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811

금문교회 주일예배

조은석 목사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누가복음 18:35-43

 

35. 여리고에 가까이 가셨을 때에 한 맹인이 길가에 앉아 구걸하다가

36. 무리가 지나감을 듣고, “이 무슨 일이냐?”고 물은대,

37. 그들이 나사렛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하니

38. 맹인이 외쳐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39. 앞서 가는 자들이 그를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40.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명하여, “데려오라!” 하셨더니, 그가 가까이 오매, 물어 이르되,

41.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42. 예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매

43. 곧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따르니, 백성이 다 이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니라.

 


지난 목요일 88, 오후 2:00, 우리교회 아프리카 르완다 출신 아폴리네리 목사가 UCSF에서 실시한 1년 풀타임 과정 CPE (Clinical Pastoral Education) 프로그램을 마치고 졸업했습니다.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귀한 일이어서 성도 여러분이 참석, 축복하고 축하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콜롬비아에서 신학생들을 초청, 미국의 새로운 교육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과 교회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새로운 눈을 뜨게 하는 것입니다. 물론 미국 사회에 부정적인 것도 많이 침투되어 있으나, 말씀의 은혜와 그 빛 안에서 정결한 것만 골라내어 배우게 하는 교육선교는 소중한 사역입니다


지난 주 설교에서 재물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아내, 부모, 형제, 자식들까지 버린 자가 현세에서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얻는다는 주님의 말씀을 배웠습니다.

 

오늘은 맹인 이야기입니다. 그는 모든 것을 다 잃었고, 건강까지 잃었습니다. 그는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무시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얼마나 간절하게 주님께 부르짖었는지, 오늘 본문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꾸짖었습니다. 세상에 누가 거지 신분에 눈까지 먼 그를 존경하겠습니까? 반말하고 욕까지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더욱 크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Jesus, Son of David, have mercy on me!

누가복음 Luke 18:38, 39

 

욥은 다 잃고 건강까지 잃었습니다. 그의 기도는 깊었습니다. 이 사람 맹인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의 기도가 더욱 더 간절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 시력상실 같은 고난이 오히려 우리를 깊은 기도의 길로 인도합니다. 그렇다면 고난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은혜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닥친 약점이 무엇입니까? 견디고 살아가야 할 문제가 무엇입니까? 다른 사람에게 비교해서 내게 결핍된 것은 어떤 것입니까?

 

많은 질병이 치유 대신 끌어안고 살아가야 할 인생의 일부분이 되었습니다. 이럴 경우 이거나 으로 여기는 대신 깊은 기도의 길로 인도하는 도구로 여기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편리함이 극에 달한 세상입니다. 최근 20년 전부터 디지털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디지털화 된 생활방식이 특징입니다. 무엇보다 스마트폰이 그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성경도 디지털로 읽습니다. 무거운 성경가방이 없어지고 있습니다. 이 편리함이 오늘 우리의 영적인 삶을 해치는 면은 없을까요?

 

아날로그의 불편함이 그립습니다. 내 세대는 삶의 대부분을 아날로그로 살았습니다.

 

오늘 한 맹인이 길가에 앉아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과 함께 걸어가는 무리와 대비되는 사람입니다. 여리고를 향해서 예수님과 함께 걸어가는 사람들은 기회가 많았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가 있고, 질문을 드릴 수도 있었습니다. 주님께 부탁드리는 모든 것을 기도라고 할 때, 그들은 기도가 손쉬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맹인과 비교할 때 간절함이 없었습니다.

 

눈이 안 보인다는 것은 디지털화 된 세상에서 치명적입니다. 시각효과가 온 세상을 누비는 문화입니다. 그런데 눈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은!

 

이 맹인은 소리를 들었습니다. “무리가 지나감입니다. 수많은 발걸음 소리였을 수도 있고, 땅이 울리는 느낌이었을 수가 있습니다. 서로 말하는 소리였을 수도 있습니다. 맹인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이 무슨 일이냐?

What this meant?

 

그는 모든 신경을 곤두세웠습니다. 어째서 그랬을까요? 그는 구도자(seeker)였습니다. 현재의 삶에서 만족을 느끼는 대신, 끊임없는 열망이 솟아올랐습니다. 그는 보기를 원했습니다!

 

누군가 그에게 올 줄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와서 그의 눈을 뜨게 할 자가 있을 것입니다. 그는 길에서 구걸하고 있었지만, 그는 또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그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끈질긴 기다림의 열매입니다. 주님께서는 이것을 그의 믿음으로 보셨습니다.

 

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Recover your sight! Your faith has made you well!

누가복음 Luke 18:42b

 

주님께서 그에게 명령하셨습니다. 보라! 그리고 그의 믿음이 그를 구원했다고 선포하셨습니다. 그에게 있는 어떤 것이 그를 구원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 찾아오셔서 믿음을 주신 예수님께서 그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곧 보게 되었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그리고 그가 한 일은 두 가지입니다. 1.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2. 그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러자 백성들 중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1. 모든 백성이 다 이를 보았습니다. 2. 그들이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이로써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이 맹인은 그가 눈을 뜨고자 한 소원이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뵙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며,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려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거룩한 목적을 품은 이 사람은 과연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사람의 눈을 뜨게 하심으로써 그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게 하셨고, 그가 예수님을 따를 수 있게 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그 맹인을 모든 백성 앞에서 고치심으로써 1. 모든 백성이 다 이를 보게 하셨고, 2. 그들이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깊이 살펴야 합니다.

이 맹인이 눈을 뜬 사건이 오늘 우리와 상관이 없다면 성경에 기록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이 사건은 오늘 여기 살고 있는 우리와 직접 관계가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 모두는 이 맹인처럼 눈을 뜨고 보고 있으나, 사실은 눈이 먼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9장은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예수님께서 고치신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구의 죄로 인함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It was not that this man sinned, or his parents, but that the works of God might be displayed in him. We must work the works of him who sent me while it is day; night is coming, when no one can work. As long as I am in the world, I am the light of the world.

요한복음 John 9:3-5

 

예수님께서 그를 고치셨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바리새인들에게서 쫓겨났습니다. 이후에 예수님께서 만나셨습니다. 그리고 물으셨습니다.

 

네가 인자를 믿느냐?

Do you believe in the Son of Man?

요한복음 John 9:35d

 

보십시오. 주님께서 그를 고치신 것은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에 이르게 하심이 그 목적이었습니다.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이르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

He answered, “And who is he, sir, that I may believe in him?” Jesus said to him, “You have seen him, and it is he who is speaking to you.” He said, “Lord, I believe,” and he worshiped him.

요한복음 John 9:36-38

이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는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Jesus said, “For judgment I came into this world, that those who do not see may see, and those who see may become blind.”

요한복음 John 9:39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빛은 어두운 세상에 심판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심으로써 저들의 모든 죄가 드러났습니다.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이르되, “우리도 맹인인가?”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Some of the Pharisees near him heard these things, and said to him, “Are we also blind?” Jesus said to them, “If you were blind, you would have no guilt; but now you say, ‘We see,’ your guilt remains.”

요한복음 John 9:40-41

 

오늘 눈 먼 자를 고치신 주님께서 똑같은 메시지를 주십니다. 우리가 이 맹인과 다르다고, 나는 본다고 하지만, 과연 내가 주님을 만나 뵈었는지,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지, 그리고 주님을 따르는지 심각하게 돌아보아야 합니다.

 

만일 내가 본다고 하면서도 주님을 뵙지 못하거나, 그 보게 된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지 않거나, 그리고 그 밝게 뜬 눈을 가지고 주님을 따르지 않는다면, 나는 그저 맹인에 불과한 것입니다.

 

오늘 이 맹인이 눈을 뜨고자 한 소원을 품은 것은 자기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런 점에서 그는 자기의 소원을 품은 그것 때문에, 그리고 사람들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소리 높여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를 불러 구원을 요청한 것입니다. 그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육신의 눈은 떴지만 영혼의 눈은 못 뜬 사람이 많습니다. 반대로 육신의 눈은 멀었지만 영혼의 눈을 뜬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시각 장애를 앓고 있으면서 아직도 밝은 빛을 보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무시하고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Your word is a lamp to my feet, and light to my path.

시편 Psalm 119:105

 

주님의 말씀이 없다면 이 세상 모든 사람은 다 맹인입니다. 그런 점에서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물으시는 주님께서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대답하면, 주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성경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이 어둔 세상에서 빛을 발견합니다. 넘어지지 않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빛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In him was life, and the life was the light of men. The light sines in the darkness, and the darkness has not overcome it.

요한복음 John 1:4-5

 

예수님께서는 생명의 빛이십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어둠이 그 빛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아직도 어둠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눈 먼 자를 고쳐주셨으나, 스스로 눈 떴다고 주장하는 눈 먼 자들이 많았습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The true light, which gives light to everyone, was coming into the world. He was in the world, and the world was made through him, yet the world did not know him. He came to his own, and his own people did not receive him.

요한복음 John 1:9-11

 

보십시오. 주님을 누가 영접했습니까? 동방에서 온 사람들, 들판에서 자던 목자들, 그들이 전부 아니었습니까? 주님께서 사역하실 때 누가 따뜻하게 영접했습니까? 병자들, 죄인들, 창녀들이 아니었습니까?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But to all who did receive him, who believed in his name, he gave the right to become children of God, who were born, not of blood nor of the will of the flesh nor of the will of man, but of God.

요한복음 John 1:12-13

 

보십시오. 이 맹인을! 그는 일평생 길에서 구걸하면서 살았습니다. 사람들에게서 동정을 구했고, 푼돈을 얻었습니다. 멸시와 천대도 함께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맹인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분께서는 사람들이 묻지 않던 질문을 하셨습니다.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참 사랑 아니면 물을 수 없는 질문이었습니다. 그의 눈을 떠서 그가 볼 수 있게 하실 능력이 없으면 던질 수 없는 질문이었습니다. 그의 입을 열어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고, 그의 발로써 주님을 따르게 하실 수 없는 분이시라면 결코 낼 수 없는 질문이었습니다.

 

그 사랑의 예수님께서 그 맹인을 만나주셨습니다.

오늘 그 예수님께서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그리고 물으십니다.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What do you want me to do for you?

누가복음 Luke 18:41a

 

답은 이미 나와 있습니다. 성경에서 오늘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대답은 이렇습니다.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Lord, let me recover my sight!

누가복음 John 18:41b

 

들을 수도 없고 말도 하지 못하고 보지도 못했던 헬렌 켈러(Helen Adams Keller, 1880-1968)는 그의 스승 앤 설리반의 도움을 받아 공부를 쉬지 않았습니다. 1900년에 하바드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녀는 3일 동안만 볼 수 있다면”(Three Days to See)이라는 수필을 썼습니다. (blog.naver.come. 2019810)

 

첫째 날에는 친절과 겸손과 우정으로 내 삶을 가치있게 만들어준 사람들을 보고 싶다. 손으로 만져보는 것이 아니라 친구들의 내면적인 천성까지도 몇시간이고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내 마음 속 깊이 간직하겠다. 오후가 되면 오랫동안 숲 속을 산책하면서 바람에 나풀거리는 아름다운 나뭇잎과 들꽃들, 그리고 석양에 빛나는 노을을 보고싶다. 그리고 감사의 기도를 하고 싶다.

 

둘째 날은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밤이 낮으로 바뀌는 가슴 떨리는 기적을 보고 싶다.

 

마지막 셋째 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일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기 위해 아침 일찍 큰 길에 나가 오가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을 보고 싶다. 그리고 나서 오페라 하우스와 영화관에 가서 공연들을 보고 싶다. 그리고 어느덧 저녁이 되면 네온사인 반짝이는 쇼윈도에 진열되어 있는 아름다운 물건들을 보면서 집으로 돌아와 나를 이 사흘 동안이라도 볼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영원히 암흑의 세계로 돌아가겠다.

 

여러분 어떠십니까? 3일이 아니라 이처럼 오래,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밝은 세상을 눈으로 보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려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맹인처럼 주님께서 우리의 눈을 뜨게 해 주신 은혜를 하나님께 찬양 드리며, 다른 데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는 것으로 우리 남은 인생을 살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우리를 통하여 수많은 백성들이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도록 전도인의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눈을 뜨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영의 눈을 뜨고, 주님을 뵙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원은 믿음이며, 이 믿음이 우리를 구원할 것입니다. 이 믿음으로 기뻐하시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이 사망의 몸에서, 이 죽음의 세상에서 구원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도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 감사와 찬송을 올려드립니다. 저희들 죄인들을 찾아오셔서, 저희에게 믿음을 심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영광의 주님을 뵐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저희 인생은 이처럼 하나님께 영광 돌려드리며, 우리를 살리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성도의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