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33

금문교회 주일예배

조은석 목사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Where Is Your Faith?

누가복음 8:22-25

 

22. 하루는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매, 이에 떠나

23. 행선할 때에, 예수께서 잠이 드셨더니, 마침 광풍이 호수로 내리치매,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위태한지라.

24. 제자들이 나아와, 깨워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한 대, 예수께서 잠을 깨사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지더라.

25.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시니, 그들이 두려워하고 놀랍게 여겨,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가?” 하더라.

 

 

사람이 두려움이 어디서 옵니까? 지식(知識, knowledge)에서 옵니까, 무지(無知, ignorance)에서 옵니까?

 

지식에서 오는 것 같습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

Fools rush in where angels fear to tread.

 

이 한국 속담은 하룻강아지가 범(호랑이) 앞에서도 태평한 것을 지적한 것입니다. 사실은 무서워야 정상인데, 무지해서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범을 아는 지식, 그것이 두려움을 준다. 이렇게 봅니다. 영어로 풀어 쓴 속담은 천사도 두려워하는 것을 어리석은 자는 돌진한다고 했습니다. 한글은 하룻강아지와 범을, 영어는 어리석은 자와 천사를 비교했습니다.

 

사람이 암에 걸렸지만, 그것을 모를 때는 공포가 없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암에 걸린 것을 아는 순간부터 공포에 휩싸입니다. 그래서 지식에서 두려움이 온다, 그렇게 말합니다.

 

그래서 그런 속담이 있습니다.

 

아는 게 병이다.

Knowledge is sickness.

모르는 게 약이다.

Ignorance is bliss.

 

그러나 여기 보세요. 대부분의 두려움은 사실 무지”(無知, ignorance)에서 오는 것입니다. 실체(realities)를 알면 껍데기에 불과한 것인데, 거짓으로 과대포장한 데서 두려움이 옵니다.

 

옛날 시골에서 옷을 벽에 걸지 않았습니까? 모자를 그 못 위에 걸지요. 새벽녘에 잠 깬 아이는 누가 서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착각합니다.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날이 새고 나면 얼마나 우습습니까?

 

사실은 별거 아니었는데, 괜히 겁을 먹었습니다. 대부분 그렇습니다.

 

사람이 무서워하는 것이 죽음입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죽음은 누구에게나 오는 것입니다. 두려워할 대상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두려워하는 것은 사람이 죽음이라는 실체를 제대로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의 경건한 자들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로다.

Precious in the sight of the Lord is the death of his saints.

시편 116:15

 

하나님 보시기에 어떤가? 그것이 정답입니다. 죽음은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귀중한 것입니다. 새로운 시작점이기 때문입니다.

 

보세요. 하나님 손에 사람은 시작이 있고, 마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셨을 때 시작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그 마침입니다.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는 하나님의 손에 달린 것입니다. 좋으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를 좋은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이 믿음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읽으니, 예수님의 제자들을 지금 죽음 공포에 사로잡혔습니다.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된 때문입니다. 광풍이 호수에 몰아쳤습니다.

 

그런데 제자들 보기에, 예수님께서는 상황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계신 듯 했습니다. 주무시고 계신 것입니다. 이러다가는 모두 죽게 생겼습니다.

 

죽음의 실체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Master, Master, We are perishing!

 

그러자 주님께서 잠에서 일어나셨습니다. 그리고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셨습니다. 놀랍게도, 그들은 그쳐 잔잔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물으셨습니다.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Where is your faith?

 

그들은 두려워하고 놀랐습니다. 이번의 두려움은 종류가 달랐습니다. 먼저는 죽음공포였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나는 두려움입니다. 그 놀라움입니다. 서로 말합니다.

 

그분이 누구신가?

바람과 물을 명령하시니 순종하는구나!

Who then is this, that he commands even winds and water, and they obey him?

 

제자들은 예수님을 몰랐습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하나님 자신이심을 몰랐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안전하고 평안한 길로 인도하실 줄을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문제가 된 것은 결국 모름이었습니다. “무지”(無知)가 문제였습니다. 무엇을 몰랐습니까?

 

1. 죽음

2. 바람과 물결

3. 예수 그리스도

 

첫째로, 그들은 죽음을 몰랐습니다. 무서워 할 것을 무서워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무서워 할 것이 아닌 것을 무서워했습니다.

 

둘째로, 그들은 바람과 물결을 몰랐습니다. 바람과 물결이란 곧 창조주 하나님의 손에 일어나고 물러가는 것입니다. 바람과 물결 뒤에 계시는 분이 중요한데, 그분이 본질인데, 그들은 그저 현상에 집착했습니다.

 

셋째로, 정말 그들이 모른 것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같은 배에 누워, 지금은 잠들고 계신 예수님께서 바다와 물결을 명령하실 수 있는 분이심을 몰랐습니다. 그보다도, 죽음을 이기실 수 있는 분이심을 몰랐습니다. 좋으신 주님께서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줄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예수님의 도우심으로써 그들은 깨달았습니다.

 

1. 죽음공포가 예수님 앞에서는 물러가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2. 지금 그들은 바람과 물결을 알았습니다. 이전에는 그것들이 얼마나 거세며 무서운지. 죽음에 이르도록 역사할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님의 명령을 순종하고 마는, 그런 존재임을 알았습니다.

 

3. 예수님을 알았습니다.

물론 아직 정확한 깨달음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의문이 일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분께서 바람과 물결을 명령하실 수 있는 분이심을 알았습니다.

 

적용합니다.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두려움에 사로잡혀 삽니다. 그것이 인생의 한 단면입니다. 아닌 듯 하지만 사실은 두렵습니다. 그래서 각종 보험에 듭니다. 그러나 보험에 보험을 들어도 두려움은 없앨 수가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세상을 잘 압니다. 거기는 식자우환(識者憂患, knowledge is sickness), 알아서 병인 경우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성경(聖經)을 모릅니다. 거기 문제가 있습니다. 여기는 무지에서 공포가 온 경우입니다. 모르면 믿음이 생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믿음 없는 자가 된 것입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 이야기가 누가복음 24장에 있습니다. 이들 두 제자는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들과 동행하셨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신 줄 알았는데, 그들이 기대했던 그리스도와 전혀 다른 모습에 실망했고, 죽음공포에 시달렸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7 마일 거리를 함께 걸으시면서, 성경에 기록한 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특히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하여 이야기 해 주셨습니다. 그럴 때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이후 주님께서 떡을 떼실 때, 그들의 눈이 밝아져 주님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주님께서는 그들을 떠나셨습니다.

 

이 두 제자가 그 밤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공포가 아니라 기쁨에 사로잡힌 까닭입니다. 아직 방문을 걸어 잠그고 두려워 떨던 다른 열 한 제자들에게, 그들이 예수님을 만난 사실을 전했습니다. 엠마오로 내려갈 때는 예수님을 몰랐는데, 예수님께서 말씀으로써 그들에게 가르치셨고, 그들의 믿음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 믿음으로써 그들은 죽음공포를 이겨냈습니다. 그래서 공포가 도사리고 있는 예루살렘으로 되돌아 올라갔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예수님을 바로 알고 계십니까? 예수님을 알면, 어떤 공포도 사라집니다. 죽음공포는 물론!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And this is eternal life, that they know you, the only true God, and Jesus Christ whom you have sent.

요한복음 17:3

 

하나님과 예수님을 알면, 그것이 영생입니다. 영생은 무엇입니까? 죽음을 넘어서는 산 소망 아닙니까? 반대로, 모르면 죽음입니다. 몰라서, 무지해서 죽음공포를 살았습니다.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마르다에게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Your brother will rise again!)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Jesus said to her, I am the resurrection and the life. Whoever believes in me, through he dies, yet shall he live, and everyone who lives and believes in me shall never die. Do you believe this?

요한복음 11:25-26

 

마르다의 문제는 예수님을 잘 못 안 것입니다. , 모른 것입니다. 그래서 늦게 오시면 그분도 어쩔 수가 없는 분으로 안 것입니다. 이미 죽어 무덤에 장사한 나사로를 어떻게 하실 수 없는 분으로 알았습니다.

 

무덤에 가신 예수님께서 돌을 옮겨 놓으라!” (Take away the stone!) 하셨을 때도,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Lord, by this time there will be an odor, for he has been dead four days!) 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Jesus said to her, Did I not tell you that if you believed you would see the glory of God?

요한복음 11:40

 

네가 믿으면!

제자들이 한 배에 타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더라면 그 바람과 풍랑에 두려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주님께서 동선하신 그 배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했을 것입니다!

 

기왕에 나사로 이야기를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겠습니다. 그가 병들었을 때, 그 누이들이 사람을 보냈습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But when Jesus heard it, he said, "This illness does not lead to death. It is for the glory of God, so that the Son of God may be glorified through it."

요한복음 11:4

 

죽을 병이 있고, 죽을 병이 아닌 것이 있습니다. 그들은 죽을 병이 아닌 것을 죽을 병으로 착각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제자들이 바람과 풍랑에 겁을 먹고 주님을 깨웠을 때, 주님께서 그들에게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물으셨습니다. 그 바람과 그 풍랑은 죽을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 바람과 풍랑은 죽을 문제가 아니라!

These wind and waves do not lead to death!

 

여러분은 지금 세상에 어떤 문제로 두려워하십니까? 그 문제의 실체를 바르게 알고 계십니까? 예수님의 눈으로 그것을 보아야 본질이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어떻게 보실 것 같습니까?

 

예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What would Jesus do?

 

이 질문은 대단히 오래된, 그러나 대단히 중요한 질문입니다. 예수님을 알면 그 대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알면!

 

예수님을 아는 길은 성경공부에 있습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또 배우고 익히면 됩니다. 예수님을 알면 세상의 이치를 파악합니다.

 

결론으로 말씀드리지요: 세상의 일로써 우리가 죽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살고 죽는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께 달렸습니다.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This sickness will not end in death!

 

이 문제는 살고 죽는 문제가 아니라!

This problem is not a matter to be or not to be!

 

이 바람과 풍랑은 죽음과 관계가 없다!

This wind and this wave have nothing to do with death!

 

예수님을 알면 이 말씀이 귀에 들립니다. 그리고 믿어집니다. 예수님께서 믿음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 우리의 눈을 고정시키고, 예수님의 말씀에 우리의 귀를 기울인다면!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Let us fix our eyes upon Jesus, the founder and the perfector of faith!

히브리서 12:2

 

제자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힌 것은 바람과 풍랑에 눈을 고정시켰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눈을 드렸더라면! 그들이 주무시는 예수님께 마음을 두었더라면! 그들은 그 시각에 주님 곁에서 잠이 들었을 것입니다. 무시무시한 바람과 풍랑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문제가 되지 못하는 모든 것은 하나의 현상(現象, but a phenomenon)에 불과합니다. 기억하십시오!

 

현상은 본질을 대체하지 못합니다.

Phenomenon does not replace essence.

 

사람은 죽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부활합니다. 부활신앙을 가진 우리는 따지고 보면 죽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영생을 우리가 가졌기 때문입니다. 영생을 사는 자는 죽음을 겁내지 않는 법입니다. 이 믿음이 오늘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에게 진정한 힘과 능력이 되기를 바랍니다.

 

내게 성령 임하고 그 크신 사랑

나의 맘에 가득 채우며

죽음공포 내게서 물리치시니

내 맘 항상 주 안에 있도다

Everything is changed since the Spirit possessed me

since He filled my heart with Savior's love

Since he took away all the fears that distressed me

Helped me set my heart on the things above.

 

말씀에 의거하여, 두 가지 현안 문제를 짚습니다. 모두 327()-28(), 곧 지난 주중에 일어났습니다.

 

1. 후파

 

북미 원주민 지파의 하나인 후파(Hoopa)에 다녀왔습니다. 수요예배에서 설교했고, 수요일 밤 성경공부, 목요일 밤 성경공부를 인도했습니다. 가고 오는 길이 비가 많았습니다. 곳곳에 흙과 돌들이 흘러내려 지체되었습니다. 그런 날씨 문제가 결국 처음 기회가 주어진 유락(Yurok) 선교의 장애물이 되었습니다. 다음 달 선교 때 유락 방문이 가능하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번에 강하게 느낀 점은, 후파 각 가정이 회복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후파의 문제는 총체적”(totalistic)입니다. 한 두 개가 아니라 전부가 다 문제입니다. 마약, , 이혼, 홈리스, 인간관계파탄. 이러므로 후파는 개인, 가정, 교회, 사회가 모두 다 회복의 대상입니다. 이 일은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 외에 달리 누가 할 수 없습니다. 사실 모든 인간과 그 사회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후파는 모든 세계의 문제를 단면으로 보여주는 경우입니다.

 

이번에 주일학교 교사 두 명을 세웠습니다. 매일 심방을 해서 아이들을 데려오고, 성경말씀을 가르치도록 권면했습니다. 중고등부 부장을 세웠고, 교사 두 명을 세웠습니다. 사춘기 아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되도록 함께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오는 길에 20대 청년을 만났습니다. 함께 점심을 나누면서, 다음 달 선교 때 만나 합력을 약속했습니다. 617일 주간 여름성경학교 때 교회를 위해 일하자고 권면했습니다. 여러분, 그의 마음이 성령님의 감화 감동으로 움직여져 주님의 교회를 세우는 일에 쓰임 받기를 기도해 주십시오.

 

건강한 교회가 세워져야 하고, 교회를 중심으로 가정이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후파 선교는 중요합니다. 우리가 힘을 내야 하고, 후파 안에서 동력이 일어나야 합니다. 이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가능합니다. 바람과 물결로 다가오는 모든 불가항력적인 세력에 두려워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예수님의 능력을 힘입음으로써 가능한 선교의 길입니다.

 

후파만 바라본다면 이 선교는 불가능해 보입니다. 가능성이 하나라면 불가능성은 백 가지도 넘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오늘 말씀을 중심하여 말씀드린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먼저는 선교하는 우리가 믿음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짐을 믿어야 합니다. 후파 가는 길에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2. 한반도

 

우리 삶과 직결된 현안을 말씀으로 조명하는 일은 최소한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지난 227()-28() 양일 간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습니다. 세계는 한반도에 평화가 오느냐, 그 문제로 집중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는 어떤 공동선언문 채택도 없이 결렬된 회담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것이 좋은 일인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한반도 평화는 인간의 생각으로는 불가능해 보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3. 삼일운동 100주년

 

이들 27-28일 행사 다음 날은 우리나라 삼일운동 100주년 되는 날이었습니다. 한반도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식민된 지 9년 되던 191931, 한반도 전체가 일어나 대한독립 만세를 부르짖었습니다.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것은, 삼일운동은 교회가 주체였습니다. 출애굽기와 이사야서를 비롯한 성경말씀이 그 영적인 뿌리였고, 전국에 자리 잡은 교회가 점조직이 되었습니다. 33인 대표 중에 16인이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충남 병천 매봉에서 기도하고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유관순(1902-1920)은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의 부모는 만세운동 현장에서 헌병들이 쏜 총탄에 살해되었습니다. 전체 사망자는 7천 명을 헤아립니다. 45천 명이 부상 당했습니다.

 

차라리 그런 어리석은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러나 이것 보십시오.

 

맨손으로 일어난 삼일운동은 수많은 희생자들을 내고 수면 아래 가랁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 그처럼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삼일운동으로 촉발된 독립운동과 그 독립선언서를 기초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그해 411일 중국 상하이에서 설립되었습니다. 같은 해 911일은 서울, 러시아 연해주 등 각지의 임시정부들을 하나로 묶어 상하이 단일정부를 세웠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삼일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적었습니다.

 

세계정세 속에 지금 한반도는 평화의 길이 멀고도 험합니다. 독립이 되었으나 곧 분단되었고, 지금 내일을 전혀 예측할 도리가 없습니다. 강대국들의 이권개입으로 우리의 주권과 인권, 통일과 평화의 길은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입니다. 탄식소리가 하늘에 높습니다. 그러나 이럴 때 우리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

Let's go over to the other side of the lake!

누가복음 8:22

 

우리가 걸어가는 모든 항로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우리의 가장 좋은 길로 정하신 것입니다. 아니, 우리는 주님의 가시는 그 길을 가야 합니다. 그 길은 주님께서 동행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믿어야 합니다. 두려움을 버려야 합니다.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신 주님이십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I can do everything through him who gives me strength.

빌립보서 4:13

 

일제로부터 해방을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분단을 극복하는 통일도 하나님께서 주실 줄 믿습니다. 구원의 길에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방법은 십자가였습니다. 해방도 통일도 인간정치의 회담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의 길에서 읽어야 합니다.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고민하다가 절망하는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주님의 메시지입니다. 믿음이 가능하게 합니다. 산을 들어 바다에 던지라 해도 되리라 하셨습니다(마태복음 21:1-2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And Jesus answered them, Truly, I say to you, if you have faith and do not doubt, you will not only do what has been done to the fig tree, but enen if you say to this mountain, Be taken up and thrown into the sea, it will happen. And whatever you ask in prayer, you will receive, if you have faith.

마태복음 21:21-22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있다면! If you have faith!

 

그렇다면 우리가 걸어가야 할 평화로운 통일의 길도 믿음의 길, 십자가 길로 열릴 것이 분명합니다. 본래 죄 지은 인간이 구원 받는 길이란 아예 불가능 그 자체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보십시오! 천지를 지으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의 손에서 건져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 십자가를 지게 하시는 엄청난 능력으로써 인간구원이 가능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는 우리 주님께서 우리 곁에 계십니다. 우리와 함께 계신 주님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허락하신 십자가를 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묵묵히 이 길을 걸어갑시다. 이 길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길입니다. 평강, 곧 샬롬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는 믿습니다. 아멘.

 

 

기도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죽음공포에 시달리는 저희를 말씀은혜로 이끌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예수님 안에서 참된 평화를 누리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오늘부터 살아가는 새 날이 모두 은혜와 기쁨이 되게 하옵소서. 이 기쁜 소식을 공포의 도가니, 온 세상에 전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