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310

금문교회 주일예배

조은석 목사

 

딸아! 아이야! Daughter! Child!

마태복음 9:18-26

마가복음 5:21-43

누가복음 8:40-56

 

40. 예수께서 돌아오시매, 무리가 환영하니, 이는 다 기다렸음이러라.

41. 이에 회당장인 야이로라 하는 사람이 와서 예수의 발 아래 엎드려, 자기 집에 오시기를 간구하니

42. 이는 자기에게 열두 살 된 외딸이 있어 죽어감이러라. 예수께서 가실 때에 무리가 밀려들더라.

43. 이에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중에 아무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하던 여자가

44. 예수의 뒤로 와서 그의 옷 가에 손을 대니, 혈루증이 즉시 그쳤더라.

4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 하시니, 다 아니라, 할 때에,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무리가 밀려들어 미나이다!”

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댄 자가 있도다. 이는 내게서 능력이 나간 줄 앎이로다,” 하신대,

47. 여자가 스스로 숨기지 못할 줄 알고, 떨며 나아와 엎드리어, 그 손 댄 이유와 곧 나은 것을 모든 사람 앞에서 말하니,

48.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더라.

49. 아직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이 와서 말하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선생님을 더 괴롭게 하지 마소서,” 하거늘,

50.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시고,

51. 그 집에 이르러,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 아이의 부모 외에는 함께 들어가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

52. 모든 사람이 아이를 위하여 울며 통곡하매, 예수께서 이르시되, “울지 말라!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53. 그들이 그의 죽은 것을 아는 고로 비웃더라.

54. 예수께서 아이의 손을 잡고, 불러 이르시되, “아이야, 일어나라!” 하시니

55. 그 영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나거늘, 예수께서 먹을 것을 주라!” 명하시니

56. 그 부모가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경고하사,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하시니라.

 

 

열두 살 된 아이가 있습니다. 그는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열두 해 동안 피를 흘리는 여자가 있었습니다. 아무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하던 중이었습니다.

 

공통점이 있습니다. 둘 다 여자입니다. 둘 다 열 두 해와 관계가 있습니다. 아이는 열 두 살에 죽음을 맞이하고 있고, 여자는 열 두 해 만에 죽음을 직면하고 있습니다.

 

다른, 그러나 더 중요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둘 다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누구나 예수님을 만나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병자가 고침을 받고, 병이 깊어 죽은 자도 부활합니다.

 

열두 해 동안 피를 흘리던 여자는 구원해 주셨고, 평안을 주셨습니다. 열두 살 된 딸은 살리셨습니다. 먹을 것을 주라! 명령하셨습니다.

 

나는 온 세상의 아이들과 온 세상의 여자들을 주목합니다. 죽어가는 아이들, 피 흘리지만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하는 여자들, 그들을 만나주시고, 그들에게 믿음을 주시며, 그들을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목합니다.

 

세상은 그들을 포기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비웃습니다. 그러나 믿는 자는 주님께 나아갑니다. 손을 내밀어 그 옷자락이라도 만지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이 오늘 필요합니다.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이 믿음이 회복되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믿음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불신하던 자가 믿게 되고, 하나님의 크신 영광을 볼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는 동안에, 여러분이 인생길 가는 동안에!

 

남녀임금 격차는 OECD 평균 15%입니다. 대한민국은 36.7%로 최하위입니다. 남성 정규직 근로자의 임금이 100이라면 여성은 63.3이라는 뜻입니다. 미국 18.1%보다 두 배 이상입니다. 이제 남녀의 교육수준은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세계경제포럼은 남녀임금격차가 완전히 사라지는 데 217년이 걸린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여성들을 주목했습니다. 사회적으로 소외받고 차별대우 받는 계층 중의 계층이 여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를 모두 평등하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모두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구속하셨습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There is neither Jew or Greek, there is neigher salve nor free, there is no male and female, for you are all one in Christ Jesus

갈라디아서 3:28

 

그러나 주 안에서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Nevertheless, in the Lord woman is not independent of man nor man of woman.

고린도전서 11:11

 

여성안수 문제도 그렇습니다. 2009년에 한국 대표적 보수교단인 백석총회가 여성안수를 통과했습니다. 한국 침례교회도 2013년에 여성안수를 찬성했습니다. 우리교회는 개척 때부터 목회자 부부는 동역한다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길입니다.

 

특별히 예수님 당시에 여성이 병에 걸렸을 때, 주목하며 회복을 위해 힘쓰는 경우가 많지 않았습니다. 오늘 회당장 야이로는 특별했습니다. 딸인데도 불구하고 그의 병 낫기를 위해 간구했습니다. 예수님께 나갔습니다. 보통 회당장이면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 편에 섭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께 나갔다는 것은, 그가 처한 상황이 최악이라는 뜻입니다. 절망적인 상황입니다.

 

더욱이 그 딸은 외딸”(only daughter)입니다. 야이로가 딸 아이의 치료를 위해 힘 쓴 이유가 엿보입니다.

 

예수님께서 야이로의 집에 가실 때 많은 무리가 밀려들었습니다. 여자 아이의 운명이 어떻게 되는가 궁금했던 것입니다. 여자 아이보다는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라는 신분이 결정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야이로의 딸 이야기는 혈루병 앓는 여인 이야기와 겹칩니다. 야이로의 집으로 가시는 예수님의 길을 막아 선 여자가 있었습니다.

 

이 여자는 12년 동안이나 피를 흘렸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그녀를 고치지 못했습니다. 마가복음 평행본문을 읽어 봅니다.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And who had suffered much under many physicians, and had spent all that she had, and was no better but rather grew worse.

마가복음 5:26

 

많은 의사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돈만 요구했지, 실제로 그녀를 회복시키지 못했습니다. 실력이 모자랐을 수도 있고, 그들이 나쁜 의사들이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12년 동안 여자는 병세가 악화되었고, 그 모든 돈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지금 이 여자의 상태는 이렇습니다. 열두 해 동안 피를 흘렸으니, 심히 약합니다. 병이 괴롭힙니다. 돈을 다 잃었으니, 극심한 가난이 그를 괴롭힙니다. 더욱 더 중해지고 있기 때문에 소망이 없습니다. 절망이 그녀를 고통스럽게 합니다.

 

무엇보다도 사회적으로 그녀는 고독했습니다. 성경에 피를 흘리는 자는 격리되어 치료 받아야 했습니다. 레위기 15:19-33은 피를 흘리는 여인에 대한 규례입니다.

 

만일 여인의 피의 유출이 그의 불결기가 아닌데도 여러 날이 간다든지, 그 유출이 그의 불결기를 지나도 계속되면 그 부정을 유출하는 모든 날 동안은 그 불결한 때와 같이 부정한즉, 그의 유출이 있는 모든 날 동안에 그가 눕는 침상은 그에게 불결한 때의 침상과 같고, 그가 앉는 모든 자리도 부정함이 불결한 때의 부정과 같으니, 그것들을 만지는 자는 다 부정한즉, 그의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며,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요

If a woman has a discharge of blood for many days, not at the time of her menstrual impurity, or if she has a discharge beyond the time of her impurity, all the days of the discharge she shall continue in uncleanness. As in the days of her impurity, she shall be unclean. Every bed on which she lies, all the days of her discharge, shall be to her as the bed of her impurity. And everything on which she sits shall be unclean, as in the uncleanness of her menstrual impurity. And whoever touches these things shall be unclean, and shall wash his clothes and bathe himself in water and be unclean until the evening.

레위기 15:25-27

 

치유가 되어 피를 그치면 좋지만, 계속 피를 흘린다면 그 여인은 부정합니다. 누구도 접촉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사회에 어울려 살아갈 도리가 없습니다.

 

민수기는 유출병 환자와 한센병/나병 환자를 같은 카테고리에 넣어, 격리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모든 나병 환자와 유출증이 있는 자와 주검으로 부정하게 된 자를 다 진영 밖으로 내보내되

The Lord spoke to Moses, saying, Command the people of Israel that they put out of the camp everyone who is leprous or has a discharge and everyone who is unclean through contact with the dead.

민수기 5:1-2

 

이런 여자가 예수님의 길을 막고 나섰습니다. 사회계층을 고려하여 회당장이 예수님 앞에 엎드린 경우와, 종교적 계율을 고려하여 하혈하는 여자가 예수님의 옷을 잡은 경우는 둘 다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야이로는 인간 최후의 결단으로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이 여자의 경우도 케이스는 다르지만 심정은 똑같습니다. 극도의 궁핍과 절망 중에 주님께 나왔습니다.

 

낭패와 실망 당한 뒤에 예수께로 나옵니다

십자가 은혜 받으려고 주께로 갑니다.

슬프던 마음 위로 받고, 이생의 풍파 잔잔하며

영광의 찬송 부르려고 주께로 갑니다.

Out of my shameful failure and loss, Jesus, I come, Jesus I come

Into the glorious gain of thy cross, Jesus, I come to thee.

Out of earth's sorrows into Thy balm, Out of life's storms and into Thy calm

Out of distress to jubilant psalm, Jesus, I come to Thee.

 

두 이야기의 합류. Joining the two stories.

우리는 이 두 이야기가 하나로 엮이는(inter-weaved) 장면에서, 두 이야기는 결국 하나의 주제로 교차(the two are crossing as one theme)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혈루증 앓는 여인의 입장에서, 그가 예수님께 나아가 그의 옷자락을 만질 생각을 한 것도 거기였습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어떤 여자 아이의 집에, 그 아이를 살리러 가시는 길입니다. 그렇게 여자를 불쌍히 여기시는 분이시라면 자기도 불쌍히 여기실 것이다, 그런 믿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대개 예수님을 찾고 도움이나 치료를 위해 부르짖는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하여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것도 헛소문이 아니라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었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메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메오가 길가에 앉았다가,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And they came to Jericho. And as he was leaving Jericho with his disciples and a great crowd, Bartimaeus, a blind beggar, the son of Timaeus, was sitting by the roadside. And when he heard that it was Jesus of Nazareth, he began to cry out and say, "Jesus, Son of David, have mercy on me!"

마가복음 10:46-47

 

바디메오의 경우, 맹인 거지였습니다. 장애를 가진 자는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갈 수가 없었습니다(레위기 21:16-23).

 

아론에게 말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너의 자손 중 대대로 육체에 흠이 있는 자는 그 하나님의 음식을 드리려고 가까이 오지 못할 것이니라. 누구든지 흠이 있는 자는 가까이 하지 못할지니, 곧 맹인이나 다리 저는 자나 코가 불완전한 자나 지체가 더한 자나, 발 부러진 자나, 손 부러진 자나

Speak to Aaron, saying, None of your offspring throughout their generations who has a blemish may approach to offer the bread of his God. For no one who has a blemish shall draw near, a man blind or lame, or one who has a mutilated face or a limb too long

레위기 21:17-19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이 모든 제한”(limit)은 예수님께서 오시기 직전까지만 유효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구약의 모든 제한, 곧 병자나 장애인, 먹을 수 없는 음식규정 그런 제한들을 다 풀어주셨습니다. 이 모든 제한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유효합니다. 주님 오신 이후는 더 이상 역할을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 이전의 제사는 동물의 피제사였는데, 그것은 결코 완전하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완전한 것이 올 때는 불완전한 것이 사라지는 법입니다.

 

그러나 불완전한 것이라도 오늘 우리가 배우고 익히는 것은, 그것들이 그림자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설명하는 데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영육적 제한자체는 철폐되어야 합니다. 보십시오! 지금 주님께서 무엇을 하시는지!

 

주님께서 죽음권세를 깨뜨리셨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시체가 되는데, 그것은 부정합니다. 만진 자는 씻거나 그 옷을 태우거나 해서 정결예식을 거쳐야 합니다. 그러나 그가 살아난다면?” 산 자는 정결합니다.

 

주님께서 질병을 고치셨습니다. 병자는 부정합니다. 그는 격리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를 고치신다면? 그는 더 이상 부정하지 않습니다.

 

지금 보십시오! 이 여자가 주님의 옷을 만졌습니다. 말하자면 주님의 이 부정한 여인의 손()에 닿았습니다. 그러면 즉시 예수님의 옷이 부정해집니다. 그러면 그 옷은 즉시 태워지거나 물로 깨끗하게 빨아야 합니다. 이것은 부정한 여자에게서 예수님께로 그 부정함이 이동되었을 경우입니다.

 

그러나 여기를 주목하십시오. 만일 그 이동이 역순이 되어, 예수님께로부터 그 여인에게로 간다면? 즉 예수님께서 그 여인을 고쳐회복시켜 주신다면? 그러면 그 여인은 지난 12년의 부정을 벗어버리고, , 즉시 정결함을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더 이상 부정한 여인이 아닙니다!

 

여자가 믿음이 있었다는 예수님의 지적은 옳습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Daughter, your faith has made you well; go in peace!

누가복음 8:48

 

생각해 보세요. 믿음, 그것은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가 스스로의 문제를 알고, 그것으로 절망하고 만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절망하여 스스로이기를 포기함, 그것은 죽음에 이르는 병입니다.

 

그러나 소망하여 스스로를 인정하는 태도, 이것은 죽음을 이기는 길입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 예수님께서 오늘 이 여자를 만나주셨습니다. 이 여자는 그것을 알았습니다. 분명히 어떤 다른 사람을 고치러 다른 곳으로 가는 길이지만, 적어도 이 여자가 보고 듣고 알 수 있으며, 달려가기만 하면 손에 닿을 수 있는 지역에 들어서신 사실 자체, 그것은 내게 오신 주님이심을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어 파카드! 여러 차례 설명해 드렸습니다. 방문해 오시는 것은 나를 구원하시려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아 길을 떠나시는 목자 예수님의 은혜. 이런 것을 이 여자가 느낀 것입니다. 깨달은 것입니다. 그가 손을 내밀어 주님의 옷을 잡을 때, 주님께서 결코 거절하지 않으실 것을 안 것입니다.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She said, Yes, Lord! Yet even the dogs eat the crumbles that fall from their master's table. Then Jesus answered her, O woman, great is your faith! Be it done for you as you desire. And her daughter was healed instantly.

마태복음 15:27-28

 

어떤 여인이 그렇게 부르짖었습니다. 그 때도 주님께서 결코 그 청을 거절하지 않으실 것을 알았습니다. 그 가장 낮은 자리에서조차! 그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의 본질은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주님을 알되, 그분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알면서!

 

12년 동안 세상에 실망하고 절망하던 여인의 삶이 오늘 여기서 극적인 전환점을 이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평안히 가라!

Go in peace!

 

평안 중에 간다면 어디로 가겠습니까? 집으로! 그렇습니다. 이 여인은 모든 단절을 버리고 이제 연합의 길을 갑니다. “함께의 길로 걸어 집에 갑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허락하신 평화입니다.

 

아직 말씀하실 때에

While he was still speaking!

누가복음 8:49

 

보십시오. 이 두 가지 이야기가 다시 합류”(inter-joining)하고 있습니다. 여자가 예수님의 옷을 붙들 때 합류되었던 이야기가, 이번에는 회당장의 집에서 온 사람이 전면에 나섰습니다.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Your daughter is dead!

누가복음 8:49

 

그런데 이것 보십시오. 혈루증 걸린 여자는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왔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을 보세요. 그는 불신을 가지고, “거짓 정보로 무장하고, 나타났습니다. 딸 아이의 아버지를 막았습니다. 소용없습니다. 너무 늦었습니다. 선생님을 더 괴롭게 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아버지의 대응을 기다리지 않으셨습니다. 주님께서 두 사람 사이를 막아서셨습니다. 절망이 전달되는 통로를 차단하신 것입니다.

 

두려워 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Do not fear; only believe, and she will be well!

누가복음 8:50

 

믿는 자를 영접하신 주님. 여자의 믿음 있는 손길을 환영하신 주님께서, 불신자의 막아섬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당신과 동행자를 제한하셨습니다. 부모, 베드로, 요한, 야고보. 불신자의 접근을 막은 것입니다. 모인다고 다 좋은 것이 아닙니다. 군중들 틈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믿는 자들 안에서 능력이 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들어가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울지 말라.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Do not weep, for she is not dead but sleeping!

누가복음 8:52

 

앞서 죽었습니다!” 보고했던 그 사람이나, 이제 모든 사람들이 울며 통곡하는 그 모든 행위를 금지하셨습니다.

 

울지 말라!

죽은 것이 아니다!

잔다!

 

나는 주님의 명령, “울지 말라!”가 참 좋습니다. 절망을 깨뜨리고 소망을 꺼내주시는 주님의 능력입니다. 죽은 것이 아니다! 잔다! 이 명제가 참 좋습니다. 아직은 죽었지만, 이제 곧 살아날 것이므로.

 

그런데 사람들은 비웃었습니다. “그 죽은 것을 아는고로!” 아는 것이 병입니다. 차라리 몰랐다면 믿음이 빠를 뻔 했습니다.

 

보십시오. 죽은 시체는 사람을 부정하게 합니다. 이제 주님께서 그의 을 잡으셨습니다. 주님의 몸이 더럽혀진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앞선 합류된 이야기에서 그랬던 것처럼, 여인의 혈루증이 예수님을 감염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그를 치료하신 것처럼, 이제 예수님의 능력이 죽은 시체를 일으키셨습니다. 이 놀라운 역전을 주목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이이의 손을 잡으셨습니다.

 

아이야, 일어나라!

Child, Arise!

누가복음 8:54

 

마가복음 평행본문에서는 아람어로 말씀하셨습니다. 이 순간에!

 

달리다굼!

마가복음 6:41

 

달리다는 소녀야! 부르심입니다. 쿰은 일어나라! 명령하심입니다. 부르시고 명령하시고!

 

결론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낮은 자가 높아집니다. 병자가 고침 받습니다. 죽을 죄인이 생명을 얻습니다. 죽은 자가 살아납니다. 사망의 길에서 영생의 길로 돌아섭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예수님을 만나면 악의 흐름이 역전되어, 생명의 흐름으로 변합니다. 더러움이 간섭하고 죄가 역사하던 방향이 거룩함이 역사하고 사죄의 은총이 주장하는 은혜의 물결이 됩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낮은 자 중의 낮은 자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낮아져서 더 이상 어디까지 갈 데가 없을 지경일지라도,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우리의 곁을 지나가셔서, 우리의 목소리를 들으십니다. 우리가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도록 당신을 허락하셨습니다. 내 모든 부정함과 죄악을 주목하는 대신, 그분의 능력과 그분의 은혜를 주목합시다! 그것이 믿음의 길입니다.

 

혈루병 들려 12년을 고생하던 여인이 배운 것은, 세상은 의지할 바 못 된다는 것입니다. 외동 딸을 살리려고 예수님의 앞에 엎드린 불쌍한 아버지가 배운 것은, 세상의 편견은 마땅히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서!

   

딸아!

아이야!

 

오늘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십니다. 가장 낮고 천하여, 모든 소망이 끊어진 우리를. 주님 외에는 결코 들어주지 않을 낮은 신음소리만 내는 우리를.

 

주님께서 돌아보셨습니다. 여기 우리의 소망이 있습니다.


 

기도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세상의 천대 받는 자들을 살리신 주님 앞에 무릎 꿇습니다. 주여,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여, 금문교회를 돌아보소서! 당신의 종들이 두 손 들고 부르짖나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