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621

금문교회 주일예배 GGPC Sunday Worship

조은석 목사 Rev. Eun Suk Cho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For This Statement, You May Go Your Way!

마가복음 Mark 7:24-30

 

24.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방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더라.

And from there he arose and went away to the region of Tyre and Sidon. And he entered a house and did not want anyone to know, yet he could not be hidden.

25. 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아래에 엎드리니

But immediately a women whose little daughter had an unclean spirit heard of him and came and fell down at his feet.

26.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내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Now the woman was a Gentile, a Syrophoenician by birth. And she begged him to cast the demon out of her daughter.

27.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And he said to her, “Let the children be fed first, for it is not right to take the children’s bread and throw it to the dogs.”

28.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But she answered him, “Yes, Lord. Yet even the dogs under the table eat the children’s crumbs.”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And he said to her, “For this statement, you may go your way. The demon has left your daughter!”

30.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

And she went home and found the child lying in bed and the demon gone.

 

 

오늘이 아버지날(Father’s Day)입니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를 바랍니다.

 

요게벳(Jochebed)의 노래를 듣습니다. 모세의 어머니가 아이를 낳고, 그를 숨겨 기르다가,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되자, 갈대상자(Hebrew, teba/reed box)를 짜서 아이를 넣고 나일강에 두는 장면이 그 배경입니다. 요게벳의 남편, 그 아이의 아버지는 어디 있었을까요?

 

오늘 이 여인이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 그 간절함이 특이합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마을로 오셨다는 소문을 듣자마자 예수님 발아래 엎드렸습니다. 그 여자의 남편은 어디 갔을까요?

 

오늘 아버지날에 아버지의 존재감이 가정 안에서 영적으로 확실하게 드러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남편의 부재에도 오히려 더욱더 간절함으로 자녀를 주님께 맡겨 드리는 어머니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말씀의 순서입니다.

 

1. 예수님께서 두로와 시돈 지역으로 들어가시다

2. 수로보니게 여인이 주님께 나오다

3. 예수님께서 그 여인의 딸을 고쳐주시다

4. 구원은 이스라엘로부터 시작하지만, “동시에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된다

5. Case Law: 당신은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주님 앞에 나가면 예수님께서 반드시 당신의 자녀를 치료하신다

6. 가정을 회복시키신 예수님

 

오늘 말씀은 네 가지를 주목합니다. 그 첫째는, 주님께서 두로와 시돈 지역으로 들어가신 것입니다.

 

이 사건은 마가복음 7:1-23, 정결부정의 논쟁이 있던 직후였습니다. 유대인들은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부정하게 만든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이방인들을 더럽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속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의 속에 무엇이 들었는가를 지적하셨습니다.

 

둘째는, 수로보니게 여인입니다. 이 여인은 특별한 사람입니다. 1. 그가 딸을 사랑하고, 딸이 귀신에게서 놓임 받기를 간절히 바란 점입니다. 2. 그가 예수님을 알아보고, 주님께 나아온 점이 특이합니다. 3. 예수님께서 그를 시험하셨는데, 그는 말로써 주님을 감동시켜드렸습니다.

 

셋째는, 예수님이십니다. 1. 예수님께서 두로 지방으로 가셨습니다. 2. 그리고 숨기려 하셨습니다. 3. 그런데 수로보니게 여인이 방문하여 딸에게서 귀신 쫓아주시기를 간청했습니다. 4. 주님께서 자녀의 떡과 개들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5. 그런데 그 여인이 지혜로운 대답을 했습니다. 6. 예수님께서 그 말씀을 듣고 그 딸을 그 자리에서 고쳐주셨습니다.

 

넷째는, 구원은 이스라엘이 먼저입니다. 그리고 이방인에게로 갑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우수해서라거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특별히 더 사랑해서가 아닙니다. “파수꾼처럼, 먼저 구원의 소식을 받은 사람이 있고, 그가 전파하여 모든 사람이 구원의 자리에 나아오게 하셨습니다. 이런 점에서 이스라엘은 파수꾼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구원이 완성되기 전에도 이미이방인 구원의 역사는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이 자녀들이 밥 다 먹고 난 후가 아니라, 밥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는” “구원의 동시적 사건을 고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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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로, 예수님께서 이방인의 지역, 두로와 시돈으로 가셨습니다. 유대인의 땅을 떠나 이방인의 땅으로 가셨습니다.

 

이 땅은 이방신이 극성한 곳입니다. 이세벨이 이 지역 출신이었습니다. 여기는 또한 무역항구로서 그 경제적으로 풍부한 곳이었습니다. 그만큼 인본주의와 세속주의가 크게 발달했습니다.

 

특히 이세벨을 주목합니다. 그가 바알신과 아세라신을 이스라엘 땅에 가지고 와서, 온 이스라엘이 바알신을 섬기게 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선지자들을 죽였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그 바알 선지자들과 대결해서 이겼지만, 이세벨의 복수를 피해 달아나야 했습니다.

 

이세벨이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한지라.

The Jezebel sent a messenger to Elijah, saying, “So may the gods do to me and more also, if I do not make your life as the life of the one of them by this time tomorrow.”

열왕기상 1 Kings 19:2

 

그 위대한 엘리야가 이세벨을 피해 광야로 나갔지 않았습니까?

 

유대인의 눈으로 볼 때 두로와 시돈과 이렇게 우상숭배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그런데 이 지역은 유대인의 눈으로는 그 자체로 정결하지 않은 지역입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도 상대하지 않으려 했지만, 이런 이방 땅도 일부러 방문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사마리아도 찾아가셨고, 이방 땅 두로와 시돈도 방문하셨습니다.

 

더구나 여기서 만나게 될 사람은 더러운 귀신들린 어린 딸을 둔 어떤 여인입니다.

 

바다 건너, 풍랑을 헤치고, 마침내 도착한 땅에서, 무덤에 거주하면서, 괴성을 지르고, 돌로 자기 몸을 해치고 있던 더러운귀신 들린, “레기온귀신에 사로잡힌 사람을 만나러 가신 것과 같습니다. 왜 하필 그런데, 왜 하필 그런 사람을?

 

신앙의 기득권을 가졌다고 생각하던 유대인에게는 안타까운 일입니다.

오늘 이 문제는 우리 오래 된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됩니다. 신앙이 무슨 집안내력이나 전통혹은 가보처럼 여겨지는 것은 안 될 말입니다.

 

장소가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이 문제입니다. Humans matter! 믿는 자가 구원받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지역을 찾아가십니다. 거기서 사람을 만나셨습니다. 믿는 사람을!

 

그 여자는 이름이 없습니다. She was un-named. 그러면 인격도 없습니까?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딸이 더러운 귀신 들렸습니다. 그 여자 자신도 이방인의 땅에서 와서 또 다른 이방인의 땅에 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남편도 앞장서 주지 않습니다. 인격이 있어도 사람들이 그 여자를 사람으로 대해주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 여자의 이름이 굳이 여기 기록되지 않았을 수도 있어요.

 

그러나 그 이름 없는 여자가 예수님 앞에 섰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를 달리대해 주셨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전혀 달리 대해 주셨습니다. 이방 여자라고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딸이 귀신 들렸다고 함부로 대하지 않으셨습니다. 남편이 챙겨주지 않는다고 우습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이 여자를 만나러 두로와 시돈으로 가신 것입니다. 다른 누구가 아니라 오직 이 여자를!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이 여자를 사람으로 대하신 것입니다.

 

이 여자가 예수님 앞에, 그분의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자기의 딸에게서 귀신을 쫓아내 주기를 간구했습니다.

 

성경 자체가 증언하는 바, 예수님 앞에 엎드리기 전에 이미 소개된 그대로를 가지고 이 여자가 예수님께 엎드려 드린 간구를 재구성해 봅니다.

 

저는 어린 딸이 있습니다. 더러운 귀신이 들렸습니다. 저는 주님을 처음 뵙습니다. 소문을 들었습니다. 저는 헬라인입니다. 저는 수로보니게 족속입니다. 저의 딸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저의 딸에게서 귀신을 쫓아내 주십시오.

 

, 그러면 우리 주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셨겠습니까? 죄인 한 사람이 돌아오는 것이 기쁘다고 하셨지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이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Just so, I tell you, there will be more joy in heaven over one sinner who repents than over ninety nine righteous persons who need no repentance.

누가복음 Luke 15:7

 

그런데 이것 보십시오! 정말 놀랍게도 주님께서 그 여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And he said to her, “Let the children be fed first, for it is not right to take the children’s bread and throw it to the dogs.”

마가복음 Mark 7:27

 

얼마나 차가운 말씀입니까?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 것이다! 그러면 지금 이 여자와 여자의 딸은 자녀가 아니라는 말씀이지요?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않다! 그러면 더구나 이 여자의 딸이 개들중에 속한다는 말씀 아닌가요? 이런 말씀이 또 어디 있습니까?

 

설마 예수님께서 지금 농담 하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절박한 여인 앞에, 더구나 주님의 발 앞에 엎드려 사정하는 그 여자 앞에, 그런 농담을?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결코 농담을 하지 않으십니다. 이 말씀의 뜻을 바로 알아야 하겠습니다.

 

1. 유대인 먼저. 이것은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입니다.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You worship what you do no know. We worship what we know. For salvation is from the Jews.

요한복음 John 4:22

 

바울도 그렇게 순서를 말했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For I am not ashamed of the gospel, for it is the power of God for salvation to everyone who believes, to the Jew first and also to the Greek.

로마서 Romans 1:16

 

2. 자녀와 개들. 성경은 개들을 결코 오늘날 애완동물”(pets) 개념으로 알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바깥사람들, 곧 이방인들로 묘사한 것은 성경에 여러 차례 있습니다.

 

토한 것을 먹습니다. 잠언 26:11.

 

시체를 먹습니다. 왕상 14:11; 16:4; 21:19. 왕하 9:10, 36. 시편 68:23.

 

창녀의 화대나 개처럼 번 돈은 예물로 드릴 수 없습니다. 신명기 23:18.

 

토했던 것에 돌아가고,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눕습니다. 베드로후서 2:22.

 

이 개로 표상됩니다. 시편 22:16, 20.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도 개로 표상됩니다. 요한계시록 22:15.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을 알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자녀로 삼아주시기 이전에는 다 개들과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의 구원이 선결문제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방인 중의 이방인인 수로보니게 여인, 고향을 떠나 또 다른 이방인의 땅 두로와 시돈에 살고 있는 이 여인의 딸, 그것도 더러운 귀신이 들린 아이라니!

 

예수님의 말씀은 전혀 상식을 넘어서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께서 거기서 멈추시려고그 말씀 하신 것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그 여자를 완전히 뿌리치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님을 압니다. 도리어 이 여자에게 믿음을 심어주시려고 영적으로 도전하고 계신 것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Let us fix our eyes upon Jesus, the author and the perfector of the faith!

히브리서 Hebrews 12:2a

 

영적 도전시험이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그런데 넘어지게 하시는 시험이 아닙니다. 아브라함 때처럼 믿음을 더하시려는 시험입니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Let no one say when he is tempted, “I am being tempted by God.” For God cannot be tempted with evil. And he himself tempts no one.

야고보서 James 1:13

 

주님께서는 이 여인의 믿음을 더하시고 계십니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지금 주님께서 당신의 발 아래 엎드린 이 여인이, 결국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세요, 주님?

 

이 여자는 어이가 없어서 주님을 올려다보았을까요? 경우는 아니면 다음의 말 그대로, “옳으신 말씀이며 지당하신 말씀을 들었고, 그렇지만, 자기는 그보다 더 큰 마음이 있음을 예수님께 아뢰려고 작심한 것일까요? 우리는 모릅니다. 다만 이 때 이 여자가 입을 열었다는 것뿐입니다.

 

이 일에 주님께서 작용하신 것은 분명합니다. 그 여자를 찾아서 두로지방으로 가신 주님께서. 그리고 그 여자가 당신의 발아래 엎드리는 것을 허락하신 주님께서!

 

둘째로, 수로보니게 여인입니다.

 

이 여자가 주님께 나아갔습니다. 더러운 귀신 들린 딸 아이를 집에 두고 주님께 나아갔습니다. 아이를 집에 두었다고 버려두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주님의 손에 맡겨드린 것입니다. 아이를 주님께 맡기고 주님께 달려 나간 것입니다.

 

수많은 믿음의 어머니들이 병이 들고 문제가 생겨 고통 하는 자식들 두고 주님께 나아갑니다.

 

이르되, “아이가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하고, 화살 한 바탕 거리 떨어져 마주 앉아 바라보며 소리 내어 우니, 하나님이 그 어린아이의 소리를 들으셨으므로.

Then she went and sat down opposite him a good way off, about the distance of a bowshot, for she said, “Let me not look on the death of the child.” And as she sat opposite him, she lifted up her voice and wept.

창세기 Genesis 21:16-17a

 

병든 아이를 두고 새벽기도에 나온 어머니. 그는 아이를 주님의 손에 맡겨드린 것입니다. “참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손에.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이 다 수로보니게 여인 같으면 좋겠습니다. 어머니가 자식을, 그것도 딸을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의 경우 대단히 특별합니다. 그 특별함은 여러 가지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그녀의 지혜로운 말에 있습니다. 주님의 마음을 움직여 드린 말입니다.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But she answered him, “Yes, Lord. Yet even the dogs under the table eat the children’s crumbs.”

마가복음 Mark 7:28

 

이 말이 중요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자의 말을 들으시고 그 자리에서 그 딸을 고쳐주셨습니다.

 

그 여자의 말을 들으시고!

 

여기 보십시오.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And he said to her, “For this statement, you may go your way!

마가복음 Mark 7:29a

 

이 말을 하였으니!” For this statement!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의해 움직여지신 걸까요? 아닙니다. 본래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이미 이방인에게 그 복음의 빛이 비춘 것입니다. 아니, 구약에도 벌써 그 빛이 전해졌습니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애굽에 알게 하시리니, 그날에 애굽이 여호와를 알고 제물과 예물을 그에게 드리고 경배할 것이요, 여호와께 서원하고 그대로 행하리라. 여호와께서 애굽을 치실지라도 치시고는 고치실 것이므로 그들이 여호와께로 돌이올 것이라. 여호와께서 그들의 간구함을 들으시고 그들을 고쳐 주시리라.

And the Lord will make known to the Egyptians, and the Egyptians will know the Lord in that day and worship with sacrifice and offering, and they will make vows to the Lord and perform them. And the will strike Egypt, striking and healing, and they will return to the Lord, and he will listen to their pleas for mercy and heal them.

이사야 Isaiah 19:21-22

 

그날에 이스라엘이 애굽 및 앗수르와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 주시며 이르시되, “내 백성 애굽이여, 내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지어다하실 것임이라.

In that day Israel will be the third with Egypt and Assyria, a blessing in the midst of the earth, whom the Lord of hosts has blessed, saying, “Blessed be Egypt my people, and Assyria the work of my hands, and Israel my inheritance.”

이사야 Isaiah 19:24-25

 

그런데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런 뜻을 알지 못하고, 사마리아를 배척하고, 이방인을 멸시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방지역을 찾아가셨고, 거기서 자기 딸로 인하여 가장 슬픈 여인을 만나셨습니다.

 

이로써 구원의 동시적 성격이 드러났습니다. , 유대인이 모두 구원받기 전에 이방인의 구원이 이미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찾아가심으로써!

 

혹자가 오해하듯이 그 이방인 여자가 주님께 간청을 드림으로써, 예정에도 없던 이방인의 구원사역이 시작된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구원을 먼저 이루시고 그 이후에야 이방인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인데, 그 스케쥴을 이 여자가 바꾼 것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 그러하고, 구약성경에 이미 모든 것을 예정하셨더라도, 그리고 예수님께서 지금 두로와 시돈 지방을 일부러방문하셔서 이방인 구원사역을 시작하시더라도, 이 여자의 특이한 믿음은 결코 땅에 묻혀서는 안 됩니다.

 

여기서 이 여인이 특히 예수님을 주여라고 주님을 ”(Lord)로 부른 것이 특별합니다. 마가복음에 유일하게 사용된 이 칭호를 바로 이 이방 여자가 불렀습니다. 폭넓은 의미에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의심하고 멸시하는데, 이방인들이 주님을 인정합니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백부장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 했습니다.

 

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하고

Now when the centurion saw what had taken place, he praised God, saying, “Certainly this man was innocent!”

누가복음 Luke 23:47

 

이 여자는 수로보니게(Syro-phoenician) 지역 출신입니다. 시리아 지역입니다. 그 여자는 딸과 함께 두로와 시돈에 와서 살았습니다. 바알과 아세라 같은 강력한 이방문화와 종교에 노출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 앞에 와서 주님으로 고백한 것은 특기합니다.

 

비록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에는 결코 견줄 수가 없지만, 이 여자의 경우 간절함이 주목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또한 기억해야 합니다.

 

이 여자는 또한 비교적 젊은 사람입니다. 어떻게 아는가 하면, “어린 딸을 두었다는 점입니다. 그런 젊은 여자가 이런 지혜가 있는가, 놀라운 일입니다.

 

어떤 70 넘은 집사님이, 자기 어렸을 때를 기억했습니다. 운동회 때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한 어머니가 동네 사람들에게서 음식을 얻어다가 자기를 먹였다지요. 그것을 기억하면서 친교실에서 대성통곡했습니다. 다들 무슨 일 난 줄 알았어요! “그때 우리 어머니는 30대 젊은 여성이었어요! 세상에 그 젊은 여자가 창피한 줄도 모르고-!”

 

주님께 나아가는 자는, 하나님의 성령에 감동을 받습니다. “성령님께서 말하게 하심을 따라말하는 자가 됩니다. 이런 점에서 그녀의 말은 그녀 자신의 지혜라기보다는 성령님을 의지하여 한 말입니다.

 

개인적으로 말하면 예수님의 시험은 대단히 아픈 말씀입니다. “자녀라는 비유를 드셨습니다. 이방인의 자녀들은 라는 뜻 아닙니까? 어떻게 보면 인종차별처럼 들립니다. 이것은 테스트였습니다. 그 여자에게 믿음이 있는가, 알아보신 것입니다.

 

그리고 자녀라는 비유는 이미 유대인들에게서 보편적인 생각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생각을 활용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 당신의 뜻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두로와 시돈을 찾아가셨습니다. 목회의 목적이 아니라면 왜 거기를 가셨겠습니까? 무엇보다도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세상은 이스라엘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입니다. 온 세상이 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에 대하여 이 여인의 말은 지혜로웠습니다. 성경에 이런 지혜의 여인들이 있습니다.

 

분에 가득하여 복수의 칼날을 갈던 다윗을 찾아갔던 여인이 있습니다. 그 문제의 나발, 그의 아내입니다. 여자의 이름은 아비가일(Abigail)입니다. 선물을 가지고 와서 발 앞에 엎드린 다윗이 그 여자에 대하여 한 말입니다.

 

다윗이 아비가일에게 이르되, “오늘 너를 보내어 나를 영접하게 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또 네 지혜를 칭찬할지며, 또 네게 복이 있을지로다. 오늘 내가 피를 흘릴 것과 친히 복수하는 것을 네가 막았느니라.”

And David said to Abigail, “Blessed be the Lord, the God of Israel, who sent you this day to meet me! Blessed be your discretion, and blessed be you, who have kept me this day from bloodguilt and from working salvation with my own hands!”

사무엘상 1 Samuel 25:32-33

 

리브가의 지혜입니다. 아브라함의 종만 아니라 그의 가축들도 발견하고 물을 먹였습니다.

 

마시게 하기를 다하고 이르되, “당신의 낙타를 위하여서도 물을 길어, 그것들로 배불리 마시게 하리이다.”

When she had finished giving him a drink, she said, “I will draw water for your camels also, until they have finished drinking.”

창세기 Genesis 24:19

 

이 귀한 여인이 말년에 그 남편이 하나님의 뜻과 반대로 에서에게 장자의 명분을 주려 할 때, 야곱을 대신 보내에 그 축복을 받게 하지 않았습니까? 언쟁 없이 자연스럽게 남편이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아들을 축복하도록!

 

에스더의 지혜입니다.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I and my young women will also fast as you do. Then I will go to the king, though it is against the law, and if I perish, I perish!

에스더 Esther 4:16b

 

마리아의 지혜입니다.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And Mary said, “Behold, I am the servant of the Lord. Let it be to me according to your word!” And the angel departed from her.

누가복음 Luke 1:38

 

 

셋째로, 예수님께서 그 여인의 딸을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두로와 시돈 지방에 가셨습니다. 거기서 아무도 모르게 하려고 하셨습니다. He did not want anyone to know. Yet he could not be hidden. 그러나 사람들이 알았습니다.

 

왜 두로와 시돈에 가셔서 당신을 숨기려 하셨을까요? 이것도 테스트입니다. 사람들은 주님께 나아왔습니다.

 

그중에서 한 여인을 주목하셨습니다. 귀신 들린 딸을 둔 여자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And he said to her, “Let the children be fed first, for it is not right to take the children’s bread and throw it to the dogs.”

마가복음 Mark 7:27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자녀들에게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기꺼이받았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배척하고 핍박했습니다.

 

그런데 개들에 해당하는 이방인들, 그중에 이 수로보니게 여인이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치유의 은혜를 간구했습니다.

 

이 엄청난 아이러니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선교지에서는 말씀의 즉각 순종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정작 본토에서는 교만하기가 이를 데 없습니다.

 

여기서 이 여인은 자녀개들비유를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그것이 자기 딸이 고침 받는 데는 방해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동시에 개들이 먹을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상에서 부스러기가 떨어지는 것을!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But she answered him, “Yes, Lord. Yet even the dogs under the table eat the children’s crumbs.”
마가복음 Mark 7:28

 

바로 그 자리에서 예수님께서 그 여자의 딸을 고치셨습니다. 그 여자가 더 이상 딸로 인하여 고통당하며 괴로워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보십시오. 원격치유입니다. Healing from distance. 현장에 가지 않으시고 그 자리에서 먼 데 있는 사람을 고치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8:5-13에 보니, 백부장이 예수님께 나와, 중풍병으로 몹시 괴로워하는 자기 하인을 고쳐달라고 간구합니다.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I will come and heal him!

마태복음 Matthew 8:7

 

그러나 그가 말씀드립니다.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리하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But the centurion replied, “Lord, I am not worthy to have you come under my roof, but only say the word, and my servant will be healed.”

마태복음 Matthew 8:8

 

마가복음에서 유일하게 나타나는 이 사건입니다. 그러나 이것 보십시오. 사실은 주님께서 그 딸을 찾아가셨습니다.” 원격이기는 하지만,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여인을 만나고 계시지만, 그 딸을 보신 것입니다. 귀신을 쫓아내 주셔야 할 그 문제의 사람은 그 어린 딸 아이였습니다.

 

참고로, “먼 거리부정함과 통하는 개념입니다. 이스라엘 중심에서 볼 때, 먼 나라는 부정한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미치지 않는.

 

그러나 그것은 오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땅 끝까지 그 복이 미칠 것을 예고하셨습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I will bless those who bless you, and him who dishonors you I will curse, and in you all the families of the earth shall be blessed.

창세기 Genesis 12:3

 

넷째로, 구원은 이스라엘이방인에게 동시적 사건이 되었습니다. 이 일에는 이스라엘의 불신내지 유대인들의 거부가 동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바울은 유대인에게 먼저, 그리고 이방인에게 나중이런 순서를 지켰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핍박하고, 복음을 거절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방인에게 가는 이방인의 사도 사역을 실시했습니다. 물론 주님께서 바울을 부르셨을 때 이미그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나 로마서에 따르면, 끝내 이스라엘이 회복될 것입니다. 그 순서가 바뀐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서 시작하였으나 이방인을 거쳐 다시 이스라엘의 구원 순서로 온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얼마나 완악한가를 보여줍니다. 이스라엘뿐입니까? 먼저 믿었다는 사람들이 보이는 보편적인 행태입니다.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So the last will be first, and the first last.

마태복음 Matthew 20:16

 

우찌무라 간조오는 <로마서 강해>에서 일본이 중국이나 한국보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였으나, 먼저 된 일본이 나중 되고, 나중 된 한국이나 중국이 먼저 될 것을 예고했습니다.

 

미국이 선교사를 세계에 파송하는 나라지만, 이제 도리어 미국 자체가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선교사들이 미국에 들어와 복음을 전파해야 하는 상태로 되어가고 있습니다. 슬픈 일이지만, 현실입니다.

 

이스라엘과 유대인이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그들이 자랑하고 있는 동안 복음전파가 중단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을 그들이 막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의 경우 주님께서 이렇게 비판하셨습니다.

 

다섯째로, 수로보니게 여인의 경우는 케이스 로”(Case Law)입니다. 대법원 판례처럼, 이 경우에 해당하는 모든 사람에게 예수님께서 같이 대하여 주십니다. 이 말씀은 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신실한 약속입니다.

 

1. 당신의 자녀를 사랑하십시오.

 

2. 예수님께서 당신의 자녀를 고치실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십시오.

 

3. 어떤 난관이 있더라도 주님께 나아가기를 멈추지 마십시오.

 

 

다섯째로, 예수님께서 이미당신의 곁에 오셨다는 것을 아십시오. 그리고 고치시고 구원하시려고 오셨다는 것을 아십시오.

 

여기 이 여인의 은 여러분 자신을 말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아내, 여러분의 남편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형제, 여러분의 자매일 수도 있습니다. 그 어떤 경우라도, 여러분의 삶을 평안하지 못하게 하고, 고통 중에 괴롭게 하는 그 모든 문제를 주님께 가지고 오십시오. 나는 바로 오늘,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찾아오셨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이미 오신 예수님께서 초청하십니다.

 

내가 스무 살 때입니다. 군대 갔던 친구가 외박을 나왔습니다. 소위 베스트 프랜드(best friend)였습니다. 저녁을 같이 먹었습니다. 무슨 걱정이 있는 것 같았는데, 끝내 말을 꺼내지 않았습니다. 눈발이 내리는 밤길을 걸어 그는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튿날 부대로 돌아갔고, 다음 날 새벽에 자살했습니다. 그가 걸어갔던 그의 집 쪽으로 걸어가는 한 시간 동안 생각이 참 많았습니다. 그날 저녁 먹을 때 세상 이야기 대신 성경 읽고 기도를 해 주었더라면! 그 때 그 친구의 어머니가 맨발로 뛰어나와 내 아들 친구를 내가 왜 못 만나!” 나를 부둥켜안고 울 때, 그 때 예수님 복음을 전했어야 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Come to me, all who labor and heavy laden. And I will give you rest.

마태복음 Matthew 11:28

 

내가 스물세 살, 철책선 군대교회 전도사로 사역할 때입니다. 차로 한 시간 거리에서 근무하던 내 친구가 자살했습니다. 3일 전에 우리는 통화했습니다. 그가 교회로 나와 예배드릴 수 있었더라면 그는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때 우리 교회 정문 위에는 바로 이 말씀 간판이 있었습니다. 그 노래도 잘하고 남을 잘 챙기던 그 친구가 예수님의 말씀을 그 귀로 듣고, 그 마음에 새겼더라면!

 

참으로 가슴 아프고 괴로운 일입니다.

 

내 후회는 내가 친구들을 예수님께서 인도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입니다. 나는 이 자책감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나를 만난 사람들은 내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만나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 오늘도 그것이 나의 목회의 길입니다.

 

오늘도 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절망의 길에서 방황하는 것을 봅니다. 그들을 찾아가시는 예수님을 오늘 소개합니다. 오늘 이 설교를 듣는 여러분을 찾아가셨습니다.

 

나는 이것이 여러분의 결심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을 만난 사람은 여러분 안에 계신 예수님을 뵙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빛이 되는 삶입니다. 그것이 맛을 지닌 소금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You are the salt of the earth, but if salt has lost its taste, how shall its saltiness be restored? It is no longer good for anything except to be thrown out and trampled under people’s feet.

마태복음 Matthew 5:13

 

그것이 예수님의 향기를 내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지금 만난 그 사람이 궁금하지 않습니까? 그가 빛을 지닌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이 선교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회복됩니다. 지금 두로와 시돈 지방을 찾아가신 예수님. 그 여자 앞에 당신을 드러내신 예수님. 그리고 그 여자가 자기의 문제를 예수님께 드리고 엎드려 간구하게 하신 예수님.

 

그 어머니는 그 딸을 고쳤습니다. “더러운 귀신에 붙들려 그 어린 생명이 아름답고 귀하고 사랑받는 삶이 아니라 모두가 피하는 인생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예수님을 만났고, 그 길로 그 어린 딸이 나았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딸을 위하여 예수님께 나아가셨습니까?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For we are the aroma of Christ to God among those who are perishing, to one of fragrance from death to death, to the other a gragrance from life to life. Who is sufficient for these things?

고린도후서 2 Corinthians 2:15-16

 

당신을 만난 사람이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당신을 만나고 절망했다면, 당신은 책임이 있습니다. 아니 당신에게 어떤 소망을 걸고 찾아왔으나 말도 꺼내지 못하고 돌아섰다면 그건 당신 책임입니다.

 

인생은 그렇게 녹녹하지 않습니다. 영적 전쟁터입니다. 악한 마귀와 늘 싸우는 전쟁입니다. 이겨야 합니다. 아니면 집니다.

 

오늘 당신은 예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 그 예수님께서 당신을 찾아오셨습니다. 오늘 이 예배를 통해,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 당신의 마음에 들어오셨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십시오.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그대로 살아가십시오. 그것이 진실한 그리스도인의 길입니다.

 

 

여섯째로, 마지막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정을 회복시켜주셨습니다.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

And she went home and found the child lying in bed and the demon gone.

마가복음 Mark 7:30

 

여자는 집에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침상에 누운 것을 보았습니다. 귀신이 나갔습니다. 이제 비로소 집이 집처럼 되었습니다!

 

딸이 더러운 귀신 들린 가정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런데 이제 그 딸이 반듯하게 침상에 누워 있습니다. 고단했던 모양입니다.

 

가정이 회복되었습니다. 침대에 다가가 딸을 끌어안는 이 여인을 생각해 보십시오. 어머니 노릇을 하였습니다. 자기 지역에 찾아오신 예수님 소문을 들었고, 그 예수님께 나아가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발견한 것. 사실 예수님께서 자기 어린 딸을 찾아오셨다는 것입니다. 원격치료. 이것은 돌보심 없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사람보다 먼저, 이미 찾아가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의 손으로 치유 받은 딸을 만나는 어머니!

 

어머니. 아버지의 존재감이 없는 때에도 자녀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요게벳처럼.

 

아버니. 오늘 믿음의 아내를 둔 여러분은 그에 걸맞는 믿음을 가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가정의 제사장으로서 가정을 주님께 인도할 수 있는 믿음의 조상이 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저희를 찾아오셔서, 저희 딸, 저희 아들을 고쳐주신 주님께 찬양 드립니다. 오늘 저희가 예수님을 만난 이후, 예수님의 사람으로서, 예수님의 향기를 세상에 전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