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922

금문교회 주일예배

조은석 목사

 

가이사의 것, 하나님의 것 Caesar and God

누가복음 Luke 20:20-26

 

19.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예수의 이 비유는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즉시 잡고자 하되, 백성을 두려워하더라.

20. 이에 그들이 엿보다가 예수를 총독의 다스림과 권세 아래에 넘기려 하여 정탐들을 보내어 그들로 스스로 의인인 체하며 예수의 말을 책잡게 하니

21. 그들이 물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바로 말씀하시고 가르치시며,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나이다.

22. 우리가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않으니이까? 하니

23. 예수께서 그 간계를 아시고, 이르시되

24. 데나리온 하나를 내게 보이라. 누구의 형상과 글이 여기 있느냐? 대답하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25.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26. 그들이 백성 앞에서 그의 말을 능히 책잡지 못하고, 그의 대답을 놀랍게 여겨 침묵하니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대하여 화를 냈습니다. 예수님께서 모퉁이 돌비유로써 자기들을 멸망하실 계획을 드러내신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즉시 잡으려고 했지만 백성이 아직은 예수님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백성을 피하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그것은 로마의 힘을 빌리는 것입니다.

 

그들이 엿보다가 예수를 총독의 다스림과 권세 아래에 넘기려 하여, 정탐들을 보내어 그들로 스스로 의인인 체하며 예수의 말을 책잡게 하니

So they watched him and sent spies, who pretended to be sincere, that they might catch him in something he said, so as to deliver him up to the authority and jurisdiction of the governor.

누가복음 Luke 20:20

 

70년대 조크입니다. 물고기와 사람의 공통점은? 둘 다 입으로 낚인다! 지금 이들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주목합니다. 그 말씀을 걸어서 로마 총독에게 넘기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의 손을 대지 않고 예수님을 제거할 수 있다고 믿은 것입니다.

 

그들은 두 가지 말을 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을 높이 찬양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예수님 찬양으로써 예수님께서 그 질문을 피해 갈 수 없게 진을 친 것입니다.

 

첫째로, 예수님을 높이는 말입니다. 들어 보십시오.

 

그들이 물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바로 말씀하시고, 가르치시며,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나이다.”

So they asked him, “Teacher, we know that you speak and teach rightly, and show no partiality, but truly teach the way of God.

누가복음 Luke 20:21

 

이것은 소위 입에 발린 말입니다. 중심에 진심이 없습니다.

 

이렇게 찬양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바로 말씀하시고, 사람을 외모가 아니라 속으로 평가하시며, 오직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기 때문에, 세속적인 일에는 단호하게 대처하실 줄로 예상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예수님께서 당신 스스로의 말씀에 얽혀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제 그들의 질문을 들어 보십시오.

 

우리가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않으니이까? 하니

Is it lawful for us to give tribute to Caesar, or not?

누가복음 Luke 20:22

 

이것은 간단한 질문입니다. 로마 식민통치 아래서 누가 감히 황제 가이사에게 납세를 거부하겠습니까? 세금 거부는 정치적 항거의 뜻으로 받아들여질 것입니다.

 

이것은 함정입니다. 저들이 찬양한 그대로라면, 그들이 기대한 대답은,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은 옳지 않다!”여야 합니다. 그것은 다음 두 가지 경우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도를 따르면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정복한 가이사에게 세를 바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민족주의 발상으로써, 로마는 이스라엘의 적입니다. 적에게 세를 바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지 말라!” 그렇게 대답하셔야 합니다.

 

이렇게 되어 저들의 예상 그대로 예수님께서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옳지 않다!” 라고 대답하신다면, 그들은 곧바로 로마 총독에게 보고 할 것입니다. 로마 총독은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지 말라고 가르치는 예수님을 으로 간주하고 투옥할 것입니다. 사형을 시킬 수도 있습니다. 이거야 말로 저들이 손을 사용하지 않고 로마 총독을 이용하여 예수님을 제거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예수님께서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옳다!” 라고 대답할 수도 있다고 예상했습니다. 그러면 비록 첫 번째보다 효과가 떨어지지만, 백성들에게 어필 할 수 있습니다. “보시오! 당신들이 그토록 따르는 예수님이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라!고 가르치지 않습니까? 그러면 백성들이 예수님을 향해 돌을 던질 것입니다.

 

가이사에게 세를 바칠까요, 말까요?

 

이 질문은 그러므로 그 자체가 피할 수 없는 함정입니다. 어떤 대답도 결정적으로 예수님께 불리합니다.

 

오늘 본문을 가만 읽어봅니다. 여기에 총독의 다스림과 그의 권세 아래 넘기려는 동기가 있었다고 했으므로, 그들이 기대한 대답은 아무래도 첫 번째 경우입니다. 그렇지만 두 번째 카드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대답하신 것은 놀랍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간계를 파악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의 간계를 아시고, 이르시되:

But he perceived their craftiness, and said to them:

누가복음 Luke 20:23

 

예수님께서는 어떤 분이십니까?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의 아들 아니십니까? 그러므로 예수님 앞에 그 속 마음을 들키지 않을 자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즉답 대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데나리온 하나를 내게 보이라! 누구의 형상과 글이 여기 있느냐?” 대답하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Show me a denarius. Whose likeness and inscription does it have? They said, “Caesar’s.”

누가복음 Luke 20:24

 

파워포인트 사진: 로마 데나리온

 

이 사진을 보십시오. 여기 새겨진 얼굴은 로마 황제, 글씨는 그의 글입니다.

 

당시 데나리온에는 가이사의 두상과 그의 글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알고 계셨고, 문제를 제기한 스파이들도 알고 있었습니다.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He said to them, “Then render to Caesar the things that are Caesar’s, and to God the things that are God’s.”

누가복음 Luke 20:25

 

예수님께서 그들이 기대한 어떤 대답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그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이 대답은 로마 총독에게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나 누구에게도 걸리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께서 로마 황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라고 동의하신 점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분명히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세금을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성전세도 내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7:24-27에 성전세를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너의 선생은 성전세를 내지 않느냐?”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물고기를 잡아 올리고, 그 몸에서 나온 것으로 성전세를 내게 하셨습니다.

 

파워포인트 2: 성전 세겔 사진

 

이 사진을 보십시오. 쿰란에서 발견된 세겔인데, 주전 137-125년 경에 두로에서 주조된 것입니다. 페니키아의 신인 멜카르트(Melqarth/Heracles or Baal)의 머리 형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뒷면은 독수리상입니다. 94% 은으로 주조했습니다. 우상이 마음에 걸리지만, 순도가 높아서 사용한 듯합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하나님의 얼굴이 새겨진 동전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원칙적으로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라고 하셨을 때, 동전에 새겨진 내용을 염두에 두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형상과 글을 말씀하셨고, 그 형상과 글의 소유자에게 그것을 바쳐라, 하신 것은 일종의 수사학적 대처방식이었습니다. 피할 것을 피하고 대답할 것을 대답하시는 주님의 지혜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경에서 세상의 권력에 대하여 어떻게 가르치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사울은 이미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셨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가 아직 왕위에 있는 것과, 그가 본래 하나님께서 기름부어 세우셨던 것을 근거로 사울을 해치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아비새에게 이르되,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 하고

But David said to Abishai, “Do not destroy him, for who can put out his hand against the Lord’s anointed and be guiltless?”

사무엘상 1 Samuel 26:9

 

다윗은 자기를 해치려 추격하던 원수 사울을 제거할 좋은 기회를 계속해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을 들어 봅시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Let every person be subject to the governing authorities. For there is no authority except from God, and thosee that exist have been instituted by God.

로마서 Romans 13:1

 

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진노 때문에 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할 것이라. 너희가 조세를 바치는 것도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Therefore one must be in subjection, not only to avoid God’s wrath but also for the sake of conscience. For because of this you also pay taxes, attending to this very thing. Pay to all what is owed to them: taxes to whom taxes are owed, revenue to whom revenue is owed, respect to whom respect is owed, honor to whom honor is owed.

로마서 Romans 13:5-7

 

베드로가 기록한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

Be subject for the Lord’s sake to every human institution, whether it be to the emperor as supreme, or to governors as sent by him to punish those who do evil and to praise those who do good.

베드로전서 1 Peter 2:13-14

 

미국에 살면서 세금을 피해서는 안 됩니다. 혹자는 미국이 세금을 가지고 잘못 사용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런 면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시민으로서 마땅히 책무를 져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이 세상은 지나가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면을 다 지적하고, 그에 대항하여 싸우려면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것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어쩌면 이런 태도는 불의와 항거하여 싸우지 않고 현실에 타협하는 비겁한 일이라고 비난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로마 식민통치 아래서 유대인으로서 비겁하게 사셨습니까? 예수님께서 빌라도의 재판을 받고 십자가를 지셨는데, 그때 왜 싸우지 않으셨습니까?

 

생각해 봅시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는 무엇입니까? 이 세상은 악한 세상입니다. 세상의 모든 불의를 다 바로잡으려면 우리가 영혼 구원을 위한 시간이 절대로 부족할 것입니다. 복음 전하는 전도자가 정치인이 되어서야 쓰겠습니까?

 

가라지 비유를 생각해 보십시오. 최후의 심판 때가 이를 때까지 하나님께서 곡식과 가라지를 함께 자라게 두셨습니다.

 

주인이 이르되, “가만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But he said, “No, lest in gathering the weeds you root up the wheat along with them. Let both brow together until the harvest, and at harvest time I will tell the reapers, ‘Gather the weeds first and bind them in bundles to be burned, but gather the wheat into my barn.’”

마태복음 Matthew 13:29-30

 

세상의 불의한 정권이 왜 없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심판하실 때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들은 불의와 타협하여 불의한 자가 되는 일은 결코 행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불의와 싸우느라 영혼구원의 본래 목적을 상실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비둘기 같이 순전하고 뱀 같이 지혜로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내거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Behold, I am sending you out as sheep in the midst of wolves, so be wise as serpents and innocent as doves.

마태복음 Matthew 10:16

 

분명히 이는 많은 정의로운 사람들에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세상의 불의를 보고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느냐? 그 불의로써 피해를 당하는 사람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는 현실 앞에, 어떻게 예배만 드리고 있을 수 있느냐? 도대체 교회는 무엇이며, 성도는 무엇을 하느냐?

 

대단히 어려운 문제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우리가 지나가는 곳입니다. 영원한 천국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판단을 의지하고, 예수님께서 살아가신 방식을 따르는 것이 옳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성전세를 드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마땅히 실시해야 하는 책무를 지키고 있습니까? 한국은 국민의 4대 의무가 있습니다. 1. 국방의 의무. 2. 납세의 의무. 3. 교육의 의무. 4. 근로의 의무.

 

생각해 봅시다. 그리스도인들이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군대 징집을 피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납세도 정직하게 해야 합니다. 자녀들의 교육을 바르게 실시해서 사회의 정상적인 일원으로 길러야 합니다. 그리고 근로의 의무를 지켜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자립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근거하여 세금으로 국한에서 말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탈세혐의를 받는다면 그건 정말 바른 삶이 아닙니다. 아무리 정부가 맘에 들지 않고, 나라의 결정이 불의하다고 판단되어도, 국민으로서 지켜야 하는 납세의 의무는 감당해야 합니다. 내가 내는 세금으로 정부가 전쟁이나 파괴행위를 일삼는다는 근거가 있어도, 세금은 내고, 정상적은 루트를 사용하여 대정부 캠페인을 벌이거나 해서 국민의 소리를 들려주어야 합니다.

 

악법도 법이다.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시고 죽으면서 했다는 말입니다. 부정한 정부에 항의하여 탈옥을 도우려는 제자들을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이전에 빌린 닭을 대신 갚아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했습니다.

 

오늘 말씀을 그리스도인이 세상의 법을 따라야 한다는데 집중하고 나면, 주제가 곁길로 가고 만 것입니다. 예수님을 시험하는 자들은 그들의 간계를 따라 예수님을 로마의 총독의 손에 넘기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용한 질문이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칠까요, 말까요 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질문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드리라!” 하셨습니다. 마땅히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하는 그들의 허점을 크게 질러내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세상 앞에 정직하고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이 없습니까?

 

하나님께 약속한 모든 것은 서원으로 불립니다. 나중에 생각해 볼 때, 그것이 자기에게 불리할지라도, 그것은 반드시 갚아야 합니다.

 

사사 중에 입다(Jephthah)가 있습니다. 그가 승리하고 귀가할 때, 집에서 나오는 무엇이든지 번제로 드리겠다고 서원했습니다. 그의 딸이 나왔습니다. 아버지가 슬피 고민할 때, 딸이 말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서원하신 것은 갚으셔야 합니다!

 

그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를 존대하며,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하며

In whose eyes a vile person is dispised, but who honors those who fear the Lord; who swears to his own heart and does not change.

시편 Psalm 15:4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Offer to God a sacrifice of thanksgiving, and perform your vows to the Most High

시편 Psalm 50:14

 

하나님 앞에나 사람 앞에서 정직하고 신실한 사람, 그가 그리스도인입니다. 정직한 까닭에 손해를 보더라도, 길게 내다보면 그것이 바른 길입니다.

 

정직이 최상의 방책이다

Honesty is the best policy.

 

이 정도는 세상도 이해하는 지혜 아닙니까? 우리는 이에서 훨씬 더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모든 것을 다 아시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계십니다. 정직하게 살다가 위기에 빠져도 하나님께서 도우십니다.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And Jesus increased in wisdom and in stature and in favor with God and man.

누가복음 Luke 2:52

 

우리 하나님 앞과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는 성도의 길, 그가 어떤 시험에도 빠지지 않고, 사람들의 간계에도 잡히지 않고, 온전한 성도의 길을 끝까지 가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넘어뜨리려던 사람들이 오늘에도 있습니다. 성도들이 무너지는 것을 손뼉 치며 즐거워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이 주는 시험에 걸려 넘어지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여기 세상을 이기는 모든 지혜가 집결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기도 한 부분을 묵상합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원하시옵소서.

Lead us not into temptation, but deliver us from evil.

 

 

기도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저희들의 삶을 주장하사, 악한 자의 시험에 들지 않게 하옵소서. 악에서 구원하옵소서. 오로지 하나님께 온전한 헌신을 드리게 하옵소서. 세상에서도 필요하지 않은 비난을 받지 않도록 지켜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