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완전한 하나님의 계시

 

조은석 목사 (금문교회 담임)

 

지금 세상은 포퓰리즘(Populism)이 대세다. 캠프리지 사전은 보통사람들의 요구와 바람을 대변하려는 정치 사상, 활동”(wikipedia. 2019520. web.)이라고 정의한다. 포퓰리즘이 문화현상이었다가 이제는 정치다. 권력자가 정치철학 대신 대중의 흐름에 대단히 민감하다. 어떤 사람들은 여론을 조작하여 대중의 뜻을 위조, 결국 자기 이익을 채우는 행위를 독재라고 부른다. 그의 정치에 대중은 이용될 뿐이다.

 

문제는 교회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로마서 12:2a) 말씀했는데, 교회가 세대를 바짝 뒤따르고 있다. 이 세대가 가는 길은 넓다. 다들 거기로 몰린다. 예수님께서 피로 세우신 교회는 지시하는 길이 생명이다. 그건 좁고 협착하다(마태복음 7:14b). 교회는 세상과 반대 길을 걸음으로써 세상을 지도한다. 생명을 제시한다. 그런데 교회가 세상을 뒤따른다. 뒤따르는 자는 결코 앞설 수 없다. 앞장서는 길 아니면 지도력 없다. 지도력 상실한 교회는 맛을 잃은 소금. 사람들에게 밟힐 뿐이다(마태복음 5:13b).

 

어떤 점에서 교회가 문제인가? 교회의 존재이유는 그 메시지에서 찾아야 한다. 교회가 사람들 듣기 좋은 언어를 선택한다. 인간은 누군가? 인간이 본래 선하다면 선한 자들의 요구는 선하다. 그러나 성경의 빛에서 인간은 죄인이다. 죄인들이 찾고 구하는 메시지는 결코 선하지 않다. 그런데 교회가 인간이 요구하는 메시지를 생산한다. “직통계시라는 이름으로.

 

직접 들었다는 것이다. 성경에 없으니 어디서 딴 데서 들었을 것이다. 문제는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일 리가 없다는 데 있다. 성경 자체의 증언이다: 하나님의 음성은 반드시 성경에서 난다. 성경에서 무얼 뺀 메시지나 무얼 더한 메시지 모두 안 된다(요한계시록 22:18-19). 직접 들었다는 말은 성경에 무얼 더한 것이다. 예언의 위험성은 성경에 첨가한 몰몬경이나 코란이나 원리강론등보다 오히려 심각하다. 저들은 이단이거나 타종교로 손쉬운 분류가 가능하다. 그러나 교회 안에 기생한 저들의 예언은 혼돈이다.

 

묻는다. 성경은 완전한 하나님의 계시인가? 그렇다. 직통계시는 없다. 그건 거짓이다. 성경은 완전하다. 어떤 점에서 그런가? 성경 자체의 증언이다. 내용은, 성경은 그 자체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구원을 얻는 길을 완전하게 증거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반론이다. “성경 안에서 아브라함, 모세, 다윗, 엘리야, 이사야, 세례요한, 바울, 이들이 직접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는데, 오늘 우리가 음성 듣는 일이 오히려 성경적인 것 아닌가?” 아니다. 이유는 성경은 완전하게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과 함께 성경은 닫힌 계시의 책이 되었다. 그런데 이것 보라! 닫혔으나 오히려 열렸다. 하나님께서는 완성된 하나님의 말씀으로써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

 

교회가 위기다. 교회의 메시지가 성경 밖의 예언을 포함하기 시작했다. 교회는 성경말씀을 잘 배우고, 바르게 가르치고, 그 말씀을 실천하며 살아가도록 이끌어야 한다(참고. 마태복음 28:19-20). 물을 떠난 물고기가 살 수 있는가? 성경말씀 떠난 설교는 설교일 리가 없다. 포퓰리즘에 물든 설교는 대중의 관심을 대변할 뿐이다. 이런 설교는 정답이 대중 속에 있다. 사람들은 그런 설교에 가슴을 치며 회개할 리가 없다. 그런 말씀에 내가 어찌할꼬?”(참고. 사도행전 16:30) 스스로의 삶에 의문부호를 갖다 대지 않는다. 오히려 그동안 살아온 삶에 강한 확신만 추가할 뿐이다. 그게 무슨 설교인가?

 

바른 설교는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게(사도행전 17:11b) 도전한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결단(참고. 마태복음 16:24)을 낳는다. 그런데 거짓 설교는 예수님을 따르는 대신 설교자를 따르며, 성경을 상고하는 대신 자기 경영에 집착하게 한다. 이러면 다 망한다. 이것이 교회의 위기다.

 

성도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성도는 성경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누구도 직통계시를 말할 수 없다. 그러므로 성경을 치워 놓고 따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길은 없다. 보라. 자연은 침묵한다. 생명에 대하여 누구도 입을 열지 않는다. 숲에서도 아무 음성이 없다. 사막은 고독하다. 시장에서도 그들은 독백할 뿐이다. 과학 실험실은 현상만 추적한다. 메시지가 없다.

 

누구에게 생명의 길을 말하는 것은 하나님 말씀뿐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성경말씀을 일점일획도 다 이루셨다. 그 길로 십자가를 지셨고, 그 길로 부활하셨다. 그 말씀 그대로 승천하셨으며, 다시 오실 것이다. 누가 성경말씀을 넘어가는가?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고린도전서 4:6b).

성령님께서 오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제 내게 말씀하시더라고요. 가르쳐 주셨어요. 누가 그런다면 그것이 성경책 어디 몇 장 몇 절에 있는가?” 물으라. 말씀의 빛에 비추면 거짓이 판별된다. 누가 그 빛을 피할까?(참고. 요한복음 1:9) 모든 성경말씀은 오늘 나에게 주신 계시다.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사도행전 27:25b). 이것이 아멘신앙이다. 기억하라. 아멘은 하나님의 말씀에 드리는 응답이다. 말씀 떠난 예언(그런 것이 있다면)은 아멘을 받을 수 없다. 아멘으로 응답할 수 없는 설교는 교회에서 선포되어선 안 된다.

 

지루할 것이다. 인기가 없을 것이다. 성경말씀을 그대로 전하는 설교는. 그러나 거기 생명이 있다. 본래 생명은 인기거품을 먹고 살지 않는다. 생명은 진리에 산다. 진리 위에 선 교회, 진리로 승부하는 교회, 진리가 승리하는 교회, 그런 교회가 그립다.

 

포퓰리즘. 여기 근거한 정치는 거짓이다. 바른 철학 부재, 부화뇌동이다. 그런 정치를 거부한다. 세속정치가 그런 중에 거룩한 하나님의 교회는 일러 무삼하리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