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217

금문교회 주일예배

조은석 목사

 

울지 말라! Don't Cry!

누가복음 7:11-17, 36-50

 

11. 그 후에 예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새, 제자와 많은 무리가 동행하더니

12. 성문에 가까이 이르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한 어머니의 독자요 그의 어머니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

13.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14.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15.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머니에게 주시니

16.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 하더라.

17. 예수께 대한 이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두루 퍼지니라.

 

36.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37.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38.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39.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그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4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그가 이르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41. 이르시되,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42.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이들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43.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이르시되,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

44.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45.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46.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47.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48.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49. 함께 앉아 있는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더라.

50.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오늘 본문은 누가복음 7장에 들어 있는 두 가지 이야기입니다. 공통분모가 있습니다. 모두 여자들 이야기입니다. 둘 다 슬픔에 잠긴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는 예수님께서 만나 주셨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하나는 아들을 잃은 슬픔에 겨웠고, 다른 하나는 죄 용서 받은 기쁨에 겨웠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들의 흐르는 눈물을 그치게 하셨습니다. 하나는, 외아들을 잃은 슬픔의 여인에게 죽은 아들을 살려내어 그 어머니 품에 돌려주셨습니다. 다른 하나는, 눈물로 주님의 발을 적시고,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붓던 여인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사죄의 선포를 하셨습니다. 하나는 죽은 아들을 다시 품에 안은 기쁨으로 눈물을 그쳤고, 다른 하나는 사죄의 은총을 입어 눈물을 닦았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여인 여러분, 혹은 남자라고 해도, 이런 여인을 아내로, 어머니로, 누이로 가진 여러분, 이 말씀으로 위로 얻으시기 바랍니다. 그 눈에서 눈물을 그치고 이제는 여러분 인생의 새로운 장(chapter)”으로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께서 나인이라는 성으로 가실 때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런데 마주 나오는 행렬과 만났습니다. 예수님의 행렬과 달리 그들은 장사의 행렬이었습니다. 과부 어머니가 독자 아들을 잃은 것입니다. 그 성의 많은 사람들이 동참했습니다. 과부요 자식도 없다면 마땅히 무시당했을 터. 그러나 사람들은 불쌍한 처지를 동정했습니다. 슬픔이라면 이보다 더하기 어렵습니다. 남편을 잃었고, 이번에는 아들입니다. 하늘이 무너졌고, 땅이 꺼졌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무슨 약속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인성으로 들어가실 일정을 잡으셨고, 여인은 아들을 묻으러 성을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여인에게는 우연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달랐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인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울지 말라!” 슬퍼 우는 자를 울지 말라!” 할 수 있습니까? 대개는 같이 울 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울음을 그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게 될 때, 성도들은 그 눈에서 눈물을 멈출 것입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He will wipe away every tear from their eyes, and death shall be no more, neither shall there be mourning, nor crying, nor pain anymore, for the former things have passed away.

요한계시록 21:4

 

이 여인이 경험한 것은 영원한 천국이 임할 때 우리 주님께서 보이실 놀라운 은혜의 그림자입니다.

 

울지 말라!

 

주님께서 그녀의 눈물을 멈추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관으로 가까이 가셨습니다. 손을 대셨습니다. 그리고 죽은 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Young man, I say to you, Arise!

누가복음 7:14

 

죽은 자가 무슨 말을 듣습니까? 그러나 이 때는 달랐습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께서 내리신 명령입니다. 창조주요 구원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입니다. 죽어 시체가 된 자가 그 명령을 받들었습니다.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거늘

And the dead man sat up, and began to speak.

누가복음 7:15

 

죽어 누웠던 자가 스스로 일어나 앉았습니다. 그의 입을 열어 말도 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 부활의 능력이 나타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어머니에게 주셨습니다. 아들을 잃은 여인이 아들을 도로 찾았습니다! 성경은 이 여인의 감동을 전혀 적지 않았습니다. 적을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대신 모든 사람의 반응이 기록으로 남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하더라.

Fear seized them all, and they glorified God, saying, "A great prophet has arisen among us!" and "God has visited his people!"

누가복음 7:16

 

여기서 돌보셨다!”는 표현이 “visited”입니다. 히브리어는 파카드인데,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노역으로 신음할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돌보심내지 방문하심때 사용되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오셨고, 찾아가셔서 친히 백성들 중에 계셨습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나인성으로 가신 그 목적이 그 죽은 자를 살려내심에 있었던 것을 알겠습니다.

 

모든 사람이 두려움에 빠졌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돌보신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큰 선지자를 보내신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께 대한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두루 퍼졌습니다.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정확하게 깨달았는가, 여부에 달렸지만, 부족하나마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이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울지 말라!

 

슬픔 중에 소망이 끊긴 여인을 불쌍히 여기시고 부활의 능력으로써 위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 여러분의 여인, 아내요 누이며, 어머니일 수 있는, 누구도 위로가 가능하지 않은 여인들을 산 소망으로 그 길을 멈추게 하신, 그리고 살아난 자를 품에 안은 여인이 묘지로 가던 길을 돌이켜 집으로 가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 여러분의 죽은 자가 누구입니까? 그에 대한 절망이 오늘 소망으로 바뀔 줄 나는 믿습니다. 그를 품에 안고 여러분은 소망의 길로 돌이킬 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찾아오셨기 때문입니다. “울지 말라!”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관에 당신의 손을 대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죽은 자에게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소망 없는 남편일 수 있습니다. 도박이나 무기력증, 허무함, 우울증, 이런데 사로잡힌 남편일 수 있습니다. 죄악의 길에서 벗어나지 못한 아들일 수 있습니다. 살았으나 죽은 자들을 두고 슬픔의 밤과 낮을 살아가는 모든 여인들에게 주시는 소망의 메시지입니다. 오늘 여기서! 울지 말라!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방문하셨습니다. 바리새인의 집이었습니다. 초대 받으신 것입니다.

이 여인은 바리새인의 집을 방문하신 것을 알았습니다. 그녀 자신은 초대 받은 일이 없었으므로, “몰래행동했을 터입니다. 예수님의 뒤로 접근했습니다. 그 발치에 자리 잡았습니다. 유대인들의 식사 자세를 염두에 두면, 길게 다리를 뻗은 저쪽입니다.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and standing behind him at his feet, weeping, she began to wet his feet with her tears and wiped them with the hair of her head and kissed his feet and anointed them with the ointment.

누가복음 7:38

 

서 있던 여인이 눈물을 흘리다가, 구부려 앉아 자기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습니다. 그리고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그 발에 붓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집에 들어오셨을 때부터 이 여인의 행위가 시작되었습니다(45절중). 예수님의 발에 입 맞추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45절하).

 

예수님을 청했던 그 바리새인은 마음에 생각했습니다.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If this man were a prophet, he would have known who and what sort of woman this is who is touching him, for she is a sinner.

누가복음 7:39

 

바리새인이 비난한 것은 예수님의 무지였습니다. 그 여자의 죄를 몰랐으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이미 파악하셨습니다.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Therefore I tell you, her sins, which are many, are forgiven--for she loved much. But he who is forgiven little, loves little.

누가복음 7:47

 

예수님께서 그 여인이 죄가 많은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여인이 믿음이 있었다는 데 있습니다. 무슨 믿음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죄를 사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안 믿음입니다. 곧 예수님께서 누구신지 아는 믿음, 그 영생의 믿음 말입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And this is eternal life, that they know you, the only true God, and Jesus Christ whom you have sent.

요한복음 17:3

 

분명히 초대 받지 않은 손님이었습니다. 바리새인이 죄인 여자를, 왜 어떤 이유로 초대하겠습니까? 멸시 천대 받던 여자가 몰래 들어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시자마자 예수님 곁에 섰으니, 기다리고 기다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그 발에 입을 맞추면서, 눈물로 그 발을 적셨고, 머리털로 씻어드렸습니다. 그리고 향유를 부었습니다. 이 모든 행동의 이유는 예수님께서 자기의 죄를 사하실 구주심을 앎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을 여인과 비교하셨습니다.

 

이 여자를 보느냐?

Do you see this woman?

누가복음 7:44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너는 내게 입 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I entered your house; you gave no water for my feet, but she has wet my feet with her tears and wiped them with her hair. You gave no kiss, but from the time I came in she has not ceased to kiss my feet. You did not anoint my feet with oil, but she has anointed my feet with ointment.

누가복음 7:44-46

 

왜 그랬을까요? 왜 바리새인은 예수님을 청해놓고 마땅히 손님대접을 하지 않았습니까? 이것은 인격모독 아닙니까?

 

그런데 왜 이 여인은 이처럼 초대받지도 않은 자리에서 예수님께 극진한 손님대접을 하고 있습니까? 아니 주인대접하고 있지요! 어째서 그렇습니까?

 

차이가 있습니다. “죄 사함 받은 정도입니다.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Therefore I tell you, her sins, which are many, are forgiven--for she loved much. But he who is forgiven little, loves little.

누가복음 7:47

 

내가 네게 말하노니!

앞서 나인성 가는 길에 주님께서 그 죽은 청년에게 하신 그 표현 아닙니까?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이 분명한 선포는 두 경우 다 죽은 자에게 하셨습니다. 하나는 육체로, 다른 하나는 영으로 죽었습니다. 영이 죽은 바리새인은 자기가 초청한 손님 예수님을 바르게 대우하지 않았습니다. 죽은 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알아 보지 못한 것입니다. 죽은 자가 무엇을 알겠습니까?

 

들으십시오, 여러분. 지금 예수님께서 명령하십니다.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I tell you, her sins, which are many, are forgiven--for she loved much.

누가복음 7:47

 

예수님께서 이 여인의 많은 죄를 사하셨습니다. 당신의 십자가 보혈로써 그 죄를 모두 씻으셨습니다. 이 여인은 주님께서 그의 죄를 씻으신 것을 알았습니다. 그의 엄청나게 많은 죄를!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에게 들려주신 비유를 들어 보십시오. 두 사람이 빚을 졌습니다. 하나는 500 데나리온, 다른 한 사람은 50 데나리온. 둘 다 갚을 길이 없었습니다. 주인이 이들을 탕감했습니다.

 

둘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Now which of them will love him more?

누가복음 7:42

 

그러면 다시 묻습니다. 누가 덜 사랑하겠습니까?

예수님의 대답을 들어 보십시오.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But he who is forgiven little, loves little!

누가복음 7:47

 

누구 이야기겠습니까? 당연히 그 바리새인입니다. 남의 죄를 보지만 자기의 죄를 보지 못하는 자, 그는 스스로 사함이 적다고 판단합니다. “내가 무슨 죄가 있어?”

 

그래서 죄를 사하러 오신 예수님이 그처럼 반갑지가 않은 것입니다. 예수님을 초대는 했지만, 썩 내키지가 않았습니다. 발을 위하여 물도 드리지 않았고, 환영하는 키스도 드리지 않았습니다. 무슨 대접이 이렇습니까? 이런 소홀함은 그가 받은 것이 적다는 의식에서 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아셨습니다. 그의 속을.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몰랐습니다. 전혀!

 

사실은 어떻습니까? 이 여인과 이 바리새인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그들의 죄가 누가 크고 누가 작습니까? 예수님께서 피 흘려 구속하심에 이 바리새인은 해당사항이 없거나, 있어도 대단히 적습니까? 이 모든 죄 위에 교만무지의 죄가 더해진 것 아닙니까?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함이라는 속담을 인용하신 것은, 바리새인을 비꼬심(풍자, sarcasm)이었습니다. 놀랍게도 예수님께서는 종종 이런 수사학을 사용하셨습니다. 당신의 진리를 드러내시는 하나의 방법으로.

 

정리합니다.

두 명의 여인이 있었습니다. 둘 다 슬픔에 겨웠습니다. 인생살이 무게가 한없이 어깨를 짓눌렀습니다. 하나는 기왕에 남편을 잃은 후에 독자 아들을 잃었습니다. 성을 나가 무덤으로 가는 길이 멀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죄를 많이 지었습니다. 아니, 그 많이 지은 죄가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알게 되었고, 손가락질을 받았습니다. 살 길이 막막한 여자입니다.

 

그런데 공통점은, 이들이 모두 예수님의 방문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두 번째의 경우, 그녀가 예수님을 찾아오신 것으로 되었는데, 가만 정황을 살피면, 예수님께서 그 무성의한 초대장을 수락하셔서 가신 그 지역이 그 여자의 접근 가능범위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그녀를 찾아가셨다는 것이 타당합니다. 집 주인 바리새인은 그녀를 초대하지 않으셨어도, 예수님께서는 그녀를 영접하셨습니다. 세리, 죄인, 창녀의 친구가 되어 주셨던 예수님께서!

 

주님께서 이들의 눈물을 씻어 주셨습니다. “울지 말라!” 아들 잃은 과부 여인에게는 음성으로 들려주셨고, 죄 많은 여인에게는 당신의 발을 맡기심으로써 그녀의 섬김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섬김을 인정하심. 이것은 눈물을 멈추는 동력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저들의 수고가 무시당하는 슬픔이 있습니다. 저들의 사랑이 곡해되고,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다르십니다.

 

이것 보십시오. 여기 두 남자도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들 모두에게, “내가 네게 말하노니!” 하셨습니다. 하나는 죽어 관에 누운 자였습니다. 다른 하나는 동네 유지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그는 영이 죽은 자였습니다. 육신이 죽었던 자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Truly, truly, I say to you, an hour is coming, and is now here, when the dead will hear the voice of the Son of God, and those who hear will live.

요한복음 5:25

 

나인성 과부의 아들은 살아났습니다. 차라리 죽은 자가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교만한 자, 이 무지한 자, 이 비판하는 자를 보십시오. 그는 예수님의 비유를 들었고, 예수님의 여인에게 행하심을 보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깨우치지 못했습니다.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Who is this, who even forgives sins?

누가복음 7:49

 

함께 앉아 있는 자들중에 그 바리새인이 있습니다. 성경은 이 바리새인 시몬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말씀을 기록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추측이지만, 그는 들어도 듣지 못했고, 보아도 보지 못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And he said, "Go, and say to this people: Keep on hearing, but do not understand; keep on seeing, but do not perceive. Make the heart of this people dul, and their eyes heavy, and blind their eyes; lest they see with their eyes, and hear with their ears, and understand with their hearts, and turn and be healed."

이사야 6:9-10

 

이 바리새인은 자기 집에 들어온 이 여인과 아무런 상관도 없습니다. 그는 그녀를 초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녀가 받은 죄 사함과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그는 보아도 보지 못했고, 들어도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죽었던 젊은이는 성을 나오는 여인, 곧 그의 어머니와 큰 관계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살려내 그의 어머니 품에 돌려주셨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났고,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는 어머니의 품에 안겼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잘 들으십시오. 예수님은 누구에게나 동일하신 분이십니다. 누구나 예수님의 눈에는 크게 탕감 받은 큰 죄인입니다. 큰 사랑으로써 예수님을 사랑하도록 당신의 크고 놀라운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누구에게나! 모두에게!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겸손해야 합니다. 자기를 돌아보고, 남을 비판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오심은 오늘” “를 위함인 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여인 여러분. 주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남자 여러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죽은 자들입니다. 겸손하게 사랑의 주님을 영접하기 바랍니다.

 

찬송가 5341, 3절입니다:

 

주님 찾아 오셨네. 모시어 들이세. 가시관을 쓰셨네. 모시어 들이세. 우리 죄를 속하려 십자가를 지셨네. 받은 고난 크셔라. 모시어 들이세.

Christ, thy Lord is waiting now. Let Him in! Let Him in! See the throns upon His brow! Let Him in! Let Him in! He, from sin to set us free, suffered on the shameful tree. Think upon His agony! Let Him in! Let Him in!

 

겸손한자 찾도다. 모시어 들이세. 하늘에서 부르네. 모시어 들이세. 좋은 자리 드리고 주실 은혜 구하세. 하늘나라 세우세. 모시어 들이세.

Seeks He now the humble heart. Let Him in! Let Him in! Calls it from the world apart. Let Him in! Let Him in! Yield to Him His rightful place. Look to Him for needed grace. Now begin the Hevenly race! Let Him in! Let Him in!

 

예수님을 영접하십시오. 여러분의 눈에 흐르는 눈물. 이제 여기까지입니다. 아멘

 

 

기도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저에게 보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의 눈물을 씻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의 죽은 자를 살려주시고, 저의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의 무지를 깨뜨려 주님을 깨닫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제부터 새로운 삶의 장에서 주님을 위해 옥합을 깨드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