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1

금문교회 주일예배

조은석 목사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And When You Have Turned Again, Strengthen Your Brothers!

누가복음 Luke 22:24-34

 

24. 또 그들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하는 다툼이 난지라.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그들을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받으나,

26.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27.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28.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29.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30.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31.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33. 그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

34. 이르시되,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

 

12월입니다. 2019년 한 해를 마무리하는 계절입니다. 우리가 어떤 자리에 어떤 자세로 서 있는지 겸손하게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과 베드로는 특별한 관계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만나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르셨습니다. 그 부르심을 받고 베드로는 곧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지금 주님께서 최후의 만찬을 제자들과 나누시는데, 그간 3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제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신 이후 40일 동안 세상에 더 계시다가 하늘로 승천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베드로에게 시간이 없습니다. 제자로서 예수님께 가르침을 받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베드로가 아직도 세속적인 욕망을 버리지 못했다는 데 있습니다. 오늘 주님께서 베드로의 그 점을 구체적으로 지적해 주셨습니다.

 

베드로의 욕망은 가장 큰 자가 되려는 야망이었습니다.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주님께서 떡과 잔을 나누셨습니다. 그리고 그 떡과 잔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밝히셨습니다. 주님께서 죽으심을 강력하게 예고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제자들은 그 중 누가 크냐?” 이런 논쟁이 불붙었습니다.

 

베드로가 그 논쟁의 중심에 있었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본문 25-30절에서 예수님께서 그 논쟁을 중단시키는 말씀을 주신 후에 곧 베드로를 지목하신 데서 분명해집니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Simon, Simon, behold, Satan demanded to have you, that he might sift you like wheat, but I have prayed for you that your faith may not fail. And when you have turned again, strengthen your brothers!

누가복음 Luke 22:31-32

 

사탄은 베드로가 큰 자가 되려는 욕망을 불어 넣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지난 3년 동안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것은 그 반대였습니다. 주님께서는 가장 낮은 자, 곧 섬기는 자로 계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그들을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And he said to them, “The kings of the Gentiles exercise lordship over them, and those in authority over them are called benefactors. But not so with you. Rather, let the greatest among become as the youngest, and the leaders as one who serves.

누가복음 Luke 22:25-26

 

이방의 높은 사람들, 곧 왕들은 사람들을 주관하고 은인이라고 불림 받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을 그렇게 양육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방나라 왕들이 모델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모델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십니다.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보다 본격적으로 주님께서 당신을 드러내십니다.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For who is greaterr, one who reclines at table or one who serves? Is it not the one who reclines at table? But I am among you as the one who serves!

누가복음 Luke 22:27

 

이 말씀은 대단히 놀랍습니다.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세상의 상식을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 볼 때 누가 큰가? 둘 중에서? 앉아서 먹는 자, 혹은 섬기는 자? 먹는 자가 아닌가?

 

식당에 가서 봅시다. 손님은 앉아서 먹고, 식당 관계자들은 섬깁니다. 주방에서 섬기는 사람들이 있고 홀에서 섬기는 자들이 있습니다. 상식으로 볼 때 누가 입니까? 손님 아닙니까? 논쟁이 붙었다면 누가 항상 이깁니까? 손님 아닙니까?

 

사람들은 욕망이 있습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다 큰 자가 되려고하는 것입니다. 섬기는 대신 섬김을 받으려는 욕심이 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섬기는 자로 계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But I am among you as the one who serves!

누가복음 Luke 22:27b

 

최후의 만찬 복음서 평행구절 중에 요한복음 13장이 있습니다. 거기서 주님께서는 식사 후에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제자들의 발 앞에 앉아 그 발을 씻어 주십니다.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You call me Teacher and Lord, and you are right, for so I am. If I then, your Lord and Teacher, have washed your feet, you also ought to wash one another’s feet. For I have given you an example, that you also should do just as I have done to you.

요한복음 John 13:13-15

 

예수님의 제자라면 예수님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Truly, truly, I say to you. A servant is not greater than the one who sent him. If you know these things, blessed are you if you do them.

요한복음 John 13:16-17

 

큰 자를 따라하지 말고 작은 자를 따라하라! 주인 노릇 하려고 하지 말고 종 노릇 하라! 그것이 복이다! 즉 큰 자가 되려고 힘쓰지 말고 작은 자가 되어 서로 섬기라! 그런 말씀이었습니다.

 

제자들이 얼마나 인간적이었는지, 예수님께서 죽으심을 예고하고 떡과 잔을 나누어 주신 그 자리에서도 권력을 지향하고 있었습니다. 철학자들 중에 인간의 속성을 권력 지향적이라고 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초인을 추구하는 인간을 그렸습니다.

 

권력추구는 정치권에서만 발견하는 현상이 아닙니다. 직장에서도 심지어 가정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남녀가 만나 사랑함으로써 가정을 이루는데, 남자와 여자 중에 누가 헤게모니를 장악하는지 그것이 관건이 되었습니다. 슬픈 현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것은 전혀 다른 세상입니다. 권력지향이 아니라 섬김 지향입니다. 높은 데로 치고 올라가는 길이 아니라 낮은 데로 내려가는 길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걸어가는 넓은 문이 아니라 좁은 문입니다.

 

이제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주신 말씀을 다시 들어 보십시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Simon, Simon, behold, Satan demanded to have you, that he might sift you like wheat, but I have prayed for you that your faith may not fail. And when you have turned again, strengthen your brothers!

누가복음 Luke 22:31-32

 

주님께서는 시몬 베드로가 권력을 지향하는 마음이 커서, 결국 그의 믿음이 떨어지고 말 것을 아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가 돌이켜 회개할 것까지 아셨습니다. 그 후에 그가 해야 할 사명까지 주셨습니다. 그것은 네 형제를 굳게하라는 명령입니다.

 

베드로의 형제들을 굳게 함. 그것은 무슨 뜻입니까? 베드로가 시험에 빠져 예수님을 부인하고 난 후, 그가 닭이 세 번 울 때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통곡하며 회개합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을 뵙고 그가 돌이키는데, 이후에 그는 성령충만을 받고 그의 형제들을 굳게 하는 사명자가 됩니다. 교회의 지도자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믿음의 반석 위에 세우신 교회. 그 교회의 지도자가 된 베드로는 섬기는 자였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피로 세우신 교회를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내려놓았습니다.

 

이런 권면을 주시는 주님 앞에 베드로는 아직도주님의 깊은 뜻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리고 나서서 말씀드립니다.

 

그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

Peter said to him, “Lord, I am ready to go with you both to prison nd to death.”

누가복음 Luke 22:33

 

이 얼마나 멋진 말입니까? 그런데 이 말이 공허하게 들리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그것은 그가 아직도 권력에의 의지를 품고, 그 동기로써 말씀드린 까닭입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주를 버릴지라도 자기는 주님을 버리지 않고, 옥이나 죽는 자리에도 가기를 각오했다고 밝힌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제자들 중에 제1등이라고 자부한 것입니다!

 

복음서 중에 마태복음 평행구절입니다.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주를 버리지 않겠나이다!

Peter answered him, “Though they all fall away because of you, I will never fall away!”
마태복음 Matthew 26:33

 

왜 하필 베드로가 여기서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했습니까? 이런 비교의식은 그가 남들보다 우월하다는 권력지향속성에서 난 것입니다. 다른 제자들보다 우수한 자기는 제1등 제자라는 것입니다. “수제자 베드로!” 이것은 남들이 붙여준 수식어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가 내세운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베드로, 그 속의 사람, 그 실상을 말씀하십니다.

 

이르시되,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

Jesus said, “I tell you, Peter, the rooster will not crow this day, until you deny three times that you know me!”

누가복음 Luke 22:34

 

사람이 이렇게 약한 것입니다. 조그만 시험에도 걸려 넘어지고, 작은 위협에도 웅크리고 마는,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스스로 강하다고 착각하고, 권력을 향해 무섭게 돌진하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멀리 가지 않고 바로 오늘 밤, 닭이 울어 그 밤이 지나가기 전에, 그는 주님을 부인할 것입니다. “나는 주님을 모른다!” 그것도 세 번씩이나!

 

실제로 베드로는 세 번 주님을 부인했습니다. 자기 스스로 옥이나 죽는 데까지 주님과 동행하겠다고 주장했던 그 사실을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며칠도 지나지 않았는데. 아니 바로 그 날 밤에!

 

문제는 베드로만 아니었습니다. 모든 제자들이 다 그렇게 주장했습니다. 오늘 밤 세 번이나 나를 부인할 것이라고, 닭이 울기 전이라고 예고하셨는데, 그 말씀을 듣고 난 후에도!

 

베드로가 이르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하니라.

Peter said to him, “Even if I must die with you, I will not deny you!” And all the disciples said the same.

마태복음 Matthew 26:35

 

여러분. 실제로 일어난 일을 우리는 모르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고문도 당하지 않았습니다. 권력자의 위협도 받지 않았습니다.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맹수들의 울부짖음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재판정 저쪽 불 쬐는 사람들 틈에서 아무런 힘이 없는 자들의 질문, 그것도 지나가는 것이어서 오히려 무시해도 괜찮을 정도였는데, 거기서 그는 주님을 배반했습니다. 저주까지 했습니다. 철저한 부인이었습니다!

 

주님께서 그것을 미리 다 아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통 선생이나 보통 주 같으셨으면 베드로를 버리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베드로가 돌이킬 것을 아셨습니다. 그를 돌이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형제들을 굳게 하는 사역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 베드로는 오늘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면서, 예수님께서 가시는 그 길을, 감옥이나 죽음의 형장에도 따라가겠다고 각오하면서, 실상은 예수님을 배반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새로운 사명으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한번 쓰러졌던 자가, 이제 쓰러지는 자들을 일으켜 세우는 사명을 받은 것입니다.

 

내가 감옥에 가서 말씀을 전할 때, 형제들이 나와서 간증하는 것을 듣습니다. 이전에는 마약도 하고 마약을 판매하던 날이 있었지만, 이제부터 하나님의 종이 되어 나와 같은 자들을 일으켜 세우는 일에 남은 인생을 다하겠다는 약속입니다.

 

이런 각오는 권력지향을 버려야 가능합니다. 사람이 권력을 추구하면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중에 누가 큰 자인가?”

 

하나님의 교회에서 성도들이 서로 섬기는 자로 살아가야 마땅합니다. 여기는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교회는 예수님께서 피로 세우신 하나님의 전입니다. 여기서 성도는 다스리는 자와 대접을 받는 자로 살아갈 것이 아닙니다. 섬기는 자로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그렇게 우리에게 실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So whatever you wish that others would do to you, do also to them, for this is the Law and the Prophets.

마태복음 Matthew 7:12

 

우리교회는 섬기는 자리가 많습니다. 쓰레기통을 생각합니다. 각 방마다 쓰레기통이 있습니다. 교회를 떠날 때는 누구나 쓰레기통을 비울 생각을 하기 바랍니다. 리사이클을 확실히 해야 합니다. 언제라도 플라스틱이나 종이가 일반 쓰레기로 처리된 것을 본다면 곧바로 손을 대어 분리수거 해야 합니다. 친교실과 부엌에 쓰레기통이 있습니다. 거기 가득 차게 된다면 묶어서 쓰레기장 큰 통에 넣기를 바랍니다. 혹시라도 쓰레기 봉투 안에 다른 봉투묶음이 들었다면, 그 안의 봉투를 꺼내어 큰 통에 직접 넣어서, 쓰레기 봉투가 이중으로 허비되지 않도록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부엌에 들어가서 봉사하는 것을 기쁨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설거지 하고 쌀을 안치고 커피 물 올리는 것은 섬기는 자의 기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교회에 계시다면 주로 주님께서 부엌에 계실 것입니다. 예수님 생각하고 그 마음으로 즐겁게 섬기시기를 바랍니다.

 

누군가 마음이 상한 자가 있다면 그를 먼저 찾아가서 위로해 줍니다. 예수님이라면 그렇게 하실 것 아닙니까? 대접 받는 자리가 아니라 대접하는 자리가 당신의 자리입니다. 부르심 받은 자리는 섬기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의 종으로 부르심 받았고, 사람을 섬겨 봉사하는 자리로 부르심 받았습니다.

 

가끔 우리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육을 담당했던 최승언 전도사님 생각을 합니다. 한국의 최고 대학이 서울대학인데, 거기서 교수로 오래 사역했습니다. 그분 말씀이, 서울대가 학생 교육에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어째서 그런가 하니, 학생들이 사회에서 최고의 지위에 오르는 것만 가르쳤지, 세상에서 사람을 섬기는 자리에 가는 훈련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오늘날 가만 보면 사회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은 최고의 명문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그 수가 많습니다. 대학도 잘 공부하여 사람을 섬기려는 자세를 가져야 하는데, 자기의 신분을 격상시키는 도구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슬픈 현실입니다.

 

오히려 몇몇 대학들이 그런 섬김의 정신을 가졌습니다. 한양대학교는 사랑의 실천,”, 숭실대학교는 진리와 봉사를 교훈으로 가졌습니다. 모두 기독교 정신으로 교육하는 학교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양육하는 모습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최후의 만찬 다락방에서 친히 모든 것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리고 떡과 잔을 나누어 주시면서, “이 일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셨습니다. 살과 피를 나누어 주시는 주님의 희생이, 그 깊디 깊은 영적인 뜻이 바르게 이해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아직도 세속의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것을 보시고, 그들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지배자와 왕이 되려고 하지만, 너희는 섬기는 자가 되라. 나 자신이 너희 중에 섬기는 자로 있지 않으냐!

 

그리고 요한복음을 따르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한 것을 본받아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라, 그렇게 당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넘어질 것을 아셨습니다. 그러나 한번 넘어진 그를 비판하여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다시 두 번째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새 사명을 주셨는데, 연약한 형제들, 그래서 수도 없이 주님을 배반하는 그들을 굳세게 붙들어 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지난 성지순례 때, 로마에서 두 번째 카타콤을 방문했던 때가 생각납니다. 그 카타콤 들어가는 입구 앞에 쿼바디스 교회가 있었습니다. 사거리였는데, 전설에 따르면 거기서 베드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 그리고 여쭈었습니다. “주여, 어디로 가십니까?” 라틴어로 쿼바디스, 도미네?”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로마로 들어가신다고 하셨습니다. 고난을 피해 로마에서 도망쳐 나가던 베드로가, 다시 로마로 들어가시는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십자가를 지시러 들어가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거기서 베드로는 길을 돌이켜 로마로 갔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세웠고, 끝내 순교를 당했습니다. 십자가를 거꾸로 지고 순교했다고 전설이 남아 있습니다.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베드로를 그렇게 부르신 주님께서 그 사명을 거두지 않으셨습니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And those whom he predestined he also called, and those whom he called he also justified, and those whom he justified he also glorified.

로마서 Romans 8:30

 

깊은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 아니 주님께서 우리를 처음 만나 주셨을 때, 우리를 당신의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말씀으로 양육해 주셨습니다. 그러는 내내 우리는 우리 중에 누가 최고인가?” 묻고 또 물었습니다. 그리고 섬김을 받는 자로 스스로의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것은 교만이며, 이 길의 끝은 결국 주님을 배반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길은 권력지향입니다. 그 길은 크고 넓은 길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찾아 구하는 길입니다. 남들이 대접해 주기를 기대하는 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가신 그 길은 좁고 험한 길입니다. 그 문은 좁은 문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찾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그 길은 생명의 길입니다. 생명길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미 주님을 배반하고 주님을 부인한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지난 날든 닭이 울던 새벽이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돌이켜야 합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들을 돌보아야 합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For if we live, we live to the Lord, and if we die, we die to the Lord. So then, whether we live or whether we die, we are the Lord’s

로마서 Romans 14:7-8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For the kingdom of God is not a matter of eating and drinking but of righteousness and peace and joy in the Holy Spirit.

로마서 Romans 8:17

 

하나님의 나라. 여기는 형제와 자매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에 힘쓰나니

So then let us pursue what makes for peace and for mutual upbuilding.

로마서 Romans 13:19

 

남들보다 나을 길을 추구하고, 남들 위에 설 자리를 찾노라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성공한다고 해도 그 기쁨은 순간적입니니다. 그래서 세상이 주는 기쁨은 결국 허무한 것입니다.

 

그러나 섬기는 자리를 찾고 찾는다면 그 길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남이 안 가는 길을 가고, 남들이 버리는 것을 취한다면, 그 사람에게 허락된 평강과 기쁨과 은혜는 말로 형용할 길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금문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세상과 달라져야 합니다. 우리가 보고 배우는 우리의 선생님은, 우리를 당신의 피로 사신 우리의 주님 예수님은 우리에게 섬기는 자로 와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가는 법칙은 이 세상과 판이하게 다른 것입니다. 이것을 아셔야 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Do not be conformed to this world, but be transformed byy the renewal of your mind, that by testing you may discern what is the will of God, what is good and acceptable and perfect.

로마서 Romans 12:2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아닙니까?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로 구속함을 받은 그리스도인 아닙니까? 하나님의 자녀답게, 그리스도인답게 살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여러분은 이제 이 말씀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실천하는 길이 남았습니다. 예배 후 10분 동안 이어지는 말씀공부 시간은 이 말씀의 실천의 길을 함께 모색하면서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Blessed is the one who reads aloud the words of this prophecy, and blessed are those who hear, and who keep what is written in it, for the time is near.

요한계시록 Revelation 1:3

 

 

기도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은혜와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세속에 물든 저희들을 사랑으로 불러 제자로 삼으시고, 새로운 사명을 주셔서 서로 사랑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넘어진 저희들을 다시 붙들어 주시고, 연약한 심령들을 강하게 하는 사명을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새 사명을 따라 서로 사랑하는 교회,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