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628

금문교회 주일예배 GGPC Sunday Worship Service

조은석 목사 Rev. Eun Suk Cho, Pastor

 

에바다! Ephphatha!

마가복음 Mark 7:31-37

 

31. 예수께서 다시 두로 지방에서 나와 시돈을 지나고, 데가볼리 지방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시매

Then he returned from the region of Tyre and went through Sidon to the Sea of Galilee, in the region of the Decapolis.

32. 사람들이 귀먹고 말 더듬는 자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And they brought to him a man who was deaf and had a speech impediment, and they begged him to lay his hand on him.

33.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And taking him aside from the crowd privately, he put his fingers into his ears, and after spitting touched his tongue.

34.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And looking up to heaven, he sighed and said to him, “Ephphatha,” that is, “Be opened!”

35.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여졌더라.

And his ears were opened, his tongue was released, and he spoke plainly.

36. 예수께서 그들에게 경고하사,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되, 경고하실수록 그들이 더욱 널리 전파하니

And Jesus charged them to tell no one. But the more he charged them, the more zealously they proclaimed it.

37. 사람들이 심히 놀라 이르되, “그가 모든 것을 잘 하였도다. 못 듣는 사람도 듣게 하고, 말 못하는 사람도 말하게 한다하니라.

And they were astonished beyond measure, saying, “He has done all things well. He even makes the deaf hear and the mute speak.”

 

 

지난 목요일, 우리는 한국전쟁 70주년 기념일을 지냈습니다. 70년이 지난 이후 우리는 아직도 전쟁의 공포에 시달립니다. 주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약속하신 그대로, 70년 후에 회복하시리라는 약속을 믿고 기도드립니다. 주님께서 한반도에 평화를 주시기를!

 

오늘도 말씀의 주제는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방인 지역을 찾아가셨습니다. 갈릴리 해변에 가까운 데가볼리입니다. 이방인 열 개의 도시들입니다. 거기서 어떤 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그 고치시는 장면을 볼 때, “진정한 사랑아니면 결코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자세를 보여주셨습니다.

 

그 사람을 고치신 주님께서 오늘 우리를 고치십니다. 그 사람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바로 당신입니다.

 

묻습니다:

 

당신은 귀가 열렸습니까?

소리를 잘 알아듣습니까?

새 소리, 바람 소리, 풀벌레 소리, 그런?

사람의 소리는 어떻습니까?

진심으로 아껴 하는 말을 귀담아 듣습니까?

부모님 소리, 아내의 소리, 자녀의 목소리?

 

하나님의 음성은 어떻습니까?

언제나 말씀하시는 그 말씀을 들으십니까?

그 말씀 들으러 광야로 나가십니까?

하나님께서 그 말씀 주시러 광야로 이끌어내실 때 순종하십니까?

 

계속 묻습니다:

 

당신의 입은 어떻습니까?

혀가 바르게 움직여, 바른 소리를 냅니까?

마땅히 해야 할 음성을 냅니까?

자기 목소리가 아니라 성령님께서 은혜로 허락하신 그 거룩하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그래서 적어도 몇 사람에게는 그리운 목소리를?

 

귀와 혀가 문제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예수님께서 귀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고치셨는데, 이제 당신 차례입니다.

 

오늘 말씀은 주제가 에바다!”입니다. 우리가 귀가 닫혀 듣지 못하고 입이 닫혀 말하지 못하던 것을 주님께서 열어주심입니다

 

말씀의 순서는 이렇습니다.

 

1. 예수님께서 데가볼리 지방으로 가셨습니다.

2. 사람들이 듣지 못하고 말이 어눌한 사람을 주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3. 예수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가셔서, 고쳐주셨습니다.

4. 예수님께서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경고하셨지만, 그들이 더 널리 전파했습니다.

5. 그분께서 모든 것을 잘했다고 영광 돌렸습니다.

6. 오늘 우리 귀가 열리고 우리 혀가 풀리는 은혜를 증거 하겠습니다.

 

이 사건은 마가복음 8:22-26, 곧 벳세다에서 맹인을 고치시는 사건과 대단히 흡사한 패턴이 있습니다. 몇 주 후에 그 본문으로 설교할 때 그 패턴을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이로써 알 수 있는 것은, 오늘 본문이 보여주는 패턴은 일정한 것이며, 모든 사람에게 적용이 되는 진리말씀이라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물론 단 한 번 발생했으며, 다른 본문에서 유사한 패턴을 발견할 수 없다고 해도 시대와 장소를 모두 포함하여 모든 인류에게 적용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1.

예수님께서 두로 지방에서 나오셨습니다. 방금 수로보니게(Syro-phoenician) 출신 여인의 딸을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 주셨습니다.

 

이제 시돈 지역을 거쳐 데가볼리(Decapolis) 지역에 도착하셨습니다. 기억하십니까? 데가볼리는 열 개의 도시들”(ten-cities)이라는 헬라어입니다. 거라사인(Gerasenes)의 지방에 이르러, 무덤에 거하며 큰 소리 지르고, 몸을 스스로 상하게 하던 사람을 고치셨습니다. 그는 더러운 귀신(unclean spirit), 군대귀신(Legion of spirits)에 들렸던 자였습니다. 그를 고치시고 그의 자리로 보내셨습니다. 그가 데가볼리지역에서 주님께서 자기에게 행하신 일들을 전파했습니다.

 

이제 주님께서 데가볼리 지역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앞서 그 사람이 전파한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이 영접했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환영했을까요.

 

 

2.

여기서 사람들이 어떤 사람을 데리고 왔습니다. 두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는 귀가 먹었습니다. 듣지를 못합니다. 그리고 그는 말을 더듬습니다. 보통 듣지 못하면 말을 못하거나, 해도 더듬습니다.

 

이들이 간구드렸습니다. 이 사람을 데려온 사람들, 그리고 주님께 간구드리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 수가 없지만, 적어도 분명한 것은, 이 사람은 위해 간구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불행 중 다행이라는 것은 이런 데 두고 하는 말입니다. 소위 인복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만남의 축복이 있었는데, 그중에 가장 큰 것은 예수님을 만났다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만나주셨습니다. 사실 두로를 떠나 시돈과 데가볼리 지역으로 오신 것은 바로 그 사람을 만나러 오신 것입니다!

 

 

3.

그리고 그를 보자,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셨습니다. “일대일로 만나신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일대일로, 개인 대 개인으로 만나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으셨습니다.

 

그리고 침을 뱉으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혀에 손을 대셨습니다.

 

이전에 주님께서 눈 먼 사람을 고치실 때, 땅에 침을 뱉어(spitting) 흙을 개어 그의 눈에 대신 적이 있습니다.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이었습니다. 요한복음 9장 말씀입니다. 그리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셨습니다. 그가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습니다.

 

오늘도 침을 뱉으셨는데(spitting), 어디에 어떻게 뱉으셨는지 설명이 없습니다. 이것은 치유하시는 모습입니다. 적어도 요한복음 9장 때와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a man blind from birth)을 고치셨습니다. 흙을 땅에 뱉으시고(spit on the ground) 개어 침으로 진흙을 이겨(made mud with the saliva)눈에 대셨습니다.

 

이것은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던 창조주 하나님의 행위가 연상되는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흙으로 지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새롭게 창조 해 주심으로써고쳐주셨습니다.

 

손가락을 양 귀에 넣으셨다는 것은 그의 귀가 문제가 있으니, 환부에 당신의 손가락을 넣으신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그의 얼굴을 감싸 안으셨습니다.

 

또한 그의 혀에 문제가 있으니, 그의 혀에 손을 대셨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렇게 하여 양 귀와 혀가 주님의 손에 터치 된 것입니다. 진심으로 치료하시는 주님의 모습입니다.

이 행위 또한 창조주의 모습입니다. 주님께서 그의 병든 몸을 새롭게 창조하심으로써 고쳐주시고 계셨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하늘을 우러러 보셨습니다. 그리고 탄식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병자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Likewise the Spirit helps us in our weakness. For we do not know what to pray for as we ought, but the Spirit himself intercedes for us with groanings too deep for words.

로마서 Romans 8:26

이 모습은 예수님께서 얼마나 그 사람을 사랑하시는가를 보여주십니다. 무리를 떠나,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그 사람의 문제 있는 곳, 즉 양 귀와 혀에 손을 대시고, 침을 뱉으시고,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고개를 숙이고 그 사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에바다!

Ephphatha!

 

이 말씀은 아람어로서, 그 뜻은 열리라!”는 명령입니다.

 

그 명령을 받자마자 그 사람의 귀가 열렸습니다. 제대로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혀가 맺힌 것이 풀렸습니다. 말이 분명해졌습니다.

 

말 더듬는 사람(having a speech impediment). 이 말은 신약성경에서 유일하게 사용된 단어입니다. 구약성경의 헬라어 번역인 70인역(LXX, Septuagint)은 이사야 Isaiah 35:6에서 유일하게 사용했습니다.

 

이 사건은 이사야의 예언이 성취된 것입니다.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Then the eyes of the blind shall be opened, and the ears of the deaf unstopped. Then shall the lame man leap like a deer, and the tongue of the mute sing for joy. For waters break forth in the wilderness, and streams in the desert.

이사야 Isaiah 35:5-6

 

여기서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리고, “말 못하는 자의 혀가 노래하게 되었습니다.

 

4.

 

본문에는 함축되어 있습니다마는, 이제 주님께서 그를 사람들에게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경고하셨습니다.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Do not tell to anyone!

 

그러나 그들은 더욱 더 널리 전파했습니다.

 

 

5.

사람들은 그분께서 모든 것을 잘했다고 영광 돌렸습니다. 비록 완전하지는 않지만, 그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을 입으신 것을 인정한 것입니다.

 

듣는 사람들이 심히 놀랐습니다. “그가 모든 것을 잘 하였도다. 못 듣는 사람도 듣게 하고, 말 못하는 사람도 말하게 한다!” 했습니다.

 

사람들이 심히 놀라 이르되, “그가 모든 것을 잘 하였도다. 못 듣는 사람도 듣게 하고, 말 못하는 사람도 말하게 한다하니라.

And they were astonished beyond measure, saying, “He has done all things well. He even makes the dea hear and the mute speak.”

Mark 7:37

 

여기서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찬양한 대목에서, 태초의 창조 때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평가가 연상됩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이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And God saw everything that he had made, and behold, it was very good. And There was evening, and there was morning, the sixth day.

창세기 Genesis 1:31

 

이 평가는 제6일에 대한 평가라기보다는 제1-6일에 대한 평가입니다. 여기서 좋았더라는 히브리어 토브(tob)입니다. 토브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에 대한 평가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속성을 묘사할 때 사용하는 형용사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이럴 때 토브가 사용됩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And he said, “I will make all my goodness pass before you and will proclaim before you my name ‘The Lord.’ And I will be gracious to whom I will be gracious, and will show mercy on whom I will show mercy.”

출애굽기 Exodus 33:19

 

구원은 새 창조입니다. Salvation is New Creation. “구원주로 오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행하신 모든 사역은 구원입니다. 그 구원은 새 창조입니다. 지금 주님께서 이 이방인 병자를 그 귀를 여시고, 그의 혀를 풀어내셨습니다. 이렇게 하심으로써 그를 새롭게 창조하신 것입니다. 이에 이방인들이 그 모든 일이 토브했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6.

이 말씀으로, 오늘 우리의 귀가 열리고 우리의 혀가 풀리는 은혜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구원과 창조의 은혜가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주님께서, 우리를 새롭게 창조하십니다. 새 창조로써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새 창조를 위해서는 이전 것이 지나가야!” 합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리니.

Remember not the former things, nor consider the things of old. Behold, I am doing a new thing. Now it springs forth. Do you not perceive? I will make a way in the wilderness and rivers in the desert.

이사야 Isaiah 43:18-19a

 

우리의 옛날 자아는 죽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그분께서 죽으심은 우리의 죽음입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Always carrying in the body the death of Jesus, so that the life of Jesus may also be manifested in out bodies.

고린도후서 2 Corinthians 4:10

 

기억하십시오. 이 모든 것은 구약성경 이사야의 예언 말씀이 예수님의 사역에서 성취되었다는 것을 지적했습니다.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같이 뛸 것이며, 말 못 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Then shall the lame man leap like a deer, and the tongue of the mute sing for joy. For waters break forth in the wilderness, and streams in the desert.

이사야 Isaiah 35:6

 

또한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의 육신의 문제들을 주님께서 불쌍히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질병과 가난과 억압 등입니다.

 

또한 영적인 의미입니다. 영적으로 들을 귀가 없습니다. 들었어도 마땅히 할 말을 하지 못합니다.

 

첫째로, 듣지 못합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He who has ears, let him hear.

마태복음 Matthew 13:9

 

둘째로, 말하지 못합니다.

 

너희를 넘겨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When they deliver you over, do not be anxious how you are to speak or what you are to say, for what you are to say will be given to you in that hour. For it is not you who speak, but the Spirit of your Father speaking through you.

마태복음 Matthew 10:19-20

 

하나님의 말씀을 귀로 듣고 믿음이 생기고, 그 믿음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So faith comes from hearing, and hearing through the word of Christ.

로마서 Romans 10:17

 

보십시오. 지금 예수님께서 이 사람의 양 귀와 혀에 손을 대시고, “에바다!” 하시지 않습니까? 이 탄식의 기도는 오늘 우리를 위한 기도이기도 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가운데 충만하시면, 우리는 그 입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And they were all filled with the Holy Spirit and began to speak in other languages as the Spirit gave them utterance.

사도행전 Acts 2:4

 

이전에는 우리가 욕심을 따라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따릅니다. 이것이 새로운 방언입니다. 이렇게 될 때 우리가 입을 열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하심으로써! 성령님의 충만하심으로써!

 

모세도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셨을 때, 그가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But Moses said to the Lord, “Oh, my God, I am not eloquent, either in the past or since you have spoken to your servant, but I am slow of speech and of tongue.”

출애굽기 Exodus 4:10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동의하지 않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Then the Lord said to him, “Who has made man’s mouth? Who makes him mute, or deaf, or seeing, or blind? Is it not I, the Lord? Now therefore go, and I will be with your mouth and teach you what you shall speak!”

출애굽기 Exodus 4:11-12

 

여기서 창조주 하나님께서 계시하십니다. 보십시오. 이스라엘을 구원하러 모세를 파송하시는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당신을 창조주로 선포하십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구원은 새 창조입니다. Salvation is New Creation!

 

예레미야도 그랬습니다.

 

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Then I said, “Ah, Lord God! Behold, I do not know how to speak, for I am only a youth.”

예레미야 Jeremiah 1:6

 

그러고 보면 모든 하나님의 종들은 그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자기의 죄 된 모습이 분명하게 보이는 법입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But the Lord said to me, “Do no say, ‘I am only a youth.’ For to all to whom I sen you, you shall go, and whatever I command you, you shall speak.”

예레미야 Jeremiah 1:7

 

하나님의 명령이 인간의 약점을 이깁니다. 어떻게요? 새 창조로써!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보내실 때 육신의 그를 그대로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성령충만으로써 그를 새롭게 지어내셨습니다. “거듭남.” 그렇습니다. Born-again!

 

오늘 우리에게 심각하게 중요한 것은, 말 자체를 하고 못하는 신체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실제로 어떤 말을 어떻게 해서 유익을 끼칠지 그것이 문제입니다. 보통 유익이 아니라, “사람을 구원하는 일에 사용되어야 합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 중에서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Keep your heart with all vigilance, for from it flow the springs of life.

잠언 Proverbs 4:23

 

의인의 입은 생명의 샘이라도,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느니라.

The mouth of the righteous is a fountain of life. But the mouth of the wicked conceals violence.

잠언 Proverbs 10:11

 

우리 속담에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하는 것이 많습니다.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 갚는다.

In a word, I pay off my debt.

 

찬송가 2122절입니다.

 

인자한 말을 가지고 사람을 감화시키며, 갈 길을 잃은 무리를 잘 인도하게 하소서.

Help me the slow of heart to move. By some clear, winning word of love. Teach me the wayward to stay. And guide them in the homeward way.

 

듣기와 말하기의 관계를 말씀드립니다.

 

이 두 가지 관계가 어떤지, 오늘 본문에 나타난 사람의 경우를 조금 더 깊이 살핍니다. 이 사람은 분명히 듣지 못하는 질병이 있습니다. 그런데 말하기의 경우, 전혀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듣지를 못해서 그 말이 어눌해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많은 학자들이 본문을 이렇게 읽습니다.

 

귀 먹고 말 더듬는 자

A man who was deaf and could not speak well

 

사람들이 예수님께 데리고 온 이 사람입니다. 여기서

 

deaf = kopos

could not speak well = mogilalos

 

그러니까 mogilalos = to speak with difficulty

 

보십시오. 헬라어 단어를 보면, 듣기는 불가능했지만, 말하기는 수월치 않았다, 그런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사람을 고쳐주신 것은, 우선 그의 를 고치셨습니다. 그래서 에바다!” 하셨습니다. “열리라!”는 말씀입니다.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으라!

He who has ears, let him hear!

마태복음 Matthew 13:9

 

이런 명령과 같습니다.

 

살기가 어렵습니다. 고단한 삶에서 사람은 죽음을 돌파구로 생각하고, 그 길로 지향합니다.

이런 생각은 가난하고 빚이 많은 사람만 하지 않습니다. 부자인데도 죽음을 선택합니다. 지난 주중에 어떤 부자가 자살한 사건이 기사로 떴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공포의 대상이지만, 사실은 절망이 더 큰 공포입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절망으로 죽음의 길을 스스로 선택합니다.

 

절망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죽음에 이르는 병입니다. 키에르케고르가 쓴 책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그 병이 곧 절망이라고 했습니다. 믿음을 가지지 못하는 삶, 그것이 절망입니다.

 

나사로가 병들었다고 전갈이 왔을 때,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But when Jesus heard it, he said, “This illness does not lead to death.

John 11:4a

 

그러면 어떤 병입니까? 나사로의 그 병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It is for the glory of God, so that the Son of God may be glorified through it.

요한복음 John 11:4b

 

나사로가 죽었지만, 주님께서 그를 살려내셨습니다. 이로써 사람들, 특히 마리아와 마르다에게 주님께서 믿음을 심어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사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Jesus said to her, “Did I not tell you that if you believed, you would see the glory of God?”

요한복음 John 11:40

 

살아가면서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는 믿은 사람입니다. 반대로 인생의 절망을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결론입니다.

 

사람은 사랑을 생각하고, 사랑할 일을 꿈꾸면 삶의 원기가 돋아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곁에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얼마나 불쌍한가! 그들을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그런 생각만 해도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그리고 조금씩 무엇을 해야겠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들을 귀를 가지십시오. 그리고 은혜로운 말을 하십시오. 말을 못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듣지를 못해서 말을 못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듣기를 잘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스스로 노력해서 될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고쳐주셔야 할 질병입니다.

 

다시 묵상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So faith comes from hearing, and hearing through the word of Christ.

로마서 Romans 10:17

 

이 말씀을 듣지 않는 당신은 귀가 먹었습니다. 당신은 예수님 앞으로 가야 합니다. 당신 발로 못 간다면, “사람들이 당신을 데리고 주님께로 가야 합니다. 당신은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까?

 

없다고요? 고독하게 살았군요!

 

이제 기억하십시오. 이 설교를 듣는 당신은 이미주님의 앞에 있습니다. “누군가 당신을 위하여 기도하여오늘 이 자리에 있습니다.

 

마음이 지쳐서 기도할 수 없고

눈물이 밀물처럼 흘러내릴 때

주님은 우리 연약함을 아시고

사랑으로 인도하시네.

누군가 널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네.

내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때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When it seems that you prayed till your strength is all gone.

And your tears fall like raindrops. All the day long.

Jesus cares and He knows just how much you can bear.

He will speak your name to someone in prayer.

Someone is praying for you. Someone is praying for you.

And when it seems you’re all alone, and your heart would break in two.

Remember someone is praying for you.

 

당신의 어머니, 당신의 아버지, 당신의 아내, 당신의 아들, 당신의 딸, 혹은 당신이 미처 생각이 닿지 않는 그 어떤 사람이 당신을 위해 기도한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탄식함으로써 기도하신 것입니다. 그들을 움직이도록!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Likewise the Spirit helps us in our weakness. For we do not know what to pray for as we ought, but the Spirit himself intercedes for us with groanings too deep for words.

로마서 Romans 8:26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당신 앞에 계십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귀를, 당신의 혀를 그 손으로 붙드셨습니다. 주님의 침으로 당신을 치료하십니다. 하늘을 우러르신 주님께서 탄식하심으로써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를 드리십니다.

 

에바다!

Ephphatha!

 

이 음성을 당신이 들으셔야 합니다. 이 음성은 주님의 손에서 새롭게 태어난 당신이 그 첫 번째로 듣는 거룩한 음성입니다.

 

스스로 어떻게 해 보겠다고 애를 쓰는 동안 세월이 갑니다. 곁엣 사람들이 상처 받고, 떠나갑니다.

 

사랑하기!

그 첫 번째는 듣기입니다. 잘 들어주는 것, 그것이 첫 번째 사랑의 길입니다. 듣기로써 이미 당신은 사랑의 중요한 첫 발걸음을 내딛게 된 것입니다.

 

그로써 당신의 혀가 할 말을 알게 됩니다. 그 말로써 사랑을 실천해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나아갑시다. 귀를 만져주시고, 혀에 손을 대 주시는 주님. 주님의 치유의 침을 허락하시고, 하늘을 향하여 탄식하심으로써 기도해 주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 이미 당신의 곁에 오셨습니다.

 

 

 

기도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참 사랑을 회복시켜 주신 주님. 이제 들을 귀를 가지고, 비로소 할 말을 알게 해 주신 성령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삶이 달라지게 하시고, 가정이 변화되게 하시고, 교회가 교회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