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강견실 장로 천국귀향예배 설교집

Sermons for Home-Coming Services for Elder K. Connie Kang

 

조은석 목사

Rev Eun Suk Cho

 

 

 

 

 

 

 

 

 

 

 

 

 

 

 

 

 

 

 

 

 

 

 

 

 

 

 

 

 

 

 

 

 

 

 

 

 

 

 

 

 

 

 

 

 

2019830, 토요일, 오후 7:00

추모예배 Memorial Service

조은석 목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Work Out Your Own Salvation with Fear and Trembling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Therefore, my beloved, as you have always obeyed, so now, not only as in my presence but much more in my absence,

 

복종하며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work out your own salvation with fear and trembling.

빌립보서 Philippians 2:12

 

 

사도바울은 로마 감옥에 수감된 중에 네 편의 편지를 기록했습니다. 세 통은 교회에, 한 통은 개인에게 썼습니다. 그 개인은 빌레몬으로서, 바울은 해를 끼치고 달아난 노예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형제로 받아 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세 교회 중에 하나가 빌립보교회입니다. 오늘 우리는 금문교회에 모였습니다. 강견실 장로님이 사랑했던 교회입니다. 신학교 공부와 임상목회훈련, 그리고 목사고시 과정을 거치면서 일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목회지로 금문교회를 두고 지원했고, 받아들여진 교회입니다. 빌립보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오늘 금문교회와 여러분 모두를 읽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바울이 유럽 최초의 교회 빌립보교회를 개척하고 목회했습니다. 그가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건너갈 때 성령의 지시를 받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충만 아니면 어떤 사역도 가능하지 않습니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슴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And they went through the region of Phrygia and Galatia, having been forbidden by the Holy Spirit to speak the word in Asia. And when they had come up to Mysia, they attempted to go into Bithynia, but the Spirit of Jesus did not allow them.

사도행전 Acts 6:6-7

 

갈 길을 막으시는 분도 하나님의 영, 곧 성령님이십니다.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And when Paul had seen the vision, immediately we sought to go oun into Macedonia, concluding that God had called us to preach the gospel to them.

사도행전 Acts 6:10

 

갈 길을 보여주시고 그 사명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의 영, 곧 성령님이십니다.

 

지금은 그가 바다 건너편 로마에, 그것도 감옥에 있습니다. 빌립보교회는 바울의 부재중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말합니다. “나 있을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바울이 그들과 함께 있거나 없거나 간에! 그러니까 항상! “무조건!” 무엇을 위한 무조건입니까?

 

복종하며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Work out your own salvation with fear and trembling.

빌립보서 2:12b

 

바울은 여기서 없는 구원을 스스로 성취하라고 권면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써 이루어 주신 구원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생각합니다. 구원은 기쁜 일입니다.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주신 선물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구원의 삶에 이런 두려움과 떨림이 있을까요? 불안과 역설. 이런 긴장을 주는 영역에서 우리가 구원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어떻게요?

 

두렵고 떨림. 이것은 키에르케고르(S. Kierkegaard, 1813-1855)가 아브라함의 믿음을 표현할 때 사용한 두 단어입니다. 그는 <공포와 전율>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그날부터 아브라함은 노인이 되고 말았다. 그는 하나님이 자기에게 그런 무서운 일을 명령한 것을 잊을 수가 없었다. 이삭은 전에나 마찬가지로 잘 성장해 갔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눈은 어두워졌다. 이제는 더 이상 기쁨을 지닐 수가 없었다.

<공포와 전율>. 손재준 역. 삼성판 세계사상전집 15, 1976. P. 21.

From that day henceforth, Abraham was old; he could not forget that God had ordered to do this. Isaac flourished as before, but Abraham's eyes were darkened, and he saw joy no more.

Fear and Trembling/Repetition, 1983:12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심으로써 이미 구원의 은혜를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 그의 삶은 늘 하나님 앞에서 공포와 전율이었습니다. 이 영적 긴장상태에서 사람은 우상숭배를 버리고, 살아계신 두려우신 하나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안 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르심 받았던 것입니다!

 

오늘 이 공포와 전율을 사도바울이 경험하고, 그것을 빌립보교회에 보내는 편지에 쓰고 있는 것입니다. 죽음이 언제나 덮쳐올 수 있는 때, 로마 감옥에서!

 

구원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곧 구원 받은 자가 성화를 위해 힘쓰는 것입니다.

 

어떤 자세가 요구됩니까? 두렵고 떨림으로! 왜 두려워해야 하고 왜 떨어야 합니까?

 

자칫하면 구원을 잃어버릴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세공일 하는 사람이 그 세밀한 일을 위해 고도의 돋보기를 쓰고 초긴장 상태로 일하지요. 심리적으로 대단히 불안한 사람을 도와주기 위해 상담하는 사람은 자칫 그가 잘못된 생각을 할까 싶어 매 순간 최선을 다합니다.

 

자기 스스로의 구원을 위해 이처럼 최선을 다하는 것은, 사람이 스스로 구원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성경은 자력구원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보십시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은혜입니다. 그런데 그 구원을 잃어버릴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날마다 죽는다고 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I protest, brothers, by my pride in you, which I have in Christ Jesus our Lord, I die every day!

고린도전서 1 Corinthians 15:31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 하는 본문에서 날마다 죽음을 말하는 뜻은 무엇입니까?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For if I preach the gospel, that gives me no ground for boasting. For necessity is laid upon me. Woe to me if I do not preach the gospel!

고린도전서 1 Corinthians 9:16

 

복음 전도자의 길은 길에서 쉬지 않습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Every athlete exercise self-control in all things. They do it to receive a perishable wreath, but we an imperishable.

고린도전서 1 Corinthians 9:25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 마지막에 절제가 있습니다. 성령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모든 일에 절제합니다. 여기 이 삶에 공포와 전율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며

So I do not run aimlessly; I do not box as one beating the air.

고린도전서 1 Corinthians 9:26

 

마라톤 선수가 목표를 상실하거나, 권투 선수가 상대방을 파악하지 못하고 주먹질 한다면 그 모든 수고가 헛된 것입니다. 극도로 조심하고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But I discipline my body and keep it under control, lest after preaching to others I myself should be disqualified.

고린도전서 9:27

 

절제를 자기 몸을 쳐서 복종케 함이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철저한 영성입니까? 바울은 오늘 본문 빌립보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계속합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게 하라.

For it is God who works in you, both to will and to work for his good pleasure. Do all things without grumbling or disputing.

빌립보서 Philippians 2:13-14

 

하나님께서 계십니다. 우리의 계획이 아닙니다. 우리의 힘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일에 원망도 시비도 없어야 합니다. 여기 하나님 앞에 선 자로서 떨림이 요구됩니다.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Holding fast to the word of life, so that in the day of Christ I may be proud that I did not run in vain or labor in vain.

빌립보서 Philippians 2:16

 

우리 마음에 기획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주신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힘 주셔서 행하게 하시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것을 날마다 묵상하고, 사실이 그런가, 아닌가, 돌아보아야 합니다. 혹시 이건 내 계획이 아닌가? 혹시 이것은 내 방법이 아닌가?

 

그래야 우리 인생의 달리기를 다 마친 후에 헛것을 위해 헛된 삶을 산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열매 있는 소중한 삶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오늘 우리는 지난 816일 금요일 저녁 7:50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천국으로 귀향한 고 강견실 장로님을 기억하며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께 예배드리기 위해 모였습니다. 북가주 여러 지역은 물론 멀리 로스앤젤레스에서, 훨씬 더 멀리는 브라질에서 이 자리에 찾아오셨습니다.

 

확실히 우리가 오늘 기억하는 고 강견실 장로님은 보통 사람들보다 탁월한 면이 많은 분이셨습니다. 그 이름 그대로 견실했습니다. 정직했고 근면했습니다. 뛰어난 어학실력을 갖추었습니다. 말도 능했지만 글쓰기는 정말 남달랐습니다. 오랫동안 기자생활 하면서 짧은 시간에 정곡을 찌르는 글을 썼습니다. 빈틈없는 면이 특출했지만, 사실은 곁엣 사람을 편안하게 해 주는 유머감각도 있었습니다. 자신은 절약하면서 살았지만 사람의 처지를 불쌍히 여겨 손을 펼쳐 도와주었습니다. 이분을 말할 때는 어디 그런 사람이 다 있어?” 놀라고 말 일이 한 둘이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은 보통사람들에게는 정말 부러운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고 강견실 장로님은 구원 받고 영생의 고향 천국으로 귀향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가 가장 부러워해야 할 내용입니다. 그분의 일생을 사랑하고 아낀 우리 모두는 바로 이 점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강견실 장로님의 목자가 되어 주셔서, 끝내 당신의 영원한 집으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 이틀 전 수요일 814, 강견실 장로님은 두 손을 높이 들고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저의 영혼을 받아주시옵소서!” 소천 세 시간쯤 전, 저와 아내가 자동차로 샌프란시스코에서 로스앤젤레스로 달려가는 도중, 휴게소에서 직접 통화했습니다. “장로님, 하나님께서 장로님을 사랑하시는 줄 아시지요?” “!” 힘이 없었지만 확신에 찬 대답을 내가 들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습니다. 고 강견실 장로님은 이 영생의 길을 우리보다 조금 먼저 가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그분이 생전에 보여준 많은 아름답고 특별한 기억을 나누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멀고 먼 길을 달려오신 여러분, 바쁜 모든 일정을 내려놓고 이 예배에 참석하신 여러분.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는 이 엄청난 길에 우리가 서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모인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고 강견실 장로님께서 그 길을 진지하게 걸어갔고, 드디어 하나님의 품에 안겼습니다. 그분께서 사랑하고 아낀 많은 우리들도 그 길을 가야 합니다.

 

고 강견실 장로님께서 금문교회를 특별히 사랑했습니다. 19962월부터 고 강견실 장로님의 부친 고 강주한 장로님께서 금문교회에 출석했습니다. 다음달 33일 주일예배 때 우리는 3.1절 기념주일예배를 드렸습니다. 강주한 장로님께서 2부예배 사회를 맡으셨습니다. 한반도의 독립운동에 해외지역으로는 샌프란시스코가 특별합니다. 금문교회 원로목사이신 내 부친 조종희 목사님은 항일독립운동가로 평양형무소에서 해방을 맞았습니다. 조종희 목사님과 강주한 장로님이 신앙과 나라사랑을 함께 했습니다.

 

2005년에 샌프란시스코 지역 한인교회연합회와 한인회, 그리고 평통이 연합하여 해방 제60주년 통일 심포지엄을 열었을 때 강견실 장로님은 사회를 맡았습니다. 그 때 그의 모친 최석원 권사를 기리는 통일장학생을 선발, 시상한 바 있습니다. 강견실 장로님 가정이 금문교회와 함께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 놀라운 믿음을 실천했습니다.

 

강견실 장로님은 부모와 동생 임마누엘을 기념하는 강센터를 금문교회에 설치하는데 큰 힘을 쏟았습니다. 그리고 훌러신학교에서 목회학석사 과정을 4년 만에 마치고, 목사고시에 합격했습니다. 금문교회 부목사로 지원했고, 금문교회는 노회와 협의하여 청빙을 완료했습니다.

 

그런데 암이 발견되어 투병으로 들어갔습니다. 1년 반 동안 투병하면서도 금문교회에 가서 사역할 비전을 놓고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금문교회는 매주 주일예배 때마다 함께 기도드리며 강견실 장로님이 금문교회 목사로 사역할 날을 기다렸습니다.

 

콜로라도 강이 있습니다. 바다로 가지 못하는 강입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의 젖줄입니다. 바다에 가지 못한 강 콜로라도를 실패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금문교회로 안수받은 목사로 돌아오지 못한 강견실 장로님은 오히려 수많은 심령들에게 교회가 무엇인지, 목회가 무엇인지, 깊은 생각을 하도록 도전했습니다. 강견실 장로님은 거기서 멈추었으나 그분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심으로써 새로운 사역의 길을 열었습니다. 금문교회 사역은 끊임없이 계속 될 것입니다.

 

사람의 열매는 무엇입니까? 그의 사역이나 그가 세운 어떤 기관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의 열매는 그 자신의 생명입니다. 강견실 장로님은 구원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천국에 갔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가 앞으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분명하게 보여주는 삶입니다. 오늘 우리가 강견실 장로님을 기억하면서 그가 걸어간 그 신앙의 길을 바르게 추적해야 합니다.

 

구원.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구원의 기쁨. 그것은 세상 어떤 즐거움에 비교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회적인 성취를 이룬다면 손뼉을 치면서 축하해 줄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 사람이 구원 받는 일보다 결코 더 귀한 일이 아닙니다. 그 구원의 삶을 끝까지 성령충만하여 살아간 것처럼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은 어디도 없습니다.

 

나는 오늘 이 예배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구원의 기쁨에 충만한 삶으로 살아가다가, 주님 부르시는 그 날 주님 품에 안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사랑했고,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고 강견실 장로님은 이 세상을 하나님의 자녀로 살았습니다. 훌륭한 기자였고, 훌륭한 친구였으며, 훌륭한 이웃이었지만, 오늘 우리가 깊이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주님과 동행하면서 끝내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천국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그에게 승리의 면류관을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 인생길이 그분의 달리기처럼 되어야 합니다. 그는 우리에게 믿음의 선진이 되었습니다. 그를 기억할 때 그가 사랑했던 예수님, 그가 달려갔던 그 길, 그가 끝까지 지켰던 그 믿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정말 소중한 시간을 소중하지 않게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Have this mind among yourselves, which is your in Christ Jesus, who, though he was in the form of God, did not count equality with God a thing to be grasped, but emptied himself, by taking the form of a servant, being born in the likeness of men.

빌립보서 Philippians 2:6-7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And being found in human form, he humbled himself by becoming obedient to the pont of death, even death on a cross.

빌립보서 Philippians 2:8

우리는 지금 고 강견실 장로님에게 집중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분이 일생동안 그리워하고 사랑했던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는 자리입니다. 고 강견실 장로님을 닮자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분이 그토록 닮고 싶어하며, 날마다 그분께 기도를 드렸던 예수 그리스도를 닮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자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가장 낮은 데까지 내려와 우리를 구원하시되,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순종하신 예수님의 그 마음을 본받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달려갈 길에 있는 허다한 증인들을 보십시오. 그 증인들 중에 고 강견실 장로님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증인들 넘어서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Therefore, since we are surrounded by so great a cloud of witnesses, let us also lay aside every weight, and sin which clings so closely, and let us run with endurance the race that is set before us, looking to Jesus, the founder and perfector of our faith, who for the joy that was set before him endured the cross, despising the shame, and is seated at the right hand of the throne of God.

히브리서 Hebrews 12:1-2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감당하신 예수님. 그 사랑의 예수님께 우리의 모든 시선을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강견실 장로님이 그런 길로 영생에까지 이르렀던 바로 그것처럼.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Looking at Jesus, the founder and perfecter of our faith, who for the joy that was set before him endured the cross, despising the shame, and is seated at the right hand of the throne of God.

히브리서 Hebrews 12:2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드립니다. 고 강견실 장로님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조금 더 확실하게 알 수 있게 허락해 주셨습니다. 오늘 당신의 딸의 삶과 그 신앙을 돌아보면서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더 깊이 깨닫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당신의 품에 안으신 고 강견실 장로님처럼, 저희들도 남은 인생의 길을 주님과 동행하다가, 천국에서 주님의 얼굴을 뵙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축도

이제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참되신 사랑과, 성령님의 감화감동 충만하심과 교통하심이, 하나님께서 사랑하신 고 강견실 장로님을 기억하며 예배드리는 유가족들과 당신의 모든 아들과 딸들 머리 위에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계셔서 부활의 소망으로 세상을 이기고 끝내 천국에 이르기를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2019831일 토요일, 오전 10:00

장례예배 Funeral Service

조은석 목사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They Who Wait For the Lord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Why do you say, O Jacob, and speak, O Israel, "My way is hidden from the Lord, and my right is disregarded by my God?" Have you not known? Have you not heard?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The Lord is the everlasting God, the Creator of the ends of the earth.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He does not faint or grow weary; his understanding is unsearchable. He gives power to the faint, and to him who has no might he increases strength.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Even youths shall faint and be weary, and young men shall fall exhausted;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but they who wait for the Lord shall renew their strength; they shall mount up with wings like eagles; they shall run and not be weary; they shall walk and not faint.

이사야 Isaiah 40:27-31

 

 

이사야 선지자는 놀라운 비전을 품었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가 주목할 것은 독수리입니다. 이 독수리는 날개 치며 올라가고 있습니다.

 

이사야가 주목한 것은 하나님의 창조와 하나님의 구원이었습니다. 창조와 구원의 때 하나님께서는 각각 독수리처럼 비행하셨습니다. 그것은 창세기 1장과 신명기 32장에서 모세가 묘사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The Spirit of God was hovering over the face of the waters.

창세기 Genesis 1:2b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를 인도하셨고, 그와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Like an eagle that stirs up its nest, that flutters over its young, spreading out its wings, catching them, bearing them on its pinions, the Lord alone guided him, no foreign god was with him.

신명기 Deuteronomy 32:11-12

 

천지를 창조하실 때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실 때, 모두 하나님께서는 독수리가 날개로 새끼를 업어 나르는 것으로 묘사하셨습니다. 창조 때 인간은 새끼 독수리처럼, 출애굽 때 이스라엘은 새끼 독수리처럼 하나님의 손에서 그 새로운 세계를 경험했습니다. 그 날개로써 하늘을 날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전 1447년경에 모세에게 보여주신 비전이었습니다. 주전 745년 경, 이사야에게 다시 계시하셨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말씀을 주십니다.

 

28절에 땅 끝까지 창조하신 분은,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라고 기록했습니다. “여호와는 출애굽 컨텍스트에서 모세에게 처음 계시하신 창조주하나님이십니다.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구원하십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손에서 지음 받았습니다. 그런데 죄악이 인간에게 들어왔고, 그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ould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요한복음 John 3:16

 

고 강견실 장로님의 부친 고 강주한 장로님께서 평소 사랑하신 말씀이 이사야서입니다. 특히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이제 강견실 장로님이 그 곁에 묻히는 오늘 아침,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렇게 창조하신 인생이 죄악에 빠졌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창조하신 인생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중생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Jesus answered him, “Truly, truly, I say to you, unless one is born again he cannot see the Kingdom of God.”

요한복음 John 3:3

 

이 거듭남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가능합니다. 예수님 밖에서는 구원이 없습니다. 성령님께서 오시면 사람은 거듭날 수 있습니다. 거듭난 사람은 구원 받은 사람입니다. 사람은 구원받음으로써 이 세상에서 다시 나는 것입니다.

 

창조 때도 구원의 때도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가는 비전을 보여주셨습니다. 나는 강견실 장로님의 삶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독수리처럼 날아오른 삶이었음을 믿습니다.

 

암과 투병하던 1년 반 동안 장로님은 나날이 쇠약해져 갔습니다. 그러나 그의 영적인 삶에는 독수리의 날개가 크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이 과정은 우리 모두가 깊이 깨닫고 알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기도와 말씀으로 그렇게 깊을 수가 있는가, 주님의 동행하심을 따라 우리와 삶을 나누었던 장로님의 삶에서 우리는 그 감동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장로님의 아파트에서 나오면서 히브리어와 헬라어 성경책을 뽑아 들었습니다. 말씀의 행간을 기도로 거닐던 그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주님께서 그분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고난의 때를 감사와 기쁨으로 충만하게 하셨습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but they who wait for the Lord shall renew their strength; they shall mount up with wings like eagles; they shall run and not be weary; they shall walk and not faint.

이사야 Isaiah 40:31

 

마침내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셨을 때, 장로님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그 날개를 치며 이 땅을 박차고 하늘 높이 날아올랐습니다. 장로님을 지으신 하나님, 장로님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장로님을 저 천국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여기서 이사야가 기록한 히브리어 카와”(qawah)기다리다라는 동사의 동명사 복수형태(Qal, participle plural)입니다. 여기서 파생된 명사 믹웨”(miqweh)틱와”(tiqwah)는 각각 남성형과 여성형으로 소망이라는 뜻입니다. 다른 명사 카웨가브”(qaweqaw)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기다리는 사람은 소망을 품은 자요, 그에게는 힘을 더해 주신다, 그렇게 연결해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카와는 어떤 기다림일까요. 누워서 기다림(lie in wait for)입니다. 완전한 수동태가 요구되는 것입니다.

 

나는 이제 오늘 예배에 참석한 모든 분들이 이 소망을 품고, 거친 세상을 승리하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은 이전에 자기를 의지하고, 재물을 자랑하며, 인간을 기대하던 삶을 청산하고, 완전히 하나님께 그 모든 소망을 둔 사람입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For in this hope we were saved. Now hope that is seen is not hope. For who hopes for what he sees? But if we hope for what we do not see, we wait for it with patience.

로마서 Romans 8:24-25

 

예수님께서도 인내를 강조하셨습니다.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By your endurance you will gain your lives.

누가복음 21:19

 

우리가 기억하는 강견실 장로님은 인내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대하여는 인내의 소망을 품었습니다. 사람에 대하여는 용서하며 참고 기다려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묻습니다:

 

오늘 우리의 소망은 무엇입니까?

이 소망을 위하여 우리가 참고 견디는 인내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교회가 중요합니다. 강견실 장로님의 삶에서 교회는 그 시작점이었고 그 마치는 지점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그의 삶을 돌아보면서 배우고 실천해 나가야 할 것은 하나님의 교회를 위한 헌신입니다.

 

우리의 조국 한반도에 교회가 새롭게 세워지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미국 땅에 교회의 부흥시대가 열리기를 기도합니다. 중국과 콜롬비아, 아프리카 르완다와 땅 끝에 이르는 모든 곳에서 하나님의 교회가 그 문을 열고 성도들이 모여 예배드리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질 때, 하나님의 교회들을 통하여 그 아름다운 복음이 선포되기를 기도합니다.

 

 

기도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세상을 창조하시고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주님. 오늘 주님의 이름을 찬양 드립니다. 당신의 딸을 이 세상에 보내시고, 이 세상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도록 축복하셨습니다.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가는 비전이 당신의 딸의 삶에서 이루어지게 하셨습니다. 오늘 모여 예배드리는 모든 성도가 하나님의 교회를 위한 강견실 장로님과 한가지로 하나님의 교회를 위한 일군으로 쓰임 받도록 주여 축복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축도

이제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지극하신 사랑과 성령님의 감화감동 충만하심과 교통하심이 주님께서 사랑하신 고 강견실 장로님을 이 땅에서 이별하지만, 슬픔 중에 말씀의 위로로 세상으로 나아가는 당신의 아들과 딸들의 머리 위에 이제부터 영원토록 함께 계시기를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2019831일 토요일, 오전 11:00

하관예배 Burial Service

조은석 목사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The Lord is My Shepherd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The Lord is my shepherd; I shall not want.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He makes me lie down in green pastures. He leads me still waters.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He restores my soul. He leads me in paths of righteousness for his name's sake.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Even though I walk through the valley of the shadow of death, I will fear no evil, for you are with me; your rod and your staff, they comfort me.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You prepare a table before me in the presence of my enemies;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you anoint my head with oil; my cup overflows.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Surely goodness and mercy shall follow me all the days of my life, and I shall dwell in the house of the Lord forever.

시편 Psalm 23:1-6

 

 

고 강견실 장로님과 마지막으로 드린 예배는 한 달 쯤 전에 함께 드린 전화예배였습니다. 이때 나는 한국어로 시편 23편을 읽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The Lord is my shepherd; I shall not want.

 

이 고백은 다윗의 고백입니다. 그런데 그 배경에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해방되어 가나안을 향한 광야생활이 들어 있습니다.

 

부족함이 없다는 말씀은 히브리어로 로 에흐사르입니다. 이 표현은 구약에서 언제나 이스라엘의 광야생활과 관계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일용할 양식으로 먹이셨습니다. 반석에서 물을 내어 마시게 하셨습니다. 메추라기를 먹이셨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거친 광야를 40년 동안 지났는데, 이스라엘은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었습니다.

 

오늘 땅으로 돌아가는 고 강견실 장로님의 삶을 돌아봅니다. 그분이 평소에 고백 드린 그대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였습니다. 이 말씀은 여기 그분의 모친 고 최석원 권사님의 묘비명에도 기록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마르다에게 주신 말씀을 생각합니다. 마르다처럼 신앙의 여인으로 살아온 고 강견실 장로님에게 주신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Jesus said to her, "I am the resurrection and the life. Whoever believes in me, though he die, yet shall he live, and everyone who lives and believes in me shall never die. Do you believe this?"

요한복음 John 11:25-26

 

아멘.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말씀을 순종하여 로 이루신 우리 주 예수님, 오늘 우리는 아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립니다. 아멘.

 

강견실 장로님의 영혼은 이미 하늘나라에 주님과 함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강견실 장로님의 육신을 오늘 땅 아래로 내립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사장의 나팔 소리와 함께 다시 오실 그 때 주님께서 이 육신의 몸을 다시 살리셔서 하늘로 올리실 줄을 믿습니다.

 

오늘 우리가 땅에 묻는 것은 장로님의 육신입니다. 장로님의 마음은 우리가 나누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했습니다. 사람을 대할 때 정성을 다했습니다. In Earnest. “정성을 다하여.” 이것은 장로님의 부친 강주한 장로님의 일생 모토입니다. 강견실 장로님은 사람을 대할 때 건성으로 대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진정으로 눈길을 주었고, 손을 내밀었으며, 마음을 나누었습니다.

 

장로님은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사람을 용서했습니다. 사람에게는 두 번째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세상의 눈을 염두에 두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마음에 품었습니다.

 

우리가 서로 용서할 때 장로님이 우리와 함께 지냈던 아름다운 날들이 되살아나는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 이 기쁨은 오늘 슬픔을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The Lord is my shepherd; I shall not want.

 

이 고백을 드린 강견실 장로님의 육신을 흙으로 돌려보내면서 오늘 우리가 어디서 왔는가를 생각합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입니다. 이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용할 양식으로 날마다 모든 것이 부족함 없었습니다. 이제도 이후에도 우리의 모든 날마다 이 고백이 우리와 함께 할 것입니다. 아멘.

 

주님께서 우리의 목자되심은 그 뜻이 무엇입니까? 리더십 문제인데, 목자는 어떤 리더였습니까?

 

강견실 장로님의 일생이 기쁨자원함으로 가득 차도록 인도하신 목자였습니다.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you anoint my head with oil; my cup overflows.

 

기름을 부으심은 사명을 주심입니다. 성경 시대에 왕, 제사장, 예언자를 기름 부어 임명했습니다. 이 사명자들은 억지로 일을 맡은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기쁨과 자원함이 그 동기였습니다. 목자는 양이 즐거운 마음으로 따르도록 그 머리에 기름을 부으신 것입니다.

 

사람이 억지로 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기쁨과 감사가 아니면 어떤 아름다운 열매도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 여기 모인 우리들, 이 아름다운 모임은 장로님의 자발적이며 기쁜 말씀순종의 삶에서 난 열매 가운데 하나입니다.

 

강견실 장로님의 일생이 기쁨으로 가득 찬 것을 우리 모두가 지켜보았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사람 모두가 이런 기쁨으로 충만하기를 빕니다.

 

 

기도

저희의 목자 되시는 아버지 하나님. 강견실 장로님의 목자 되셔서 오늘까지 푸른 초장과 맑은 물가로 인도하신 주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립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당신의 딸 강견실 장로님의 육신을 흙으로 돌려보냅니다. 아버지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그 날, 여기 이 자리에서 예배 드리는 저희 모두가 강견실 장로님과 함께 부활의 소망을 맛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관기도

하나님 아버지. 이제 저희들이 주님의 명령을 따라 고 강견실 장로님을 땅으로 돌려 보냅니다. 이제 믿기는 주님께서 재림하실 그 날 모든 성도들과 함께 당신의 딸을 이 땅에서 부활시켜 하늘로 들림 받게 하실 줄 믿습니다. 이 소망이 오늘 살아있는 저희 모두의 믿음이 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축도

이제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극진하신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감화감동 충만하심과 교통하심이, 고 강견실 장로님을 사랑하여 이 자리에 함께 하여 소망의 예배를 드리거나 함께 하지 못한 모든 형제 자매들에게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