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19

금문교회 추수감사주일예배

조은석 목사

 

추수감사

누가복음 17:11-19

 

11.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12.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13.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하거늘,

14.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15.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16.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18.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우리교회 초대 장로 두 분 중에 김인성 장로님이 있습니다. 그가 작사 작곡한 찬양이 있습니다. “감사하며 살자.” 한때 우리교회는 추수감사절마다 이 찬양을 성가대가 연주했습니다. 내년 2018년 추수감사예배 때 성가연주로 추천해 드립니다.

 

감사하며 살자 감사하며 살자.

창조주 하나님을 우리는 감사하며 살자.

 

어떤 권사님이 혀 암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의사가 마취 직전에 일생 마지막으로 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권사님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예수님께서 한센병 환자 열 명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런데 한 명만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사람만 예수님께 돌아왔습니다. 예수님의 발 아래 엎드려 감사드렸습니다. 그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질문하셨습니다. 두 가지입니다. 1.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않았느냐? 그런데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2.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대답을 기다리지 않으시고, 예수님께서 그 한 사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아직도 땅에 엎드려 있었습니다.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이 사건은 하나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누가에게 성령감동하게 하시고, 성경에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이 말씀사건은 이후 모든 세대에게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2017년 추수감사예배를 드립니다. 추수감사는 농부들이 추수 때 드리는 감사였습니다. 우리는 농부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들판에서 거둔 수확도 없습니다. 그러나 추수감사가 모든 세대, 모든 사람에게 다 적용되는 절기입니다.

 

초막절, 장막절, 수장절 등으로 부르는 절기는 오늘 말로 추수감사절입니다.

 

너희는 타작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거두어들인 후에 이레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 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이레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너의 가운데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 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

Celebrate the Feast of Tabernacles for seven days after you have gathered the produce of your threshing floor and your winepress. Be joyful at your Feast--you, your sons and daughters, your menservants and maidservants, and the Levites, the aliens, the fatherless and the widows who live in your towns. For seven days celebrate the Feast to the Lord your God at the place the Lord will choose. For the Lord your God will bless you in all your harvest and in all the work of your hands, and your joy will be complete. Three times a year all your men must appear before the Lord your God at the place he will choose: at the Feast of Unleavened Bread, the Feast of Weeks and the Feast of Tabernacles. No man should appear before the Lord empty-handed: Each of you must bring a gift in proportion to the way the Lord your God has blessed you.

신명기 16:13-17

 

우리는 모두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린 것은 아닙니다. 오늘 말씀에는 열 명 중에 한 명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렸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고, 주님 앞에 나아와, 그 발 앞에 엎드려 감사드린 사람은 이방인뿐이었습니다.

 

여기서 하나의 패턴을 발견합니다. 이 패턴을 이해하면, 현재 이 세상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놀랍게 여길 것이 아니라, 그것이 세상이라, 그렇게 알 수 있습니다. 첫째로, 받은 은혜를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사람은 그 수가 적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님께 나아와 진정으로 감사드리는 사람은 멸시와 천대를 당하던 이방인이었다는 것입니다.

 

한센병은 그 치료를 위해 사회로부터 격리되어야 했습니다. 병 자체가 주는 고통에다가,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 생면부지의 땅에서 고독하게 살아가야 하는 것은 형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 지경으로 지나가실 때, 한 마을에 들어가셨습니다. 나병환자 열 명이 멀리 서서소리를 높였습니다. 이들은 마을 가까이 올 수가 없었기 때문에 멀리 섰던 것입니다. 멀리서는 소리를 들을 수가 없기 때문에 소리를 높였습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Jesus, Master, have pity on us!

 

예수님께서 그들을 돌아보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예수님께서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말씀하셨는데, 그들이 알아들었다는 것은, 주님께서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센병 환자가 마을 사람들에게 가까이 올 수 없었던 것처럼, 일반인들은 한센병 환자들에게 다가가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셨습니다.

 

사실 그들만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병을 고치실 때, 손을 대시거나, 침을 발라 흙을 이겨 눈에 대시거나, 귀에 손가락을 대셨습니다.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Go, show yourselves to the priests!

 

한센병 걸린 사람들이 왜 제사장에게 몸을 보여야 했습니까? 레위기 13장에 따르면, 한센병을 포함한 피부질환에 걸리면, 사람들은 그를 제사장에게 데리고 가야 했습니다. 제사장이 그를 진찰하고, “부정여부를 결정했습니다.

 

만일 병이 나았다면, 제사장은 그를 진찰한 후 정하다!” 선포합니다.

 

레위기 14장은 그렇게 한센병이 나은 사람이 제사장에게 제물을 가져가야 할 규례를 정합니다. 살아있는 정결한 새 두 마리와, 백향목과 홍색 실과 우슬초를 가져와야 했습니다.

 

여기서 홍색 실은 다름 아닌 진홍벌레”(warm-crimson)입니다. 참나무 종류에 기생하는 아주 작은 벌레인데, 그를 문지르면 진홍색 물감을 얻습니다. 이 진홍벌레는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상징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 거리요, 백성의 조롱 거리니이다.

But I am a worm and not a man, scorned by men and despised by the people.

시편 22:6

 

그러니까 한센병 걸린 환자가 병에서 나았을 때 예물로 가져가는 것 중에 십자가 보혈을 예표하는 진홍벌레의 피가 있는 것입니다. 아울러 제물로 포함된 새의 피”(the blood of the bird)도 예수님의 피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우슬초”(hyssop)도 초를 섞은 포도주를 찍어 예수님께 드렸던 도구였기 때문에 예수님의 수난을 예표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또한 이 우슬초는 피를 적셔서 문의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려서 출애굽 때 하나님의 사자들이 넘어간구원사건 때 사용되었습니다.

 

8일에 그는 흠 없는 어린 숫양 두 마리와 일 년 된 흠 없는 어린 암 양 한 마리와 또 고운 가루 십분의 삼 에바에 기름 섞은 소제물과 기름 한 록(log)을 가져가서 속건제를 드려야 했습니다. 만일 그가 가난하여 그 제물이 힘에 부치면, 산비둘기 둘이나, 집비둘기 새끼 둘을 가져다가, 하나는 속죄제물로 드려야 했습니다. 그밖에 자세한 규정이 레위기 14장에 있습니다.

 

이처럼 한센병을 진찰하여 그 발생확인과 그 치료확인 모두를 제사장이 결정했습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열 명을 제사장에게 보내신 것은, 그 치료확인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고쳐주셨고, 제사장이 그것을 확인하게 되면, 그 환자들은 집으로 돌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가다가깨끗함을 받았습니다. 다 나았기 때문에 제사장에게 갈 필요가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제사장의 치료완료 확인을 받고 정결예식을 행해야 집으로 돌아갈 수가 있었으니까, 그들은 그 율법의 규례를 따랐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감사에 있었습니다. 집에 돌아갈 수 있는 모든 절차를 마쳤다고 해도, 그들은 마땅히 해야 할 절차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치료해 주신 하나님과 예수님께 영광과 감사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열 사람 중에 한 사람만 왔습니다. 모든 사람들 중에 사마리아인, 곧 이방인만 주님께 나아왔습니다. 그것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일은 당연한 것입니다. 치유해 주신 예수님께 나아와, 그 발 앞에 엎드리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 당연한 것을 대부분은 망각합니다.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감사하지 않습니다.

 

누가복음은 또 이와 비슷한 경우를 소개합니다. 누가복음 736-50절입니다. 죄를 지은 한 여자가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었습니다. 그 집 주인은 바리새인이며 이름이 시몬이었습니다. 시몬은 그 여자에게 불만이 컸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But he who has been forgiven little loves little.

누가복음 7:47b

 

사마리아인과 죄 많은 여인, 이들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사마리아인과 그 죄인 여인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크신 사랑이 그들에게 누구보다도 크게 임했습니다. 그들은 그 은혜를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마리아인 한센병 환자는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렸고,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드렸습니다. 이 죄인 여자는 울며 그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씻어드렸고, 옥합에서 향유를 부어드렸습니다.

 

문제는 여기 있습니다. 우리 인생 중 누가 하나님께 영광과 예수님께 감사를 드려도 좋을 사람이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누구는 더 사랑하시고, 누구는 덜 사랑하십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e and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al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요한복음 John 3:16

 

하나님의 사랑은 차별이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He causes his sun to rise on the evil and the good, and sends rain on the righteous and the unrighteous.

마태복음 Matthew 5:45b

 

그런데 문제는 인간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크게 느끼는 사람이 있고, 그 크신 사랑을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전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예수님께 나아와 감사드립니다. 후자는 오히려 자기 이름을 높이고, 감사하지 않고, 도리어 불평을 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우리 인식에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위대한 존재가 된 것인 줄 착각하면 안 됩니다. 그런 착각에 사로잡히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도 않고, 예수님께 감사드리러 나오지도 않습니다. 우리 자신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입니다. 예수님 아니었으면 우리는 벌써 죄 가운데 죽었을 것입니다.

 

사마리아인과 죄인 여자가 그것을 알았습니다. 자기들이 예수님 아니었으면 벌써 망했으리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같은 한센병 환자들 중에서도 차이가 있었습니다. 아홉 명은 하나님께 영광과 예수님께 감사를 실천하지 않았습니다. 그중에 한 명, 곧 사마리아인, 이방인만 달랐습니다. 이 사실은 무엇을 말합니까? “그 예민한 차이가 대단히 중요하다는 점을 말하는 것입니다.

 

같은 병에 걸려, 같이 사회에서 격리되어, 같이 고통을 당하면서도, 그 중에서도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콜롬비아 선교를 통해 만난 첼리타할머니를 알고 있습니다. 그 할머니의 찬양시들을 읽었습니다. 사실이 그랬습니다. 콜롬비아 한센병 환자촌 아구아 데 디오스에 수많은 환자들이 있었지만, 그 할머니처럼 기도와 찬양으로 하나님께 나아간 사람은 소수였을 것입니다.

 

주님

주님은 저의 비통함을 아시지요.

주님은 제가 받은 형벌과 저의 고통을 아시지요.

주님은 나를 정다운 눈으로 보고 계십니다.

저는 주님 앞에 한 번의 키스와 한 송이 꽃을 드립니다.

You are the Lord, who knows of my bitterness.

You who knows my punishment and my pain.

You who knows how to look at me with sweetness.

I want leave you a kiss and a flower.

첼리타, “드림”(Offering) 중에서

 

박형철 형제가 그린 이 시집 삽화들 중에, 붉은 색 선연한 장미 꽃이 특별합니다. 진홍벌레가 자기를 죽여 흘린 피로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상징한 것처럼, 이 할머니의 인생은 자기를 낮추어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낸 것입니다.

 

우리의 감사도, 그렇게 낮고 천한 데서 오히려 빛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많이 가져야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욥이 오히려 모든 것을 잃었을 때, 그가 하나님께 진정한 영광을 돌려드린 것입니다. 사탄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인생 길 얼마나 멀고 험합니까?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따지고 보면 인생은 다 같습니다. 큰 집에서 사나 셋집에서 사나, 인생이 가는 길은 결국 같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지요? 부자보다는 가난한 사람이, 죄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보다는 자기의 죄를 슬퍼하는 사람이 예수님께 더 나아오고, 그분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주류사회에 들었다고 자부하는 사람보다는, 멸시와 천대를 받고 살아가던 이방인이, 그것도 사마리아인이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렸고, 주님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오늘 우리가 그렇게 내세울 것이 별로 없어도, 아니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감사하고 더 기쁜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나아올 수 있으니! 주님께 감사드릴 수 있으니!

 

스스로 자만하고, 스스로 칭찬하고, 스스로 교만할 이유가 없는 것, 그것은 추수할 것이 거의 없는 상태 아닙니까? 창고에서 인심 난다고 했습니다. 풍성한 수확이 있어야 감사가 더 클 것 아닐까요?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참된 감사는 부족한 중에 더 큽니다. 더 많은 사랑을 받은 사람이 더 많은 사랑을 하는 법이니까요.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Though the fig tree does not bud and there are no grapes on the vines, though the olive crop fails and the fields produce no food, though there are no sheep in the pen and no cattle in the stalls, yet I will rejoice in the Lord, I will be joyful in God my Savior. The Sovereign Lord is my strength; he makes my feet like the feet of a deer, he enables me to go on the heights.

하박국 Habakkuk 3:17-19a

 

 

기도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올해 2017년 추수감사주일을 맞아,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돌아보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나의 나 된 것도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세상에서 내세울 것도 없이 살면서, 그것이 부끄러워 세상으로부터 떨어져 살아오던 우리 인생에, 말씀의 빛을 비추어 주셨습니다. 이제 깨닫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은 자라는 것입니다. 내세울 것이 없으므로 주님께 나아가기가 가능했습니다. 이것 또한 감사를 드립니다. 주여, 저희의 모든 날들 동안, 오히려 궁핍함으로 주님께 감사하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옵소서. 혹시 배부르게 되더라도 주님을 잊지 않고 가난한 자들을 풀어 먹이게 하옵소서.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의 자녀 된 것을 감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