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721

금문교회 주일예배

조은석 목사

 

의롭다 하신 기도 Prayer with Justification

누가복음 18:9-14

 

9.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어제 토요일은 새벽예배 마치고 교회 홀로 남아 설교문도 마무리 하다가, 뜰을 거닐었습니다. 아름다운 햇살에 무궁화 꽃이 피어난 것이 아름다웠습니다.

 

홈페이지 사진:

 

빛은 실로 아름다운 것이라. 눈으로 해를 보는 것이 즐거운 일이로다.

Light is sweet, and it is pleasant for the eyes to see the sun.

전도서 Ecclesiastes 11:7

 

나는 여러분이 구원의 즐거움이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More than that, we also rejoice in God through our Lord Jesus Christ, through whom we have now received reconciliation.

로마서 Romans 5:11

 

기도를 어떻게 할까요? 지난 주일은 주님께서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과부가 불의한 재판장에게 매일 가서 간청했던 경우를 들어 가르쳐 주셨습니다. 불의한 재판장이 과부의 간청을 들었다면,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자녀들의 기도를 왜 듣지 않으실까, 그런 말씀이었습니다.

 

오늘은 스스로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이들은 바리새인들입니다. 이런 자의 기도는 아무리 해도 응답이 없습니다. 그를 의롭다 하시지 않습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기도는 따로 있습니다.

 

무릇 모든 기도의 응답은 의롭다 하심이 그 핵심입니다. 다른 어떤 물질을 구함이 아닙니다. 그런 것은 필요한 만큼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문제는 생명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죄 사함 받고 구원 받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이것처럼 분명한 것이 또 있습니까?

 

그의 생명을 구함이라면, 그는 모든 죄를 사함 받고,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써 너는 이제 의롭다!” 인정받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기도를 드릴 수 있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다음은 다윗의 기도입니다.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Blessed is the one whose transgression is forgiven, whose sin is covered. Blessed is the man against whom the Lord counts no iniquity, and in whose spirit is no deceit.

시편 Psalm 32:1-2

 

기도하여 그의 죄가 사함 받았다면, 그는 기도의 응답을 받은 것입니다. 사실 모든 기도의 초점은 기도자의 구원입니다.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I acknowledged my sin to you, and I did not cover my iniquity; I said, “I will confess my transgressions to the Lord.” And you forgave the iniquity of my sin.

시편 Psalm 32:5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하나는 바리새인, 하나는 세리였습니다.

 

바리새인의 기도를 들어 보십시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The Pharisee stood by himself and prayed: God, I thank you that I am not like other people--robbers, evildoers, adulterers--or even like this tax collector.

누가복음 Luke 18:11

 

얼마나 교만한 기도입니까? 바리새인의 자세는 서서였습니다. 그는 무릎 꿇고 엎드리는 대신 섰습니다. 엎드릴만한 죄가 없다는 태도입니다. 그리고 따로기도했습니다. 세리와 함께 기도하는 것이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기도에서 구원 받아야 할 긴박성이 전혀 없습니다. 자기 자랑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게 무슨 기도입니까? 기도는 예배에서처럼 영적인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자랑이라니! 무릇 자랑하는 자는 자기변화를 전혀 바라지 않습니다. 겸손한 자가 자기변화를 소망합니다.

 

그는 남들과 다른 것을 강조했습니다. 토색(강탈), 불의, 간음 등을 행하는 자들로부터 자신을 구분했습니다. 사실 사람이 이런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런 자들과 다르다고 스스로 구별하는 행위는 바르지 않습니다. 그들을 가르쳐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할 사명을 저버린 것입니다. 게다가, “이 세리와도 같지 않음을 감사드린다고 했습니다. 함께 성전에서 기도하는 사람을 두고 자신을 구별했습니다. 달리 말하면 그 사람을 차별한 것입니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I fast twice a week and give a tenth of all I get.

누가복음 Luke 18:12

 

그 이유는 이랬습니다. 그는 일주일에 두 차례 금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소득에서 십일조를 드린 것입니다.

 

일주일에 두 차례 금식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일이 아닙니다. 예언자 이사야가 이런 류의 사람들에게 경고한 일이 있습니다.

 

우리가 금식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보지 아니하시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알아주지 아니하시나이까?

Why have we fasted, they say, and you have not seen it? Why have we humbled ourselves, and you have not noticed?

이사야 Isaiah 58:3a

 

금식하면서 하나님께서 알아주기를 바라는 자들이 이사야 시대에도 있었습니다.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논쟁하며 다투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너희가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의 목소리를 상달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이것이 어찌 내가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자기의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Your fasting ends in quarreling and strife, and in striking each other with wicked fists. You cannot fast as you do today end expect your voice to be heard on high. Is this the kind of fast I have chosen, only a day for people to humble themselves?

이사야 Isaiah 58:4-5a

 

금식은 스스로 자기의 마음을 괴롭게 하는 목적입니다. 겸손히 하나님 앞에 내려오는 자세입니다. 그런데 금심 궁에 논쟁하고 다투고 악한 주먹질입니다. 이건 옳지 않습니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Is not this the kind of fasting I have chosen: to loose the chains of injustice and untie the cords of the yoke, to set the oppressed free, and break every yoke? Is it not to share your food with the hungry and to provide the poor wanderer with shelter--when you see the naked, to clothe them, and not to turn away from your own flesh and blood?

이사야 Isaiah 58:6-7

 

금식하는 자의 태도는 하나님 앞에 겸손하고,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돌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바리새인은 하나님 앞에 교만하며, 세리와 같은 자들을 멀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금식으로써 자기를 낮추며 겸손하게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금식으로써 자기의 교만을 더욱 더 키우는 것입니다.

 

소득에서 십일조를 드린 것이 어째서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의가 됩니까? 하나님께 드리는 십일조는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을 자기의 의로 내세우는 이런 행세는 무엇입니까?

 

이에 반하여 세리는 하늘로 고개를 들지도 못했습니다.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But the tax collector stood at a distance. he would not even look up to heaven, but beat his breast and said, "God, have mercy on me, a sinner."

누가복음 Luke 18:13

 

이 세리의 자세를 보십시오. 그는 멀리 섰습니다. 스스로 죄인으로 아는 까닭입니다. 그리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볼 자격이 없다는 깨달음입니다. 다만 가슴을 쳤습니다. 회개하는 진정한 모습입니다.

 

그의 기도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는 불쌍한 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주님께 고백합니다. 그리고 자기는 죄인으로서, 그 죄를 사함 받아야 하는 자라고 고백합니다.

 

이 두 사람의 차이를 분명하게 보이신 주님께서, 이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I tell you that this man, rather than the other, went home justified before God.

누가복음 Luke 18:14a

 

여기서 기도의 목적이 드러납니다. 바리새인은 기도로써 자기를 높이려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기 이 세리는 기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 죄인이 의롭다 하심을 얻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바리새인이 아니라!

 

의롭다 하심이란, “칭의입니다. 이것은 로마서 5장의 아직 연약한 자, “아직 죄인일 때,” 그리고 아직 하나님과 원수 된 상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써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확증해 주신 바로 그 칭의입니다. 의롭지 않은 자를 의롭다고 인정해 주심입니다. 스스로는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보혈로써 씻어 주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신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의롭게 되는 것은 스스로 낮추어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구할 때입니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For all those who exalt themselves will be humbled, and those who humble themselves will be exalted.

누가복음 Luke 18:14b

 

바리새인은 스스로 자기를 높였습니다. 그는 낮아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낮추신 것입니다. 그의 모든 죄는 하나도 용서 받지 못했습니다.

 

세리는 스스로를 낮추었습니다. 그랬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의롭다고 인정해 주셨습니다. 죄인을 용서하시고 의인의 반열에 올려 세워 주신 것입니다.

 

잠시 구약의 한 인물을 돌아봅니다. 사울이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을 때입니다. 사무엘상 13장에서 사울은 블레셋과 전투를 앞두고 제사장 사무엘을 기다리지 못하고 스스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사울은 사무엘이 정한 기한대로 이레 동안을 기다렸으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 사울이 이르되, “번제와 화목제룰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He waited seven days, the time set by Samuel; but Samuel did not come to Gilgal, and Saul's men began to scatter. So he said, "Bring me the burnt offering and the fellowship offering.

사무엘상 1 Samuel 13:8-9

 

상황이 아무리 나쁘게 전개되어도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순종하는 것이 옳았습니다. 제사를 무슨 행사를 치르듯이, 그렇게 처리하고 만다면, 거기 무슨 정성이 들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런 제사를 받으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제사장 사무엘이 와서 드리는 제사를 기다리셨습니다. 그런데 상황이 나쁘게 전개되고, 급박하다고 해서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스스로 제사를 드린다면,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으시겠습니까?

 

사무엘상 15장에서 사울은 아말렉을 쳐서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했습니다.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의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하기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하찮은 것은 진멸하니라.

But Saul and the army spared Agag and the best of the sheep and cattle, the fat calves and lambs--everything that was good. These were unwilling to destroy completely, but everything that is despised and weak they totally destroyed.

사무엘상 1 Samuel 15:9

 

자기가 좋아하는 것은 가지고, 버릴만한 것은 말씀 순종하는 것처럼 실시했습니다. 이런 태도는 하나님을 조롱하는 데서 다르지 않습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 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Samuel said, "Although you were once small in your own eyes, did you not become the head of the tribes of Israel?

사무엘상 1 Samuel 15:17a

 

하나님께서 사울을 들어 왕을 삼으신 것은, 그가 겸손했을 때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가 교만했습니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지 않습니다. 그 때는 하나님께서 버리실 때입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But Samuel replied: Does the Lord delight in burnt offerings and sacrifices as much as in obeying the Lord? To obey is better than sacrifice, and to heed is better than the fat of rams.

사무엘상 1 Samuel 15:22

 

사무엘은 사울이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는 행위에 집중하고, 그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함이 없는 것을 지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형식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것을 지적했습니다.

 

금식하고 십일조를 드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이 낫습니다. 지금 바리새인은 행위로 하나님의 명령을 듣는 것처럼 하나,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의 예배는 어떻습니까?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보이는 시위가 아닙니다. 예배는 콘서트가 아닙니다.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입니다.

 

만일 기도를 이 바리새인처럼 사람들 들으라고 따로 서서 말한다면, 사람들은 듣고 감동하고 그를 칭찬할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결코 듣지 않으십니다.

 

세리가 드리는 기도가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신 기도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죄인인 것을 깨닫고 자기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를 간구 드렸습니다. 내세울 것도 없고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자기 가슴을 치며 회개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누구신지 배웁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 그것은 영생의 길입니다. 그 길은 성령님의 감화감동으로야 가능합니다. 성령감화 아니고는 누구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경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어떤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신가를 배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리새인의 감언이설에 속지 않으십니다. 진심으로 기도하며 회개하는 자를 들으십니다.

 

아울러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우리가 누구인지를 깨닫습니다. 이런 점에서 성경은 맑고 깨끗한 거울과도 같습니다. 오늘 우리 속에 이 교만한 바리새인 같은 모습은 없습니까? 돌이켜 회개하고 세리처럼 겸손하게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세상은 악합니다. 교회가 핍박을 받습니다. 교회 안팎에 악한 자의 유혹과 시험이 날로 그 강도를 높여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전히 하나님 앞에 선 개인입니다. 바리새인처럼 교만한 자와 세리처럼 겸손한 자, 이 둘은 구분되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둘을 구분하여 주목해 보셨습니다. 그리고 누가 하나님 앞에 의롭다고 인정받고 집으로 돌아갔는지 주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성도가 말씀을 따라 경건하게 살아가는 것은 오히려 당연합니다. 그런 경건을 자기 높임의 방도로 삼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기도 많이 하는 것, 금식하고 십일조 드리는 것, 그 모든 것은 자랑거리가 아닙니다. 자기를 높여서 교만하게 되는 것은 결국 그의 모든 신앙생활이 거짓이라는 반증에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죄인입니다.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부모-자식 관계를 놓고 보아도 그렇습니다. 효자는 자기가 못한 것을 기억하고 부끄러워합니다. 불효자는 자기가 한 것을 기억하고 그것을 내세웁니다.

 

부부지간의 사랑도 그렇습니다. 참 사랑의 가정은 자기가 못해 준 것을 기억하고 슬퍼합니다. 그러나 사랑이 식어버린 가정은 상대에게 해 준 것을 말합니다.

 

결론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배는 죄인들이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사입니다. 우리들은 제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죽어야 합니다.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죄의 값으로 죽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써 우리의 육신의 모든 죄된 것이 하나님의 제단 위에서 죽는 것입니다. 죽어야 살기 때문입니다.

 

모든 거룩한 교회 성도의 신앙생활은 이와 같습니다. 자기를 낮추어 하나님의 전에 엎드립니다. 헌신으로 드리는 신앙행위 중 어떤 것도 내세우지 않습니다. 그 대신 자기가 불순종한 것, 못 해 드린 것, 교만한 것, 그것들을 기억하며 가슴을 치고 회개합니다. 여기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을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자기를 의롭다고 여기고 남을 멸시하는 자. 그가 누구입니까? 성경에서 그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오늘 그는 누구입니까?

 

따로 서서 기도하는 자, 그가 누구입니까? 토색(강탈), 불의, 간음을 행하는 자들과 다르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그런 일을 남 몰래 저지르고 있는 자입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는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둑질 하지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

You, then, who teach others, do you not teach yourself? You who preach against stealing, do you steal?

로마서 Romans 2:21

 

이 교만한 바리새인에게서 우리 자신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속에 바리새인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오늘 진심으로 가슴을 치며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저 세리처럼 하나님의 긍휼하심, 하나님의 불쌍히 여기심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낮아져야 높아집니다. 겸손해야 높임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God opposes the proud but shows favor to the humble. Humble yourselves, therefore, under God's hand, that he may lift you up in due time.

베드로전서 1 Peter 5:5b-6

 

높아지려고 겸손을 가장합니까? 그건 아닙니다. 여기서 높아짐칭의를 말씀하심입니다. 죄인을 의롭다고 인정해 주심. 아직 원수 된 자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 아직 연약한 자를 붙들어 주심.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심.

 

죄를 슬퍼하며, 하나님께 나아가, 말씀을 순종하며, 겸손하게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로써 우리를 높이실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 저 천국에서. 아멘.

 

 

기도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저희들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하나님, 저희들이 세리처럼 진심으로 겸손한 기도를 드릴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죄를 용서 받고 영생의 구원 얻기를 구합니다. 주여, 저희 기도를 들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