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719

금문교회 주일예배 Golden Gate Presbyterian Church Sunday Worship

조은석 목사 Rev. Eun Suk Cho

 

무엇이 보이느냐? Do You See Anything?

마가복음 Mark 8:22-26

 

 

22. 벳새다에 이르매, 사람들이 맹인 한 사람을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손대시기를 구하거늘

And they came to Bethsaida. And some people brought to him a blind man and begged him to touch him.

23. 예수께서 맹인의 손을 붙잡으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

And he took the blind man by the hand and led him out of the village. And when he had spit on his eyes and laid his hands on him, he asked him, “Do you see anything?”

24. 쳐다보며 이르되,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가는 것을 보나이다하거늘

And he looked up. And said, “I seep people. But they look like trees, walking.”

25. 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그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모든 것을 밝히 보는지라.

Then Jesus laid his hands on his eyes again. And He saw everything clearly.

26. 예수께서 그 사람을 집으로 보내시며 이르시되, “마을에는 들어가지 말라하시니라.

And he sent him to his home, saying, “Do not even enter the village.”

 

 

 

오늘 말씀의 제목은 무엇이 보이느냐?”(Do you see anything?)입니다. 주님께서 맹인을 찾아가셨습니다. 침을 사용하시고, 안수하시며 치료하실 때, 그 불쌍한 맹인에 대한 관심사랑이 단번에 드러나는 질문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 각 사람을 찾아오시고 치료하시는 영적인 은혜가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 달마누다(Dalmanutha) 지방을 떠나셨습니다. 배로 갈릴리 바다를 건너 도착하신 곳이 벳새다(Bethsaida) 지역입니다. 갈릴리 바다 동북쪽 해변입니다.

 

벳새다(Bethsaida)에서 맹인을 고치신 이 사건은 마가복음에만 기록된 마가복음 고유의 사건입니다. 다른 복음서 기자들은 주목하지 않은 이 평범한 일이 오늘 말씀의 본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벳새다에서 맹인 한 사람을 만나셨습니다. 사람들이 데려온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부탁했습니다. 손을 대시고 고쳐주시기를 구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부탁을 들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그 맹인의 손을 붙잡으셨습니다. 그리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셨습니다. 일대일로 만나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를 고쳐주셨습니다. 시력을 회복시켜주신 이후에 주님께서 그에게 마을에는 들어가지 말라하셨습니다. 그에게 옛날로 돌아갈 것이 아니라 새로운 장소를 제시하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내용입니다. 설교도 말씀의 순서를 그대로 따르겠습니다.

1. 예수님께서 벳새다 지역에 도착하셨습니다.

2. 사람들이 맹인 한 사람을 데리고 예수님께 왔습니다.

3. 예수님께서 그를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셨습니다.

4. 예수님께서 눈에 침을 뱉으시고, 그에게 안수하셨습니다.

그리고 물으셨습니다: “무엇이 보이느냐?”

5. 사람들이 보이고,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6. 예수님께서 다시 안수하시고 모든 것을 보게 하셨습니다.

7. 그를 마을로 돌아가지 말게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도 지난 주 달마누다 지방 때 본문처럼 촛대”(메노라, menorah)구조입니다. “무엇이 보이느냐?” 하신 질문이 그 중심에 있습니다.

 

8.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입니다.

 

 

벳새다(Bethsaida)는 두 단어가 결합된 복합명사로 고유명사가 되었습니다. (beth)과 새다(saida)입니다. 그 뜻이 사냥의 집”(house of hunting) 혹은 어업의 집”(house of hunting)입니다. 역사적으로 벳새다는 어떤 곳입니까?

 

첫째로, 벳새다는 베드로(Peter)와 안드레(Andrew), 그리고 빌립(Philip)의 고향입니다.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Now Philip was from Bethsaida, the city of Andrew and Peter.

요한복음 John 1:44

 

둘째로, 누가복음Luke 9:10-17에 따르면 오천 명을 먹이신 지역입니다. 마가복음Mark 6:30-44를 직후에 나오는 바다 위를 걸으신 사건과 연계해서 읽으면, 오천 명 먹이신 사건은 벳새다 맞은편이었습니다.

 

두 복음서를 함께 읽으면 벳새다는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을 적어도 가까이 경험한 자리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이신 기적 중에 한꺼번에 수많은 사람이 경험한 범위로 가장 큰 것이 오천 명 먹이심입니다. 그 지역이 벳새다입니다.

 

 

1. 예수님께서 벳새다 지역에 도착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이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던 달마누다(Dalmanutha) 지방을 떠나셨습니다. 배를 타시고 갈릴리 서쪽 해변에서 동북쪽(North-East)으로 올라가셨습니다. 벳새다 지역입니다.

 

2. 사람들이 맹인 한 사람을 데리고 예수님께 왔습니다.

 

이 사람 맹인은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마가복음 10:46-52에 기록된 바디매오”(Bartimaeus) 같은 이름도 없을 뿐 아니라, 그와 같이 신앙고백과 함께 간절한 치유요청도 없었습니다.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하거늘.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And when he heard that it was Jesus of Nazereth, he began to cry out and say, “Jesus, Son of David, have mercy on me!” And may rebuked him, telling him to be silent. But he cried out all the more, “Son of David, have mercy on me!”

마가복음 Mark 10:47-48

 

그래도 그에게 좋은 점은, 바디매오(Bartimaeus)와 달리 그에게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친구들이었거나, “좋은 이웃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그를 데리고 예수님께 와서 손 대시기를”(to touch him) 구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중풍병(paralytic) 친구를 침상째 메고 와서 지붕을 뜯었던 그런 사람들과도 달랐습니다. 그 때는 주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하시니

And when Jesus saw their faith. He said to the paralytic, “Son, your sins are forgiven!”

마가복음 Mark 2:5

 

그런 극적인 장면”(dramatic scene)도 전혀 연출되지 않은 이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들에 피었다가 누구의 주목도 받지 못하고 스러지는 풀꽃”(wild flowers)과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벳새다가 아니더라도 어디서든지 만날 수 있는 평범”(common; ordinary)한 사람이었습니다.

 

 

3. 예수님께서 그를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셨습니다.

 

그런데 이것 보십시오. 주님께서 평범한 이 사람을 대하시고 고치시는 방법이 대단히 특별(special)합니다. 평범한 사람을 특별하게 대우하시는 예수님의 목회! 우선 그를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셨습니다.

 

그 마을 벳새다는 완악하기로 이름이 높았습니다.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그때에 책망하시되,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Then he began to denounce the cities where most of his mighty works had been done, because they did not repent. “Woe to you, Chorazin! Woe to you, Bethsaida! For if the mighty works done in you had been done in Tyre and Sidon, they would have repented long ago in sackcloth and ashes. But I tell you, it will be more bearable on the day of judgment for Tyre and Sidon than for you!

마태복음 Matthew 11:20-22

 

어쩌면 그를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신 것은 마을사람들의 믿음 없는 행태로부터 분리시키시려는 목적이 있던 것 같습니다.

 

또한 메시아/그리스도 비밀의 일환이 분명합니다. 사복음서가 근본적으로 동의하지만, 특히 마가복음에 따르면 특히 십자가-부활-오순절 등을 통해 온전히 드러나는 메시아/그리스도의 정체성에 이를 때까지는 예수님께 대한 불완전한 이해가 퍼져나가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 것입니다. 보십시오. 떡을 먹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세상의 왕으로 삼고자 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빌라도에게 고소한 예수님의 죄목은 정치적인 의미에서 유대인의 왕아닙니까?

 

 

4. 눈에 침을 뱉으시고, 그에게 안수하셨습니다. 그리고 물으셨습니다: “무엇이 보이느냐?” Do you see anything?

 

그를 고치신 방법이 특별합니다. 그의 눈에 침을 뱉으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안수하셨습니다. 손을 그에게 대신 것입니다. 치료하실 때 손을 대신다면 주로 환부에 대시므로, 침 뱉으신 그의 눈에 손을 대신 것입니다.

 

침과 손. 이 두 가지를 사용하신 치유사건, 이것은 요한복음 못 듣고 말하지 못하던 사람을 에바다!” 명령하여 고치셨을 때와(마가복음 7:31-37),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을 고치셨던 때(요한복음 9:1-41) 때와 같습니다. 침으로써 치유하신 행위에서 드러난 것은 새 창조의 능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이십니다. 천지를 지으실 때 인간을 흙으로 지으셨습니다. 이제 그 창조주의 모습을 계시하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다음과 같은 정언이 성립합니다:

 

예수님의 치유는 새 창조입니다.

Healing of Jesus is New Creation.

 

그리고 그에게 물으셨습니다.

 

무엇이 보이느냐?” Do you see anything?

 

이 질문은 복음서 전체를 통해 유일한 경우입니다. 주님께서 당신이 치유가 확실한지 여부를 그 당사자에게 물으셨습니다. 예수님 능력이 의심되는 순간일까요?

 

아닙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그의 치료에 깊은 관심을 보이심입니다. 그가 보지 못할 때도 그가 보지 못함을 염두에 두셨습니다.

 

헬라어를 직역하면:

 

혹시 무엇을 네가 보느냐?

If anything do you see?

 

문장에서 단어의 순서가 내용을 결정하는 수가 굉장히 많습니다. 특별한 단어에 강조되는 초점이 잡힐 때입니다. 여기서 그 초점은 무엇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이 이제 비로소 보게 되었는지 여부가 아니라, “무엇을 보게 되었는지 그것을 궁금해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말 번역 보이느냐?” 보다는 네가 보느냐?” 해야 정확한 해석입니다. 이 질문은 수동태가 아니라 능동태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보인다고 보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무엇을 보는가, 그것이 그 사람의 시력 회복의 단계를 결정할 것입니다. 진리를 보지 못한다면 그의 시력은 다음 단계까지 거쳐 완전한 회복을 이루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손에서.

 

바리새인들과 빌라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진리 자체이신 예수님 앞에서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고, “진리가 무엇이냐?” 물었습니다. 그들은 치료가 필요한 시각장애인들이었습니다. 본다고 하니 문제였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Jesus said to them, “If you were blind, you would have no guilt. But now that you say, ‘We see,’ your guild remains.

요한복음 John 9:41

 

 

5. 사람들이 보이고,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의 대답입니다. 사람들이 보이는 것은 정상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나무 같은 것들처럼 보이며, 마치 나무가 걸어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것은 아직 그가 완전하게 회복된 것이 아닙니다.

 

이 사람의 시각 인식은 두 가지 큰 오류가 있습니다. 1. 사람은 나무가 아니며, 2. 나무는 걸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아직 치유된 것이 아닙니다.

 

 

6. 예수님께서 다시 안수하시고 모든 것을 보게 하셨습니다.

 

치유의 이중 과정”(two-stage process of healing)을 주목해야 합니다. 사복음서 전체를 걸쳐 본문이 유일한 경우입니다. 마가복음에 이런 주제가 포함된 뜻이 무엇일까요?

 

첫째로, 그 첫 단계는 불완전한 단계입니다. 보이지만 완전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현주소를 간접적으로 묘사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님의 치유과정에 들어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확한 설명이 될지는 의문입니다.

 

이 사람은 본다는 단어를 몇 차례 사용하여, 자기의 지각상태를 주님께 말씀드렸습니다. 결론은 아직 완전하지 않다는 고백입니다. 이로써 그는 완전함을 주님의 손에 맡겨드리는 태도가 되었습니다.

 

둘째로, 그 두 번째 단계는 완전한 단계입니다. 그 사람이 완전하게 보았습니다. 완전하게 보게 된 것은 그 사람입니다. 따라서 첫 번째 단계에서 고백했던 그 불완전을 이제는 완전으로 고백 드린 셈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두 번째 단계까지 이끄신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눈들에 손을 다시 얹어 안수하셨습니다. 그러자 그가 눈을 떴고, 그의 시력이 완전하게 회복되었습니다.

 

이로써 드러난 것은 예수님께서 그 치료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직접 관여하시고, 끝까지 책임지신다는 것입니다.

 

치료하는 의사들이 이런 예수님의 모습을 따랐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을 다스리는 교사들과, 가정에서 부모들이 이렇게 예수님께로부터 배운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7. 그를 마을로 돌아가지 말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집으로보내셨습니다. 그러나 마을에는 들어가지 말라!” 하셨습니다. 집으로는 보내시지만 마을로 들어가지 말게 하셨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마가복음에 유달리 강한 메시아/그리스도의 비밀입니다. 십자가-부활-오순절 성령충만으로써 온전히 드러나기 이전까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메시아/그리스도이심을 감추어 두시려는 의도입니다.

 

그런 의도 외에 다음과 같은 것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안드레-빌립의 고향이며, 오천 명을 먹이셨던 벳새다 지역은 교만한 곳입니다. 이방인 중의 이방인의 땅 두로와 시돈과 비교해도 터무니없이 믿음이 없던 땅입니다. 시력을 회복시켜 주신 주님께서 그를 벳새다 마을로 돌아가지 말게 하신 것은, 그가 믿음을 지키게 하신 방법입니다.

 

앞서 인용한 말씀을 다시 읽습니다: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그때에 책망하시되,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Then he began to denounce the cities where most of his mighty works had been done, because they did not repent. “Woe to you, Chorazin! Woe to you, Bethsaida! For if the mighty works done in you had been done in Tyre and Sidon, they would have repented long ago in sackcloth and ashes. But I tell you, it will be more bearable on the day of judgment for Tyre and Sidon than for you!

마태복음 Matthew 11:20-22

 

 

8.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입니다.

 

복음서는 오병이어오천 명 먹이심 사건을 중심으로 십자가 교훈으로 넘어갑니다. 만일 복음서를 산을 오르고 내려가는 등산으로 비유한다면, 오병이어 사건은 그 정상에 이름입니다. 그 정상에서 사람들을 먹이시고, 그 먹이심의 영적 의미, 성만찬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당신의 십자가 수난을 말씀하시고, 그 수난의 길로 걸어가시는 것입니다.

 

 

요한 죽음

5,000

물 위를 걸으심

4,000

벳새다

십자가 예고

마태

14:1-12

14:13-21

14:22-33

15:32-39

 

16:13-28

마가

6:14-29

6:30-44

6:45-52

8:1-10

8:22-26

8:27-38

누가

9:7-9

9:10-17

 

 

 

9:18-27

요한

5:30-47

(요한 증언)

6:1-14

6:16-21

 

 

6:22-71

 

마가복음은 오천 명에 이어 사천 명 먹이심까지 기적을 보이시고, 곧 십자가 죽으심을 예고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사천 명 먹이신 직후에 일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이 무명의 맹인을 고치신 사건은 당신께서 어떻게 십자가로 죽으실 것을 보이신 사건입니다.

 

마가복음은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벳새다 맹인 치유 사건을 포함하는 8:22-26 이후와 그 이전입니다. 벳새다 치유사건부터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의 길이 제시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은 예수님의 몸에서 난 것입니다. 예수님 당신께서 그 맹인의 환부인 눈에 침을 뱉으셨다는 것은, 당신께서 이 맹인의 질병을 맡으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걸으시는 중에, 이 사람을 고치신 것입니다.

, 우리는 오늘 본문에 나타난 주님의 치료과정을 통해서, 주님께서 받으실 고난의 십자가의 길을 미리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무명의 이 한 사람을 치료하시기 위해 바다를 건너셨습니다. 그리고 마을에 들어가셔서 그 사람을 만나 마을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그리고 두 차례의 과정을 거쳐서 마침내 그 사람을 완전하게 고치셨습니다.

 

두 차례의 과정. 이것은 전례가 없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단 한 번의 명령으로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나사로도 무덤에서 나오게 하셨습니다. 심지어는 그의 집에 들어가지 않으시고도 말씀만으로도 고치셨습니다.

 

그런 주님께서 두 가지 단계를 거치십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보이고,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가는단계입니다. 두 번째는 완전한 회복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능력에 어떤 불완전한 요소가 있음을 말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님의 불쌍히 여기심병자와 당신을 일치시키시는 진정한 의사의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믿음 없는 지역에 살고 있습니다. 태평양을 건너 미국에 올 때 관문이었던 샌프란시스코는 수많은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다운타운 지역을 걷다보면, 아름다운 교회들이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1996년부터 1년 반 동안 빌어 예배드렸던 다운타운교회는 예술품 그 자체였습니다. 한인교회도 그렇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지역은 미주에서 가장 오래 된 한인교회가 있습니다.

 

그런데 샌프란시스코는 미국 내에서 가장 복음화 비율이 낮은 세 개 도시 중 하나입니다. 이 세 도시가 모두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에 있습니다.

 

달마누다(Dalmanutha) 지방을 떠나 배를 타고 벳새다(Bethsaida)를 방문하신 예수님. 여기서 맹인 한 사람을 만나셨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기적에서 영적인 의미를 찾는 것이 귀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궁극적으로 모든 이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진리를 깨달아 알아, 천국에 이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눈을 뜨게 하신 것보다는 영적으로 눈을 뜨게 하신 데서 의미가 있습니다.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이 귀가 열릴 것이며

Then the eyes of the blind shll be opened, and the ears of the deaf unstopped.

이사야 Isaiah 35:5

 

그 눈으로 무엇을 보아야 할까요? 그 귀로 무엇을 들어야 합니까?

 

여기서 우리는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오시고, 그분께서 우리를 치료하시며 구원하시는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보이신 궁극적인 것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영적으로 뜬 눈으로 우리가 보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입니다.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

Then I looked, and behold! On Mountain Zion stood the Lamb, and with him 144,000 who had his name and his Father’s name written on their forehead.

요한계시록 Revelation 14:1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하늘의 성도들을 바라보고, 그들이 어린양의 이름과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그들의 이마에 써있는 것을 보는 것은, 그것은 소망입니다. 그것은 진정한 위로입니다.

 

또 그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Then the angel showed me the river of the water of life, bright as crystal, flowing from the throne of God and of the Lamb through the middle of the street of the city. Also, on either side of the river, the tree of life with its twelve kinds of fruit, yielding its fruit each month. The leaves of the tree were for the healing of the nation.

요한계시록 Revelation 22:1-2

 

이런 소망의 눈을 뜨게 하신 우리 주님이십니다. 세상의 것에 눈이 밝고, 영적인 것에 전혀 눈을 뜨지 못한 맹인이었던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아십니까? 선악과를 따먹도록 유혹하던 그 뱀이 하던 말을?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But the serpent said to the woman, “You will not surely die. For God knows that when you eat of it, your eyes will be opened, and you will be like God, knowing good and evil.”

창세기 Genesis 3:4-5

 

하나님의 거룩한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죄악을 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거역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게 하는 교만의 죄를 짓게 하는 유혹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와가 그 꾐에 빠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담도 하와의 말을 들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인생은 영의 눈이 어둡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대신 죄악의 수치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이치에 밝고 지혜가 생겨, 서로 물고 싸우며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어떤 악이라도 서슴지 않는 악한 죄인으로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구속하지 않으셨으면 영원한 어둠에서 헤매고 다녔을 인생입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미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In him was life, and the life was the light of men. The light shines in the darkness, and the darkness has not overcome it.

요한복음 John 1:4-5

 

이렇다면 오늘 우리가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십자가의 길을 걸으시는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가 눈 먼 것을 아시고, 우리를 고치십니다. 마을 밖으로 우리를 이끌어내시고, 우리를 상세하고 세밀하며 친절한 치료의 과정으로 이끄시면서, 참된 목자가 양을 돌보시는 그대로 우리의 병든 것을 고치셨습니다.

 

세상만 보던 우리입니다. 죄악만 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를 만나, 우리의 눈을 뜨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천국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Amazing grace how sweet the sound!

that saved a wretch like me.

I was one lost but now found. Was blind but now I see.

찬송가 3051

 

우리는 보통 사람들입니다. 드라마를 연출할만한 어떤 조건도 없습니다. 들풀처럼 평범하고, 들꽃처럼 누구도 주목하지 않습니다.

 

혹시라도 내가 특별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분은, 스스로를 깊이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상한 갈대며, 꺼져가는 심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를 만나주셨습니다. 불신하는 사람들로부터 우리를 따로 떼어놓으시고, 치료해 주셨습니다. 치료의 모든 과정을 세심하게 살피셨습니다. 그리고 끝내 마침내 완전하게 시력을 회복하도록 고쳐주셨습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A bruised reed he will not break. And a faintly burning wick he will not quench. He will faithfully bring forth justice.

이사야 Isaiah 42:3

 

여기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San Francisco Bay area)에서 우리는 우리를 찾아오시고, 우리를 마을에서 끌어내시고, 환부에 침을 뱉으시고, 손을 대시며 기도해서 고쳐주시는 친절하신 예수님, 십자가의 고난으로써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해주시는 구원의 주님을 만나 뵙는 것입니다!

 

그리고 치료 이후!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라.

Go home!

그러나 마을에는 가지 말라!

Do not enter the village!

 

무슨 말씀입니까? 집은 집이지만 마을에는 속하지 말라! 그런 뜻 아닐까요?

 

마을에 마음을 두지 말라.

마을을 바라보지 말라.

세상의 번영과 사치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라!

오직 영원한 집 천국을 바라보라!

Do not put your minds to the villages!

Look at the eternal hom, the Kingdom of God!

 

결론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Let us fix out eyes upon Jesus, the author and perfector of our faith!

히브리서 Hebrews 12:2

 

영의 눈을 뜨게 하셔서, 우리를 예수님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얼굴 뵙게 하셨습니다.

 

질병을 고치심은 죄를 사하심과 관계가 있습니다. 병을 고치셨을 뿐 아니라 죄를 사하셨습니다. 아니, 죄를 사하실 때 처음부터 죄를 용서하시는 권세를 드러내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죄가 사함 받아야 합니다. 모든 죄를 용서하사, 죽음의 길에서 건져내시는 주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아멘. 아멘.

 

죄 사함 받은 사람은 죄에 속하지 않습니다. 그는 천국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Then I saw a new heaven and a new earth, for the first heaven and the first earth had passed away. And the sea was no more. And I saw the holy city, new Jerusalem, coming down out of heaven from God, prepared as a bride adorned for her husband.

요한계시록 Revelation 21:1-2

 

그리고 보십시오. 귀가 열렸습니다. “에바다!”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주시니, 곡하는 것들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And I heard a loud voice from the throne saying, “Behold. The dwelling place of God is with man. He will dwell with them, and they will be his people. And God himself will be with them as their God. He will wipe away every tear from their eyes, and death shall be no more, neither shall there be mourning, nor crying, nor pain anymore, for the former things have passed away.

요한계시록 Revelation 21:3-4

예수님께서 우리 마을에 찾아오셨습니다. 교만하고 패역한, 그래서 두로와 시돈보다 악하며, 차라리 소돔과 고모라보다 더 타락한 벳새다, 여기 샌프란시스코에. 오늘 우리를 찾아오신 주님께서 우리를 손을 잡으시고, 도시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일대일로 만나시고, 우리의 눈에 당신의 침을 뱉으셨습니다. 손으로 안수하시고 기도하셨습니다.

 

우리 참 목자 되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치료하시는 모든 과정에 친히 함께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서서히 영의 눈을 뜨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셨습니다. 안수기도하시면서!

 

마침내 위에서부터 영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아름다운 밭을 숲으로 여기게 되리라.

Until the Spirit is poured upon us from on high, and the wilderness becomes a fruitful field, and the fruitful field is deemed a forest.

이사야 Isaiah 32:15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내시는 성령님. 성령님께서 우리의 눈을 뜨게 하십니다. 세상의 일을 버리고 천국의 일을 바라보는 영원한 눈을 허락하십니다.

 

사람은 무엇을 바라보는가에 따라 그의 길이 달라집니다. 사람은 보는 대로 걷습니다. 우리가 천국을 향해 걸어야 합니다.

 

우리의 참 목자 되신 우리 구주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영원히, 영원히! 아멘.

 

 

기도

 

아버지 하나님. 고난 중에 주님께 부르짖습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깊은 중에 주님께 기도드립니다. 주여, 저희의 기도를 들으사, 찾아오소서. 질병을 고쳐주시옵소서. 죄를 용서하옵소서. 영의 눈을 뜨게 하옵소서. 진리의 말씀을 듣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