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830

금문교회 주일예배 Golden Gate Presbyterian Church Sunday Worship

 

가정 Family

마가복음 Mark 10:1-16

 

1.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 유대 지경과 요단강 건너편으로 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다시 전례대로 가르치시더니,

And he left there and went to the region of Judea and beyond the Jordan, and crowds gathered to him again. And again, as was his custom, he taught them.

2.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묻되, “사람이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And Pharisees came up and in order to test him asked, “Is it lawful for a man to divorce his wife?”

3. 대답하여 이르시되, “모세가 어떻게 너희에게 명하였느냐?

He answered them, “What did Moses commanded you?”

4. 이르되, “모세는 이혼증서를 써주어 버리기를 허락하였나이다.”

They said, “Moses allowed a man to write a certificate of divorce and to send her away.”

5.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마음이 완악함으로 말미암아 이 명령을 기록하였거니와

And Jesus said to them, “Because of your hardness of heart he wrote you this commandment.

6. 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니

But from the beginning of creation, ‘God made them male and female.’

7.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Therefore a man shall leave his father and mother and hold fast to his wife.

8.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And the two shall become one flesh. So they are no longer two but one flesh.

9.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라

What therefore God has joined together, let not man separate.”

10. 집에서 제자들이 다시 이 일을 물으니,

And in the house the disciples asked him again about this matter.

11. 이르시되, “누구든지 그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에 장가드는 자는 본처에게 간음을 행함이요

And he said to them, “Whoever divorces his wife and marries another commits adultery against her,

12. 또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데로 시집가면 간음을 행함이라.

And if she divorces her husband and marries another, she commits adultery.

 

13.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주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And they were bringing children to him that he might touch them, and the disciples rebuked them.

14.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But when Jesus saw it, he was indignant and said to them, “Let the children come to me. Do not hinder them, for to such belongs the kingdom of God.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하시고,

Truly, I say to you, whoever does not receive the kingdom of God like a child shall not enter it.”

16. 그 어린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And he took them in his arms and blessed them, laying his hands on them.

 

 

오늘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은 가정에 대한 메시지입니다. 가정. 이것은 축복입니다.

 

콜롬비아 나병환자 첼리타 할머니는 젊었을 때 결혼을 꿈꾸었지만, 여러 젊은이들이 포로포즈 했지만, 포기했습니다. 치유될 수 없는 병을 안고 누군가의 아내가 되는 것은 안 된다고 여겼습니다.

 

가정은 축복입니다. 이 축복은 하늘에서 내려주신 것입니다. 이 은혜를 묵상하면서 오늘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인 마가복음 10:1-16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눕니다.

 

1. 1절은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을 떠나 유대지경을 거쳐 예루살렘에 이르는 십자가의 여정을 시작하심을 전합니다. 가시는 중에 무리들이 모였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2. 2-9절은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시험하는 장면입니다. 이혼 문제를 두고.

3. 10-12절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혼 문제에 대하여 교훈하시는 장면입니다.

4. 13-16절은 아이들에 대한 관계입니다.

 

결혼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하나님의 손에서 창조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각각 하나님의 손에서 부모를 떠나 한 몸을 이루었습니다. 둘이었지만 이제는 하나입니다. 한 몸입니다. 이것이 결혼의 신비입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을 창조하신 그대로, 하나님께서 가정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가정이 갈라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이혼은 가정을 쪼개는 것입니다. 이혼은 하나님의 뜻이 거역하는 행위입니다. 이혼은 하나님께 범죄 하는 행위로, 그 결과는 간음입니다. 이혼으로써 십계명 가운데 제7계명을 범하는 것입니다.

 

오늘 시대에 이혼이 성행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도 이혼자의 비율이 대단히 높습니다. 여러분이 구글(google) 함으로써 그 통계를 간단히 알아볼 수 있습니다.

 

사회가 그렇게 교회도 이미 그러니 이혼을 금하는 오늘의 설교는 시대착오(anachronistic message)일까요?

 

아닙니다. 성경말씀은 시대의 제한을 받지 않습니다. 어두운 시대의 등불입니다. 시대가 어두울수록 우리는 더욱 더 하나님의 말씀의 빛 앞으로 나아와야 합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Your Word is a lamp to my feet and a light to my path.

시편 Psalm 119:105

 

오늘날 아이들에 대한 자세도 사뭇 달라졌습니다. 지역에 따라서 아이들에 대한 대우가 다릅니다. 대개 부촌에서는 아이들에게 투자하는 시간과 금전이 상당합니다. 그러나 가난한 나라, 가난한 지역에서 아이들은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합니다.

 

이 두 가지 경우 모두,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부촌에서 아이들에게 큰 투자를 한다고 하지만, 진정한 사랑이 있는가는 의문이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지역에서 아이들이 무시되는 것 또한 고쳐져야 할 일입니다.

 

 

첫째로, 부부의 관계입니다.

 

가정의 기초 단위는 부부입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입니다. 결코 동성의 결합이 아닙니다.

 

 

1.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 유대 지경과 요단강 건너편으로 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다시 전례대로 가르치시더니,

And he left there and went to the region of Judea and beyond the Jordan, and crowds gathered to him again. And again, as was his custom, he taught them.

 

다시 길 가는 이야기입니다. 이 길은 가버나움에서 예루살렘까지,” 십자가의 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바리새인의 대화는 논쟁”(polemic)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거기를떠나셨습니다. 가버나움입니다. “본 동네로 불리는, 예수님 사역의 중심무대였습니다. 지난 주 설교말씀인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역사를 행했고, 요한이 그를 자기 편에 속하지 않았다고 해서 금지시켰던 곳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그를 금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불로 친 소금은 십자가의 고난인데, “너희 안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 하라!” 하셨습니다.

 

이제 가버나움을 떠나는 길은 예루살렘이 그 목적지입니다. 거기서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고,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일정입니다. 이제 본격적인 십자가의 길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 길에 유대지경과 요단강 건너편으로 가셨습니다.

 

무리가 따랐습니다. 가시는 길에 전례대로가르치셨습니다.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이 기다리는 길인데, 주님께서는 하시던 그대로 그들에게 복음을 증거 하셨습니다.

 

그런데, 역시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이것 또한 전부터 있던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시험하는 자들입니다.

 

 

2.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묻되, “사람이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And Pharisees came up and in order to test him asked, “Is it lawful for a man to divorce his wife?”

 

바리새인들입니다. 이들이 예수님께 접근했습니다. 말씀을 배우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예수님을 덫에 걸어 십자가에 죽이려고 계획한 일입니다.

 

이혼에 대하여 질문했습니다. “옳으니이까?” 그런데 헬라어 본문은 법적입니까?”(lawful) 라고 물었습니다. 즉 율법에 적합한가, 여부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가르침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시험하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가지고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사람이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습니까?”

Is it lawful for a man to divorce his wife?

 

이들은 옳다!”는 대답을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신명기(Deuteronomy)이혼할 때는 증서를 써 주라한 대목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아내를 맞이하여 데려온 후에 그에게 수치 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이혼 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것이요

When a man takes a wife and marries her, if then she finds no favor in his eyes because he has found some indecency in he, and he writes her a certificate of divorce and puts it hin her hand and sends her out of his house.

신명기 Deuteronomy 24:1

 

그리고 유대인의 전통도 이혼가능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달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What therefore God has joined together, let not man separate!

마가복음 Mark 10:9

 

하나님을 마주서서 대항하는 일이 가능합니까?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는 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을 사람이 무너뜨리는 행위처럼, 하나님을 대적하여 맞서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대답입니다. 그리고 모세오경의 율법을 해설하셨습니다.

이혼할 때 증서를 써 주라는 계명은, “사람의 마음이 완악함으로 주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마음이 완악함으로 말미암아 이 명령을 기록하였거니와

Because of your hardness of heart he wrote you this commandment.

마가복음 Mark 10:5

 

사람이 완악할 때 이혼하는 것이며, 이혼하면서 아무런 증서도 주지 않아서, 여자가 거리에 나가게 되는 이중고를 겪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모세오경은 여자의 피해를 최소화시키는 기능을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미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신명기 24:1-4에 이미 이 나와 있습니다.

 

사람이 아내를 맞이하여 데려온 후에 그에게 수치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이혼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것이요.

When a man takes a wife and marries her, if then she finds no favor in his eyes because he has found some indecency in her, and he writes her a certificate of divorce and puts it in her hand and sends her out of his house.

신명기 Deuteronomy 24:1

 

이들은 또한 미드라쉬탈무드로 의심할 바 없는 대답이 있습니다. 유명한 랍비 힐렐(Hillel, c. 110 BC-AD 10)은 어떤 이유로든지 이혼이 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심지어 밥을 태웠다고 해도. 그리고 랍비 아키바(Akiva, AD 50-135)다른 여자가 더 좋아 보인다고 해도이혼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바리새인들이 믿는 것은, “이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이들이 사람이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습니까?” 여쭈었을까요? 성경에 답이 있는데?

 

당시에 이혼을 원칙적으로 반대하던 그룹은 에세네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세속을 떠나 사막에 공동체를 형성하고 살았습니다. 소위 쿰란 공동체사람들도 에세네 파입니다. 세례요한도 어떤 의미로든지 이들과 관계가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한쪽으로 몰아세우려는 목적이었습니다. 적어도 세례요한과 한 패라고 낙인을 찍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세례요한을 죽였던 예수님을 헤롯 안다바(Herod Antipas)의 손에 넘길 수도있습니다.

 

한번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데리고 와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Now in the Law, Moses commanded us to stone such women. So what do you say?

요한복음 John 8:5

 

답이 있는데 묻는 것은, 그것이 시험하는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예수님각을 세워율법의 권위로써 예수님을 처단하려는 계획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과 다르셨습니다. 예수님께는 권세가 있었습니다.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And they were astonished at his teaching, for he taught them as one who and authority, and not as the scribes.

마가복음 Mark 1:22

 

계명 이전에 우리는 하나님의 본래 뜻을 여쭈어야 합니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한 남자와 한 여자를 각각 지으시고 만나게 하셔서 창조하신 것입니다. 사람에게 이 가정창조를 깨뜨릴 권한이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입니다.

 

인간이 죄를 짓고, 그 죄를 바탕으로 이혼하는 죄를 더 짓는 것입니다. 이것은 안 될 말입니다.

 

이혼증서는 이혼을 합법화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거리로 나앉게 되는 여자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명령입니다.

 

 

 

3. 대답하여 이르시되, “모세가 어떻게 너희에게 명하였느냐?

He answered them, “What did Moses commanded you?”

 

주님의 질문입니다. 이 또한 몰라서 물으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의도를 드러내는 주님의 공격입니다. 또한 그 율법이 어떤 배경으로 제정되었는지 설명해 주시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그 율법은 하나님의 본래의 뜻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해 주시려는 목적입니다.

 

 

4. 이르되, “모세는 이혼증서를 써주어 버리기를 허락하였나이다.”

They said, “Moses allowed a man to write a certificate of divorce and to send her away.”

 

그렇습니다. 이것이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또한 바리새인들이 믿는 바입니다. 이들은 이혼을 허락받았다고 주장합니다.

 

 

5.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마음이 완악함으로 말미암아 이 명령을 기록하였거니와

And Jesus said to them, “Because of your hardness of heart he wrote you this commandment.

 

이제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합법이거나 허락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명령이 무엇인가, 그것이 예수님의 관심사입니다. 보십시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바 그 명령이 기록된 배경입니다.

 

너희 마음이 완악함으로 말미암아

Because of your hardness of heart

 

그런데 바리새인들이 이혼을 기정사실로 전제하고 말하는 것은 자기들의 완악함을 회개하는 대신 그 바탕 위에서 계속 그대로 살겠다는 자세입니다. 죄 위에 죄를 더하는 행위입니다.

 

인간은 남자와 여자를 지으시고 가정을 이루게 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계명이 어떻든 관계없이 결국은 죄를 범합니다.

 

그 죄를 그대로 갚자면 죽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살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것이 모세를 통해 허락하신 계명의 성격입니다.

 

우선 이혼증서는 사회의 최 약자인 여성을 사회로부터 보호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이혼증서를 가지면 여자가 다시 결혼할 수가 있습니다. 이혼증서 없는 여자는 사회에서 소회되고 마는 것입니다. 인권이 보장받지 못합니다. 거리의 여자가 되고 맙니다. 걸인이 되거나 창녀가 되거나.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신명기 24:1-4는 그러므로 약자를 보호하는 법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강자인 남자들이 이용하다니! 악하고 또 악한 자들입니다.

 

오늘도 사회적으로 법망을 이리저리 피하면서 탈법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합법인데 살인하고 간음합니다. 소위 유능한 변호사들을 고용합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이런 말이 여기서 났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고도로 훈련받은 율법학자들입니다.

 

 

6. 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니

But from the beginning of creation, ‘God made them male and female.’

 

율법제정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신 것입니다. “창조 때로부터!”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과 같은 레벨에서 논쟁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권위가 있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지으셨습니다. 남자와 여자였습니다.

 

 

7.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Therefore a man shall leave his father and mother and hold fast to his wife.

 

하나님께서 남자가 그 부모를 떠나게 하셨습니다.

 

 

8.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And the two shall become one flesh. So they are no longer two but one flesh.

 

부모를 떠난 남자가 여자와 한 몸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둘이었지만 하나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손에서!

 

한 몸이라는 것은 하나의 생명체라는 뜻입니다. 나눌 수 없는 존재입니다. 나누면 그 생명은 죽습니다.

 

 

9.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라

What therefore God has joined together, let not man separate.”

 

결론입니다.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은 사람이 나눌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것은 모세를 통해 주신 계명이 아니라, 창조 때 하나님께서 행하셨던 그 근본적인 사건, 곧 가정창조입니다.

 

판례로 치면, 예수님께서 최종 대법원의 판례를 거론하신 것입니다.

 

이혼증서를 주어 내보내게 하신 것은, 이혼 자체를 가능하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죄를 지어 이혼을 하는데, 거기서 여자들이 일방적으로 당하여 거리에 나앉게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여자들을 보호하시는 법을 모세를 통해 주신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이혼을 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신명기 24:1-4는 존재이유를 상실할 것입니다.

 

바울이 기록한 결혼문제입니다.

 

결혼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라서지 말고, (만일 갈라섰으면 그대로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

To the married I give this charge (not I, but the Lord): the wife should not separate from her husband. (But if she does, she should remain unmarried or else be reconciled to her husband, and the husband should not divorce his wife.

고린도전서 1 Corinthians 7:10-11

 

결혼도 사명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생각하면 그 사명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사명입니다. 결혼에서 혼자 행복하기를 꿈꾼다면 그것은 사업이며 투자가 되겠습니다. 그러나 그런 비즈니스에서 상대방은 무엇입니까? 이용당하는 것인가요? 그러면 자식들은요자기의 행복을 위해 태어나고 살아가야 할 존재인가요?

 

사람의 모든 삶의 방식이 하나님 나라의 초점을 벗어나면 그건 죄악입니다.

 

아내 된 자여, 네가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며, 남편 된 자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

For how do you know, wife, whether you will save your husband? Or how do you know, husband, whether you will save your wife?

고린도전서 1 Corinthians 7:16

 

결혼도 이혼도 하나님 나라를 위한 사역의 연장선상에서 보아야 합니다. 그 사명 안에서 결혼생활이 감당되어야 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결혼생활에서 하나님의 뜻을 살펴야 할 궁극적인 이유가 사라집니다. 그렇게 되면 결혼생활은 철저하게 인간 대 인간의 문제로 전락합니다. 거기서부터 그리스도인의 결혼생활은 세상 사람들과 전혀 다를 바 없어집니다.

 

그러므로 결혼할 때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아 멸망당했던 노아의 홍수 때 사람들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The sons of God saw that the daughters of man were attractive. And they took as their wives any they chose.

창세기 Genesis 6:2

 

하나님께서 홍수로 세상을 멸망시키실 결심을 하신 인간의 죄악 가운데 대표적인 경우가 여기 있습니다. 결혼에서 하나님의 뜻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입니다.

 

결혼이 그랬다면, 이혼은 그 자체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생각해야 할 문제 아닙니까?

 

마찬가지로 이혼도 자기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먼저 앞세워 판단하고 결정해야 할 사안입니다.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

Only let each person lead the life that the Lord has assigned to him, and to which God has called him. This is my rule in all the churches.

고린도전서 1 Corinthians 7:17

 

그런데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대답을 충분히 예상하면서도 시험하기로 한 것은 아닐까요? 그랬다면 왜 그랬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쿰란의 에세네파 사람들이나, 세례요한과도 입장이 일치합니다. 특히 바리새인들이 염두에 둔 것은 세례요한일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헤롯에게 이혼과 재혼에 대하여 공격했던 바 있습니다.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동생의 아내를 취하는 것이 옳지 않다하였음이라.

For John had been saying to Herod, “It is not lawful for you to have your brother’s wife.”

마가복음 Mark 6:18

 

그로 인하여 세례요한은 헤롯과 헤로디아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어쩌면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헤롯의 손에 넘기려는 계획을 가지고 이렇게 시험의 덫을 놓은 것은 아니었을까요?

 

바리새인들이 이번에 당장 주님을 어떻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주님의 대답에 그들이 물러났지만, 아주 물러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서 길 가시는 목적지를 이들이 파악했을 것이며, 그 모든 일정 가운데 끊임없이 시험의 덫을 놓았습니다.

 

결국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긴 것은 산헤드린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중심역할을 했던 유대인 자치기구였습니다. 산헤드린이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기기로 결정했을 때 예수님께 시험의 덫을 놓았던 오늘의 이 문제도 포함되었을 것입니다.

 

아시는 것처럼 헤롯도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기는 일에 동의했습니다!

 

그리고 산헤드린은 군중들을 선동하는 일에도 성공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다수가 이들의 선동을 받아 돌변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덫을 피해가는 목적을 품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품고 정면으로 맞섰습니다. 결국 그 길이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오늘 이 험악한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십자가 길이 무엇인지 밝히 보여주시는 한 중요한 장면입니다.

 

구원은 새-창조입니다. 예수님의 구원사역은 새로운 창조사역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구원사역의 기초는 창조입니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가정을 창조하신 하나님 뜻에서 볼 때, “결혼이 하나님의 뜻이지, “이혼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혼적법하거나 허용되는 범위로 두신 일이 절대로 없으셨습니다.

 

율법주의(legalism)의 논쟁은 결국 죄를 합법화하는 데 성공할 것입니다. 법을 다루는 자들이 위법하는 아이러니의 세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창조주의 권위로써, 율법 이전의 창조로 모든 문제를 소급하셨습니다. 거기서 근본적인 해법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뵙는 은혜 없이 적법성 여부만 따질 때, 인간은 결국 그들의 죄악을 정당화하는 데 성공할 것입니다. 이혼에 국한하여 말할 때, 그 성공은 간음죄라는 또 다른 범죄를 낳고 마는 것입니다!

 

죄악 된 인간의 토론장에 참여하는 대신,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 앞에 엎드려 귀를 기울여야 함이 옳습니다.

 

동성애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모든 것이 정리됩니다. 죄를 이미 지은 인생을 살리시기 위해 허락하신 율법을 두고 법리를 따지는 데서 인간은 교묘하게도 죄악 자체를 정당화하는 죄악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서 이런 것을 배워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스승은 한 분,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10. 집에서 제자들이 다시 이 일을 물으니,

And in the house the disciples asked him again about this matter.

 

이제 주님-제자들의 대화로 전환되었습니다. 예수님-바리새인 대화가 논쟁”(polemic)이었던 데 반하여, 이제 예수님-제자들의 대화는 교훈”(instruction)입니다. 이처럼 논쟁-->교훈의 패턴전환은 복음서, 특히 마가복음에 나타난 특징입니다. 바리새인들 같은 대적자들”(adversaries)이 문제를 제기한 것을 이후에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교훈으로 바꾸어 교육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비유로 가르치신 내용을 해설로 이어가시는 패턴도 있습니다. 무리들 중에 가르치신 내용을 따로 모였을 때 제자들이 다시 여쭙는 것입니다.

 

 

전체 public

소그룹 inner circle

대적자들 adversaries

논쟁 polemic/controversy

교훈 instruction

무리들 crowds

비유 parables

교훈 instruction

 

이런 패턴은 오늘 교회의 지도자들이 반드시 주목하여 사용해야 할 소중한 자산입니다.

 

주님께서 소수의 제자들을 양육하시는 데 얼마나 집중하셨는가 돌아보기 바랍니다.

 

제자들이 집에서 조용히 여쭈었습니다. 이 때 주님께서 더욱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혼은 간음이다!”

 

십계명 제7계명이 간음하지 말라!”입니다. 예수님께서 이혼7계명을 범하는 행위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마태복음은 예수님께서 산상수훈평행본문에서 이혼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을 기록했습니다.

 

산상수훈에서 간음하지 말라”(마태복음 5:27-32)는 말씀 중에 이혼을 언급하셨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없이 아내를 버리면, 그는 그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림받은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But I say to you that everyone who divorces his wife, except on the ground of sexual immorality, makes her commit adultery, and whoever marries a divorced woman commits adultery.

마태복음 Matthew 5:32

 

이혼은 간음이라는 말씀을 바리새인들이 듣는 데서 말씀하셨다고 기록합니다. 그런데 여기는 조건이 있습니다.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드는 자는 간음함이라는 말씀입니다.

 

마가복음은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드는 것이 간음인데, 마태복음은 음행한 이유 외에 이혼하는 것은 간음이라는 것입니다. 이혼 이전에 음행간음을 저질렀다면 그 이혼은 정당사유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 음행도 용서의 범위에 포함됩니다. 모든 죄는 다 용서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도 음행의 현장에서 붙들린 여인을 용서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하시니라.

Jesus stood up and said to her, “Woman, where are they? Han no one condemned you?” She said, “No one, Lord.” And Jesus said, “Neither do I condemn you. Go, and form no on sin no more!”

요한복음 John 8:11

 

이러므로 오늘 마가복음의 말씀에 근거하여, 그리고 마태복음의 평행본문에 근거하여, “어떤 이유에서도 이혼은 안 된다!”는 하나님의 뜻을 깊이 묵상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바라기는 이혼은 안 된다는 말씀이 가정생활의 족쇄가 아니라,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시는 자유의 능력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계명을 주신 본래의 뜻이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11. 이르시되, “누구든지 그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에 장가드는 자는 본처에게 간음을 행함이요

And he said to them, “Whoever divorces his wife and marries another commits adultery against her,

 

누구든지! 예외가 없습니다. 사람은 이혼하면 그 이혼으로써 본처에게 간음을 행사한 것입니다.

 

 

12. 또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데로 시집가면 간음을 행함이라.

And if she divorces her husband and marries another, she commits adultery.

 

아내가! 성경과 유대 전통을 따르면 여자가 이혼을 신청할 수 없습니다. 헬라-로마의 배경에서는 가능합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당대의 정황을 염두에 두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유대의 여자라도 남자가 이혼을 결심하도록 유도할 수가 있습니다. 분명히 이혼 제기는 여자에게 금지되었지만, 여자는 남자가 같이 못 살겠다는 판단이 서도록 역할을 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여자에게 금하신 것은 바로 이 부분입니다.

 

이혼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행위입니다. 그의 열매는 계명파괴입니다. 무슨 계명입니까?

 

간음하지 말라!

You shall not commit adultery!

출애굽기 Exodus 20:14

 

십계명의 제7계명입니다.

 

간음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가정을 파괴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금하셨습니다.

 

 

정리합니다: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이혼할 수 없습니다. 남자는 물론 여자도! 하나님 앞에서 서약을 하고, 그 서약을 함부로 깰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이혼을 당한 사람은 어떻게 하느냐?

이혼을 안 하면 살 수가 없는 사람은 이혼금지의 명령 앞에 죽음을 선택해야 하느냐?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는 여자를 살리기 위해서 이혼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가 가정에서 휘두르는 폭력, 아내와 아이들을 죽음의 공포로 몰아가는데도 불구하고 이혼불가의 철벽 안에 갇혀 있어야 하는가?

마약과 노름과 온갖 죄악에 물든 사람이 가정의 거룩함을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있는가?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은 오늘 다 드릴 수 없습니다. 기왕에 엎질러진 물의 상황에서, 그 차선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을 성경이 무시하지 않습니다. 오늘 바리새인들이 가지고 온 모세의 율법, 특히 신명기 24:1-4 같은 말씀을 우리가 공부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품으시는 그 사랑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다만, 오늘은 우리가 사랑의 예수님 앞에 그 옷깃을 여미면서 그분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시험하는 것은, 바리새인들 같은 교만한 자들만 아니라, 궁지에 몰려 삶의 위기 중에 있는 사람도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기근목마름의 위기에서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

 

상황이 어땠다고 해서 하나님을 시험한 죄가 이해되고 용서되는 것은 아닙니다. 신중하고 겸손하게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절대로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결혼하는 길에서,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여건을 충분하게생각해야 합니다.

 

결혼을 결심할 때 이런 일이 발생할 경우를 전혀 상상하지 않았습니까?

이런 일에 대하여 어떤 대비도 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그에 대한 영적인 대비를 실시해야 합니다. 어린 나이부터 결혼을 놓고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장래 배우자를 위하여, 장래 자녀들을 위하여 구체적으로 기도하면서 영적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학교공부만 매달리는 대신, 앞으로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실 가정에 대한 비전을 나누고, 그를 위하여 좋은 남편과 좋은 아내가 되는 길을 놓고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기도도 당연히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Do not be overcome by evil, but overcome evil with good!

로마서 Romans 12:21

 

일이 터진 다음부터 영적 싸움이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결혼을 결심할 때부터 이미 영적인 전쟁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 싸움은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하는 영적인 전쟁입니다. 승리의 길은 하나님께 늘 기도드리는 것입니다. 기도 이외에 전쟁을 이길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생각합니다:

어쩔 수 없는 경우는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허락하신 그 어쩔 수 없는 경우, 예수님께서는 그 어쩔 수 없는 경우까지 막아버리신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사람은 반드시 결혼해야 한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마태복음 평행구절 말씀입니다:

 

제자들이 이르되, “만일 사람이 아내에게 이같이 할진대 장가들지 않는 것이 좋겠나이다.”

The disciples said to him, “If such is the case of a man with his wife, it is better not to marry.”

마태복음 Matthew 19: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람마다 이 말을 받지 못하고 오직 타고난 자라야 할지니라. 어머니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

But he said to them, “Not everyone can receive this saying, but only those to whom it is given. For there are eunuchs who have been so from birth, and there are eunuchs who have been made eunuchs by men, and there are eunuchs who have made themselves eunuchs for the sake of the kingdom of heaven. Let the one who is able to receive this receive it.

마태복음 Matthew 19:11-12

 

하나님의 나라. 그것이 가장 중요한 가치 기준입니다.

 

바울도 결혼하지 않는 옵션을 말했습니다.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니라.

I wish that all were as I myself am. But each his own gift from God, one of one kind and on of another.

고린도전서 1 Corinthians 7:7

 

바울 자신은 독신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사명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나 일단 하나님의 뜻을 따라 결혼한 이상,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우리는 진리를 거슬러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

For we cannot do anything against the truth, but only for the truth.

고린도후서 2 Corinthians 13:8

 

그렇지만, “이미 이혼 한 경우,” 그 이후에야 하나님의 뜻을 이제 깨닫게 된 경우는 어떻게 합니까? 이혼과 재혼이 이미 이루어졌을 경우에?

 

예수님께서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자에게 하신 말씀이 여기서도 유효합니다.

 

대답하되,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She said, “No one, Lord.” And Jesus said, “Neither do I condemn you. Go, and from now on sn no more!”

요한복음 John 8:11

 

어떤 사람이 있어, 이 말씀을 이용하여 이혼을 거듭한다면? 예수님께서 용서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용서를 범죄의 구실로 사용하는 그 악을!

 

 

둘째로, 아이들에 대한 일입니다.

 

아이들은 아름다운 결혼생활의 열매입니다.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의 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그들이 성문에서 그들의 원수와 담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Behold, children are a heritage from the Lord, the fruit of the womb a reward. Like rrows in the hand of a warrior, are the children of one’s youth. Blessed is the man who fills his quiver with them! he shall not be put to shame when he speaks with his enemies in the gate.

시편 Psalm 127:3-5

 

예수님께서 아이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아이들을 환영하셨습니다. 축복하기를 좋아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 나라아이들의 관계입니다.

 

우리도 아이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내 자식이니까! 혹은 귀여우니까! 그렇게 보면 안 됩니다. 그런데서 빗나간 사랑이 생산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 그 나라 가는 길을 염두에 두어야 우리의 모든 선함이 선함의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자식 사랑도, 아이들 사랑도 결코 이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역시 길 가는 이야기입니다.

 

 

13.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주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And they were bringing children to him that he might touch them, and the disciples rebuked them.

 

역시 제자들은 아직도 예수님의 마음을 알아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앞에는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주님을 시험한 자들이. 이번에는 제자들입니다. 그들도 예수님의 마음을 알아드리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14.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But when Jesus saw it, he was indignant and said to them, “Let the children come to me. Do not hinder them, for to such belongs the kingdom of God.

 

예수님께서 노하셨습니다.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라!”

Let the children come to me!

 

어린아이들을 소중히 여겨야 할 이유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와 어린아이들. 무슨 관계입니까?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하시고,

Truly, I say to you, whoever does not receive the kingdom of God like a child shall not enter it.”

 

어린아이들이 하나님 나라를 받듭니다. 어째서요? 어린아이들은 어른들의 지시를 거역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그대로 받습니다. 바로 이런 어린아이들 같은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그 말씀을 그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16. 그 어린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And he took them in his arms and blessed them, laying his hands on them.

 

예수님께서 가르치심을 마치시고, 아이들을 안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 위에 손을 얹으셨습니다. 그리고 축복하셨습니다.

 

아이들은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는 대상이 아닙니다. 대신 안아주고, 손을 얹어 축복해 주어야 합니다.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이것이 그의 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그들이 성문에서 그들의 원수와 담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Behold! Children are a heritage from the Lord. The fruit of the womb a reward. Like arrows in the hand of a warrior are children of one’s youth. Blessed is the man who fills his quiver with them! He shall not be put to shame when he speaks with his enemies in the gate.

시편 Psalm 127:3-5

 

 

결론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한 평생,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가정에서 천국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가정이 작은 천국으로서, 천국 가는 길을 함께 갈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을 안으시고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게 하신 우리 주님이 가르치심을 오늘 우리가 들었습니다. 가정에서 천국소망을 꿈꾸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문제를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 예수님을 통해 비로소 들어갈 수 있는 그 나라. 십자가의 길을 따름으로써 비로소 열리는 그 좁은 길좁은 문.” 그 길에서 우리는 가정의 온전한 회복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부부의 관계와 자녀들의 관계도.

 

오늘날 세상은 가정의 상처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집집마다 신음소리가 높습니다.

 

교회는 이미 병든가정들을 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품어야 합니다. 이미 지은 죄를 정죄하지 않습니다. 이미 상한 마음을 이제 위로하십니다.

 

그래서 계명을 주신 것이 아닙니까? 모든 계명은 사랑의 계명입니다.

그러나 그 계명으로써 멈추지 않는 죄, 회개 없는 죄악을 정당화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죄를 거듭 짓는 악한 행위입니다. 이런 논리는 바리새인들의 누룩입니다. 배우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Jesus said to them, “Watch and beware of the leaven of the Pharisees and Saducees.”

마태복음 Matthew 16:6

 

하나님의 용서를 빌미로 죄를 더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빙자하여 거짓을 정당화합니다. 천국에 이르는 자의 태도가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는 주님의 준엄함 말씀을 증거 합니다. 교회의 예배와 성경공부, 공동체의 생활은 우리가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도록 권면하고 이끌고 도와주는 길로 나가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Come to me, all who labor and are heavy laden, and I will give you rest.

마태복음 Matthew 11:28

 

 

교회는 천국의 모형입니다. 가정은 교회에서 천국생활을 배워야 합니다. 교회예배의 아름다움을 가정이 배우고, 가정 안에서 남편과 아내가 참 사랑을 실천합니다. 이리하여 아이들이 진정으로 축복 받고 사랑 받는 아름다운 가정으로 거듭날 것입니다. 천국의 은혜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기도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공동체 가정을 창조하신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그 아름다움을 지켜나갈 수 있도록 주여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