멜기요, 그 위는 얀나요, 그 위는 요셉이요,

25. 그 위는 맛다디아요, 그 위는 아모스요, 그 위는 나훔이요, 그 위는 에슬리요, 그 위는 낙개요,

26. 그 위는 마앗이요, 그 위는 맛다디아요, 그 위는 서머인이요, 그 위는 요섹이요, 그 위는 요다요,

27. 그 위는 요아난이요, 그 위는 레사요, 그 위는 스룹바벨이요, 그 위는 스알디엘이요, 그 위는 네리요,

28. 그 위는 멜기요, 그 위는 앗디요, 그 위는 고삼이요, 그 위는 엘마담이요, 그 위는 에르요,

29. 그 위는 예수요, 그 위는 엘리에서요, 그 위는 요림이요, 그 위는 맛닷이요, 그 위는 레위요,

30. 그 위는 시므온이요, 그 위는 유다요, 그 위는 요셉이요, 그 위는 요남이요, 그 위는 엘리아김이요

31. 그 위는 멜레아요, 그 위는 멘나요, 그 위는 맛다다요, 그 위는 나단이요, 그 위는 다윗이요,

32. 그 위는 이새요, 그 위는 오벳이요, 그 위는 보아스요, 그 위는 살몬이요, 그 위는 나손이요,

33. 그 위는 아미나답이요, 그 위는 아니요, 그 위는 헤스론이요, 그 위는 베레스요, 그 위는 유다요

34. 그 위는 야곱이요, 그 위는 이삭이요, 그 위는 아브라함이요, 그 위는 데라요, 그 위는 나홀이요,

35. 그 위는 스룩이요, 그 위는 르우요, 그 위는 베렉이요, 그 위는 헤버요, 그 위는 살라요,

36. 그 위는 가이난이요, 그 위는 아박삿이요, 그 위는 셈이요, 그 위는 노아요, 그 위는 레멕이요,

37. 그 위는 므두셀라요, 그 위는 에녹이요, 그 위는 야렛이요, 그 위는 마할랄렐이요, 그 위는 가이난이요

38. 그 위는 에노스요, 그 위는 셋이요, 그 위는 아담이요, 그 위는 하나님이시니라.

 

 

세례(Baptism)는 무슨 뜻입니까? 개신교 성례전 두 가지 중 하나입니다. 다른 하나는 성만찬”(Holy Communion)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죄를 씻음 받고, 구원을 얻는 성례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나는 의미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I have been crucified with Christ and I no longer live, but Christ lives in me. The life I live in the body, I live by faith in Son of God, who loved me and gave himself for me.

갈라디아서 2:20

 

이런 신앙고백이 없다면, 세례는 하나의 형식으로 그치고 마는 것입니다.

 

세례는 역사적으로 출애굽이 그 배경입니다.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For I do not want you to be ignorant of the fact, brothers, that our forefathers were all under the cloud and that they all passed through the sea. They were all baptized into Moses in the cloud and in the sea.

고린도전서 10:1-2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죽음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가나안 땅에 이르러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림으로써 완성하는 출애굽의 긴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애굽에서의 구원과 광야생활은 출애굽 구원의 시작이며 그 과정입니다. 여기서 세례가 그 역사적 자리를 매김합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는 것은, 이 영적으로 애굽과 같은 이 세상을 떠나 영적 가나안인 천국을 향하는 길에서, 구름과 바다를 지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경험하는 데 그 의미가 있습니다. 단순한 경험이 아니라, 우리의 전과 후를 완전하게 구분하는, 영적인 거듭남의 의미가 있습니다.

 

세례요한은 세례 베풂으로써 예수님께서 오실 길을 준비했습니다. 요한의 사명은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가 한 일은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푼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어 드렸습니다.

 

사람들에게 세례 베푼 것은, 사람들이 변화되어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게 하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어 드린 것은, 그로써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이시며, 하나님께서 그분을 기뻐하심을 드러내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불과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셨습니다. 마가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다락방에서 오순절에 성령세례를 받은 사건입니다.

 

세례로서 오늘 구체적으로 여러 사람들이 구체적인 변화를 도전 받습니다.

 

요한은 세례를 받으러 나온 무리에게 말합니다:

 

요한이 세례를 받으러 나아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께서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John said to the crowds coming out to be baptized by him: You brood of vipers! Who warned you to flee from the coming wrath? Produce fruit in keeping with repentance. And do not begin to say to yourselves, "We have Abraham as our father.' For I tell you that out of these stones God can raise up children for Abraham. The ax is already at the root of the trees, and every tree that does not produce good fruit will be cut down and thrown into the fire.

누가복음 3:7-9

 

변화가 없고,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는 자들, 육신을 따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주장하는 자들, 이들은 독사의 자식들에 불과합니다. 사탄의 앞잡이라는 말입니다.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신다! 돌을 들어 스스로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자처하는 무리들을 비교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 아니면 인간이 아무런 돌보다 더 귀한 가치가 결코 없다는 것을 주장한 것입니다.

 

세례는 돌처럼 무가치한 존재들을 (자칭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시는 은혜를 드러내는 무한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설명이 가능합니다. 세례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함으로써 그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심은 하나님의 사랑이 이 세상에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e and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al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요한복음 3:16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을 말하려면 임마누엘”(Immanuel)을 설명해야 하고, 임마누엘은 죄 많은 이 세상에 하나님께서 우리 죄인들과 함께하심이며, 그것은 사랑 외에 달리 설명할 도리가 없는 엄청난 사건임을 알아야 합니다.

 

죄를 지어 죽음이 그 종착역일 수밖에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 아니면 아무데서나 보는 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고 스스로 자존심을 높이는 행위는 지혜가 없는, 대단한 어리석음에 불과합니다. 세례를 받을 때는 요한이 외친 이 도전적 지혜를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에 자신을 온전히 맡겨야 합니다.

 

세례는 그 교육으로써 이와 같은 사실을 배우고, 그 성례로써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길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세례요한의 도전은 신분변화가 그 목적입니다. 독사의 자식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무리는 옷 두 벌 있다면, 나누어 주라. 먹을 것이 있다면, 나누라!”

세리는 부과된 것 외에 거두지 말라!”

군인들은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라.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

 

사회에서 발견하는 불의부정그리고 부패를 완전히 척결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행위는 속에서 나오는 법. 그러므로 그 속사람이 새롭게 되어 겉사람의 변화가 열매로 맺게 되어야 한다는 도전입니다.

 

세례요한의 도전을 정리해 봅니다:

 

입을 것과 먹을 것을 나누라!

거짓으로 세금을 거두지 말라!

무력을 사용하여 강탈하지 말라!

권력을 사용하여 사법권을 거짓으로 행사하지 말라!

사회적으로 인정된 급료 외에 불의한 수입을 꿈꾸지 말라!

 

이 모든 것은 곧 예수님께서 모든 설교하셨고 비유로써 가르치신 내용에 포함됩니다. 예를 들면,

 

부자 청년에게 가진 것을 다 나누어 주고 예수님을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세리 마태를 제자로 거두셨습니다.

무력, 곧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고 경고하셨습니다.

거짓 재판 자리에 서셔서, 그들의 불의를 드러내셨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 등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모든 자를 먹이고 입히시는 은혜를 밝히셨습니다.

 

특기한 것은, 누가가 여기서 언급한 군인들은 분명히 이방인,” 특별히 로마 시민권자입니다. 유대인 뿐 아니라 이방인, 곧 로마인, 그중에서도 군인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의 수신자가 로마인 고관임을 생각하면, 이 부분이 주목된 것은 오히려 당연할 것 같습니다.

 

생각해 봅니다. 세례요한이 제시한 바, 이렇게 하면 신분이 변화가 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필요한 도전이며, 필요한 변화지만, 충분하지가 않습니다. “사회정의로 규정할 수 있는 이상의 내용, 그것이 세례요한의 목적은 아닙니다. 그는 자기가 제시할 수 없는, 그 어떤 차원을 마음에 품고 있습니다. 곧 예수님께서 변화를 주셔야 비로소 가능한 차원을 세례요한은 그 앞선 이로서 소개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변화입니다. 불과 성령으로써 가능한 다른 차원의 세례입니다.

 

세례요한, 그의 사역은 예수님 오심을 준비하는 세례에 집중합니다. 그 세례는 물세례입니다.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John answered them all, "I baptize you with water. But one more powerful than I will come, the thongs of whose sandals I am not worthy to untie. He will baptize you with the Holy Spirit and with fire. His winnowing fork is in his hand to clear his threshing floor and to gather the wheat into his barn, but he will burn up the chaff with unquenchable fire.

누가복음 3:16-17

 

물세례는 성령과 불의 세례를 대체하지 못합니다. 그 반대입니다. 물세례를 통해 준비된 심령에 성령과 불의 세례가 임합니다. 세례요한의 역할이 바로 거기입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하는 길을 걸었습니다.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탄생을 말하기 전에 세례요한의 출생을 먼저 소개합니다. 그가 어떻게 부모에게서 태어나게 되었는가. 그의 부모는 나이가 많았습니다. 그러므로 출산 자체가 불가능한 가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능력으로써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세례요한의 출생과정을 통하여 말씀을 믿지 못하던 스가랴를 믿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믿음의 주님”(author of faith) 되심을 기억해야 합니다(히브리서 12:1-2). 우리가 믿게 하십니다.

 

세례요한은 공생애 전까지 사막에서 살았습니다.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 들에 있으니라.

And the child grew and became strong in spirit; and he lived in the desert until he appeared publicly to Israel.

누가복음 1:80

 

사막에서 살면서 세례요한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일에 집중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그분을 세상에 소개하는 데 합당하도록 기도생활에 전념했습니다. 먹는 것도 입는 것도 모두 이차적인 일이었습니다.

 

세례요한이 이처럼 회개의 세례를 전파한 것은, 이사야 40:3 이하의 예언이 이루어지는 사실입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A voice of one calling in the desert, 'Prepare the way for the Lord, make straight paths for him. Every valley shall be filled in, every mountain and hill made low. The crooked roads shall become straight, the rough ways smooth. And all mankind will see God's salvation.

누가복음 3:4-6

 

세례요한이 광야에서 이사야의 말씀을 읽고, 그 말씀 그대로 순종하는 말씀헌신의 삶을 살았다고 추측하는 것은 무리하지 않습니다. 이래서 세례요한을 광야에서 은둔생활 하던 에세네파사람들의 하나로 보는 견해가 설득력을 얻습니다. 유명한 쿰란 공동체가 엣세네 사람들이었다는 주장은 많은 학자들이 동의합니다.

 

그러나 엣세네파는 결코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았고, 세상의 불의에 대하여 도전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세례요한의 공생애를 엣세네 신앙으로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이 점은 예수님에 대한 설명도 일부 포함합니다. 예수님께서 당시 3대 종파인 엣세네, 바리새, 사두개 중 어디 속하실까, 연구가 있었습니다. 머리 둘 곳 없이 사신 점에서 엣세네 측면이 있지만, 예수님께서는 죄인, 세리, 병자들과 어울리셨고, 그들의 삶에 구체적으로 개입, 병을 고치시고 먹여주셨습니다. 성경을 사랑하셨고, 성경을 가르치신 점에서 바리새 측면이 있지만, 결코 바리새인 무리에 들지 않으셨습니다. 성전을 사랑하신 점에서 사두개인으로 비칠 수 있지만, 성전을 허물라고 도전하심으로써 기존 건물로서의 성전에서 큰 걸음을 떼셨습니다.

 

분명한 것은, 세례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렸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스스로를 발견했습니다. 이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이해하면 그의 빛 안에서 세례요한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한마디로, 세례요한은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자로서의 삶을 살았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도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The Lord is good to those whose hope is in him, to the one who seeks him. It is good to wait quietly for the salvation of the Lord.

예레미야 애가 3:25-26

 

세례요한의 오랜 개인생활은 기다림이었습니다. 이제 그의 짧은 공생애는 무엇입니까? “영적 도전입니다. 생명을 아끼지 않고, 불의에 항거하며, 죄악의 길을 달리는 인생에게 회개의 길을 제시했습니다. 주장-이유-근거, 곧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Aristotle's rhetorics)의 방법론으로 설명합니다.

 

주장 Claim

 

이유 Reason

회개하라!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다. 좋은 열매 맺지 않으면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근거 Warrant

 

나는 광야의 외치는 소리. 그리스도를 기다려 선포하는 자!

 

세례요한의 주장과 이유가 설득력이 있는 근거는 그와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에 대한 설정이 분명한 까닭입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대체하는 자가 아닙니다. 그렇게 묻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생각하니

The people were waiting expectantly and were all wondering in their hearts if John might possibly be the Christ.

누가복음 3:15

 

그는 분명하게 대답했습니다. 스스로 누구라는 증언이 아니라, 그와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가 무엇인가를 말함으로써!

 

사도 바울이 스스로를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정리하여 그의 모든 주장과 이유가 합당했던 그것과 같습니다. 오늘 그리스도인 우리가 증인으로 살아가면서 자기 스스로를 내세우는 대신, 예수님과의 관계 속에서 자기 자리매김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하는 모든 주장과 이유가 합당한 것입니다.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And all mankind will see God's salvation!

누가복음 3:6

 

세례요한은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그 구원주 되심을 선포한 것입니다. 이미 이사야를 비롯한 구약의 모든 예언자들과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이 말하고 쓴 것입니다. “구원은 히브리어로 예수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구원하려고 오셨습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러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그는 그 사실을 잊지 않고 일평생 부르심 받은 그 자리에, 부르신 그 모습 그대로 살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누구입니까? 왜 이 세상, 그것도 세상이 만나는 샌프란시스코에 살고 있습니까? 우리가 모여 예배드리는 금문교회는 왜 여기 이 데일리시티 언덕에 있습니까? 여기서 예배드리는 우리는 어떤 사명이 있습니까?

 

이 모두의 자기 아이덴티티 주장(claim)과 이유(reason)의 근거(warrant)는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의 관계를 돌아봄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죄로 죽을 수밖에 없던 우리를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피로써 구속하셨습니다. 우리의 삶과 죽음, 부활의 소망은 모두 예수님 안에서만 발견되는 리얼리티입니다.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The life I live in the body, I live by faith in the Son of God, who loved me and gave himself for me.

갈라디아서 2:20b

 

세례요한의 도전!

그는 우리의 삶의 행동방식을 도전합니다. 불의가 없어야 하고 부정 부패를 몰아내야 합니다.

또한 그는 우리의 삶의 중심을 도전합니다. 모든 행위는 결국 속사람의 생각과 그 존재가 어떠한가에 근거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생각하는 대로 행동한다.

우리는 존재에 따라 생각한다.

We act as we think.

We think as we are.

 

이상의 논리는 오랜 세월에 걸쳐 동의된 것으로, 성경말씀에 기초가 있습니다.

 

또 이르시되,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He went on: What comes out of a man is what makes him 'unclean.' For from within, out of men's hearts, come evil thoughts, sexual immorality, theft, murder, adultery, greed, malice, deceit, lewdness, envy, slander, arrogance and folly. All these evils come from inside and make a man 'unclean.'

마가복음 7:20-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But the fruit of the Spirit is love, joy, peace, patience, kindness, goodness, faithfulness, gentleness and self-control.

갈라디아서 5:22-23a

 

모든 밖에 나온 것은 안에 있던 것입니다. 세례요한이 행위의 변화를 주장했지만, 그것은 존재의 변화를 거론한 것입니다. 존재 문제는 창조주이시며 구원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야 비로소 인간은 근본적인 내적 변화를 경험할 수 있고, 그에 따라 행실이 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의 도전은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릴 때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 없이 스스로라면, 그의 주장은 허공을 치는 메아리에 불과합니다. 누구도 그의 말대로 진정한 변화를 얻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The Spirit gives life; the flesh counts for nothing. The words I have spoken to you are spirit and they are life.

요한복음 6:63

 

여러분. 신앙생활 오래 한 것으로 다가 아닙니다. 성령충만하여 우리가 누구인지 알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씻음 받아야 함을 깨닫고, 주님께 나아가 주님을 구주로 모시고, 모든 죄를 사해 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께서 당신의 삶에 오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주장해 주셔야, 당신에게 소망이 있습니다. 지금 이대로 그렇게 계속 살아가는 것, 그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대로 죽어 영원한 지옥 외에 달리 무슨 길이 있습니까?

 

광야에 외치는 소리로 우리에게 나온 세례요한. 그의 영적 도전을 오늘 우리가 받아야 합니다. 도끼가 나무의 뿌리에 놓였습니다. 때가 왔습니다! 바로 지금, 영적인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성령충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삶이 변해야 합니다.

 

네가 거듭나야 하리라!

You must be born again!

 

예수님의 그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면, 지금부터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길이 보일 것입니다. 은퇴자금 만들어 놓고, 안전하게 살리라? 그건 어리석은 자의 계획입니다. 소출이 많아 창고를 지었던 그 사람, 그날 밤에 그 영혼이 하나님의 손에서 불려갔던 그 어리석은 자와 무엇이 다릅니까? 영생을 생각해야 합니다. 인간이라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He has made everything beautiful in its time. He has also set eternity in the hearts of men.

전도서 3:11a

 

기억하십시오! 당신의 앞에 기다리는 것은 영생입니다. 영원한 천국이냐, 영원한 지옥불이냐!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기도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예수님을 위해 그 생명을 바친 세례요한을 생각합니다. 회개하여,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피로써 죄의 사슬에서 구원 받아, 예수님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천국에 이르게 하옵소서. 세상에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증인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