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322

금문교회 주일예배 GGPC Sunday Worship Service

조은석 목사 Rev. Eun Suk Cho

 

네 가지 밭 Four Kinds of Fields

마가복음 Mark 4:1-20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서 가르치시니, 큰 무리가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바다에 떠 있는 배에 올라 앉으시고, 온 무리는 바닷가 육지에 있더라. Again he began to preach beside the sea. And a very large crowd gathered about him, so that he got into a boat and sat in it on the sea, and the whole crowd was beside the sea on the land.

이에 예수께서 여러 가지를 비유로 가르치시니, 그 가르치시는 중에 그들에게 이르시되 And he was teaching them many things in parables, and in his teaching he said to them: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Listen! Behold, a sower went out to sow.

뿌릴 새,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And as he sowed, some seed fell along the path, and the birds came and devoured it.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이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Other seed fell on rocky ground, where it did not have much soil, and immediately it sprang up, since it had no depth of soil.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And when the sun rose, it withered away.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하지 못하였고 Other seed fell among thorns, and the thorns grew up and choked it, and it yielded no grain.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 And other seeds fell into good soil and produced grain, growing up and increasing and yielding thirtyfold and sixtyfold and a hundredfold.

또 이르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And he said, “He who has ears to hear, let him hear!”

예수께서 홀로 계실 때에 함께 한 사람들이 열두 제자와 더불어 그 비유들에 대하여 물으니 And when he was alone, those around him with the twelve asked him about the parables.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And he said to them, ”To you has been given the secret of the kingdom of God, but for those outside everything is in parables

이는 그들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며,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시고 so that “they may indeed see but not perceive, and may indeed hear but not understand, lest they should turn and be forgiven.”

또 이르시되, “너희가 이 비유를 알지 못할진대, 어떻게 모든 비유를 알겠느냐? And he said to them, ”Do you not understand this parable? How then will you understand all the parables?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 The sower sows the word.

말씀이 길 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 And these are the ones along the path, where the word is sown: when they hear, Satan immediately comes and takes away the word that is sown in them.

또 이와 같이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And these are the ones sown on rocky ground: the ones who, when they hear the word, immediately receive it with joy.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간 견디다가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And they have no root in themselves, but endure for a while; then, when tribulation or percecution arises on account of the word, immediately they fall away.

또 어떤 이는 가시떨기에 뿌려진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되, And other are the ones sown among thorns. They are those who hear the word,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요 But the cares of the world and the deceitfulness of riches and the desires for other things enter in and choke the word, and it proves unfruitful.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나 육심 배나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 But those that were sown on the good soil are the ones who hear the word and accept it and bear fruit, thirtyfold and sixtyfold and a hundredfold.”

 

 

나는 이 설교문을 내 아버지 아파트에서 작성했습니다. 내 아버지는 지난 주 수요일 오후 4시부터 아파트 자택에서 호스피스 서비스를 받고 있습니다. 올해 13일에 만 100세 생신을 맞은 아버지, 그분의 마지막 며칠을 동행하는 중에, 나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나의 인생을 깊이 돌아보고 있습니다.

 

씨 뿌리는 비유는 소위 공관복음서”(Synaptic Gospels)인 마태복음 13:1-8, 마가복음 4:1-20, 누가복음 8:4-8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4복음서”(the Fourth Gospel)인 요한복음에는 없을까요?

 

요한복음은 비유가 없습니다. 모든 비유는 천국이 그 주제인데, 요한복음에서 주님께서는 나다!”라고 선포하시면서, 직접 당신을 소개하시는 방식을 택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와 불가분리의 관계가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가는 것입니다.

 

공관복음서 중 마가복음에 기록된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씨 뿌리는 비유를 들어 네 가지 밭을 말씀하셨고, 이후에 열 두 제자들과 가까운 무리들이 예수님께 자세한 설명을 듣는 내용입니다.

 

밭에 뿌려진 씨앗은 이 땅에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 씨앗을 받아들여 소출을 내는 밭입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들에게 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에게 오셨습니다. 이 말씀은 생명이며 사람들의 빛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God. He was in the beginning with God. All things were made through him, and without him was not any thing made that was made. In him was life, and the life was the light of men. The light shines in the darkness, and the darkness has not overcome it.

요한복음 John 1:1-5

 

사람들이 말씀-생명-빛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처음 세 가지 밭의 경우입니다.

 

그러나 네 번째 밭은 좋은 밭으로서, 말씀되는 씨앗을 영접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성도는 좋은 밭이 되어 알곡을 소출로 거두어들이는 사람입니다. 밭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그 알곡을 기대하시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달란트 비유에서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인정받은 자들은 이문을 남겨 원금과 함께 주인께 돌려드린 자들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밭이라면, 좋은 밭이 되어 주인의 즐거움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샌프란시스코 19가에 있는 양로병원 The Avenues에서 성경공부를 인도한 것이 거의 2년 되었습니다. 그동안 마태복음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창세기 10장까지 공부하여, 이제 창세기 11장 차례입니다.

 

그런데 지난 주일부터 이 지역의 모든 양로병원을 방문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 예방을 위한 Health Department의 결정입니다. 따라서 성경공부도 잠정적으로 중단되었습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는 곧 성경공부를 재개할 수 있을 줄 압니다.

 

그동안 그 양로병원 성경공부를 통해 여러 지체들이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중에 마유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이전에 설교와 성경공부를 통해 한 두 차례 소개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마유미가 주님을 영접한 것은 우리가 마태복음 13장을 공부하던 때였습니다.

 

나는 그 공부에서 네 가지 밭은 각각 네 종류의 사람을 뜻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밭에 떨어진 씨앗은 하나님의 말씀,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첫 번째 밭은 길가 밭입니다. 말씀이 떨어지지만 새들이 먹어 버렸습니다.

 

두 번째 밭은 돌밭입니다. 말씀을 받지만 곧 환란을 견디지 못합니다.

 

세 번째 받은 가시덤불 밭입니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시험을 이겨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 세 가지 밭은 누구도 결실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네 번째 밭은 달랐습니다. 말씀을 받아 30, 60, 100배의 결실을 했습니다.

 

여기까지 듣던 마유미가 손을 들었습니다. “나는 네 번째 밭이 되고 싶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성경공부에 몇 주 만에 이런 간절한 심령이 되다니! 성령님의 역사하심이었습니다.

 

마유미는 50세 초반의 일본계 미국인이었습니다. 각종 질환을 앓고 있었고, 통증으로 자주 울었습니다. 양로병원 구석에서 홀로 울고 있는 때를 종종 보았습니다. 다른 형제들과 함께 가서 기도 해 주곤 했습니다. 그가 성경공부에 나왔습니다. 몇 개월 참석한 어느 날, 네 가지 밭 비유를 공부한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옥토란 것이, 결국은 씨앗을 받아들여 그 속에 품는데서 앞선 세 가지 밭들과 그 차별성이 나오는 것 아닙니까?

 

그 말을 듣더니, 마유미가 물었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그래서 말했습니다. 네 가지로 예수님께 말씀드리면 된다고. 그랬더니 그 네 가지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첫째로, 나는 죽을 죄인임을 믿습니다.

둘째로,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죄 사함 받을 줄 믿습니다.

셋째로,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합니다.

넷째로, 나는 예수님께서 나를 이 세상 떠날 때 천국으로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내가 물었습니다. 나를 따라서 이 기도를 드릴 수 있느냐고. 마유미는 그렇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마유미가 말했습니다. 자기는 내성적인 성격이라 대놓고 말하기가 두렵다고. 그래서 내가 말했습니다. 그러면 몇 가지 선택사항이 있습니다.

 

첫째는 자기 방에 가서 혼자 고백 드리는 것입니다.

둘째는, 한 주일 동안 준비하여 다음 주에 성경공부 할 때 나를 따라 기도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지금 이 자리에서 나를 따라 기도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더니, 지금 이 자리에서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해도 되느냐고 했습니다. 그러자 우리교회 바비 마틴 집사님이 우리가 돕겠다했습니다. 다른 형제와 자매도 염려하지 말라, 우리가 함께 따라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마유미가 그 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마유미를 위해 그 자리에서 특별히 기도 해 주었습니다.

 

, 나는 참 행복합니다!

 

마유미가 활짝 웃으면서 두 손을 높이 쳐들었습니다.

 

그 날이 화요일이었습니다. 마유미는 오는 주일에 금문교회 예배드리러 바비와 함께 가도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바비가 좋아했습니다. 바비가 도와주어 파라드랜짓 장애자 서비스 차량을 신청해 주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주일, 바비만 혼자 예배드리러 왔습니다. 운전기사가 명단에서 마유미를 찾지 못한 것입니다. 양로병원 담당자들이 간곡히 부탁을 했지만, 운전기사는 원칙을 따졌습니다. 마유미가 크게 소리 내어 울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주일 밤 11, 마유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 직전에 중학생 된 그의 딸과 그를 맡아 기르는 여자가 마유미를 방문했습니다. 마유미는 교회에 나오지 못하는 슬픔을 안았지만, 딸을 만났고, 그날 밤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양로병원 성경공부팀은 마유미 추모예배를 드렸습니다. 딸은 학교 때문에 그 자리에 나오지 못했습니다. 대신 그를 맡아 기르는 여자 분이 추모예배에 참석해서, 기억을 나누었습니다.

 

마유미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게 된 본문이 네 가지 비유입니다. 오늘 나는 여러분 중에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세례 받고 천국에 이른 영생을 얻는 성도가 나오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마유미가 옥토가 되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순전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거두어들인 열매는 무엇입니까? 그 열매가 30, 60, 100배가 되었습니까? 최근에도 성경공부 때 참가자들 중에서 마유미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이야기가 그들에게 영적 감화력을 끼친 것입니다. 앞으로도 그 이야기는 그 양로병원의 전설이 될 것입니다.

 

지난 주 설교 때 소개한 HIV 환자 존, 그를 포기하지 않고 끝끝내 구원 받는 길로 인도한 사람들은 마유미의 경우를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결국 한 영혼이 하나님 앞에 온전히 드려지면서 수많은 영혼들이 주님께로 돌아오는 놀라운 역사가 연이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네 가지 밭 중에 한 가지에 속합니다. 그렇게 보면 세상 사람들은 모두 네 종류로 나눌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처음 세 가지 밭은 결국 받은 바 그 씨앗을 결실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동일합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은 두 종류의 밭 중 하나에 속합니다. 받은 씨앗을 결실하지 못하는 밭과, 그 씨앗을 30, 60, 100배로 결실하는 밭 두 가지입니다.

 

보통 처음 세 가지 밭은 대개 스스로 교만하고, 자기의 의를 주장하거나 세상에서 믿을 것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네 번째 밭은 가난하고 세상에서 천대 받고, 예수님 외에 의지할 자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Blessed are the poor in spirit,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heaven.

마태복음 Matthew 5:3

 

누가복음 6:20은 아예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하여, “심령을 뺐습니다. 육신적인 가난도 겸손한 길로 이끄는 어떤 도구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가난하게 되는 것을 너무 겁내지 말기를 바랍니다. 오히려 그런 처지가 복이 되는 경우라면 도리어 감사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나는 모든 가난한 자가 자동적으로 복이 되거나, 모든 부자가 예외없이 다 복을 상실하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씨앗으로 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영적 가난함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밭에 속합니까? 여러분은 어떤 밭이 되고자 합니까?

 

결실하지 못하는 밭은 그 경우가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길처럼 굳은 상태입니다. 씨앗은 결코 그의 마음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씨앗이 드러나 있습니다. 새들이 쪼아 먹어버렸습니다.

 

둘째는 자갈밭입니다. 자갈 틈새에 있는 흙에 기대어 싹을 내지만, 햇볕에 뜨겁게 달궈진 자갈이 싹을 태워버립니다. 이 경우, 달궈진 돌은 밖에서 오는 핍박입니다. 약한 믿음으로 시련을 견뎌내지 못한 것입니다.

 

세 번째는 가시덤불 밭입니다. 흙도 충분하고, 뜨겁게 달궈진 자갈도 없기 때문에 시앗이 싹을 내고, 그 싹이 자라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야 할 시기에 이르러 문제가 생깁니다. 가시덤불이 기운을 막아버린 것입니다. 이 경우 가시덤불은 자기 속에서 나는 시험입니다.

 

또 어떤 이는 가시떨기에 뿌려진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요

And others are the ones sown among thorns. They are those who hear the word, but the cares of the world and the deceitfulness of riches and the desires for other things enter in and choke the word, and it proves unfruitful.

마가복음 Mark 4:18-19

 

이런 유형의 사람이 가진 문제는 그 속에서 나는 시험입니다. 세상의 염려가 많습니다. 재물의 유혹을 견지지 못합니다. 욕심이 많습니다.

 

그러나 옥토는 경우가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결실합니다. 충실한 열매를 거두어들입니다.

 

성경 전체의 흐름을 놓고 볼 때, 처음부터 옥토인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기 전에 사람은 누구나 소망이 없는 자입니다. 아브라함도 그랬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를 포함한 열 두 제자도 그랬습니다. 바울은 물론입니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로마서 Romans 8:30

 

이것은 모두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보십시오. 1. 정하시고, 2. 부르시고, 3. 의롭다 하시고, 4.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마유미를 그때 성경공부에 참여하게 하시고, 그 때 옥토가 되고자 하는 마음을 심어 주시고, 그 모임에 참석한 모든 이들의 마음을 감동하여 마유미를 돕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유미가 성령의 역사하심으로써 자기가 죄인인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끝내 마유미의 입술을 열어 주님을 고백하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옥토로 놓고 보겠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길가 밭 같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밭을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밭을 부르셨습니다. 그 밭을 의롭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그 순서로 보면, 그 누구에게도 소용이 되지 않는 딱딱한 밭을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밭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 밭을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죄를 씻으셨습니다. 그리하여 의롭다칭의(justification)하셨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열매를 거두게 하셔서 천국 창고에 들어가게 하심으로써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옥토는 스스로 옥토가 된 것이 아닙니다. 정하심을 받고, 부르심을 받고, 의롭다 하심을 받고, 영화롭게 하심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옥토가 옥토가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또한 이 옥토가 풍성한 그 열매를 거둔 것은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셔야 할 일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온 세상이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우리교회도 이번 주일부터 전면적으로 온라인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교회역사에서 오늘처럼 대대적으로 위기가 온 적이 또 있었을까요? 또한 오늘처럼 근본적으로 교회가 뿌리째 흔들린 적이 또 있었습니까?

 

세상에 위기가 닥치면 사람들은 신앙을 찾아 교회로 모였습니다. 그런데 이번 위기는 전혀 반대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교회에 모이는 것 자체가 혐오의 대상이 되었고, 교회는 병원균을 옮기는 주체로 인식이 되었습니다. 세상이 교회와 교회의 모임을 비판할 뿐 아니라, 교인들 스스로 엄청난 자긍심을 상실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위기는 정말 위기처럼 보입니다. 보통 위기를 기회라고 하는데, 이번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나 위기는 기회가 맞습니다. 사회의 제도로서의 교회와 사회행사로서의 교회예배는 커다란 의문부호 앞에 직면했습니다.

 

지금은 오히려 하나님께서 당신께서 선택하신 나라 이스라엘을 열국 앞에 멸망시키시고, 나라를 나누어 온 세상에 흩어버리신 때를 연상합니다.

 

1. 지금은 바벨론 포수 때(the times of Babylonian exile)와 같습니다. 다니엘처럼 개인이 자기의 창문을 열고 교회를 향하여 기도하는 그런 시절입니다.

 

다니엘(Daniel)은 자기의 자아를 버렸습니다. 온전히 하나님께 모든 것을 다 드렸습니다. 사자 굴에 들어가서도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사자 굴에 들어간 다니엘은 하나님께 생명을 맡긴 사람이었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도 그렇습니다. 풀무불 속에 들어가서도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그들과 동행하셨습니다.

 

2. 에스겔(Ezekiel)은 환상 중에 마른 뼈가 살아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온전히 나타나는 시대입니다.

 

이어서 지금은 홀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들의 때입니다.

 

1. 지금은 엘리야(Elijah)의 때와 같습니다. 엘리야처럼 홀로 광야를 걸어 여호와 하나님 앞에 서야 하는 시대입니다.

 

엘리야가 어떤 능력을 행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승천했습니다. 그것은 그가 성령님에 온전히 의지한 사람이라는 하나의 증거입니다. 그의 인간적인 장점은 하나도 열거할 필요가 없습니다.

 

2. 지금은 욥(Job)의 때와 같습니다. 아직도 엎드려 예배하는가? 예배인간 욥을 비웃는 무리가 세력을 크게 키웠습니다.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 이런 조롱하는 소리가 오히려 강하게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욥을 만나 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의 예배를 받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욥에게 무슨 선함이 드러난다면 그것은 온전히 하나님께서 은혜로 허락하신 선물입니다.

 

다니엘과 엘리야와 욥의 경우에서 우리는 홀로예배를 드리는 개인을 만납니다. 사울을 피하여 동굴에 숨었던 다윗은 어떻습니까?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Awake, my glory! Awake, O harp and lyre! I will awake the dawn!

시편 Psalm 57:8

 

절대고독의 시간, 그 절망의 장소에서 다윗은 홀로예배를 드렸습니다.

 

3. 조금 거슬러 올라갑시다. 빈들에 누운 야곱(Jacob)을 주목해 보십시오. 그는 하늘 하나님께서 나타나 약속을 주셨을 때, 돌베개를 세우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의 약하고 고독하였으나, 그의 예배는 하나님께서 받으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 인생 각자마음의 밭을 경작하여 옥토로 만들어 가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경험하는 시대를 비추어 줍니다.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해도 우리는 압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분명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1. 지금은 우리의 교만의 표면을 주님께서 갈아엎으십니다. 당신의 두 손으로써 우리의 딱딱하고 경직된 교만을 처리해 주십니다.

 

교만은 씨앗을 거부하는 위기를 초래했습니다. 그러나 이것 보십시오. 인간은 결국 거기까지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주님께서 위기를 기회로 바꾸셨습니다. 교만한 자가 겸손하게 주님 앞에 엎드리게 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스스로의 교만을 벗어버리고, 겸손하게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2. 지금은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 밭에서 달궈진 돌들을 걷어내십니다. 그것은 핍박입니다. 교회가 지고 가기가 대단히 어려운 문제들입니다.

 

그런데 기회를 보십시오. 주님께서는 그 해결을 교회에 맡기지 않으시고 직접 감당해 주십니다. 교회가 주님을 만나기에 합당하도록 진실하게 만날 때가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친히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부르신 그 부르심으로써.

 

3. 가시떨기가 세상의 모든 밭을 뒤엎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 보십시오. 지금은 땅을 뒤덮은 가시떨기를 거두어들이시는 주님을 뵙습니다. 의심 대신 믿음을 가지게 하십니다. 세상을 보지 말고 우리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이와 같이 세 가지 경우에, 주님께서 이 시대의 위기를 기회로 바꾸셨습니다. “구원의 기회, “하나님 만날 기회입니다.

 

우리의 손에서 위기였던 것이 주님의 손에서 기회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새롭게 창조해 가시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오늘 같은 때 광야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을 돌아보는 것은 영적으로 유익합니다.

 

앞에 홍해바다로, 뒤에 애굽 군대로 포위되었을 때, 이스라엘은 패닉 상태에 빠졌습니다. 부르짖었습니다. 여기서 죽게 할 목적이었느냐! 이 때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했습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And Moses said to the people, “Fear not, stand firm, and see the salvation of the Lord, which he will work for you today. For the Egyptians whom you see today, you shall never see again. The Lord will fight for you, and you have only to be silent!”

출애굽기 Exodus 14:13

 

주님께서 역사하시도록 우리는 가만히 있어야 합니다.

 

오늘 같은 때 시편 46편을 읽는 것이 또한 유익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오,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God is our refuge and strength, a very present help in trouble. Therefore we will not fear thought the earth give way, though the mountains be moved into the heart of the sea, thought its waters roar and foam, though the mountains tremble at its swelling.

시편 Psalm 46:1-3

 

 

땅과 산과 바다가 뛰노는 때, 지금이 그런 때 아닙니까? 그러나 이것 보십시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The Lord of hosts is with us; the God of Jacob is our fortress.

시편 Psalm 46:7

 

우리는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분께서는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이십니다.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주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Be still, and know that I am God. I will be exalted among the nations. I will be exalted in the earth!

시편 Psalm 46:10

 

마지막 순간까지 믿음을 잃지 않으시는 아버지. 영광과 찬송을 세세토록 우리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아버지. 우리 아버지를 이 세상에 보내시고 모든 영광을 받으신 주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아멘.

 

그제 금요일 새벽예배 때 읽은 시편 23편을 묵상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The Lord is my Shepherd; I shall not want.

Even though I walk through the valley of shadow of death, I will fear no evil. For you are with me. Your rod and your staff, they comfort me!

시편 Psalm 23:1, 4

 

 

 

기도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네 가지 종류의 밭들 중에, 저희는 옥토가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시는 권능의 말씀을 따라, 순종의 열매를 주님께 드릴 수 있도록 주여 도와주시옵소서. 세상에 편만한 바이러스가 더 이상 창궐하지 못하도록 주여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온 세상이 하나님께서 참된 신이심을 깨달을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