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524

금문교회 주일예배 GGPC Sunday Worship Service

조은석 목사 Rev. Eun Suk Cho, Pastor

 

오천 명 먹이심 Feeding Five Thousand

마가복음 Mark 6:30-44

 

30. 사도들이 예수께 모여 자기들이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하니.

The apostles returned to Jesus and told him all that they had done and taught.

31.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

And he said to them, “Come away by yourselves to a desolate place and rest a while. For many were coming and going, and they had no leisure even to eat.

32. 이에 배를 타고 따로 한적한 곳에 갈새

And they went away in the boat to a desolate place by themselves.

33. 그들이 가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이 그들인 줄 안지라. 모든 고을로부터 도보로 그곳에 달려와 그들보다 먼저 갔더라.

Now many saw them going and recognized them, and they ran there on foot from all the towns and got there ahead of them.

3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When he went ashore he saw a great crowd, and he had compassion on them, because they were like sheep without a shepherd. And he began to teach them many things.

35. 때가 저물어 가매 제자들이 나아와 여짜오되, “이곳은 빈들이요, 날도 저물어가니

Now when it grew late, his disciples came to him and said, “This is a desolate place, and the hour is now late.

36.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먹게 하옵소서.

Send them away to go into the surrounding countryside and villages and buy themselves something to eat.

37.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하시니, 여짜오되,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

Then he answered them, “You give them something to eat.” And they said to him, “Shall we go and buy two hundred denarii worth of bread and give it to them to eat?”

38.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가 있는지 가서 알아보라하시니, 알아보고 이르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하거늘

And he said to them, “How many loaves do you have? Go and see.” And when they had found out, they said, “Five, and two fish.”

39. 제자들에게 명하사 그 모든 사람으로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시니

Then he commanded them all to sit down in groups on the green grass.

40. 떼로 백 명씩 또는 오십 명씩 앉은지라.

So that sat down in groups, by hundreds and by fifties.

41.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시매

And taking the five loaves and the two fish, he looked up to heaven and said a blessing and broke the loaves and gave them to the disciples to set before the people. And he delivered the two fish among them all.

42. 다 배불리 먹고

And they all ate and were satisfied.

43. 남은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And they took up twelve baskets full of broken pieces and of the fish.

44.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And those who ate the loaves were five thousand.

 

 

오늘 저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세 가지로 진행합니다.

 

A. 오병이어의 영적 의미

B. 본문의 앞과 뒤 배치구조에서 얻는 메시지

C.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신 참 뜻.

 

 

A. 오병이어 사건의 영적 의미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남은 음식이 광주리로 열두 개나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사복음서 모두에 기록되었습니다. 그만큼 중요한 내용이었습니다. 오병이어 사건은 사복음서 공통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메시야이심을 드러내는 대단히 중요한 사건입니다.

 

사천 명 먹이신 사건도 있습니다. 남아 광주리에 담은 것이 일곱 광주리입니다. 마태복음 15:32-39와 마가복음 8:1-10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적은 음식으로 많은 사람을 먹이신 사건을 모두 합하면 여섯 차례나 등장하는 것입니다.

 

결론으로 말씀드리면 오천 명과 사천 명, 이 두 가지 사건의 영적인 의미는 성만찬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몸과 피를 인간 모두에게 영원한 영의 양식으로 주셨습니다.

 

이 사건의 배경에는 출애굽 광야생활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를 지날 때, 먹을 것이 없어 굶주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여시고 만나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반석을 깨뜨려 물을 내셨고, 이스라엘이 그 물을 마시게 하셨습니다. 이들은 먹고 마셨으며,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경험한 그것을 지금 갈릴리 호수 근처 잔디밭에서 경험했습니다. 5천명이나 되는 수많은 사람들이 오병이어로 충분하게 먹고 배가 불렀습니다. 남은 것을 열두 바구니나 가득 차게 거두었습니다. 이것은 누구도 부족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요한복음은 제6장 전체에 걸쳐 이 사건의 영적 의미를 가장 깊게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Jesus said to them, “I am the bread of life. Whoever comes to me shall not hunger. And whoever believes in me shall never thirst.”

요한복음 John 6:35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당신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써 당신의 몸을 찢어 인류에게 영원한 양식으로 주신 사건입니다.

 

 

B. 배치의 메시지

 

이제 본문을 폭넓게 묵상합니다. 마치 높은 산에 올라 동네를 내려다보는 것처럼 성경을 읽습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이 오병이어 사건이 앞뒤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제 오병이어사건이 앞뒤 사건들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설명합니다.

 

 

헤롯의 잔치

오병이어

물 위를 걸으심

마태복음

14:1-12

14:13-21

14:22-33

마가복음

6:14-29

6:30-44

6:45-52

누가복음

헤롯, “이 사람이 누군가?” 9:7-9

9:10-17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9:18-27

요한복음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5:30-47

6:1-15

6:16-21

 

사복음서가 공통적으로 전하는 메시지는, 오병이어 사건 이전에 예수님이 누구신가하는 질문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마태-마가-누가복음 등 공관복음서는 헤롯의 질문을 주목했습니다. 그 중에 마태-마가복음은 세례요한의 죽음 사건을 상술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성경말씀이 곧 예수님을 증언하는 것임을 드러냅니다.

 

오병이어 이후에, 마태복음, 마가복음, 요한복음 등이 물 위를 걸으심사건을 기록합니다. 거기서 예수님께서 나다!” 라고 선포하십니다. 누가복음의 경우,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물으시고, 당신께서 누구신지 드러내십니다.

 

예수님께서 누구인지 아는 것은 오늘 우리가 안심해야 하는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나다!

 

이렇게 선포하신 주님께서, “너희는 안심하라!” 하십니다.

 

사도 바울이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했던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사자가 전한 말씀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그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가 됩니다. 우리는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립니다.

 

오늘 이 시대, 코로나바이러스로 공포에 떨고 있는 이 시대, 우리가 깊이 새겨야 할 평안의 복음입니다. 예수님께서 누구십니까?

 

 

앞에는 세례요한의 죽음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신 것은 요한이 잡힌 후였습니다.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Now after John was arrested, Jesus came into Galilee, proclaiming the gospel of God, and saying, “The time is fulfilled, and the kingdom of God is at hand. Repent and believe in the gospel!”

마가복음 Mark 1:14-15

 

이제 그 세례요한이 죽었습니다. 주님께서 갈릴리 지역에서 기적을 실시하십니다. 모든 복음서에 공히 기록된 유일한 기적사건, 오병이어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을 기준으로, 그가 선포하여 세상에 소개되셨습니다. 그리고 잡혀 꼼짝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회개와 복음을 선포하심으로써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또한, 이 오병이어 사건은 다음 사건 앞에 있습니다. 다음 사건은 물 위를 걸으심입니다.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어 오셨을 때, 밤 사경쯤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의 성령님께서 물 위에 운행하시던, 곧 창조가 시작되던 때를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떡 떼시던 일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오병이어 사건은 세례요한의 죽음과 천지창조 때의 일을 연상시키시는 물 위를 걸으심 그 중간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로써 이 배치 자체로써 영적인 중요한 메시지가 드러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마가복음을 통해 주시는 메시지를 듣습니다.

 

사도들이 예수께 모여 자기들이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하니, 이르시되, “너희는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

The apostles returned to Jesus and told him all that they had done and taught. And he said to them, “Come away by yourselves to a desolate place and rest a while. For many were coming and going, and they had no leisure even to eat.

마가복음 Mark 6:30-31

 

헤롯의 생일잔치 및 세례요한의 죽음 사건 이전에 열두 제자를 파송했던 일의 결론이 여기 있습니다. 그러니까, 헤롯의 생일잔치와 오병이어 사건을 연결하는 부분이 열두 제자 파송 이후 그들의 보고주님의 배려가 들어 있습니다.

 

특히 주님께서 배려하신 포인트를 주목합니다. 제자들이 식사할 겨를도 없던 것을 파악하셨고, 그들을 쉬게해 주셨습니다. “한적한 곳사막같은 곳입니다.

 

아울러 주님께서 무리들을 배려해 주신 것을 주목합니다. 그들을 푸른 풀밭에 앉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병이어 기적으로써 그들의 주린 것을 채우셨습니다.

 

이 주님의 목회사역의 배경은 출애굽 사건입니다. 애굽에서 430년 간 종살이 하던 그들을 광야로 이끌어 내셨습니다. 그 광야는 쉴 곳입니다. 광야 자체는 죽음의 땅이지만, 주님의 목회로써 새롭게 변화된 광야는 만나가 내리는 곳, 반석이 터져서 샘물 나는 곳입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자리입니다. 무엇보다도 예배의 자리입니다.

 

내 백성을 광야로 가게 하라.

거기서 내게 예배하리라!

 

하나님의 새창조로써 광야가 예배로써 안식할 수 있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또한 시편 23편이 배경입니다. 여호와께서 친히 목자가 되셨습니다. “부족함이 없는양떼입니다. 그리고 푸른 풀밭에 눕게 하십니다. 보십시오. 오늘 본문에서 광야였던 자리가 푸른 풀밭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사역은 계속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어떤 환난이 일어나든지!

 

앞선 사건, 곧 헤롯과 헤로디아 사건으로써 인간은 용서 받지 않고는 죄를 거듭하는 죄인일 뿐임을 드러내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헤롯이 자기가 연 생일잔치는 의로운 자 세례요한을 죽이고 악독한 여자 헤로디아가 수면 위에 드러나는 사건이었는데, 그것은 죽음의 피비린내 나는 잔치였습니다.

 

헤롯은 갈릴리 지역의 부자들권력자들을 초청하여 먹였습니다.

 

음식은 화려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술과 음악과 춤이 있었습니다. 흥에 겨워 헤롯이 자기의 나라 절반이라도 주겠다고 할 만큼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그에 대비하여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로 5천 명을 먹이신 사건은 생명의 잔치로서, 이후 영원한 천국잔치의 모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하고 갈 데 없는 자들을 먹이셨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배를 타고 이동하시는 것을 보고, 달리기를 시작하여, 예수님께서 맞은편에 도착하기 전에 미리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많은 무리가 얼마나 달렸으면 그게 가능할까요? 여기서 무리의 간절함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찬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As a deer pants for flowing streams, so pants my soul for you, O God.

시편 Psalm 42:1

 

앞서 열두 해 동안 혈루병을 앓던 여인이 주님께 나아간 간절함도 비교가 가능합니다.

중풍병 든 친구를 위하여 침상 채 지붕에 올라가 지붕을 뜯어내고 침상을 내려뜨린 친구들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먹이신 음식의 종류를 볼까요? 겨우 보리떡과 생선, 두 가지 음식이었습니다. 음악도 술도 춤도 물론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기는 영적 잔치였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세상의 왕 헤롯은 죄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였습니다. 그가 결국 그 잔치자리에서 실시한 것은 의로운 자 세례요한을 목을 잘라 죽인 일입니다. 쟁반에 얹어 사람들 앞에 전시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의 사슬을 풀어 해방하신” “구주이셨습니다. 당장 먹을 것이 없어 기진하는 사람들을 먹이셨습니다. 충분히 먹고도 남을 만큼 먹이셨습니다. 과연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셨고,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이어지는 사건, 물 위를 걸으시는 사건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영, 곧 성령님의 능력으로써 새 창조를 이루시는 분이심을 드러내십니다.

 

이 중간에 있는 오병이어 사건은 이 둘을 잇는 가교역할을 합니다.

 

죄인으로서 죽을 도리밖에 없는 인생을 새로운 창조의 역사로써 구원하시는데, 예수님께서 당신의 살과 피를 우리에게 양식으로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 이 깊은 뜻을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는 수고하고 먹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에게 내린 형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심으로써, 결국 그들의 노력이 아니라,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게 될 것을 축복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수고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당신을 주셨습니다.

성찬의 가장 소중한 영적인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로 만족함입니다.

 

사람이 예수님으로 만족한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천국의 영생을 이미 누린다는 뜻입니다.

 

영적으로 가장 깊은 뜻이 여기 있습니다.

 

우리가 먹고 마실 것을 준비하는데 시간이 많이 들어갑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5천명의 사람들은 그들의 수고를 먹은 것이 아닙니다. 그들에게서 겨우 오병이어가 나왔을 뿐입니다. 예수님 아니었으면 그들은 기진하여 쓰러졌을 것입니다.

 

첫째로, 이 세상의 잔치는 헤롯의 생일잔치같은 것입니다. 거기는 개인을 높이는 자리입니다. 거짓과 탐욕의 자리입니다. 죄를 반복하고, 더 큰 죄악을 저지르는 자리입니다.

 

이런 자리는 참여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이 가야 할 데가 있고 가지 말아야 할 데가 있습니다. 초대 받았다고 덥석 응했다가, 험한 모습 보고 마는 것입니다.

 

오히려 낮고 천한 데로 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를 떠나 이 세상에 오시지 않았습니까? 물이 낮은 데로 흐르지 않습니까? 우리가 가야 할 곳은 화려한 자리가 아니라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의 자리입니다.

 

둘째로, 오늘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잔치는 오병이어의 잔치입니다.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 당장 오늘 하루 먹을 것이 없어서 하늘만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돌아봅니다. 우리가 재무를 위하여 수고하고 애씁니다. 그러나 재물이 풍성할 때 사람들은 죄 질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오늘까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오면서 이 모든 은혜를 누리고 산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궁핍함 중에 드러납니다.

 

인생을 장미꽃처럼 아름답게 하셨습니다. 장미꽃은 가시가 있습니다. 찔리는 눈물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게 하시고, 그 가슴 아픈 밤을 지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맛보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아무리 뒤져도 겨우 오병이어외에 건질 것이 없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과 함께 하는 인생은 실패가 아닙니다. 오히려 은혜입니다. 거기 주님께서 찾아오시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시며 나타나십니다. 주님께서 물 위를 걸으시는 것은 새 창조입니다. 천지를 지으실 때 하나님의 영수면 위에 운행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나다!”

I Am!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때는 주님께서 계시지 않은 때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계실 때 우리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먹이시기 위해 당신의 몸을 주셨습니다. 몸 버리셨고, 피 흘리셨습니다. 그런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으로 만족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The Lord is my Shepherd. I shall not want.

시편 Psalm 23:1

 

참 사랑은 다른 무엇이 아니라 그가 나와 함께 있는 것으로 만족할 때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양은 목자가 함께 있는 것,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What to eat? What to drink?

 

이런 염려는 주님께서 함께 계실 동안 필요하지 않습니다.

 

오병이어의 진정한 뜻은 성찬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몸과 당신의 피를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사건입니다.

 

광야에 나간 이스라엘을 봅시다. 그들이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를 먹었습니다. 반석에서 난 샘물을 마셨습니다. 이 모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영생의 양식, 영생의 샘물이었습니다.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All all ate the same spiritual food. And all drank the same spiritual drink. For they drank from the spiritual Rock that follwed them, and the Rock was Christ.

고린도전서 1 Corinthians 10:3-4

 

배치의 메시지를 들을 때, 우리는 헤롯-헤로디아가 주관하는 세상 잔치를 떠나, 예수님께서 주관하시는 천국잔치에 참여해야 복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헤롯의 잔치에 세례요한이 죽었습니다. 오늘 오병이어 사건에서 예수님께서 죽으심을 예표 해 보이셨습니다.

 

세례요한은 악한 무리가 저들의 죄악 중에 죽였지만,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셔서 모든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어 가 되게 하신 예수님께서는 당신 스스로 영적 대제자장으로서 당신의 몸을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단번에 드리신 것입니다. 이로써 인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 사함, 곧 구속을 받았습니다!

 

 

C. 우리의 실천: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그런데 오늘 마가복음을 본문으로 읽으면서 우리는 주님께서 주신 두 가지 명령을 주목합니다.

 

첫째는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는 말씀입니다.

 

둘째는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하신 말씀입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You give them something to eat!

 

이것은 나누라!”는 명령입니다.

 

우리 자신이 가난하여 스스로 먹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마음을 나누고 사랑을 나누기로 하면 얼마든지 나눌 수 있습니다.

 

서로 먹으려고 할 때 문제가 발생합니다. 서로 나누려고 할 때는 은혜가 넘쳐납니다.

 

이번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를 맞이하면서 사재기열풍 속에서 인생의 쓴 맛을 경험했습니다. 쇼핑센터 선반에서 한쪽이 모두 빈 것을 보고, 가슴이 쓰렸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이런 어려운 때도 마음을 서로 나누는 성도들을 보면서 기쁘기가 한량이 없었습니다.

 

오병이어 사건은 성만찬 사건의 영적인 그림자로서, 당신의 몸과 당신의 피를 주신 사건입니다.

 

그런데 질문이 생깁니다: 여기서 주님께서는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셨고,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하신 것은, 예수님의 제자들(사도들) 스스로가 예수님의 뒤를 따라 자기들의 몸과 피를 나누어 줄 것을 지시하신 것일까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면서 명령하신 것처럼,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는 이 명령은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 그대로 행동해야 하는 행동지침일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몸과 피를 주실 때, 그것을 나누라는 말씀입니다.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This do in remembrance of Me!

누가복음 Luke 22:19c

 

우리가 성찬식을 거행하면서, 예수님께서 오셔서 당신의 몸을 깨뜨려 우리에게 영의 양식으로 주신 것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당신의 몸을 쪼개어 거기서 나는 피를 참된 음료로 주신 것을 기억합니다. 우리는 이를 실시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몸과 피를 세상에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이 예수님을 바르게 기억하게 해야 합니다.

 

성찬식을 통해 주님을 기억합니다. 이것은 놀라운 은혜의 방식입니다.

 

우리는 매달 첫째 달에 성찬식을 거행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매주 예배 때마다 성찬식의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찬송과 기도, 그리고 설교 중에 성찬의 깊은 뜻을 예배 때마다 실시하고 있으며 그 기억을 때마다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너희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몸과 피를 주신 그대로, 제자들에게 명령하신 것입니다. 제자들도 예수님처럼 살과 피를 나누어 주는 자가 되게 하심입니다.

 

물론 예수님과 제자들의 경우, “영적인” “질적인차이가 존재합니다. 그렇지만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자기들의 것을 주라고 하심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을 준비하실 때 제자들은 아무것도 한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심부름을 했습니다.

 

오늘 그런 점에서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하심은 심부름하게 하심입니다. 제자들이 가서 발견한 것은 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였습니다.

 

이들은 오병이어를 찾아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사람이 5천명이라는 것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먹어야 합니다. 오병이어. 그것이 전체에게 얼마나 되겠는가, 그렇게 물었습니다. 마태, 누가, 요한복음을 차례대로 읽습니다.

 

마태복음:

 

제자들이 이르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이니이다.”

They said to him, “We have only five loaves here and two fish.”

마태복음 Matthew 14:17

 

누가복음:

 

여짜오되, “우리에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으니, 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먹을 것을 사지 아니하고서는 할 수 없사옵나이다.

They said, “We have no more than five loaves and two fishunless we are to go and buy food for all these people.”

누가복음 Luke 9:13b

 

요한복음: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One of his disciples, Andrew, Simon Peter’s brother, said to him, “There is a boy here who has five barley loaves and two fish, but what are they for so many?”

요한복음 John 6:8-9

 

주님께서 가서 알아보라고 하신 것인데, 그 결과는 전체에 비하면 없는 것에 다름이 없는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오천 명을 먹이신 것은 오병이어가 아니라 주님이십니다. 하늘의 문을 여셨고, 하늘의 영의 만나로써 그들을 배불리 먹게 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다 주님께서 준비하셨습니다. 목자는 양의 모든 것을 다 책임지는 것입니다. 양은 100% 수동적입니다. 스스로도 지킬 줄 모를 뿐 아니라, 다른 양들을 살피지도 못합니다. 이럴 경우 양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의존입니다.

 

지금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의존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You give them something to eat!

마가복음 Mark 6:37a

 

이렇게 하셨지만, 주님께서는 그들이 무엇으로도 먹일 수가 없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명령하신 것은 뜻이 있었습니다.

 

스스로는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심입니다.

 

 

결론입니다.

 

오병이어 사건 자체의 영적 의미와, 그 사건의 앞과 뒤 배치를 돌아봄으로써 세상 잔치가 아니라 천국잔치, 두려움이 아니라 안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가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그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지리라.

Behold, the days are coming, declares the Lord God, When I will send a famine on the landnot a famine of bread, nor a thirst for water, but of hearing the words of the Lord. They shall wander from sea to sea, and from north to east; they shall run to and fro, to seek the word of the Lord, but they shall not find it.

아모스 Amos 8:11-12

 

오늘 주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자들이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이 현실이 슬프고 안타깝습니다.

 

 

홍수 때 마실 물이 없습니다. 지금 온 세상에 메시지가 넘쳐납니다. 들을 말, 읽을거리, 볼거리, 엄청난 물량입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주님의 말씀의 메시지가 희박한 때를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목자 없는 양으로 보신 그 무리가 오늘 우리입니다.

 

사실 그때 그 무리들은 육신의 양식을 찾아 헤맸습니다. 예수님의 영적 의미를 깨달아 그렇게 달려 간 것이 아니라, 병이 낫고, 기적이 일어나니까 모여든 것입니다. 오병이어 사건 이후 그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고 달려들었습니다.

 

그러나 이것 보십시오. 결국 그들에게 부족한 것은 말씀양식이었습니다. 진정으로 자기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르게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구원의 참 뜻을 몰랐습니다. 육신이 배가 고프고, 육신이 목마른 줄 알았습니다. 그 깊은 영의 갈망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 아니고는 깨닫지 못하는 자기 현실입니다.

 

이제 우리가 알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로 그들을 먹이신 것은 한 끼 식사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당신의 몸을 찢어 영원한 양식으로 삼으시고, 그 몸에서 나는 피로 영원한 음료를 삼아 주신 것입니다.

 

결국 해변을 달리던 무리들을 가르치신 것은 말씀양식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When he went ashore, he saw a great crowd, and he had compassion on them, because they were like sheep without shepherd. And he began to teach them many things.

마가복음 Mark 6:34

 

여기서 여러 가지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이후에 물 위를 걸으시던 주님께서 주신 메시지 그 자체처럼: “나다!” I Am!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Jesus said to her, “Everyone who drinks of this water will be thirsty again, but whoever drinks of the water that I will give him will never thirsty again. The water that I will give him will become in him a spring of water welling up to eternal life.”

요한복음 John 4:13-14

사마리아 여인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So Jesus said to them, “Truly, truly, I say to you, unless you eat the flesh of the Son of Man and drink of his blood, you have no life in you. Whoever feeds on my flesh and drinks my blood has eternal life, and I will raise him up on the last day. For my flesh is true food, and my blood is true drink.

요한복음 John 6:53-55.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먹고 예수님을 마십니다. 이것 외에 우리에게 만족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예수님으로 만족이 없다면, 그것은 영적으로 심각한 질병이 있는 것입니다. 아직도 세상이 좋다면, 아직도 세상의 돈과 명예가 갈급하다면, 오늘 여기서 우리는 치료 받아야 합니다. 우물가의 여인처럼, 예수님을 따라 해변을 달리는 무리들처럼!

 

이제 우리가 나갈 차례입니다. 우리의 복음 전파는 성찬의 나눔입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전하는 것입니다.

 

묻습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전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For as often as you eat this bread and drink the cup, you proclaim the Lord’s death until he comes.

고린도전서 1 Corinthians 11:26

 

그분께서 죽으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그분께서 죽으셔서 내가 살았습니다. 그분의 몸과 피를 내가 먹고 내가 마신 후에, 내가 살았습니다! 이것은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십자가 앞에서 구원 받은 우리입니다. 우리가 십자가의 복음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우리는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성찬에 참여하는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렇게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죄로 죽을 수밖에 없던 우리가 주님의 죽으심으로써 살았습니다. 예수님의 은혜로 새 생명을 얻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십자가 외에 달리 증거 할 것이 무엇입니까?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But far be it from me to boast except in the cross of our Lord Jesus Christ, by which the world has been crucified to me, and I to the world.

갈라디아서 Galatians 6:14

 

육신의 양식을 따라 해변을 달리던 무리를 변화시켜 복음 전도자의 발걸음이 되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이름을 영원히 찬양 드립니다.

 

거짓된 깨달음으로 교회를 핍박하던 사울의 발걸음을 돌이켜,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참된 복음을 온 세상에 증거 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 찬양 드립니다.

 

육신의 양식을 구하며 지쳤던 우리를, 오늘 코로나바이러스로 멈추어 서게 하시고, 진정한 양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뵙게 하시고, 그분의 죽으심을 깊이 깨닫게 하신, 그 죽으심으로써 거듭나게 하신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을 영원히 찬양합니다. 아멘. 아멘.

 

 

인생의 광야. 그 거친 땅으로 인도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안식하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을 사역으로부터 쉬게 하셨고, 무리들을 그 목자 없는 양 같은인생의 고난으로부터 쉬게 하셨습니다. 광야. 광야에 나오게 되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고난과 불확실함과 무기력함, 이 모든 것은 악한 자의 손에서 벗어난 자유와 해방의 첫 번째 현상입니다. 애굽을 벗어나 광야로 나온 이스라엘을 생각하십시오!

 

이 광야가 푸른 풀밭으로 변한 것은, 그 풀밭에 삼삼오오 자리 잡고 기대어 누워 음식 먹을 수 있게 하신 것은, 오직 우리 참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에게 참 목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 우리를 여기로 인도해 내신 분은 우리 사랑의 주님 예수님이십니다.

 

지금은 성찬의 때, 예배의 때입니다. 주님의 죽으심으로써 가능해진 이 기적을 맛볼 때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죽으심을 세상에 전파할 때입니다. 아멘.

 

 

기도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 오늘 예수님의 죽으심을 깊이 묵상합니다. 예배 중에 성찬에 참여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참여하게 하옵소서. 죄에 대하여, 세상에 대하여 십자가에 자신을 못 박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으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죽으심을 증거 하는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