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1

금문교회 주일예배

조은석 목사

 

 

지혜와 재판

열왕기상 3:1-28

 

1. 솔로몬이 애굽의 왕 바로와 더불어 혼인 관계를 맺어, 그의 딸을 맞이하고, 다윗 성에 데려다가 두고, 자기의 왕궁과 여호와의 성전과 예루살렘 주위의 성의 공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니라.

2. 그 때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아직 건축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하며

3. 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아버지 다윗의 법도를 행하였으나,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더라.

4.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제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5.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6. 솔로몬이 이르되,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 앞에서 행하므로, 주께서 그에게 큰 은혜를 주셨고, 주께서 또 그를 위하여 이 큰 은혜를 항상 주사, 오늘과 같이 그의 자리에 앉을 아들을 그에게 주셨나이다.

7.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8. 주께서 택하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그들은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9.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10. 이에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장수하기를 구하지도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11. 내가 이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12. 내가 또 네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왕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13. 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이 내 길로 행하며, 내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또 네 날을 길게 하리라.

15. 솔로몬이 깨어 보니 꿈이더라. 이에 예루살렘에 이르러,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 서서 번제와 감사의 제물을 드리고, 모든 신하들을 위하여 잔치하였더라.

16. 그 때에 창기 두 여자가 왕에게 와서 그 앞에 서며

17. 한 여자는 말하되, 내 주여, 나와 이 여자가 한집에서 사는데, 내가 그와 함께 집에 있으며 해산하였더니,

18. 내가 해산한 지 사흘 만에 이 여자도 해산하고, 우리가 밤에 있었고, 우리 둘 외에는 집에 다른 사람이 없었나이다.

19. 그런데 밤에 저 여자가 그의 아들 위에 누우므로 그의 아들이 죽으니

20. 내가 밤중에 일어나서 이 여종이 내가 잠든 사이에 내 아들을 내 곁에서 가져다가 자기의 품에 누이고, 자기의 죽은 아들을 내 품에 뉘었나이다.

21. 아침에 내가 내 아들을 젖 먹이려고 일어나 본즉, 죽었기로, 내가 아침에 자세히 보니, 내가 낳은 아들이 아니더이다, 하매,

22. 다른 여자는 이르되, 아니라, 산 것은 내 아들이요, 죽은 것은 네 아들이라, 하고, 이 여자는 이르되, 아니라, 죽은 것이 네 아들이요, 산 것이 내 아들이라 하며, 왕 앞에서 그와 같이 쟁론하는지라.

23. 왕이 이르되, 이 여자는 말하기를 산 것은 내 아들이요, 죽은 것은 네 아들이라 하고, 저 여자는 말하기를, 아니라, 죽은 것이 네 아들이요, 산 것이 내 아들이라, 하는도다, 하고,

24. 또 이르되, 칼을 내게로 가져오라, 하니, 칼을 왕 앞으로 가져온지라.

25. 왕이 이르되, 산 아이를 둘로 나누어, 반은 이 여자에게 주고 반은 저 여자에게 주라.

26. 그 산 아들의 어머니 되는 여자가 그 아들을 위하여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왕께 아뢰어, 청하건대 내 주여, 산 아이를 그에게 주시고, 아무쪼록 죽이지 마옵소서, 하되, 다른 여자는 말하기를, 내 것도 되게 말고, 네 것도 되게 말고, 나누게 하라, 하는지라.

27. 왕이 대답하여 이르되, 산 아이를 저 여자에게 주고, 결코 죽이지 말라. 저가 그의 어머니이니라, 하매,

28. 온 이스라엘이 왕이 심리하여 판결함을 듣고 왕을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지혜가 그의 속에 있어 판결함을 봄이더라.

 

 

지혜가 있으면, 그 지혜로 판결하는 데 사용해야 합니다. 지혜를 가지고 자기의 이익을 구하거나, 남을 해치는 데 쓰면 안 되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지혜를 구했습니다. 하나님께 지혜를 구할 때, 그 목적이 분명했습니다.

 

7.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8. 주께서 택하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그들은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9.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그 구하는 지혜가 중요한 줄 아셨고, 그 지혜를 사용할 목적이 선함을 파악하셨습니다. 그래서 큰 지혜를 그에게 주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가 구하지 않은 다른 것들도 허락하셨습니다.

 

오늘 그 지혜를 가지고 판결하는 데 사용한 하나의 예를 성경에서 읽었습니다. 창녀 두 여자가 산 아이를 서로 자기의 아이라고 주장하는 사건입니다. 대법원에 해당하는 왕의 궁전까지 왔으니, 지방 재판관들이 모두 손을 든 사건입니다.

 

오늘 같으면 당연히 생물과학적 검사를 통해 밝혀낼 수 있겠지만, 당시는 어림도 없었습니다. DNA 검사를 할 수 있는 오늘은 이 성경말씀이 쓸모없는 말씀인가요? 아닙니다.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는 무궁무진합니다.

 

두 여자가 서로 싸웁니다. 왕 앞에서도 서로에게 집중하고 있으니, 그 치열함 정도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문제는 이렇습니다. 갓난 아이 둘을 거의 동시에 낳았는데, 이 두 여자가 같은 방에서 잠을 잤습니다. 깊은 잠 속에 한 여자가 자기의 아이를 깔아 죽였습니다. 살인사건으로 비화하지 않은 것은, 과실치사로 이해된 까닭일 것입니다.

 

문제는, 산 아기입니다. 서로가 자기가 그 아기의 어미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천하의 솔로몬이라고 해도 그 해답은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얼굴 생김새를 따지거나 여러 정황을 고려하는 대신, 칼을 가져오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서로가 산 아기가 자기의 아이라고 하니, 왕도 그 답을 모르겠고, 그래서 반으로 나누어 가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것이 정의라고 생각한 것이지요.

 

정의는 무엇입니까? “싸움을 말리는 것 아닙니까? 이 두 여자의 치열한 싸움은, 하나뿐인 아들을 서로 자기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니, 그 싸움을 말리는 정의는 아들을 반으로 나누는 것입니다.

 

문제는 싸움을 말리자고 산 아들을 죽이는 데 있었습니다. 여기서 두 여자가 갈렸습니다. 산 아들을 자기의 아들이라고 주장하여 왕 앞에까지 온 점으로 미루어 모성애가 깊었는데, 산 아이를 반으로 나누어 가지게 하려는 왕의 결정에서 그 반응이 갈라졌습니다.

 

친 어미는 속이 타는 심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왕께 고합니다. 그 아기를 저 여자에게 주십시오. 그 말 속에는 저 여자가 어미입니다. 나는 어미가 아닙니다그렇게 인정한 뜻이 들었습니다. 아이를 살리고 보자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미그 여자가 어미라고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여자를 보십시오. 그 여자는 그 산 아이를 반으로 쪼개자는 왕의 제안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내 것도 되게 말고, 네 것도 되게 말고, 나누게 하라!” 했습니다. 이 여자가 한 말이 결정적인 단서가 되었습니다.

 

산 아이를 저 여자에게 주라는 말이 대단히 중요하지만, 채 결정적이지 않았던 것은, 다른 여자도 같은 말을 하게 되면, 처음 여자의 말이 무색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왕은 전혀 어떤 낌새도 알아채지 못하고 형국은 난국이 될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두 번째 여자의 말이 결정적이었습니다. 내 것도 되게 말고, 네 것도 되게 말고, 나누게 하라!

 

이 모두를 통해 왕이 읽은 것은 친 어미의 뜨거운 마음이었습니다. 동시에 거짓 어미의 악독이었습니다. 거짓 어미가 왕궁에까지 온 것은 그 동기가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살아있는 아기를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그 아이를 사랑하여 그의 어미가 되어 일평생 그를 위해 헌신하며 살려는 결심이 아니었습니다. 대신 그것은 미움때문이었습니다.

 

첫째로 그 미움은 그 아이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아이를 나누게 하라! 이것은 아이를 죽이라는 것입니다. 분명히 자기의 아이가 아닙니다. 남의 아이인데, 그 아이를 죽이라는 것은 그 아이에 대한 미움이 살인적이었다는 뜻입니다. 왕의 손을 빌어 그 아이를 죽이려는 것입니다.

 

둘째로 그 미움은 그 친어미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자기의 아이가 죽었는데, 다른 사람은 산 아이의 어미로 살아가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자기가 불행했으면 다른 사람도 불행해야 마땅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 보십시오. 왕은 그 지혜로써 바른 판결을 내렸습니다. 산 아이를 친어미에게 돌려주게 한 것입니다. 지혜는 미움을 이깁니다. 지혜는 미움이 설치한 환경과 여건을 무색하게 만듭니다. 왕이 모든 일정을 물리치고 이 재판에 매달리게 된 것은 그 여자의 미움 때문이었습니다. 온 나라가 집중했습니다. 이런 환경은 미움이 마련한 것입니다.

 

그러나 미움을 계속 살아있게 하는 것은 지혜롭지가 않습니다. 지혜는 산 아들을 그 친어미의 품에 돌려줌으로써 원래 상태로 모든 것을 되돌이키는 데 있었습니다.

 

묻겠습니다. 그러면 솔로몬은 이 악독한 여자를 어떻게 처리했을까? 성경 어디를 읽어도 이 여자의 종말이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습니다. 지혜로운 솔로몬은 그 지혜로써 이 여자를 가장 바람직하게 다루었을 것입니다. 그 자세한 내막은 오늘 우리가 알 수도, 알아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누가 추측을 한다고 해도, 그건 웃자는 말에 불과합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솔로몬의 이름 그대로 평화의 왕입니다. 따라서 나라를 어떤 공포의 분위기로 몰아가지는 않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 사건 후에 나라를 다 조사하여, 누구라도 거짓 어미로 살아가는 자가 있는지 밝혀내라는 명령 같은 것은 결코 내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혜는 옳은 판결을 내립니다. 옳은 판결은 모두가 좋은 일을 이끌어내며, 평화를 누리게 합니다.

 

솔로몬은 과연 지혜의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에 지혜서가 세 권입니다. 욥기, 잠언, 전도서입니다. 성경은 솔로몬이 잠언 기록의 대표주자로 봅니다. 시편을 다윗에게 둔 것처럼, 잠언을 솔로몬의 손에 두는 것입니다. 물론 시편 150편 중에 반 정도가 다윗이 쓴 것이고, 나머지는 기자가 다양합니다. 잠언도 솔로몬이 기록한 부분이 많지만, 나머지는 다양한 기자가 썼습니다.

 

전도서는 그 기록자를 솔로몬으로 봅니다. 대부분의 내용을 솔로몬이 기록했습니다. 전체적으로 밝고 긍정적인 지혜를 소개한 잠언과 달리 전도서는 분위기가 어둡습니다. 그래서 잠언은 솔로몬이 젊었을 때, 전도서는 그가 나이 들었을 때 기록했을 거라고 추측합니다.

 

솔로몬이 가진 지혜는 그가 스스로 터득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가 기브온 산당에서 일천 번제를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소원을 물으셨던 것입니다. 솔로몬은 지혜를 구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기쁨이 되었습니다.

 

솔로몬이 구한 지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였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가 누리는 지혜입니다. 스스로 영특한 지혜, 소위 간지라고 말하는 간사한 지혜는 결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지혜로써 가장 적절하게 사랑하는 길을 열어가시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사람을 사랑하는 왕이었습니다. 적어도 그의 인생 초기는 그랬습니다.

 

오늘 재판을 다시 생각합니다. 미움으로 시작한 사건이었습니다. 잠자다가 아이를 깔아 죽인 사건은 실수사고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그 사고의 틈을 비집고 미움이 들어선 것입니다. 내 아이는 죽었는데, 저 아이는 살았다! 나는 불행한데 저 여자는 행복하다! 그것을 견딜 수 없다는 생각에 미움이 솟아난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사촌이 땅 사면 배가 아프다!” 했습니다. 아니, 멀쩡하게 무슨 배가 그렇게 아픕니까? 상한 걸 잘못 먹은 것도 아니고! 문제는 사촌이 땅을 산 데 있었습니다. 남이 잘 되니까, 그것이 괴로움이 된 것입니다.

 

이런 정서는 어디서 왔을까요? 한국 사람이나 미국 사람이나, 현대인이나 고대인이나, 인생은 다 같습니다. “때문입니다. 죄는 그것을 다스리지 않을 경우 미움으로 그 싹이 드러납니다. 이래서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너는 그것을 다스려라!” 명령하지 않으셨습니까?

 

결국 미움의 근본에 죄가 있음을 알겠습니다. 그러면 지혜로운 솔로몬은 인간의 미움을 다스리면서 그들의 죄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 되었던 것입니다. 솔로몬이 인간의 죄 문제를 집중하여 보고 그 해결을 위해 힘썼을까요?

 

오늘 본문으로 한정해서 말하면, 솔로몬은 번제를 드린, “예배인간이었습니다. 욥이 매일 제사를 드렸는데, 솔로몬은 일천 번제를 드렸습니다. 인간의 죄가 인간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주범인 것을 알고, 그 죄를 속하실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이심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재판자이지만, 무엇보다도 예배인간이었던 것입니다. 이 점을 오늘 우리가 밝히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의 지혜는 세상지혜가 아니라 하늘에서 나는 지혜라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지혜는 판결을 위한 것입니다. 바른 판결은 사랑과 미움의 본질을 드러냅니다. 누가 사랑하는 사람인가, 누가 미워하는 사람인가, 그것을 밝혀 보입니다. 미움에 가득한 자의 손을 들어주지도 않고, 사랑으로 눈물 흘리는 자를 홀대하지도 않습니다. 바른 재판자는 그 지혜로써 사랑과 미움을 분명하게, 뚜렷하게, 확실하게 구별해 내는 것입니다.

 

지혜는 죽을 자를 살리는 것입니다. 저 여자는 산 아이를 죽음으로 몰고 가려고 했습니다. 끝까지 자기의 아이라고 주장하여 결국 왕궁에까지 왔다는 말은, 죽을 때까지 아이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 아닙니까? 그런 무서운 집착의 범위 안에서 자라고 성장할 그 아이는 그 미래가 얼마나 어둡습니까? 반대로 친 어미의 절망은 그게 살았어도 죽은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아닙니까? 더구나 그 산 아이는 솔로몬이 제안한 칼로 자르기의 희생이 될 뻔 했습니다. 솔로몬이 그랬다면 그것 말고는 다른 해법이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결국 그 아이는 죽음의 언저리에 놓여진 것이었습니다. 솔로몬이 그 지혜로써 그를 살려냈습니다.

 

솔로몬은 친어미도 살려냈고, 그 아들도 살렸습니다. 지혜는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이는 선한 말을 냅니다. 칼을 들지 않았다고, 무슨 권력이 없다고, 그렇다고 해서 그가 하는 모든 말이 다 무죄한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그 혀로써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습니다. 지혜는 솔로몬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다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기도에 지혜를 구해야 마땅합니다. 오늘 솔로몬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를 다 반영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마다, 등장인물에서 우리 자신을 본다면 그것은 성경읽기를 잘 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솔로몬입니다. 솔로몬의 지혜 구하기 기도가 우리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솔로몬의 생명 살리기 재판이 오늘 우리의 판결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신약은 지혜의인화로서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지혜 그 자체이십니다. 하나님의 지혜이십니다. 십자가를 생각하십시오. 세상으로 볼 때는 미련한 것의 대명사 아닙니까? 남을 구원하려면 자기가 살아야 하는 법 아닌가요? 그러나 미련한 방법으로써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은 지혜이십니다. 전도자의 길은 무엇입니까? 전도는 미련한 방법 아닙니까? 그러나 그 전도의 미련함으로써 우리를 예수님의 증인 되게 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를 주신 것입니다

 

솔로몬에서 예수님의 그림자를 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많은 구약의 인물들이 예수님의 모습을 조금씩 보여주는데, 오늘 솔로몬이 그렇습니다. 물론 인생은 누구나 완전하지가 않아서, 그 그림자는 청동 거울로 보는 것처럼 희미할 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직접 뵙기 전까지만 유효한 그림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을 십자가 보혈로 용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으로써 미움을 이기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것입니다.

 

 

기도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죄 많은 인생들에게 찾아오셔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우리 주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신 지혜로써 우리는 생명 살리는 사역을 감당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오나 날마다 연약한 저희들의 삶에서 지혜 없는 자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주여, 저희들을 도와주시옵소서. 입술의 죄를 짓지 말게 하시오, 입술의 선한 열매를 주님께 드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