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75

금문교회 맥추감사주일예배 GGPC Feast of Harvest Sunday

조은석 목사 Rev. Eun Suk Cho, Pastor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I Have Compassion on the Crowd!

마가복음 Mark 8:1-10

 

1. 그 무렵에 또 큰 무리가 있어, 먹을 것이 없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In those days, when again a great crowd had gathered, and they had nothing to eat. He called his disciples to him and said to them:

2.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는 지 이미 사흘이 지났으나, 먹을 것이 없도다.

I have compassion on the crowd. Because they have been with me now three days, and have nothing to eat.

3. 만일 내가 그들을 굶겨 집으로 보내면, 길에서 기진하리라. 그중에는 멀리서 온 사람들도 있느니라.

And if I send them away hungry to their homes, they will faint on the way. And some of the have come from far away.

4. 제자들이 대답하되, “이 광야 어디서 떡을 얻어 이 사람들로 배부르게 할 수 있으리이까?”

And his disciples answered him, “How can one feed these people with bread here in this desolate place?

5.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 이르되, “일곱이로소이다하거늘

And he asked them, “How many loaves do you have?” They said, “Seven.”

6. 예수께서 무리를 명하여 땅에 앉게 하시고, 떡 일곱 개를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나누어 주게 하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나누어 주더라.

And he directed the crowd to sit down on the ground. And he took the seven loaves, and having given thanks, he broke them and gave them to his disciples to set before the people. And they set them before the crowd.

7. 또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는지라. 이에 축복하시고, 명하사, “이것도 나누어 주게하시니,

And they had a few small fish. And having blessed them, he said that these also should be set before them.

8.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 일곱 광주리를 거두었으며

And they ate and were satisfied. And they took up the broken pieces left over, seven baskets full.

9. 사람은 약 사천 명이었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흩어 보내시고

And there were about four thousand people. And he sent them away.

10. 곧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달마누다 지방으로 가시니라.

And immediately he got into the boat with his disciples and went to the district of Dalmanutha.

 

 

할렐루야!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이스라엘이 보리를 거두어 주님께 감사드리던 절기입니다. 오늘 우리가 추수한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봅니다. 이 모든 것을 허락하신 우리 주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립니다.

 

 

오늘 말씀을 드리는 순서입니다.

 

1. 데가볼리 지방에서 예수님께서 무리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2.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느냐?

3. 예수님께서 사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4. 모두 배불리 먹었고, 남은 조각을 일곱 광주리나 거두었습니다.

5. 예수님께서 그들을 흩어 보내시고, 곧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셨습니다. 행선지는 달마누다(Dalmanutha) 지방이었습니다.

6. 오늘 우리가 사람들을 먹이는 뜻이 무엇인지 묵상합니다.

 

 

예수님께서 사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오병이어로 오천 명 먹이신 사건은 모든 복음서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천 명은 그 외에 추가하신 일입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 두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1.

아직 데가볼리(Decapolis) 지방입니다.

이방인의 땅에서 주님께서 배고픈 그들을 살피셨습니다.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셨을 때는 이스라엘을 먹이심의 뜻이라면, 떡 일곱 개와 물고기 몇 마리로 사천 명을 먹이시는 오늘, “이방인들을 먹이심의 뜻이 깊습니다. 열두 바구니를 거둔 오천 명 때와 일곱 바구니를 거둔 사천 명 때를 이스라엘과 이방인으로 구분하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숫자 127로 구분이 가능하지만, 지역의 구분도 중요합니다. 오늘 사천 명 먹이실 때, 거기는 데가볼리지역이었습니다. 귀가 먹어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그 사람을 고치신 그 자리였습니다.

 

오늘 이방인의 땅에서 주님께서 그 많은 무리를 먹이실 때, 그 동기는 불쌍히 여기심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멸시하지만, 주님께서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하나님의 눈에는 모든 나라와 백성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1. 그 무렵에 또 큰 무리가 있어, 먹을 것이 없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In those days, when again a great crowd had gathered, and they had nothing to eat. He called his disciples to him and said to them:

2.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는 지 이미 사흘이 지났으나, 먹을 것이 없도다.

I have compassion on the crowd. Because they have been with me now three days, and have nothing to eat.

3. 만일 내가 그들을 굶겨 집으로 보내면, 길에서 기진하리라. 그중에는 멀리서 온 사람들도 있느니라.

And if I send them away hungry to their homes, they will faint on the way. And some of the have come from far away.

마가복음 Mark 8:1-3

 

그런데 이것 보십시오. 제자들은 예수님과 달랐습니다. 그들은 계산에 빨랐습니다.

 

4. 제자들이 대답하되, “이 광야 어디서 떡을 얻어 이 사람들로 배부르게 할 수 있으리이까?”

And his disciples answered him, “How can one feed these people with bread here in this desolate place?

마가복음 Mark 8:4

 

이런 계산사랑이 없는 데서나온 행위입니다. 사람이 사랑이 없으면 계산기를 두드립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을 찾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식은 사람은 핑계를 찾습니다. 결국은 둘 다 그 구하는 것을 얻을 것입니다.

 

 

2.

오병이어로 오천 명 먹이실 때, “너희에게 무엇이 있느냐?” 물으셨습니다.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가 있는지, 가서 보라!” 하시니, 알아보고 이르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하거늘

And he said to them, “How many loaves do you have? Go and see!” And when they had found out, they said, “Five, and two fish.”

마가복음 Mark 6:38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 물으셨습니다.

 

그들은 일곱 개입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주님께서 축사하시고, 제자들에게 주시며 모두 나누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여 그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거기에 생선 두어 마리도 또 발견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또 축복하셨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처음에는 불가능을 말했던 그들에게서 떡 일곱 개가 발견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축사하시고, 제자들에게 나누게 하시니, 또 물고기가 나왔습니다. 문제는 예수님입니다. 다들 안 된다고 할 때 예수님께서 불쌍히 여기심사랑으로써 물꼬를 트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혼자서도 충분히 하실 수 있는 일을, “가서 알아보라!” 하심으로써, 제자들을 동참시키셨습니다. 이렇게 하여 오천 명에 이어 사천 명을 먹이시는 일에 제자들이 참여한 경험으로, 저들도 먹이는 일에 핑계가 아니라 길을 찾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보십시오. 오순절 성령 충만 받은 이후 성도들의 모습입니다.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들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And all who believed were together and had all things in common. And they were selling their possessions and belongings and distributing the proceeds to all, as they had need. And day by day, attending the temple together and breaking bread in their homes, they received their food with glad and generous hearts.

사도행전 Acts 2:43-46

 

이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몸과 피를 나누어 주신 데서 비롯한 것입니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For my flesh is true food, and my blood is true drink.

요한복음 John 6:55

 

 

3.

사천 명 모두가 배불리 먹었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광야에 나간 이스라엘이 메추라기와 만나로 배부르게 먹었던 것이 생각납니다. 하늘에서 내리신 양식이었습니다. 반석에서 물을 내어 그들을 마시게 하셨습니다.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같이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For I do not want you to be unaware, brothers, that our fathers were all under the cloud, and all passed through the sea, and all were into Moses in the cloud and in the sea. And all ate the same spiritual food, and all drank the same spiritual drink. For they drank from the spiritual Rock that followed them, and the Rock was Christ.

고린도전서 1 Corinthians 10:1-4

 

이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몸을 주셔서 모두를 배부르게 하신 사건의 표상입니다. 이런 점에서 이미 실시하셨던 5천명 먹이신 사건과 함께 4천명 먹이신 사건도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의 표상입니다.

 

 

4.

남은 조각을 일곱 광주리나 거두었습니다.

온 세상의 교회들입니다.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가 세상 모든 교회를 대표하는 것처럼.

 

당신의 몸을 주셔서 교회를 세우심입니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Which is his body, the fullness of him who fills all in all.

에베소서 Ephesians 1:23

 

만족함입니다. 육신은 물론 영적으로!

 

배부르게 실컷 먹어보았으면 좋겠다!

 

이런 소원을 가졌던 시절이 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최관신 목사님께서

아프리카 피그미족 사역을 하시는데, 그들의 삶은 절박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제가 르완다 피그미 마을을 방문했을 때, 그들은 나무뿌리를 갈아 전을 부쳐 먹었습니다. 하루에 한 차례 겨우 먹었고, 일주일에 5일쯤 먹는다고 했습니다.

 

 

5.

예수님께서 즉시무리를 떠나셨습니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오병이어로 5천명이 먹은 직후,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삼고자 했습니다. 그 때에도 주님께서 그들을 즉시로 떠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

Perceiving then that they were about to come and take him by force to make him king, Jesus withdrew again to the mountain by himself.

요한복음 John 6:15

 

영적인 의미가 큰데, 사람들은 육신으로만 예수님을 알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From now on, therefore, we regard no one according to the flesh. Even though we once regarded Christ according to the flesh, we regard him thus no longer.

고린도후서 2 Corinthians 5:16

 

4천 명을 먹이신 이후, 주님의 다음 행선지는 달마누다”(Dalmanutha) 지방이었습니다. 학자들은 이 달마누다를 막달라지방으로 봅니다.

 

그 지방에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다가,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했습니다. 그 모든 이적들을 보고 들었으면서도 아직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6.

우리가 적은 것을 나누어 많은 사람이 먹습니다. 예수님을 모실 때 가능한 일입니다.

성찬의 깊은 뜻을 묵상합니다.

 

묻습니다. 당신은 무슨 일로 성취감을 느끼십니까? 아마존 같은 거대한 회사를 창업하고 경영하면 그만큼 당신이 커 보이겠습니까?

 

나는 사랑이 크고 싶습니다. 멀리 멀리 퍼지는 동심원처럼, 내가 하는 사랑은 그 끝 간 데를 모르고 싶습니다. 아주 작은 아이의 눈까지 들여다 볼 수 있도록, 그 사랑이 세밀하고 싶습니다.

 

배고픈 아이들을 먹이고 싶습니다.

고독한 아이들에게 친구가 되어주고 싶습니다.

공부를 하고 싶은 아이들에게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세상을 열어주고 싶습니다.

 

우연히 어떤 오래된 노래를 들었습니다. 노래의 가사는 이렇습니다.

 

As I was slowly passing an orphans’ home one day

and stopped for just a moment to watch the children play

alone a boy was standing

and when I asked him why

He turned with eyes that could not see

and he began to cry.

 

I am nobody’s child I’m nobody’s child

Just like the flowers I’m growing wild

No mommy’s kisses, and no daddy’s smile

Nobody wants me, I’m nobody’s child.

 

People come for children, and take them for their own

But when they see I’m blind, they always take some other child

And I am left behind.

 

I’m nobody’s child, I’m nobody’s child

Just like a flower I’m growing wild.

No mummy’s kisses, and no daddy’s smile

Nobody wants me, I’m nobody’s child.

 

No mommy’s arms to hold me, Or soothe me when I cry

Sometimes it gets so lonely, I wish that I could die

I’ll walk the street of heaven

Where all blind can see. And just like all the other kids

There’d be a home for me.

 

I’am nobody’s child, I’m nobody’s child

Just like a flower, I’am growing wild.

No mummy’s kisses, and no daddy’s smile

Nobody wants me, I’m nobody’s child.

 

Nobody wants me, I’m nobody’s child.

 

 

후파 아이들을 우리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 버림받은 족속이었습니다. 특별히 그들을 지역에서 도시로 끌어내는 동화정책이 충격적이었습니다. 사실 그들은 도시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고, 수많은 홈리스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만난 후파의 가족들 중에 자녀들이 도시로 나가 마약에 중독되고 홈리스가 된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어떤 젊은이는 자기가 태양이라고 믿는다고 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우리가 기도해 주자, 이제부터 아들이 돌아올 소망을 감히 품겠다고 했습니다.

 

우리 곁에 사는 아이들을 돌아보기로 합시다. 지금 세상이 보통 위험하지가 않습니다. 옛날에는 놀이를 스스로 만들어 놀았습니다. 이제는 온라인 게임들이 성행합니다. 서로 어울림이 없는 아이들의 정신상태가 대단히 각종 위기에 취약하게 되었습니다. 손쉽게 절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가난한 4,000명을 먹이셨습니다. 가난한 자들과 함께 있기를 좋아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누구와 함께 있는 것이 좋습니까?

 

가난은 짜증나는 일입니까?

 

노량진 컵 밥이 뉴스에 종종 납니다. 내가 대학 다니던 1980년대 그 시절은 종로 2가에 “500냥 하우스가 많았습니다. 500원에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세 그릇쯤 먹어야 배가 든든한 음식이었습니다.

 

우리가 가난한 사람들을 저버리지 않는다면,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들의 문제를 우리 문제로 끌어안는다면, 4천명 먹이신 주님의 기적을 오늘 우리의 삶에서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 자신도 불쌍한 자입니다. 알고 보면!

 

우리가 불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면, 우리 주님께서도 우리를 불쌍히 여기실 것입니다.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하셨느니라.

Keep your life free from love of money, and be content with what yu have, for he has said, “I will never leave you nor forsake you.”

히브리서 Hebrews 13:5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Jesus Christ is the same yesterday and today and forever.

히브리서 Hebrews 13:8

 

2천 년 전에 팔레스타인, 갈릴리 호숫가에서 일어난 4천명 먹이심 그 기적이 오늘도 일어나는 근본적이고 결정적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만찬에 있습니다. 우리는 사실 밥을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습니다. 참 사랑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식당에서도 밥 먹으러 갑니까? 그럴 수 있지만, 대개의 사람들은 밥에다가 다른 무엇이 더 필요합니다. 따뜻한 사랑과 관심입니다. 웃음과 친절입니다. 동물은 먹이로 만족할지 모릅니다. (사실은 그렇지도 않습니다!) 인간은 밥만으로 살 수가 없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하시니

But he answered, “It is written, ‘Man shall not live by bread alone, but by every word that comes from the mouth of God.’”

마태복음 Matthew 4:4

 

태초부터 친히 말씀 자체이셨고,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God

요한복음 John 1:1

 

바로 그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그분께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from the Father, full of grace and truth.

And the Word became flesh and dwelt among us, and we have seen his glory, glory as the only Son

요한복음 John 1:14

 

예수님께서 먹이셨습니다. 떡 일곱 개와 물고기는 결국 당신의 몸 자체를 표상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써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으로 만족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그들을 영의 양식으로 먹이는 일입니다. 4천명이 가능하고, 5천명도 가능한 일입니다.

 

성도 여러분.

문제는 우리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는가, 여기에 달렸습니다. 긍휼이 여김, 그것은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에바다!” 하셨던 그 사람처럼, 예수님께서 긍휼히 여기셔서 구원하신 우리들은 성찬에 참여한 성도들입니다.

 

이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안고, 세상으로 나아갑니다. 예수님의 뒤를 따라, 우리 자신을 부인하고, 우리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길을 따릅니다. 가난한 자들을 먹이고, 그들의 친구가 되어 주며,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우는 자의 눈물을 씻어줍니다.

 

사랑을 나누는 것은 어마어마한 파급효과가 있습니다. 작은 것으로도 많은 사람이 만족할 수 있습니다. 오병이어로, 일곱 개 떡과 두어 마리 생선으로도, 5천명과 4천명이 배부르게 먹습니다. 문제는 긍휼히 여김입니다.

 

맥추감사. Feast of Harvest.

이 감사는 본격적인 추수감사 이전에 드리는 감사입니다. 옛날 한국은 이 시절에 견디기가 어려운 때를 지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으로써, 성도들은 모두와 함께 나누었습니다.

 

교회에서 식사하던 아름다운 추억이 아련합니다. 온 세계 교회는 예배와 함께 식사를 해왔습니다. 부유한 나라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집에 더 맛있는 음식이 있어요. 교회를 떠나 집으로 가는 길에 좋은 식당을 들를 수도 있고요.

 

그런데 대개 가난한 나라들의 그렇게 합니다. 아프리카 교회를 방문해서 설교하고 나면, 성도들이 이고 지고 가지고 온 야채와 곡식으로 밥을 했습니다. 그리고 너나 할 것 없이 먹고 마셨습니다.

 

교회가 밥을 함께 먹는 것은 나눔의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육신의 밥을 나누는 것으로 멈출 수가 없습니다. “을 나누어 주는 것은 우선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으로 삼으려는 자들을 떠나신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에 모이는 것이라면, 그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Jesus answered them, “Truly, truly, I say to you, You are seeking me, not because you saw signs, but because you ate your fill of the loaves.

요한복음 John 6:26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 치신 자니라.

Do not work for the food that perishes, but for the food that endures to eternal life, which the Son of Man will give to you. For on him God the Father has set his seal.

요한복음 John 6:27

 

함께 굶더라도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가난한 지역에 복음이 들어가면 사람들이 부자가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경말씀대로 술과 담배를 하지 않고, 마약과 노름을 끊고, 부지런하게 일합니다.

 

그런데 먹고 살게 되면, 사람들이 예배드리는 대신 놀이문화를 찾아갑니다. 여행하고 각종 스포츠에 몰두합니다. 이렇게 되면 교회가 다시 텅 비게 됩니다.

 

우선 먹고 마시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육신의 필요를 살피신 그대로! 그러나 거기서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 그들을 즉시떠나 달마누다”(Dalmanutha) 지방으로 가셨습니다. 거기서 바리새인들의 핍박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아시면서도!

 

달마누다(Dalmanutha). 환영받지 못하는 곳을 향해 가시는 것은, 거기서도 복음을 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 그들은 사건을 보고 복음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복음의 본질이 사건이다그러는데, 전혀 아닙니다. 복음이 참된 사건을 만들어냅니다. 어떤 사건으로 복음이 재구성되는 법이 없습니다.

 

믿음으로써 착한 행실이 나는 것입니다. 착한 행실로써 믿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바리새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계시하시기 위해 거기로 가시는 것입니다. 그래도 듣지 못하고, 그래도 깨닫지 못한다면 심히 안타까운 일이지만!

 

성도 여러분. 우리가 나누는 음식은 신령한 음식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입니다. 복음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증거 하는 데 모든 것을 다 걸어야 합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지리라.

“Behold, the days are coming,” declares the Lord God. “When I will send a famine on the landnot a famine of bread, nor a thirst for water, but of hearing the words of the Lord. They shall wander from sea to sea, and from north to east. They shall run to and fro, to seek the word of the Lord. But they shall not find it. In that day, the lovely virgins and the young men shall faint for thirst.”

아모스 Amos 8:11-13

 

복음을 모르는 자들, 영적으로 지치고 배고픈 자들을 불쌍히여겨야 합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부자가 되어도 영이 피곤하고 지친 사람들은 불쌍합니다. 그들을 불쌍히 여기신 주님의 마음을 오늘 우리가 가집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미 주신 것이 있습니다. 떡 일곱 개가 있고, 물고기 두어 마리가 있습니다. 그것을 주님께 가져가야 합니다. 주님께서, 주님의 손에서 우리 모두를 만족하게 하실 것입니다.

 

사람들이 배부른 것은 물고기라기보다는 예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그 정도의 떡과 그 정도의 물고기는 진작부터 있었던 것 아니었습니까?

 

예수님께서 계시기에, 예수님께서 사랑하시기에, 예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기에, 그 떡과 그 물고기가 소용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손에서, 주님의 축복과 감사기도를 통해서!

 

우리 주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소금이 되고 이 되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 은혜를 나누어야 합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In the same way, let your light shine before others, so that they may see your good works and give glory to your Father who is in heaven.

마태복음 Matthew 5:16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천국의 일군으로 삼으셨습니다. 제자들은 의심하던 자들에서 사랑의 실천의 종들로 바뀌었습니다. 우리 주님의 손에서!

 

우리를 이렇게 당신의 종으로 삼으신 우리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아멘.

 

우리는 형제와 자매들을 예수님 앞으로 초청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손에 주신 것을 가지고 그들과 나눕니다. 여기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초청하시는 잔치가 있습니다. 천국잔치의 모형입니다.

 

이 잔치자리에 참여하여 은혜를 누리는 사람은 보다 나은 천국을 소망합니다. 그림자로써 모형을 가진 사람들은 그 참된 모습, 천국을 소망합니다.

 

가던 길을 멈추어 섭니다. 아이들이 노는 것을 봅니다.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있는가. 이 아이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을 사랑하시는 것을 알고 있는가. 모르고 있다면, 그래서 계속 울고 있다면, 나는 누구의 아이도 아니라! 그렇게 여기고 있다면, 이보다 불행한 일이 또 있습니까?

 

-아이야! 너는 알아야 한다. 예수님께서 너를 사랑하신다. 너는 예수님의 아이다.

-예수님이 누구신가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분께서 너를 구원하시려고 십자가를 지셨단다.

-십자가요?

-그래. 십자가. 그 십자가 사랑으로 나가자. 나와 함께 그 사랑으로 가자. 아이야, 나와 함께 가자. 여기서 이러고 있지 말고. 어서 울음을 그쳐라. 이제 안심해라.

 

이 아이가 배부르게 되는 날입니다. 오늘 맥추감사주일은, 우리 모두의 배고픔을 해결하도록, 들판에 먹을 것을 가득 자라게 하시고, 거두게 하신 주님께 감사예배를 드리는 날입니다. 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이 온 세상에 가득합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눈물이 웬 말이며, 고독이 웬 일입니까! 아이들의 눈물은 어찌 된 일입니다. 그 많은 학대는 무슨 소리입니까?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라.

They shall not hurt or destroy in all my holy mountain. For the earth shll be full of the knowledge of the Lord as the waters cover the sea!

이사야 Isaiah 11:9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온 세상을 덮을 것입니다. 지금이 그 날입니다. 보십시오. 주님께서 배고파 쓰러지기 직전의 사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그 수혜자입니다. 예수님께로 갑시다.

 

먹고 배불렀습니다. 이제 예수님과 함께 달마누다(Dalmanutha)로 갑시다. 아직도 의심하고, 아직도 비판하는 사람들이 도사리고 있는 거기로.

 

 

기도

 

거룩하고 자비로우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배고픈 무리들을 불쌍히 여기신 주님을 깊이 묵상합니다. 저희들에게 참 사랑의 마음을 허락하옵소서. 육신의 떡이 아니라 신령한 영의 양식이 없어 기갈 하는 자들에게 복음의 말씀을 증거 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