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526

금문교회 주일예배

조은석 목사

 

좁은 문 The Narrow Door

누가복음 Luke 13:22-30

 

22. 예수께서 각 성 각 마을로 다니사, 가르치시며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시더니

23.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그들에게 이르시되,

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25.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26. 그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의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27. 그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 가라!’ 하리라.

28.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29.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하리니

30.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시더라.

 

지난 주 설교 때 소개한 바, 누가복음이 기록하고 있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세 차례 여행입니다. 9:51-13:21; 13:22-17:10; 17:11-19:28. 오늘 본문부터 두 번째 예루살렘 입성입니다.

 

구원을 받는 자는 그 수가 적습니다.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는 길에 어떤 사람이 여쭈었습니다.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Lord, will those who are saved be few?

누가복음 13:23a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Strive to enter through the narrow door. For many, I tell you, will seek narrow door and will not be able.

누가복음 Luke 13:24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거나, 주님께서 가르치실 때 곁에 있었거나, 그런 것이 천국 문에 입성하는 데 보장이 되지 못합니다. 주님께서는 행악하는 자들을 결코 환영하지 않으십니다. 누가 행악하는 자들입니까?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지 않는 자들입니다.

 

결론으로 말씀하십니다.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And behold, some are last who will be first, and some are first who will be last.

누가복음 Luke 13:30

 

먼저 된 자는 끝까지 먼저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아니면 그 문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사람이 천국에 못 간다면, 그처럼 슬픈 일이 또 있겠습니까? 살면서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을 만날지라도 천국소망이 있으면 다 이길 수 있습니다. 이 세상 무엇으로 천국과 바꾸겠습니까? 다시 주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And behold! Some are last who will be first, and some are first who will be last.

누가복음 Luke 13:30

 

이것은 예수님 말씀입니다. 사람은 금수저를 물고 나왔다고 그 나머지 인생이 모두 황금빛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흙수저를 물었어도 그는 인생 어느 시점에 황금길을 걸을 수가 있습니다. 인생이 그렇거늘, 천국 길 여부는 우리의 출발점에서 결코 헤아리지 못합니다. 특별히 주님께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는 명령을 주셨습니다. 이 명령에 순종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아니면 누구라도, 아무리 먼저 출발했어도, 불가능합니다.

 

토끼와 거북이는 함께 출발한 경우입니다. 먼저 된 자와 나중 된 자는 출발시점이 다릅니다. 먼저 출발한 자와 나중 출발한 자가 역전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여기 있는 모든 분들은 먼저 된 자입니다. 세상에 있는 자들, 아직도 주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 비하여 우리는 먼저 믿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천국의 때에 이르러, 사태가 역전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리처럼 먼저 된 자가 나중 된다면 그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습니까?

 

여기서 나중 되기는 무엇을 말합니까? 1등 하다가 꼴찌 하는 경우가 아닙니다. 꼴찌를 해도 막차라도 타는 것 아닙니까? 여기서는 믿다가 타락해서 믿음을 상실한 경우를 말합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런 경우가 종종 발생합니다. 교회에서 세상으로 나간 자들 이야기가 성경에 많습니다. 믿음을 상실하고 세상 사람이 된 경우입니다. 후메내오(Hymenaeus)와 알렉산더(Alexander)가 그런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첫 번째 편지의 일부입니다.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교훈으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탄에게 내준 것은, 그들로 훈계를 받아 신성을 모독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This charge I entrust to you, Timothy, my child, in accordance with the prophecies previously made about you, that by them you may wage the good warfare, holding faith and a good conscience. By rejecting this, some have made shipwreck of their faith, among whom are Hymenaeus and Alexander, whom I have handed over to Satan that they may learn not to blaspheme.

디모데전서 1 Timothy 1:18-20

 

디모데(Timothy)는 모태신앙이었습니다. 그의 외할머니 로이스(Lois)와 그의 어머니 유니게(Eunice)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가 처음이 좋으므로 끝까지 좋을 줄 안 것이 아닙니다. “선한 싸움을 싸우고,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고 권면합니다.

 

천국 길은 끝까지 가 봐야 아는 길입니다. 항상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합니다. 기도하고 또 기도해야 합니다. 시험에 들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모태신앙이라도 상실할 경우가 있습니다. 배로 비유하면 그것은 파선”(shipwreck)입니다.

 

믿음이 없던 자가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울이 그랬습니다. 그는 박해자였으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를 변화시키셨습니다. 그는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 받았습니다. 일생 부르심을 따라 살고, 순교했습니다. 바울은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된 경우입니다. 바울은 먼저 된 자 디모데가 나중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권고합니다.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In accordance with the prophecies previously made about you, that by them you may wage the good warfare. Holding faith and a good conscience!

디모데전서 1 Timothy 1:18b-19a

 

이 권면은 오늘 예수님의 말씀에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하심과 같습니다.

 

좁은 문. 그 문으로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다, 하셨습니다. 바로 이 좁은 문은 천국 문입니다.

 

천국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는 자는 예언, 곧 말씀을 따라 선한 싸움을 싸우며,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져야 합니다. 만일 그가 영적 싸움에서 지고, 믿음을 저버리고 착한 양심을 가지지 못한다면, 그는 세상에 지고 마는 것입니다. 후메내오와 알렉산더처럼!

 

사도바울의 권면을 따라 디모데는 끝까지 그의 믿음을 지켰습니다. 처음 된 자가 끝까지 처음 된 길로 간 것입니다. 우리도 천국 길에 이르도록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야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집 주인이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서서 문을 두드려도 소용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무슨 문입니까? “좁은 문입니다. 먼저 된 자들이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왜요? 나중 되었기 때문입니다. 타락한 것입니다.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 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For it is impossible, in the case of those who have been once been enlightened, who have tasted the heavenly gift, and have shared in the Holy Spirit, and have tasted the goodness of the word of God and the powers of the age to come, since they are crucifying once again the Son of God to their own harm and holding him up to contempt.

히브리서 Hebrews 6:4-6

 

무서운 말씀이지요? 여기도 먼저 된 자가 나중 되는 경우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한 경우, 그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할 수 있겠습니까? 이와 같은 경우 주님께서는 성령을 모독한 죄로 정의하셨고, 그런 죄는 능히 사함을 얻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한 번 빛을 받았다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았다고, 성령충만 받았다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을 배웠다고, 내세의 능력을 알았다고, 그렇게 자랑해도 그는 타락할 수 있습니다. 놀라운 은혜와 은사를 받고 타락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죄를 저지를 수 있습니다. 그는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요? 늘 조심하고, 늘 조심해야 합니다. 기도와 말씀으로써 영적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의 말입니다.

 

내가 내 몸을 쳐서 복종케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But I discipline my body and keep it under control, lest after preaching to others I myself should be disqualified.

고린도전서 1 Corinthians 9:27

 

사도 바울이 두려워했다면 우리 모두가 두려워해야 할 일입니다. 바울이 온 세상에 복음을 전파한 사도인데, 그가 도리어 버림을 당할 것을 염려한다면 우리도 극히 조심할 일입니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해야 합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Therefore let anyone who thinks that he stands take heed lest he fall.

고린도전서 1 Corinthians 10:12

 

, 그렇습니다! 선 사람도 넘어질 수 있습니다.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집니다. 누구도 장담하지 못합니다. 속담에 자식 자랑 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사람이 이 세상에서 무엇을 어떻게 왜 자랑하겠습니까? 조심해야 합니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나중 된 자가 먼저 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천국의 법칙입니다.

 

나는 우리교회 바비 마틴(Bobby Martin) 형제가 전도에 불이 붙은 것을 보고 마음이 기쁩니다. 그는 작년 71일에 우리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초신자입니다. 그런데 그는 성경을 사랑하고, 기도가 깊습니다. 그러나 이것 보십시오. 이제 누구든지 복음을 받아들이고 믿기 시작한다면, 그 사람에 대하여 바비 마틴 형제는 먼저 된 자입니다. 넘어질까 조심해야 합니다.

 

예수님 말씀을 들으십시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Therefore I tell you, every sin and blasphemy will be forgiven people, but the blasphemy against the Spirit will not be forgiven. And whoever speaks a word against the Son of Man will be forgiven, but whoever speaks against the Holy Spirit will not be forgiven, either in this age or in the age to come.

마태복음 Matthew 12:31-32

 

사람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할 수 있는 것은 성령충만할 때인데, 성령을 거역하면 무슨 수로 그가 회개의 길을 걷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내셨는데, 바리새인들이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을 빌었다고 주님을 조롱한 데서 주신 말씀이었습니다.

 

히브리서 말씀을 계속 들어 보십시오.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For land that has drunk the rain that often falls on it, and produces a crop useful to those for whose sake it is cultivated, receives a blessing from God. But if it bears thorns and thistles, it is worthless and near to being cursed, and its end is to be burned.

히브리서 Hebrews 6:7-8

 

땅의 경우를 들었습니다. 만일 밭 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가시와 엉겅퀴를 낸다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 받아 불사르게 되고 말 것입니다. 문제는 열매입니다. 무엇을 생산해 내는가, 그것이 문제입니다.

 

사람의 열매는 그 믿음이며, 그 믿음의 열매, 곧 말씀순종입니다. 사람이 말씀을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삶,” 그것은 말씀을 순종하여 열매를 맺는 삶,”입니다.

 

먼저 된 자들이 말씀을 순종하는 길을 걸어야 합니다. 끝까지 그 길을 가야 합니다. 그것은 좁은 문입니다. 천국의 문은 좁고 협착합니다. 오늘 본문과 상관 있는 마태복음의 말씀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Enter by the narrow gate. For the gate is wide and the way is easy that leads to destruction, and those who enter by it are many. For the gate is narrow and the way is hard that leads to life, and those who find it are few.

마태복음 Matthew 7:13-14

 

신앙생활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생활입니다. 험하고 높은 이 길입니다. 싸우며 나아가야 합니다. 육신은 날마다 죽어야 합니다. 그래야 열매가 맺습니다. 식물이 열매를 내기 위해 얼마나 노력합니까?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The saying is trustworthy, for: If we have died with him, we will also live with him.

디모데후서 2 Timothy 2:11

 

바울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길을 걸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살려주신 생명이며, 그리스도 없이는 죽을 수밖에 없음을 알았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I have been crucified with Christ. It is no longer I who die, but Christ who lives in me. And the life I now live in the flesh I live by faith in the Son of God, who loved me and gave himself for me.

갈라디아서 Galatians 2:20

 

죽어야 삽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많은 열매를 맺듯이.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육신이 죽고, 자아가 죽고, 교만이 죽고, 안일함이 죽고, 모든 죄의 욕심이 죽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죽어야지, 주님 밖에서 죽으면 그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 죽음은 헛된 것입니다. 천국 가는 죽음이 아닙니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I protest, brothers, by my pride in you, which I have in Christ Jesus our Lord, I die every day!

고린도전서 1 Corinthians 15:31

 

왜 날마다 죽어야 합니까?

 

내가 내 몸을 쳐 복종케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But I discipline my body and keep it under control, lest after preaching to others I myself should be disqualified.

고린도전서 1 Corinthians 9:27

 

후파 부족, 북아메리카 원주민 쌔시 애보트(Sasse Abott) 자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바로 그 다음 날이었습니다.

 

지난 429일 월요일 오전, 우리는 그의 집을 방문해서 영접기도를 인도했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그녀는 뇌암을 앓다가 죽었습니다. 들으니, 뇌암이 그토록 고통스럽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영접한 바로 그 다음 날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천국에 대한 소망을 품은 후, 평안 중에 주님께서 부르시는 그대로 응답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이후 나는 531일로 예정되어 있는 그녀의 추모예배에 참석해서 유가족과 참석한 모든 후파 부족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가족에게 의향을 물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그저께 연락이 왔습니다. 목사가 참석해서 말씀 전할 기회를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가 없으면 추모예배가 아니고 추모식이겠습니다.

 

그 추모식을 마을 소방서 회의실에서 연다는데, 분명히 인디안 전통 방식으로 진행할 것입니다. 식구들이 쌔시가 주님을 영접하던 현장에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쌔시가 소천하기 전에 식구들에게, 나의 장례를 목사님을 청해서 장례예배로 해 달라, 부탁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 모든 것이 그녀와 그 식구들에게는 생소한 일이었을 줄 압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선 생각이, 추모예배에서 복음을 전파하면, 많은 사람들이 마음이 열려있는 상태에서 얼마나 복음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했습니다. 그런데 거절당했습니다. 어쩌면 이번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원주민 선교가 훨씬 더 어렵고 고통스러운 길임을 가르쳐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쉽고 간단한 길이 아니라, 보다 힘들고 험한 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심 같았습니다.

 

이러므로 오늘 나는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한 생명이라도 더 구원해야 한다는 대단히 막중한 사명감에 충만합니다.

 

그런데, 복음 전도자의 가장 중요한 태도는 좁은 길걸으며,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라!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분을 다하라.

AS for you, always be sober-minded, endure suffering, do the work of an evangelist, fulfill your ministry.

고린도후서 2 Corinthians 4:5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길은 고난의 길입니다. 고난이 닥쳐옵니까? 고난을 선택하십시오. “낙법이라는 기술이 있습니다. 떨어지게 될 때 오히려 적극 뛰어내림으로써 안전을 확보하는 방법입니다. 죽고자 하는 자가 사는 법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죽음을 피하는 자도 죽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음을 선택하는 자는 생명을 얻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날마다 죽노라,” 선포하던 바울이 영원한 생명에 들어간 것을 주목하십시오.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기억하십시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Strive to enter through the narrow door!

누가복음 13:24a

 

이 명령을 다른 누가 아니라 우리 주님께서 주신 것을 생각하십시오. 이 사실은 주님께서 도와주시겠다는 약속이 여기 들어 있음을 말합니다. 우리가 손을 내밀어 요청하기만 하면! 주님께서 우리를 떠나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천국에 들어갑니다. 누구도 스스로 능력으로 갈 수가 없습니다. 구원 얻는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달리 아무도 없습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And there is salvation in no one else, for there is no other name under heaven given among men.

사도행전 4:12

 

우리는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에게 경고하신 그 말씀처럼. 시험에 들지 않도록!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주님의 명령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And forgive us our debts, as we also have forgiven our debtors. And lead us not into temptation but deliver us from evil.

마태복음 Matthew 6:12-13a

 

우리가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기도를 가르쳐주신 바로 그대로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 없이는 누구도 시험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시험하는 자들 틈에 살던 다니엘이 끝까지 시험에 들지 않은 것은 그가 기도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를 의지하지 마십시오. 그러다가 넘어집니다. 조심하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붙들어주실 것입니다. 아멘.

 

기도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 은혜와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을 구원해 주신 은혜에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십자가 보혈로 씻으사 구원하신 주님의 자녀들이 시험에 들지 않게 하옵소서. 처음 된 자가 나중 되는 일이 결코 생기지 않도록 성령님께서 친히 강권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