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331

금문교회 청년부헌신예배

조은석 목사

 

주기도문

누가복음 11:1-13

 

1.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고 마치시매, 제자들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3.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4.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 하라.

5. 또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꾸어 달라.

6. 내 벗이 여행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 하면

7. 그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실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 없노라,’ 하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 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

9.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10.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11.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12.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기도는 신앙생활의 필수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첫째로, 이 사실은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지적합니다. 주님께서는 중요한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둘째로, 기도는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것으로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가장 좋은 모델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 이것을 우리가 주기도문으로 받았습니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주기도문을 예배에 사용했습니다. 주기도문 본문은 마태복음 6장과 누가복음 11장 두 군데 있습니다. 오늘은 누가복음 본문으로 말씀 전합니다.

 

기도의 한 가지 특징은 구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구할까? 예수님께서 주기도문을 주신 직후, 바르게 구하는 한 가지 방법을 예로 드셨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친구가 왔습니다. 먹일 것이 없어, 다른 친구를 찾아가 부탁합니다. 늦은 밤이어서 모두 잠자리에 들었지만, 간청하면 결국 응답이 올 것입니다. 이처럼 간절한 기도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두 번째는 무엇을 구할까?” 이것은 기도의 내용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청년헌신예배를 드리면서, 기도를 배우겠습니다. 방법과 그 내용, 두 가지로 전합니다. 첫째는, 방법입니다. 간절한 기도입니다. 친구의 의리에 호소하는 정도로는 안 됩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 됨으로 인하여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

I tell you, through he will not get up and give him anything because he is his friend, yet because of his impudence he will rise and give him whatever he needs.

누가복음 11:8

 

여기서 예수님께서 이 두 사람의 우정의 깊은 정도(degree)를 따지지 않으셨습니다. 사람의 우정은 분명히 어떤 역할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역할은 쉬지 않는 요청입니다.

 

예수님 말씀에 따르면 인간의 의리는 별로 구속력이 없습니다. 간절함이 더욱 더 중요합니다. 의리를 의지하면 실망하게 될 뿐입니다. 누구에게나 간절함에 호소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친구지간은 물론 다른 어떤 인간관계도!

 

한 가지 더 주님께서 예를 드신 바 있습니다. 누가복음 18:1-8에 소개해 주신 바, 악한 재판장과 과부 이야기입니다. 악한 재판장이 귀찮을 정도로 간구하면 결국 그도 손을 들 수밖에 없고, 과부의 간청을 듣는다고 했습니다. 그런 간절함이 필요합니다.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Yet because this widow keeps bothering me, I will give her justice, so that she will not beat me down by her continual coming.

누가복음 18:5

 

오늘 본문에서, 주님께서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악한 아버지도 아들에게 좋은 것을 줍니다. 생선을 달라면 뱀을 주지 않습니다. 떡 대신 돌을 주는 악한 아버지가 없습니다. 하물며 선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기도를 듣지 않으실까?

 

결국 기도는 인간에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도 간절함이 통하는데, 하물며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 아버지의 경우에 일러 무얼 할까, 그런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태도는 간절함입니다. 포기하지 않는 기도입니다. 들어주실 때까지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Pray without ceasing.

데살로니가전서 5:17

 

쉬지 않고 기도한 것이 예수님께서 예로 드신 두 사람이 응답 받은 경우입니다. 손님이 찾아온 친구는 상대방이 일어날 때까지 문을 두드렸습니다. 과부는 악한 재판장이 소원을 들어 줄 때까지 찾아갔습니다. 비가 올 때까지 기도하면 기도의 응답을 받습니다. 엘리야는 검은 구름이 올라올 때까지 기도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기도하면 기도 응답으로 문제가 해결됩니다. 기도를 쉬는 것은 죄입니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

Moreover, as for me, far be it from me that I should sin against the Lord by ceasing to pray for you, and I will instruct you in the good and the right way.

사무엘상 12:23

 

그러나 기억해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나의 뜻을 주장하면 어떤 기도도 응답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 나라와 그 뜻을 구함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But seek first the kingdom of God and his righteousness, and all these things will be added to you.

마태복음 6:33

 

그러므로 잘못 된 것을 구하면 아무리 간절함이 극에 달해도 하나님께서 들으시지 않습니다. 여기서 인간과 하나님의 차이가 있습니다. 기억해야 합니다.

 

둘째로, 내용입니다. 기도는 그 방법, 곧 간절함만큼 그 내용이 중요합니다. 어쩌면 더 중요합니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You do not have, because you do not ask. You ask and you do not receive, because you ask wrongly, to spend it on your passions.

야고보서 4:2-3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된 것을 구하는 것, 여기서 기도 내용의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바른 기도 내용은 무엇입니까? “말씀대로 사는 길입니다. 사람이 누구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해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들어 주십니다. 그중에 오늘 누가복음 주기도문 말씀은 기도로써 시험에 들지 않는 길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를 기억하십니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Watch and pray that you may not enter into temptation. The spirit indeed is willing, but the flesh is weak.

마태복음 26:41

 

오늘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에서 용서하는 기도와 시험에 들지 않는 기도가 하나로 엮였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

And forgive us our sins, for we ourselves forgive everyone who is indebted to us.

누가복음 11:4

 

용서와 시험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사람이 용서하지 않을 때 시험에 드는 것입니다. 용서할 수 없을 때, 그는 이미 시험에 들었습니다.

 

용서는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보이신 은혜입니다. 용서는 사랑의 실천입니다. 사랑 없이 용서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사랑 없는 용서는 망각이거나 무시로 처리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 보십시오. 그런 용서는 치유의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죄로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시기 위해 어떤 고난을 당하셨습니까? 그냥 용서한다!” 선포하시면 그만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까? 그런 용서가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모든 용서는 우리에게 은혜가 분명합니다. 고통 없이도 용서가 가능하시겠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택하신 길과 그 방법은 우리에게 내려오시고 모든 고난을 담당하신 사랑,” 그것으로 인한 용서였습니다.

 

용서는 그 사람의 죄의 고난, 그것을 함께 지고 가기로 하는 결심까지 포함하는 일입니다. 한 순간에 처리할 수 있는 인스탄트가 아닙니다. 멀고도 험한 길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에서 소냐는 살인범 라스꼴리니꼬프와 동행합니다. 시베리아로 가는 길에. 도스토예프스키가 소냐에게 죄를 지은 것은 아니지만, 소냐가 보여 준 동행의 길은 용서하는 자의 길을 단적으로 보입니다. 톨스토이의 부활에도 같은 주제가 드러납니다.

 

청년의 때는 기회의 때입니다. 그러나 신중해야 하고,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많은 기도로써 여러분의 가는 길을 걸어야 합니다.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주기도문의 평행본문을 가지고 있는 마태복음은 바로 여기서 하나를 추가합니다.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But deliver us from evil.

마태복음 6:14b

 

구체적으로 무슨 악일까요? 시험에 들게 하는 악입니다. 용서하지 않는 악입니다.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But if you do not forgive others their trespresses, neither will your Fatherr forgive your trespasses.

마태복음 6:15

 

마태복음이나 누가복음 공히 주기도문에서 그 마지막 부문이 죄 용서입니다. 여기 초점이 있습니다.

 

이제 묻습니다. 죄를 용서함, 그것은 무슨 뜻입니까? 용서는 죄를 인정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합리화가 아닙니다. 죄를 그 사람과 분리해 냅니다.

 

첫째로, 용서는 죄를 미워하는 행위입니다. 그 죄를 씻어 버리는 길에 동행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죄가 씻음 받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누구의 죄를 용서한다 함은, 그를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함을 말합니다. 누가 당신에게 용서를 구하거든 당신은 그를 예수님께 인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용서하셨으므로 나도 용서한다고 말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치유의 길에 그와 동행하십시오.

 

둘째로, 용서는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긍휼입니다. 죄의 짐이 얼마나 무겁습니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Come to me, all who labor and are heavy laden, and I will give you rest.

마태복음 11:28

 

청년 여러분. 질풍노도(windbreak)의 시기라고 표현하는 청춘의 때입니다. 젊음은 축복입니다. 물론 여기는 조건이 달렸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때에 한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경우, 14-19세 젊은이들은 2010년 이후 자살이 살인을 앞질렀습니다. 자기가 살인자보다 더 무서운 존재라는 뜻이겠습니다. 스스로 자기 생명을 버리는 일. 이것이 큰 문제입니다.

 

누가 이렇게 스스로 괴롭힙니까?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자입니다. 예수님 밖에서는 모든 절망이 절대절망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서는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This illness does not lead to death! 요한복음 11:4b) 평가 되는 것입니다.

 

질풍노도의 시대는 특별히 방향설정이 중요합니다. 바른 리더를 만나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리더요, 목자시며, 왕이십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바른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바른 믿음의 길은 예수님께서 이끄십니다. 말씀과 기도 없이 믿음이 생겨날 수 없습니다. 오늘 기도를 가르쳐 주신 주님께서 바른 기도생활로 인도하십니다.

 

주기도문은 말씀을 의지하는 기도의 표본입니다. 구약은 이미 수많은 말씀기도가 있습니다.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나의 부르짖음을 주께 상달하게 하소서. 나의 괴로운 날에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소서. 주의 귀를 내게 기울이사, 내가 부르짖는 날에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내 날이 연기같이 소멸하며, 내 뼈가 숯같이 탔음이니이다.

Hear my prayer, O Lord. Let my cry come to you! Do not hide your face from me in the day of my distress! Incline your ear to me; answer me speedily in the day when I call! For my day pass away like smoke, and my bones burn like a furnace.

시편 102:1-3

 

시편은 대부분 그 자체로 기도입니다. 시편의 기도를 내 기도로 삼는 것, 그것이 예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My God, my God! Why have you forsaken me?

시편 22:1a

 

시편으로 기도하기. 이것은 좋은 출발입니다. 성경으로 기도하기. 이것은 모든 기도의 본질입니다. 아브라함의 기도를 내 기도 삼고, 욥의 기도를 내 기도 삼는 길, 여기 모든 응답의 약속이 들어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뜻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립니다.

 

용서할 수 없는 것. 그런 것이 있을까요? 내 감정과 내 정서를 따라 나는 할 수 없을지라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를 가능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원수 맺는 것을 버리고, 원수를 사랑하는 길을 걸어야 합니다. 이 길은 분명하게 좁은 길입니다. 좁은 문입니다.

 

테러리즘. 세계를 강타하는 폭력주의는 그 범위가 무한대로 뻗어가는 것 같습니다. 온 세상을 섬켜버리고도 남을 것처럼 강력합니다. 그러나 사랑이 더 큰 능력입니다.

 

학교 내 폭력, 학교 내 왕따, 이런 부정적인 세력도 사랑 앞에서는 무기력할 뿐입니다. 가정 내에서도 폭력의 악순환은 그 끝을 모릅니다. 이럴 때 사람들은 모두 폭력의 희생자가 되고 말 것 같습니다. 산과 들을 삼켜버리는 불처럼 강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그보다 더 큰 능력입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라!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Repay no one evil for evil, but give thought to do what is honorable in the sight of all.

로마서 12:17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Do not be overcome by evil, but overcome evil with good.

로마서 12:21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주님을 둘러싼 모든 악을 주님께서 맞상대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대신, 주님께서 당신의 사랑, 당신의 선으로써 모든 악을 멸하셨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심,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단적으로 세상에 드러난 것입니다.

 

오늘 시험을 이기는 길은 용서하는 길입니다. 용서의 길은 십자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는 용서하심이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다.

And Jesus said, "Father, forgive them, for they do not know what they do."

누가복음 23:34a

 

용서하라! 일곱 번씩 일흔 번도 용서하라! 용서의 끝을 남기지 않는 것, 그것이 시험을 이기는 길입니다. 시험은 용서할 수 없을 때 그 덫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로 시험을 이깁니다. 십자가의 능력으로!

 

그러므로 사람은 십자가까지 가야 합니다. 그 가는 길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십자가로 가까이 나를 이끄시고

거기 흘린 보혈로 정케하옵소서.

십자가 십자가 무한 영광일세

요단강을 건넌 후 무한 영광일세.

Jesus, Keep me nearer the Cross

There a precious fountain

Free to all, a healing stream

Flow from Calv'ry's mountain.

In the Cross, in the Cross

Be my glory ever

Till my raptured soul shall find Rest

Beyone the river.

 

끝까지 용서하는 길. 여기서 승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승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이기신 것, 그것을 우리가 이겨야 합니다.

 

죄악은 고통입니다. 무시하는 폭력입니다. 그러나 사랑의 힘으로 녹여내고, 사랑의 능력으로 그 아성을 무너뜨립니다. 그리스도인의 승리가 여기 있습니다. 그것은 이미 예수님께서 갈보리 언덕에서, 그 새벽의 무덤 문을 여심으로써 쟁취하는 은혜의 능력입니다.

 

내가 용서하지 않을 때, 나는 그를 그리스도 앞에서 막아선 것입니다. 내가 비켜주어 그를 예수님 앞에 서게 하려면, 그를 용서하여 지나가게 해 주어야 합니다. 이건 어렵지만 이건 불가능한 일이 결코 아닙니다. 이건 힘들지만 이건 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써! 기도하는 날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기도로 주님의 뜻을 구합니다. 말씀의 행간을 따라 걸어가는 밝고 은혜로운 발걸음입니다. 우리 발을 사슴처럼 힘차게 하신 주님께서, 오늘도 우리를 사탄의 넘어뜨림 시험에서 건져주십니다.

 

오늘 우리가 지고 가는 이 무거운 짐은 나 홀로 질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어깨 위로 옮기셨습니다. 우리의 고난의 짐을 지신 예수님.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But he was pierced for our transgressions; he was crushed for our iniquities. Upon him was the chastisement that brought us peace, and with his wounds, we are healed.

이사야 53:5

 

이 사순절의 깊은 날에, 주님을 깊이 생각하는, 그분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로 하루를 이기는, 영적 용사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용서할 수 없는 죄인을 용서하신 은혜를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가 원수 앞에 설 때,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그를 용서하게 하옵소서. 내가 그를 예수님 앞으로 인도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