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겨자씨선교회

통일 심포지엄

 

조은석 목사

금문교회 담임

 

샬롬. 한반도 평화의 길: 이사야 9:1-7을 중심으로

Shalom. A Way to Peace in the Korean Peninsula:

Reading Isaiah 9:1-7

 

목차

들어가면서

1. 이사야 9:1-7 본문읽기

2. 본문분석

3. 역사적 배경

4. 샬롬. 그 일차적인 뜻

5. 샬롬. 보다 깊은 뜻

6. 샬롬. 수직과 수평

7. 샬롬, 그 명령순종

8. 샬롬. 한반도 평화의 길

8-1. 미주한인

8-2. 남한

8-3. 미국

8-4. 중국

8-5. 일본

8-6. 러시아

8-7. 북한

8-5. 모든 이들의 샬롬

나가면서

참고문헌

 

 

 

 

 

 

 

 

 

 

 

 

 

 

 

 

 

 

 

 

들어가면서

 

인내의 열매가 있다. 그러나 한반도의 평화는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데서 오지 않는다. 어디선가 나무 아래 감이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때와 장소는 예측 불허다. 수주대토(守株待兎)도 어리석기는 마찬가지다. 독일이 통일되었다고 그 방식 그대로, 거기가 길은 아니다. 분명히 공통점이 없지 않으나 독일과 한반도는 전혀 다르다. 적어도 둘러싼 열강의 이해관계가 현저하게 다르다.

다르다면 다른 접근법을 요구한다. 나는 오늘 여기서 그 다른 접근법 하나를 제시한다. 이것이 전혀 다른 까닭은 성경은 읽는 자 각자에게 모두 독특한 하나님의 메시지가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전혀 다른 또 다른 까닭은 성경이 그리고 있는 과거 그림은 오늘 우리에게 현재가 되기 때문이다. 누구나 우리 현재는 당연히 독특하다. 언제 어디선가 존재한 적이 있거나, 지금 다른데서 대체물을 찾을 수 있는 거라면 오늘 우리는 이렇게 실존의 고민을 하지 않는다. “현재가 될 수 없는 과거는 기억할 가치가 없다.”

샬롬은 그 명사가 평화. 그런데 동사의 뜻은 되갚다를 포함한다. 성경의 샬롬 정의에 따르면 되갚아야 할 어떤 것을 갚아서 이루는 변화가 샬롬이다.

갚아야 할 것이 있다면 갚아야 한다. 그것이 무엇일까? 성경이 제시한 샬롬 정의이므로 성경에 물어야 답이 나올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읽는다.

평화의 조건으로 화해를 말한다. 화해가 정치적 계략을 넘어서서 진정한 평화를 가져오려면 갚음이 있어야 한다. 무엇을 어떻게 갚을까?

교회는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 오늘 사회를 향하여 교회가 내는 목소리는 무엇인가? 평화라면 무슨 갚음을 말하는 평화일까?

한반도 통일, 오기는 올 것이다. 어떤 면으로 읽어도 휴전선으로 그어 놓은 그 경계는 사라질 것이 분명하다. 세계 모두가 주목하는 그 열기, 그 에너지, 그 긴장, 그것이 이 상태로 한없이 오래 가리라고 보는 것은 비현실이다. 무엇보다 좋으신 하나님께서 선한 일을 이루실 줄 믿는 이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통일, 그 내용이 평화여야 한다. 전쟁은 안 된다. 성경을 읽는 그리스도인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좁게는 이사야의 예언에서 제시된 샬롬을 구한다. 분단 이후 한국전쟁 휴전 이후 전쟁의 위기가 매일 현실인 한반도가, 한반도를 고향으로 둔 우리가 오늘 간절히 샬롬을 구한다. 샬롬의 왕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일을 이루실 줄 믿는다.

 

 

 

 

 

 

 

 

 

 

 

 

 

 

 

 

 

 

 

 

1. 이사야 9:1-7 (히브리어 8:23-9:6) 본문 읽기

 

이사야서에서 샬롬은 중요하다. 오늘 본문에 두 차례 등장하는 샬롬의 위치에너지 측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히브리어 본문을 직역한다. 여기다 구조분석을 시도한다. 히브리어 본문으로 구조분석 할 때는 직역이어야 한다. 단어 뿐 아니라 배열도 그대로 살린다. 번역어가 어색할 것이다. 투박성이 부담스럽기도 할 테다. 날것 먹을 때 것처럼 비리거나 몹시 쓰디쓰기도 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 전혀 생소함이 잠자던 영혼을 일깨우는데 일조한다면, 그건 환영하는 것이 좋다.

이사야서 전체에서 오늘 본문이 차지하는 위치는 샬롬이라는 주제를 주목할 때 분명하다. 예언자 이사야가 샬롬을 말하고 싶었다면, 오늘 본문이 오기까지 그는 참았던 것이 있다. 그가 샬롬 외에 다른 주제를 던지고 싶었더라도, 그 다른 주제는 샬롬을 품어야 한다. 그 다른 주제는 틀림없이 구원일 터다. 예언자 자신의 이름 이사야가 드러내는 바로 그 구원은 샬롬을 끌어안는다. 왜냐하면 그가 구원주로서 제시하는 메시야는 샬롬의 통치자이기 때문이다. 샬롬은 바로 그 통치자의 속성이며, 동시에 그의 통치의 내용이다.

 

 

 

 

 

 

 

 

 

 

 

 

 

 

 

 

 

 

 

 

 

 

 

 

 

 

 

 

 

 

 

 

 

 

 

Isaiah 9:1a/Hebrew 8:23a

 

But will be no gloom

for who were narrowness to her.

 

그러나 우울함이 없을 것이다.

속 좁음에 있던 자들에게.

 

Isaiah 9:1b/Hebrew 8:23b

 

Like the time of the first one

he has made light

land of Zebulun and land of Naphtali.

 

그 때처럼, 그 처음

그분께서 가볍게 다루셨다

땅을, 스불론, 그리고 땅을, 납달리.

 

Isaiah 9:1c/Hebrew 8:23c

 

But later he has made heavy

way of the sea, beyond the Jordan

Galilee of the nations.

 

그러나 나중에 그분께서 무겁게 다루셨다

길을, 그 바다의, 저편에, 그 요단

갈릴리를, 그 민족들의.

 

 

Parallelisms of Isaiah 9:1/Hebrew 8:23

 

Isaiah 9:1a-b/Hebrew 8:23a-b

 

 

1

2

3

A

but will be no gloom

for who were narrowness to her

 

 

2

1

3

B

like the time of the first one he has made light

 

land of Zebulun

 

 

and land of Naphtali

 

 

Isaiah 9:1c/8:23c

 

 

1

2

A

but later he has made heavy

way of the sae, beyond the Jordan

B

 

Galilee of the nations

Isaiah 9:2a/Hebrew 9:1a

 

The people, the ones walking in the darkness

have seen light, great one.

 

그 백성이, 그 걷던 자들, 그 어둠에

보았다, 빛을, 위대한.

 

Isaiah 9:2b/Hebrew 9:1b

 

Those dwelling in land of shadow of death

light has shined upon them.

 

거주하던 자들에게, 땅에, 죽음의 그늘

빛이 비추었다, 그들 위에.

 

 

Parallelism of Isaiah 9:2/Hebrew 9:1

 

 

1

2

3

A

the people

the ones walking in the darkness

have seen light, great

B

 

those dwelling in land of shadow of death

light has shined upon them

 

The people (A-1) stands outside of A-2 and B-2; the verb in A-3 meets with the subjects in A-2 and B-2, not the people (A-1), the singular.

 

 

Or,

 

 

1

2

3

A

the people

the ones walking in the darkness

have seen light, great

 

2

1

3

B

those dwelling in land of shadow of death

light

has shined upon them

 

This parallelism places the people (A-1) juxtaposed to light (B-1) so that the people, have seen light, great, to be sure resides in the light which has shined upon them.

Take a note of the unbuttoned in B, placing B-1 in the second place, next to B-2, identical one to the people (A-1), dwelling in land of shadow of death (B-2).

 

 

Isaiah 9:3a/Hebrew 9:2a

 

You have enlarged the nation.

Have you not increased the joy?

 

당신께서 크게 하셨습니다, 그 민족을.

당신께서 증가시키지 않으셨습니까, 그 기쁨을?

 

Isaiah 9:3b/Hebrew 9:2b

 

They have rejoiced to your faces

like gladness in the harvest

as they will shout with joy in their dividing the booty.

 

그들은 즐거워합니다, 당신의 얼굴에

기쁨처럼, 추수 때

그들이 즐거워하듯, 나눌 때, 약탈물을.

 

 

The Parallelisms of Isaiah 9:3/Hebrew 9:2

 

Isaiah 9:3a/Hebrew 9:2a

 

 

1

2

A

you have enlarged the nation

have you not increased the joy?

 

The joy is that of shalom, repaid for freedom. God has increased the joy by the shalom.

 

 

Isaiah 9:3b/Hebrew 9:2b

 

 

1

2

A

they have rejoiced to your faces

like gladness in the harvest

B

 

as they will shout with joy in their dividing the booty

 

 

Isaiah 9:4/Hebrew 9:3

 

Because

yoke of his burden

and stick of his shoulder

rod of the one pressing against him

you have dismayed

like day of Midian.

 

왜냐하면

멍에를, 그의 짐의

그리고 몽둥이를, 그의 어깨의

그리고 지팡이를, 억압하는 자의, 그를 대항하여

당신께서는 당황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미디안의 날처럼.

Parallelism of Isaiah 9:4/Hebrew 9:3

 

 

1

2

 

because

A

yoke of his burden

 

B

and stick of his shoulder

 

C

rod of the one pressing against him

you have dismayed

 

like day of Midian

 

The victory of Gideon over the Midianites (Judges 8:24-27) is implied here. Israel has been set free from the bondage, like the time of the Exodus.

 

 

Isaiah 9:5a/Hebrew 9:4a

 

Because

all boot

one treading, in shaking.

 

왜냐하면

모든 부츠는

짓밟는 자의, 떨림으로.

 

Isaiah 9:5b/Hebrew 9:4b

 

And garment

one rolling in bloods.

 

그리고 겉옷은

뒹굴던 자가, 피에.

 

Isaiah 9:5c/Hebrew 9:4c

 

And she will be

for burning

food for fire.

그리고 될 것이다

불태움이

먹거리가, 불의.

 

 

Parallelism of Isaiah 9:5/Hebrew 9:4

 

 

1

2

3

 

because

A

all boot

one treading in shaking

 

B

and garment

one rolling in bloods

 

1

2

3

 

will be

for burning

 

food for fire

 

YHWH Sebaoth will finish/complete (shalom) the war (sabaˀ). The shalom by verb is implied here. This is a powerful foreshadowing of the Messiah who would come forward in the next verse.

 

 

Isaiah 9:6a/Hebrew 9:5a

 

Because

Child is born to us.

 

왜냐하면

한 아이가 태어났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Isaiah 9:6b/Hebrew 9:5b

 

Son is given to us.

 

한 아들이 주어졌다, 우리에게.

 

Isaiah 9:6c/Hebrew 9:5c

 

And will be

the rule

upon his shoulder.

 

있을 것이다

통치가

그의 어깨 위에.

 

 

Isaiah 9:6d/Hebrew 9:5d

 

And he will call his name

Wonder

Counselor

El

Mighty One

Everlasting Father

Prince of Shalom.

 

그리고 그분께서 부르실 것이다, 그의 이름을

놀라움

카운슬러

전능하신 분

영존하시는 아버지

통치자, 샬롬의.

Parallelisms of Isaiah 9:6/Hebrew 9:5

 

Isaiah 9:6a-b/Hebrew 9:5a-b

 

 

1

2

 

because

A

child

is born to us

B

son

is given to us

 

 

Isaiah 9:6c/Hebrew 9:5c

 

 

1

2

A

and will be

the rule

B


upon his shoulder

 

 

Isaiah 9:6d/Hebrew 9:5d

 

 

1

2

A

and he will call

his name

B

 

Wonder

C

 

Counselor

D

 

El

E


Mighty One

F


Everlasting Father

G

 

Prince of Shalom

 

The one calling (A-1) is YHWH, God of Israel.

In the parallelism, B-G, Wonder meets Prince of Shalom; C-F, Counselor meets Everlasting Father; D-F, El meets Mighty One. Highlight is found in B-G. The Hebrew verb palaˀ from the Wonder (peleˀ) implies "wonderful acts of judgment and redemption" (BDB 810c). The vertical dimension of shalom is noted here.

 

 

Isaiah 9:7a/Hebrew 9:6a

 

For abundance

the dominion.

 

풍성함에는

그 통치가.

Isaiah 9:7b/Hebrew 9:6b

 

And for shalom

there will be no end.

 

그리고 샬롬에는

없을 것이다, 끝이.

 

Isaiah 9:7c/Hebrew 9:6c

Upon throne

David.

 

왕좌 위에

다윗이.

 

Isaiah 9:7d/Hebrew 9:6d

 

And upon his kingdom

to establish her

and to support her

with justice

and with righteousness

from now and until forever.

 

그리고 그의 왕국 위에

이루도록, 그녀를

그리고 그녀를 지지하도록

정의로

그리고 의로움으로

지금부터 영원토록.

 

9:7e/Hebrew 9:6e

 

Zeal of YHWH Sebaoth will do this.

 

열심이, 여호와 쓰바오트의, 행할 것이다, 이것을.

 

 

The Parallelisms of Isaiah 9:7/Hebrew 9:6

 

Isaiah 9:7a-b/Hebrew 9:6a-b

 

 

1

2

A

for abundance

the dominion

 

2

1

B

and for shalom

there will be no end

 

In the parallelism, the character of shalom (B-1) is stated: abundance (A-1), to make the dominion (A-2). As the verb palaˀ which met Prince of Shalom (Isaiah 9:6/Hebrew 9:5) implied, shalom is now understood as "judgment and redemption" (cf. BDB 818d), which will make eternity (cf. B-2).

In addition, there will be no end for the very shalom. This unconditional character of shalom we find in the vertical shalom.

 

 

Isaiah 9:7c-e/Hebrew 9:6c-e

 

 

1

2

3

4

A

upon throne

David

 

 

B

and upon his kingdom

 

to establish her

 

C

 

and to support her

with justice

 

and with righteousness

from now and until forever

D

zeal of YHWH Sebaoth will do this

 

This seems to be a solid construction, by the picture by the syntax, building upon who YHWH Sebaoth is.

 

 

 

 

 

 

 

 

 

 

 

 

 

 

 

 

 

 

 

 

 

 

 

 

 

 

 

 

 

 

 

 

 

 

 

 

 

2. 이사야 9:1-7(히브리어 8:23-9:6) 본문분석

 

본문에 샬롬이 두 차례 등장한다. 모두 명사다. 두 가지 중요한 선언에 들었다. 첫 번째는 메시야가 샬롬의 통치자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그 샬롬의 영원하다는 것이다.

동사 샬롬은 본문에 없다. 그러나 본문 안에 동사 샬롬 정신이 충분히 함축되어 있다.

 

9:1a/H 8:23a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9:1c/H 9:23c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9:2/H 9:1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9:3a/H 9:2a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케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9:3b/H 9:2b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9:4/H 9:3

이는 그들이 무겁게 멘 멍에와 그들의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주께서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9:5/H 9:4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들의 신과 피 묻은 겉옷이 불에 섶 같이 살라지리니

9:6/H 9:5

평강의 왕이라

9:7a/H 9:6a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9:7b/H 9:6b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9:7c/H 9:6c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히 이를 이루시리라

 

하나님 편에서 읽는 동사 샬롬은 인간으로서 불가능한 상황에서 당신의 능력으로 이루시는 구원이다. 오늘 본문에서 이사야는 구원주 메시야를 샬롬의 왕으로 묘사한다. 그분의 샬롬은 영원하다고 못 박는다.

 

 

 

 

 

 

 

 

 

 

 

 

 

 

 

 

 

 

 

 

 

 

 

 

 

3. 역사적 배경. 주전 8세기 유다의 샬롬

 

주전 931, 솔로몬이 죽던 해 이스라엘은 분열되었다. 정치-외교를 주목하면 애굽 관여가 분명하다. 솔로몬의 정적 반군 대장 여로보암을 후원한 것이 한 예다. 소위 쪼개서 정복한다는 동서고금 원칙이다.

웃시야(792-740)가 죽던 해 하나님의 부르심 받은(이사야 6:1) 이사야는 메시야를 샬롬의 왕으로 기다렸다. 그는 누구인가? 아하스(735-715) 때 시리아-에브라임 연맹이 나라의 위기가 되었다. 그 때의 샬롬은 무엇인가?

자유인이 노예가 되는 길은 크게 두 가지다. 전쟁에서 포로가 되거나 빚을 갚지 못할 때다. 동사 샬롬은 이 두 가지 경우에 이들의 신분을 자유인으로 되돌림이다. 명사 샬롬은 부자유에서 자유를 획득한 상태다. 기드온에게 300명은 미디안 대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승리는 만군의 하나님의 능력 아니면 가능성 제로다. 모세 때 애굽이 기드온 때 미디안이었다. 이사야 때 미디안은 앗시리아다.

이사야서의 사회-정치-군사적 배경에서 큰 사건 두 가지는 아하스 때 시리아-에브라임 연합군 침공(734. 참고. 왕하 16:5-9; 대하 28:1-7; )과 히스기야(729/715-686) 14년 앗시리아 산헤립 침공(701. 참고. 이사야 36) 등 두 가지다. 오늘 본문 이사야 9:1-7(히브리어 8:23-9:6)은 배경이 시리아-에브라임 침공이다.

당대는 앗시리아 천하였다. 그런데 반앗시리아 전선을 구축한 시리아-에브라임은 친앗시리아 노선을 택한 유다를 압박했다. 앗시리아가 돕지 않았다. 그 정도는 망하게 버려두어도 해롭지 않았던 까닭이다. 고립된 유다는 절망했다. 왕은 믿지도 않았고 굳게 서지도 못했다(참고. 이사야 7:9). 전국은 마이너스 샬롬(-shalom)이었다. 이사야가 선포한 것은 왕 위의 왕, 플러스 샬롬(+shalom)으로 구원하는 메시야였다.

 

 

 

 

 

 

 

 

 

 

 

 

 

 

 

 

 

 

 

 

 

 

 

 

 

 

 

 

4. 샬롬(Shalom). 그 일차적인 뜻

 

명사 샬롬(Strong's #7965; BDB 1022d-1023b)평화라고 번역한다.

명사 샬롬은 구약에서 210회 나온다. 시편에 27, 그리고 이사야서와 예레미야서에 각각 25회로 두 번째로 많다. 이하는 이사야서다.

 

9:6-7 (H 9:5-6); 26:3; 26:12; 27:5; 32:17-18; 33:7; 38:17; 39:8; 41:3; 45:7; 48:18; 48:22; 52:7; 53:5; 54:10; 54:13; 55:12; 57:2; 57:19; 57:21; 59:8; 60:17; 66:12.

 

이사야서의 경우 오늘 본문 중 9:6-7(히브리어. 9:5-6)이 그 첫 번째 경우다. 말하자면 이사야서 샬롬 메시지는 오늘 본문에서 열린다. 샬롬을 놓고 읽으면 이사야서는 오늘 본문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

 

 

 

 

 

 

 

 

 

 

 

 

 

 

 

 

 

 

 

 

 

 

 

 

 

 

 

 

 

 

 

 

 

 

 

 

 

5. 샬롬. 보다 깊은 그 뜻

 

평화로 번역하는 샬롬을 보다 깊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동사 샬롬(shalem, Strong's # 7999; BDB 1022b-c)의 뜻 살피기는 게 좋다. 그러면 성경에서 제시하는 평화의 성격을 이해할 수 있다. 동사 샬롬의 뜻은 이렇다:

 

Qal.

1. to be complete

2. to be sound, uninjured

Piel

1. to complete, to finish

2. to make safe

3. to make whole

4. to make good

5. to reward, to repay

 

이들은 서로 상치하는 개념이 아니다. 결국 빚 내지 서원을 갚는 데 동사 샬롬의 뜻이 모아진다.

동사 샬롬은 구약에서 94회 나온다. 시편에 16, 출애굽기에 14, 그리고 이사야서에 10, 빈도수로 세 번째다. 아래 도표는 이사야서다.

 

1

19:21

Piel

to repay

여호와께 서원을 갚다

2

38:12

Hiphil

 

생명이 끝나다

3

38:13

Hiphil

 

생명이 끝나다

4

42:19

Pual

 

되갚은 자(동명사)

5

44:26

Hiphil

 

성취하다

6

44:28

Hiphil

 

성취하다

7

59:18

Piel

to repay

하나님께서 갚으시다

8

60:20

Qal

to be complete, to be at peace

끝마치다

9

65:5(H 65:6)

Piel

to repay, to reward

하나님께서 되갚으시다/보응하시다

10

66:6

Piel, part

toe one repaying

하나님께서 보응하시다

 

5-1. 수평샬롬

열왕기하 4:1-7은 예언자의 생도의 과부 아내가 두 아들들을 빚에 팔리게 된 상황이다. 엘리사가 말한다.

 

And he said: "You shall walk. You shall sell the oil. And you shall shalom your debt. And you, your sons, you will live with the one remaining.

그러자 그가 말했다: “당신은 가시오. 당신은 파시오, 그 기름을. 그리고 당신은 샬롬하시오, 당신의 빚을. 그리고 당신, 당신의 아들들, 당신은 살 것이다, 그 남은 것으로.

열왕기하 4:7b, Echo Bible

 

여기서 동사 샬롬을 만난다. Piel이다.

 

5-2. 이사야서의 수평 샬롬

 

이사야는 동사 샬롬이 이런 수평적 샬롬을 언급하지 않는다. 모두 수직샬롬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 특별히 강조된 까닭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속의 능력을 드러내는 자의 사역은 분명히 동사 샬롬의 뜻이 들었다. 안식일 명령이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의를 지키며 의를 행하라. 이는 나의 구원이 가까이 왔고, 나의 공의가 나타날 것임이라, 하셨도다.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그의 손을 금하여 모든 악을 행하지 아니하여야 하나니, 이와 같이 하는 사람, 이와 같이 굳게 잡는 사람은 복이 있느니라.

이사야 56:1-2, 개역개정

 

이사야의 안식일 준수 강조는 특별하지 않다. 이미 모세오경, 특히 신명기에 강도 높은 안식일 명령이 있다. 이사야의 신학은 모세오경의 연장선상에 있다. 안식일은 예배로써 풀어 살리는 날이다. 안식년은 빚을 탕감하고 종을 풀어 해방한다(신명기 15:12). 주목하는 그대로 모든 빚을 탕감하는 희년은 안식일의 결정체다.

출애굽 제1세대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심을 기억하고 안식일을 지켰다(출애굽기 20:8-11). 출애굽 제2세대는 하나님께서 구원하심을 기억했다(신명기 5:12-15). 창조@출애굽 다이내믹스는 안식일 명령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사야의 수평적 샬롬은 안식일 준수 명령에 함축된 것으로 충분하다.

 

 

 

 

 

 

 

 

 

 

 

 

 

 

 

 

 

 

 

 

 

 

 

 

 

 

 

 

 

6. 샬롬. 수직과 수평

샬롬은 수직적 의미와 수평적 의미가 있다.

수직적 샬롬은 하나님 차원에서 볼 때, 인간의 빚을 탕감해 주심이다. 구원이다. 인간 차원에서 볼 때 예배다.

수평적 샬롬은 인간이 서로 빚을 탕감해 줌이다. 그런데 수평적 샬롬은 스스로 기능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수직적 샬롬을 품은 인간이 수평적 샬롬의 주체가 될 수 있다. 수평적 샬롬은 명령순종의 형태로만 기능하기 때문이다. 예배로써 수직적 샬롬을 은혜로 경험한 자가 수평적 샬롬을 이해하고, 그 명령을 순종한다. 즐거운 순종이다.

샬롬은 탄력적이다. 샬롬은 우선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대한 평화, 곧 수직적 샬롬에서 보인다.

 

 

6-1. 수직적 샬롬

 

6-1-1. 하나님 편에서: 평강의 왕 샬롬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사랑하셨다. 그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요한복음 3:16). 평강의 왕으로 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그 실체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누가복음 2:14, 개역개정

 

 

6-1-2. 사람 편에서: 서원 갚기 샬롬

 

동시에 샬롬은 인간이 하나님께 대하여 평화를 추구하는 데서도 보인다. 하나님께 드린 모든 서원을 갚을 때 이 동사를 사용한다.

 

And I, in voice of thanksgiving

I will slaughter to you.

What I have vowed, I will shalom.

Salvation is to you.

그리고 저는, 목소리로, 감사의

제가 희생제사 드리겠습니다, 당신께.

제가 서원한 것을, 제가 샬롬하겠습니다.

구원은 당신께 있습니다.

요나 2:10 (H 2:9), Echo Bible

 

여기 동사 샬롬은 Piel이다.

 

6-2. 수평적 샬롬

 

아울러 샬롬은 수평적 인간관계에서도 돋보인다. 형제가 형제의 빚을 탕감할 때다. 이 경우, 특정한 형제가 특정한 형제에 한정하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라도 언제든지 빚을 질 경우가 생긴다. 어제의 부자가 오늘 가난할 수 있다. 오늘 가난하지만 내일 풍요를 누릴 수 있다. 누구라도 빚을 갚아 주고 빚을 탕감 받는 일에 예외가 없다.

이에 수직적 샬롬에 바탕을 두어야 수평적 샬롬 이해와 실천이 가능하다. 이 사실에 근거하여 몇 가지 제안을 낸다.

7. 샬롬. 그 명령 순종

 

반복한다: 수평적 샬롬은 수직적 샬롬에 대한 순종으로 나타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레토릭 패턴을 활용, 툴민(Toulmin)은 아래와 같은 구도를 선보인다.

 

클레임 Claim

리즌 Reason

워런트 Warrant

 

수평적 샬롬 명령 내용은 아래와 같다:

 

클레임: 샬롬하라!

리즌: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너희를 샬롬하셨기 때문이다.

워런트: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시다.

 

이 내용을 툴민 구도 안에 위치시켜 본다.

 

클레임 Claim

리즌 Reason

샬롬하라!

하나님께서 너희를 샬롬하셨다

창조@출애굽

워런트 Warrant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시다

 

여기서 창조@출애굽 다이내믹스는 먼저 출애굽 이스라엘에게 선보이셨다. 이스라엘은 매년 유월절-무교절을 지키면서 클레임에 대한 리즌을 기억했다. 수직적 샬롬을 이해한 자가 받는 명령은 이런 레토릭 형태다.

 

 

 

 

 

 

 

 

 

 

 

 

 

 

 

 

 

 

 

 

 

 

 

8. 샬롬. 한반도 평화의 길

 

하나님의 은혜 아니면 사람은 누구나 조건 없이 남의 빚을 갚아 줄 수 없다. 예수님께서 발을 씻어 주신 자는 그 배운 대로, 그 명령을 따라 이웃의 발을 씻는다. 파멸이 아니라 생명이라면, 한반도 통일의 길은 샬롬 외에 달리 없다. 수직적 샬롬 회복에 바탕을 둔 수평적 샬롬의 실천을 모색한다.

따라서 내가 제안하는 평화의 길이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인에게 권면하는 분명한 제한이 있다.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지 않는 자들에게는 실현 가능하지 않은, 어쩌면 빈곤한 상상력에 지나지 않을 테다. 이건 정치-경제-외교-군사 같은 범주에서는 버린 돌이다. 이것은 선교신학적 제안이다.

그러나 믿는다. 인류역사에 믿는 이들이 이뤄낸 아름다움은, 인간 스스로 신뢰하며 구축한 그 어떤 미학보다 월등하다. 생명을 살려내는 능력이 있다. 그러므로 이 제안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으라는, 복음전도의 한 방편이다.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를 원하는 모든 자는, 그리고 저들 자리에서 이 같은 평화를 기다리는 모든 인간은 반드시 들어야 하는, 광야에서 외치는 목소리다. 말씀 외에 달리 아무것도 기다릴 것 없는 이 거친 땅에서.

 

 

8-1. 미주 한인의 샬롬

 

샬롬의 정의와 그 필요성을 먼저 오늘 여기 미주 샌프란시스코 베이지역에 모인 우리가 새롭게 이해한다. 이것을 다양한 채널을 통해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공유한다. 물론 북한 지도자들과 북한 주민들도 포함한다. 소위 “6자회담당사국이 먼저 고려되겠지만, 땅 끝에 사는 그 누구라도 들으면 한다. 나비효과가 거기서부터 여기를 거쳐 한반도까지 미칠 수가 있다.

서로 형제의 어깨에 걸린 빚이 무엇인가 생각한다. 그리고 어떻게 그 빚 탕감을 도울 수 있을까 생각한다. 여기까지 가면 길이 보인다.

한인이민교회가 눈을 떠야 한다. 말씀의 눈을 떠야 한다. 샬롬을 가르치는 말씀의 눈을 떠야 한다. 교회란 무엇인가? 이익단체인가? 친교 클럽인가? 아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다.

자기를 내려놓은 교회는 한인사회에 길을 제시한다. 샬롬의 길이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랑을 이웃과 나눈다.

 

8-2. 남한의 샬롬

 

남한이 샬롬에 앞장서는 길에 교회가 있다. 한국교회는 세속화의 늪에서 벗어나야 한다. 기득권을 과감하게 버리고 하늘 만나를 매일 기다리는 진정한 말씀개혁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공부에 그 가능성이 보인다.

특히 샬롬 이해가 당면한 한반도 평화문제의 열쇠라는 점에서, 교회는 샬롬 실천의 선봉에 설 수 있다. 교회가 사회 지도력을 상실하면 비난과 비판을 견딜 수 없다. 성별을 깃발(야웨 닛시)로 내거는 교회에 거는 원천적 사회적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교회의 지도력은 대 사회적 공통 이슈를 선점하는 데 있다. 지도력은 공통 이슈를 찾아내고 깃발로 내걸 때 생긴다. 지난 세대 교회는 3.1운동 같은 사회 이슈를 선점했다. 오늘 가장 강력한 이슈는 통일이다.

 

 

8-3. 미국의 샬롬

 

미국은 기독교 신앙이 기반이다. 미국교회가 성경말씀을 배운다. 샬롬을 바르게 이해한다. 교회가 가진 힘을 샬롬하는 데 사용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한다. 한 때 선교사를 파송했던 한반도에 샬롬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

미국교회가 엄청난 속도로 무너지고 있다. 말씀 거역하는 교회는 살아남을 수 없다. 사데교회처럼 살았다는 이름뿐이라면, 그건 벌써 죽은 것이다. 미국교회가 무너지면 미국도 소망이 없다. 교회는 핍박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사회적 기득권에 안주하던 것이 여태 패인이라면, 이제 핍박을 선택하라.

 

 

8-4. 중국의 샬롬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의 샬롬은 한반도 평화에 벌써 필연이다. 무자비한 핍박에도 교회가 부흥하는 중국이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교회가 성장하는 나라 몇 개 중 하나다. 누가 부인하더라도 중국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길로 들어섰다.

중국선교는 한국교회가 큰 역할을 맡았다. 이제 중국교회는 스스로 일어서고 있다. 말씀양육이 관건이다. 이미 불법이 된 선교사역을 다양화해야 한다. 한국이나 미국 등지에 나온 유학생이나 주재원, 혹은 취업자나 관광객에게 말씀을 가르치는 길이 있다.

조선족의 역할을 주목한다. 조선족 교회의 부흥을 돕는 것, 그들에게 말씀양육의 길을 열어주는 것, 진일보하는 샬롬의 길이다.

 

 

8-5. 일본의 샬롬

 

일본 기독교는 소수지만 깊은 말씀 이해가 있다. 사변으로 기우는 경향은 교회 부흥으로 일으켜 세운다.

일본은 특히 한반도에 식민통치의 빚을 졌다. 일본이 한반도 샬롬을 도움으로써 그 빚을 갚을 수 있다.

일본은 남북한 공공의 적이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절대명령 순종으로 일본의 모습이 변한다. 일본은 남북한 공공의 친구다. 샬롬으로 가는 길에 남북한 그리스도인이 일본을 사랑한다. 가해자 콤플렉스에서 벗어난 일본은 한반도의 분단극복을 돕는다. 샬롬의 동역자다.

 

 

8-6. 러시아의 샬롬

 

러시아의 정신문화는 기독교다.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의 나라다.

러시아에 느리지만 기독교가 부흥하고 있다. 한국교회가 러시아 선교사역에 힘쓴 열매가 이미 뚜렷하다.

 

 

8-7. 북한의 샬롬

 

형제의 빚을 탕감해 주는 데서 형제관계의 샬롬이 온다. 그러면 남한이 북한의 빚을 갚아주자는 제안이 오늘 우리 해법인가? 북한의 어떤 빚을 남한이 어떻게 갚을까? 북한이 남한의 빚을 갚아주는 발상의 전환은 현실성이 있는가?

북한은 절대 약소국인가? 그래서 샬롬에 관한 한 언제나 수동적일 수밖에 없는가? 이 질문을 곱씹으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안다. 교회의 성장사를 살피면 가난한 이들의 헌신이 있다. 그들의 몇 푼 연보로 교회가 세워졌다. 나는 여기서 찬란한 보물을 품은 그런 인간 자랑의 교회를 말하지 않는다.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의 예배를 드리는 교회다. 평양은 제2의 예루살렘이었다고 했다. 우리 주님께서 지금까지 그 불씨를 남기셨다고 믿는다. 교회가 있다면 절대빈곤에 허덕이는 북한이 형제의 빚을 갚아 줄 수 있다.

북한이 손에 쥐고 있는 것 중에 그 열쇠가 있다. 비틀리고 꼬였으며 엉켜버린 문제의 해법을 그 열쇠가 결정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다. 북한이 샬롬하는 자세로 돌아서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오늘까지 기다린 이유 중 하나다. 오늘 샬롬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북한의 주민과 지도자들에게 전달되기를 바란다. 영원한 피해자, 약자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샬롬하는 주체로 굳건히 서서, 샬롬의 광장으로 당당히 걸어 나오기를 바란다. 오해를 원하지 않는다. 북한 정치 지도자 누구를 말함 아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 샬롬의 은혜를 받은 단 한 명(참고. 5:1), 오늘 우리는 그를 부른다.

북한의 교회를 생각한다. 누구도 파악하지 못한 북한교회다. 그러나 북한교회는 죽지 않았다. 죽은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다. 들어도 깨닫지 못한다. 그러나 북한은 듣는다. 설령 죽었다고 해도, 그건 일시다. 말씀의 능력으로 깨어 일어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겨우 잠든 것뿐이다(참고. 요한복음 11:11). 오늘 우리가 믿는 것은 말씀의 능력이다. 주님께서 가신다. 그들을 깨우실 것이다. 죽음에서 일어난 그가 증언할 것이다. 그의 증언은 능력이 있다. 샬롬의 길에 그는 중요한 증인이다.

 

8-8. 모든 이들의 샬롬

 

미주 한인 외에 소위 “6자회담의 당사자에 해당하는 여섯 나라를 샬롬의 주체로 위에 열거했다. 눈치 챘을 것이다. 이러면 실제로 정치적 해법인 셈이다. 그러나 아니다. 한반도를 자주 언급하는, 어쨌거나 한반도 샬롬이 관심사인 그들을 먼저 살핀 것 뿐이다.

사실 성경이 모든 이들을 위한 것이듯, 샬롬은 모든 이들이 주체로 일어서야 하는 절대명령이다. 모든 이들이 샬롬을 위해 광장에 나올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나는 해외 교육선교에서 성경을 강의한다. 내 생각에 이건 통일선교다.

한반도 샬롬은 소수 몇 나라의 손에 걸려 있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모든 이들이 하나님 두려운 줄 알고, 하나님의 명령/클레임에 순종할 때 한반도 샬롬은 필연으로 부각된다.

온 세상 모든 마이너스 샬롬(-Shalom)을 뽑고 파괴하고 파멸하며 넘어뜨리고, 샬롬을 심고 건설하라는 명령(참고. 예레미야 1:10a)으로 한반도 플러스 샬롬(+Shalom)이 실현되면, 후속타는 온 세상 샬롬이다.

 

 

 

 

 

 

 

 

 

 

 

 

 

 

 

 

 

 

 

 

 

 

나가면서

 

샬롬은 특정한 자가 특정한 자를 특정한 방식으로 탕감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차라리 고엘의 몫이다. 이번에 깊지 않게 제기된 샬롬과 고엘의 관계가 내게는 숙제다. 샬롬의 동사와 고엘의 동사가 어느 정도 맞물린다. 고엘은 같은 지파, 같은 족속, 같은 집안의 상실된 것을 회복시키는 사역 및 사역자다. 한반도를 역사적 운명공동체로 볼 때 분단극복의 길로 신학적 고엘이 타당성을 확보한다. 다음은 한반도 통일의 신학적 전거로 고엘 하는 길을 연구해 보겠다.

샬롬이나 고엘 모두 하나님의 뜻 안에 움직이는 역동성이다.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진다. 선이 악을 이긴다. 분단은 극복된다. 인간이 그 길을 방해하는 대신 하나님의 뜻을 받든다면, 그는 통일사역의 선구자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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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 Symposium, Shalom.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