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문교회 주일설교

20191020

 

부활신앙 Resurrection Faith

누가복음 Luke 20:26-40

 

26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인 중 어떤 이들이 와서

27 물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모세가 우리에게 써 주기를 만일 어떤 사람의 형이 아내를 두고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를 취하여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28 그런데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아내를 취하였다가 자식이 없이 죽고

29 그 둘째와 셋째가 그를 취하고

31 일곱이 다 그와 같이 자식이 없이 죽고

32 그 후에 여자도 죽었나이다.

33 일곱이 다 그를 아내로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그 중에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세상의 자녀들은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가되

35 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은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이 없으며

36 그들은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라.

37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은 모세도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에서 주를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시라칭하였나니

38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하시니

39 서기관 중 어떤 이들이 말하되, “선생님 잘 말씀하셨나이다,” 하니

40 그들은 아무 것도 감히 더 물을 수 없음이더라.

 

 

샬롬!

 

하나님의 은혜로 저희 부부가 성지순례 잘 다녀왔습니다. 이스라엘에서 1213, 로마에서 1112일 지냈습니다. 여러분의 기도에 감사드립니다. 이번에 보고 경험한 것은 설교와 성경공부 등 목회 전반에 걸쳐 여러분과 나눌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짧은 공생애 기간 중에 믿고 따르는 제자들이 있었지만, 적들도 많았습니다.

 

적들 중에 특히 사두개인이 있었습니다. 사두개인은 영어로 Sadducees 라고 씁니다. 사두개 라는 말은 제사장 사독(Zadok)에서 났습니다. 사두개인은 제사장 사독의 혈통에 근거를 가진 무리들입니다. 이들은 성전을 중심으로 세력을 형성했습니다. 물질주의 사상에 사로잡혔습니다. 탐욕이 가득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청결하게 하신 성전개혁을 실시하셨습니다. 그 사건은 사두개인들의 이익을 심각하게 침해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예수님께 중요한 것은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이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내주하시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두개인은 예수님을 제거해야 할 원수로 여겼습니다. 기회를 노리던 중에 주님께 접근했습니다.

 

물질주의자 사두개인들은 천사 같은 영적 존재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부활도 믿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천사는 물론 부활에 대하여 명확한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욥기 19, 다니엘 12, 그리고 에스겔 37장이 좋은 예입니다.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And after my skin has been thus destroyed, yet in my flesh I shall see God!

욥기 Job 19:26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And many of those who sleep in the dust of the earth shall awake, some to everlasting life, and some to shame and everlasting contempt.

다니엘 Daniel 12:2

 

그러므로 너는 대언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Therefore prophesy, and say to them, Thus says the Lord God: Behold, I will oepn your graves and raise you from your graves, O my people. And I will bring you into the land of Israel.

에스겔 Ezekiel 37:12

 

그런데 그들이 부활에 대하여 질문을 던집니다. 알고자 함이 아니라 시험하려는 것입니다. 믿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저들의 의심을 강화할 목적이었습니다.

 

바리새인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성경에 형사취수(Levirate Marriage) 제도가 있지 않습니까.

 

형사취수는 형이 결혼했으나 자식 없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맞아 형의 대를 잇게 하는 제도입니다. 신명기 25장에 기록된 계명입니다.

 

형제들이 함께 하는데, 그 중 하나가 죽고 아들이 없거든 그 죽은 자의 아내는 나가서 타인에게 시집가지 말 것이요, 그의 남편의 형제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아, 그의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그에게 다 행할 것이요, 그 여인이 낳은 그 첫 아들이 그 죽은 형제의 이름을 잇게 하여 그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

If brothers dwell together, and one of them dies and has no son, the wife of the dead man shall not be married outside the family to a stranger. Her husaband’s brother shall go in to her and take her as his wife and perform the duty of a husband’s brother to her. And the first son whom she bears shall succeed to the name of his dead brother, that his name may not be blotted out of Israel.

신명기 Deuteronomy 25:5-6

 

이 말씀이 적용된 경우가 성경에 두 가지 나타납니다.

 

창세기 38장에 다말이 그의 시아버지 유다를 통해 베레스와 세라를 낳은 것과, 룻이 보아스를 통해 오벳을 낳은 경우입니다.

 

그런데 이것 보십시오. 사두개인은 형사취수 제도를 부활신앙을 부인하는 논리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성경으로 성경을 치는 억지 논리입니다. 수많은 이단들이 성경을 사용하여 성경을 쳤습니다. 사탄도 성경을 인용하여 예수님을 시험하지 않았습니까?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 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을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하였느니라.

Then the devil took him to the holy city and set him on the pinacle of the temple and said to him, “If you are the Son of God, throw yourself down, for it is written, ‘He will command his angels concerning you,’ and ‘On their hands they will bear you up, lest you strike your foot against a stone.’

마태복음 Matthew 4:5-6

 

사두개인은 예수님께 일곱 형제가 다 자식 없이 죽은 사례를 말했습니다. 일곱이 차례대로 다 죽었습니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지요.

 

문제는 부활 이후입니다. 이 여자가 생전에 일곱 형제와 다 결혼했는데, 다 살아나는 부활 후에는 그러면 누구의 아내가 될 것입니까?

 

사두개인은 결국 부활이란 터무니없는 가르침 아니냐?”고 따지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부활신앙에 대한 명쾌한 정리를 해 주십니다. 덫에서 빠져나오는 데 집중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런 경우를 진리를 선포하는 아주 좋은 기회로 삼으셨습니다.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세상의 자녀들은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가되

35 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은 장가 가고 시집 가는 일이 없으며

36 그들은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라

37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은 모세도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에서 주를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시라 칭하였나니

38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하시니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이 세상과 저 세상의 차이를 밝히고 계십니다. 그런데 사두개인은 저 세상을 이 세상과 똑같은 것으로 여깁니다.

 

여기서 근본적인 문제가 드러납니다. 사우개인은 부활을 입에 담았지만, 저들 스스로 부활을 알지 못하며 부활을 믿지 않는 자들임을 고백하고 있는 셈입니다.

 

부활은 이 세상의 연장선상에서 이해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부활의 세상은 현세와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은 변화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신령과 진정의 예배로써 변화하지 않습니까? 궁극적인 부활의 변화를 이 세상에서 예배를 통해 경험하게 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Therefore, if anyone is in Christ, he is a new creation. The old has passed away; behold, the new has come!

고린도후서 2 Corinthians 5:17

 

우리가 성지순례를 통해 보는 것은 과거입니다. 과거에 허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살았던 믿음의 선배들의 발자취입니다. 또한 믿음을 저버리고 세상을 따라 살다가 세상과 함께 멸망한 흔적입니다,

 

그런데 동시에 우리가 성지순례를 통해 보는 것은 현재이기도 합니다. 과거를 보면서 타산지석으로 삼아 바른 믿음의 길을 가는 소수와, 옛날과 전혀 다르지 않게 방탕하게 살아가는 다수입니다.

 

이렇다면 우리가 성지순례를 통해 보는 것은 오히려 다가올 미래입니다. 임박한 미래로서, 문 앞에 이르른 현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임하는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보십시오. 천사장의 나팔 소리와 함께 주님께서 다시 오십니다. 초림 때는 고요한 밤이었지만, 재림 때는 번개가 동편에서 서편까지 동시에 비치는 것처럼 온 세상이 다 알게 될 것입니다.

 

나는 이번 성지순례를 통해서 나를 파수꾼으로 부르신 하나님의 뜻을 깊이 묵상했습니다.

 

파수꾼은 나팔 소리를 분명히 내야 합니다. 전쟁이 오고 있다고, 전쟁 나팔을 불라고 주님께서 명령하시는데 평화의 나팔을 분다면, 패전과 멸망의 책임을 파수꾼이 져야 합니다.

 

그러나 파수꾼의 나팔이 분명한 메시지를 선포했지만 백성이 무시하고 준비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멸망당했다면, 거기는 파수꾼의 책임이 없습니다.

 

책임을 면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파수꾼은 사명을 감당하여 백성을 살리는 데 세우신 뜻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사두개인은 오늘도 있습니다. 이 세상이 끝없이 계속해 이어지리라는 헛된 기대감을 품었습니다. 진정한 변화를 거부하고 날마다 하나님의 진노를 쌓습니다.

 

예수님 앞에 왔으면 마리아처럼 겸손히 그 말씀을 들어야지, 도리어 궤변으로써 예수님을 가르치려고 합니다.

 

변화는 부끄러움이 아닙니다. 내가 틀렸다고 안정하는 것은 배우는 진정한 자세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새 세상을 창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산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말씀은 출애굽 때 모세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산 자의 하나님께서는 여기 오늘 살아있는 우리들의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Truly, truly, I say to you, an hour is coming, and is now here, when the dead will hear the voice of the Son of God, and those hear the voice will live.

요한복음 John 5:25

 

죽은 자 같았던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해방시키셨습니다. 마른 뼈들을 살려내셨습니다. 욥을 다시 회복시키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말씀으로 다시 살아나야 합니다.

 

예수님 앞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지난 화요일, 사도 바울이 마지막 투옥되었던 감옥을 다녀왔습니다. 다모데 후서를 거기서 썼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그 길로 걸어 100미터쯤 떨어진 참수 현장도 보았습니다. 그 길 걸으면서 내 속에 계속 떠오른 말씀입니다.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I have faith in God that it will happen just as he told me.

사도행전 Acts 27:25b

 

죽은 자가 살아납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부활은 변화입니다. 그 변화는 주님의 명령으로 나타납니다.

 

그 명령 듣고도 변화를 거부한다면 당신은 바로 그 사두개인입니다.

 

여태까지 사두개인으로 살았습니까? 지금 여기서 돌이키십시오. 회개하십시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시오. 침묵하시고, 주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여태까지 괴롭고 슬펐던 삶이 끝나고, 새 생명이 시작되었습니다.

 

39 서기관 중 어떤 이들이 말하되, “선생님 잘 말씀하셨나이다,” 하니

40 그들은 아무 것도 감히 더 물을 수 없음이더라.

 

사두개인들과 합력해서 예수님을 시험하고 제거하려고 시도했던 서기관들 중에 어떤 이들이 예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선생님, 잘 말씀하셨습니다!”

 

보십시오. 이제 적들 사이에 균열이 생겼습니다.

 

바울 때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23장입니다. 바울이 공회 앞에서 증언하는데, 그들 중 일부는 사두개인이며 다른 일부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바울이 말했습니다.

 

여러분, 형제들아!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로 말미암아 내가 심문을 받노라!

Brothers, I am a Pharisee, a son of Pharisees. It is with respect to the hope and the resurrection of the dead that I am on trial.

사도행전 Acts 23:6b

 

그러자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사이에서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경우 사두개인은 서기관 중 일부와 분쟁이 생겼습니다. 적전분열입니다. 진리 앞에서 세상은 흩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의 신앙을 증언하셨습니다. 예수님 당신께서 부활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Jesus said to her, “I am the resurrection and the life. Whoever believes in me, thought he die, yet shall he live, and everyone who lives and belives in me shall never die. Do you believe this?”

요한복음 John 11:25-26

 

예수님과 부활을 따로 떼어 놓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부활이시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변화입니다. 진리에서 떠난 변화는 변절이거나 타락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변화는 부끄러움이 아닙니다. 거짓을 버리고 진리의 편에 서며, 죄악의 길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습니다. 죽음의 길을 떠나 생명의 길을 걷습니다. 이런 변화를 우리는 간증 하는 것입니다.

 

저는 잃어버려졌던 자입니다. 그러나 저는 잦아진 자입니다. 저는 이전에 눈이 멀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저는 봅니다.

I once was lost, but now am found! Was blind, but now I see!

찬송가 3051절하

 

오늘 우리를 대적하는 자들은 우리 앞에서 분열되어 결국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가 지켜내는 진리 말씀과 우리는 결코 분리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능력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가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이시며 생명이신 것을. 그렇다면 누구도 우리를 이 믿음에서 떼어낼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를 대적하는 자들이 공격하는 그 자리가 우리의 믿음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박수 칠 때, 무대 위에서 우리는 말할 때를 얻은 것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비방하고 욕할 때, 그 때는 말할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나 때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I charge you in the presence of God and of Christ Jesus, who is to judge the living and the dead, and by his appearing and his kingdom: preach the word; be ready in season and out of season; reprove, rebuke, and exhort, with complete patience and teaching.

디모데후서 2 Timothy 4:1-2

 

이번 성지순례 때 감동으로 걸었던 그 감옥. 지금은 천국 계단 교회가 된 자리에서 기록한 사도 바울이 마지막 글로 기록한 디모데 후서의 마지막 장 처음 두 절입니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얼마 전이었습니다.

 

때를 논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살려주신, 부활의 첫 열매 되신 예수 그리도를 따라 부활의 증인 된 우리에게는 언제나그 때입니다. 전도의 때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드립니다. 부활의 믿음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신령과 진정의 예배로써 날마다 변화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