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25

금문교회 주일예배

조은석 목사

 

구원사 History of Salvation

열왕기하 15:1-38

 

1.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제27년에 유다 왕 아마샤의 아들 아사랴가 왕이 되니

2. 그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16세라. 예루살렘에서 52년 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여골리야라. 예루살렘 사람이더라.

3. 아사랴가 그의 아버지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4. 오직 산당은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그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고,

5. 여호와께서 왕을 치셨으므로, 그가 죽는 날까지 나병환자가 되어 별궁에 거하고, 왕자 요담이 왕궁을 다스리며, 그 땅의 백성을 치리하였더라.

6. 아사랴의 남은 사적과 행한 모든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7. 아사랴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다윗 성에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장사되고, 그의 아들 요담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8. 유다의 왕 아사랴의 제38년에 여로보암의 아들 스가랴가 사마리아에서 여섯 달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리며

9. 그의 조상들의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한지라.

10. 야베스의 아들 살룸이 그를 반역하여 백성 앞에서 쳐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11. 스가랴의 남은 사적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니라.

12. 여호와께서 예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기를, “네 자손이 사 대 동안 이스라엘 왕위에 있으리라,” 하신 그 말씀대로 과연 그렇게 되니라.

 

13. 유다 왕 웃시야 제39년에 야베스의 아들 살룸이 사마리아에서 왕이 되어 한 달 동안 다스리니라.

14. 가디의 아들 므나헴이 디르사에서부터 사마리아로 올라가서 야베스의 아들 살룸을 거기에서 쳐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15. 살룸의 남은 사적과 그가 반역한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니라.

16. 그 때에 므나헴이 디르사에서 와서 딥사와 그 가운데 있는 모든 사람과 그 사방을 쳤으니, 이는 그들이 성문을 열지 아니하였음이라. 그러므로 그들이 그 곳을 치고, 그 가운데에 아이 밴 부녀를 갈랐더라.

 

17. 유다 왕 아사랴 제39년에 가디의 아들 므나헴이 이스라엘 왕이 되어, 사마리아에서 10년 간 다스리며

18.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평생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19. 앗수르 왕 불이 와서, 그 땅을 치려 하매, 므나헴이 은 천 달란트를 불에게 주어서 그로 자기를 도와주게 함으로, 나를 자기 손에 굳게 세우고자 하여

20. 그 은을 이스라엘 모든 큰 부자에게서 강탈하여, 각 사람에게 은 오십 세겔씩 내게 하여, 앗수르 왕에게 주었더니, 이에 앗수르 왕이 되돌아가, 그 땅에 머물지 아니하였더라.

21. 므나헴의 남은 사적과 그가 행한 모든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22. 므나헴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고, 그의 아들 브가히야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23. 유다의 왕 아사랴 제50년에 므나헴의 아들 브가히야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2년 간 다스리며

24.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한지라.

25. 그 장관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반역하여 사마리아 왕궁 호위소에서 왕과 아르곱과 아리에를 죽이되, 길르앗 사람 오십 명과 더불어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었더라.

26. 브가히야의 남은 사적과, 그가 행한 모든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니라.

 

27. 유다의 왕 아사랴 제50년에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이스라엘 왕이 되어, 사마리아에서 20년 간 다스리며

28.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29. 이스라엘 왕 베가 때에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이 와서 이욘과 아벨벳 마아가와 야노아와 게데스와 하솔과 길르앗과 갈릴리와 납달리 온 땅을 점령하고, 그 백성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옮겼더라.

30. 웃시야의 아들 요담 제20년에 엘라의 아들 호세아가 반역하여 르말랴의 아들 베가를 쳐서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31. 베가의 남은 사적과 그가 행한 모든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니라.

 

32. 이스라엘 왕 르말랴의 아들 베가 제2년에 유다 왕 웃시야의 아들 요담이 왕이 되니,

33. 나이가 25세라. 예루살렘에서 16년 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 이름은 여루사라. 사독의 딸이더라.

34. 요담이 그의 아버지 웃시야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35. 오직 산당을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그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요담이 여호와의 성전의 윗문을 건축하니라.

36. 요담의 남은 사적과 그가 행한 모든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37. 그 때에 여호와께서 비로소 아람 왕 르신과 르말랴의 아들 베가를 보내어, 유다를 치게 하셨더라.

38. 요담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그의 조상 다윗 성에 조상들과 함께 장사되고, 그 아들 아하스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오늘은 열왕기상 15장에 나타난 바, 이스라엘 역사의 한 토막을 읽었지만, “구원사의 큰 그림을 통해 조명하겠습니다. 성경의 각 페이지를 읽을 때마다 이런 자세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남 유다 두 명, 북 이스라엘 다섯 명 등 일곱 명의 왕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을 구원사의 관점에서 조망하겠습니다. 그것이 열왕기상하 성경기자의 관점이기도 합니다. 구체적으로, 각 왕들이 구원을 받았는가, 여기 관심을 두고 말씀을 묵상합니다. 오늘 여기 있는 우리가 어떻게 구원 받았는가를 함께 생각하면서.

 

창세기 12,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부터 하나님께서 구원사를 시작하셨습니다. 세상은 어떻게 무엇을 중심으로 역사를 기술하든, 성경은 하나님께서 죄인 인간들을 구원하신 역사로 부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그 피로 인간의 죄를 씻어 주셨습니다. 구원의 완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신약의 첫 장 첫 절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The book of the genealogy of Jesus Christ, the son of David, the son of Abraham.

마태복음 1:1

 

오늘 본문은 유다 왕 아사랴/웃시야(792-740)을 먼저 소개하고, 이후 여섯 명의 왕들을 더 기록하고 있습니다. 남 유다에 요담(Jotham, 750-731), 북 이스라엘에 스가랴(Zechariah, 753), 살룸(Shallum, 752), 므나헴(Menahem, 752-742), 브가히야(Pekahiah, 742-740), 그리고 베가(Pekah, 752-732)입니다.

 

저는 이 여섯 명의 왕들을 간단히 소개하고, 아사랴/웃시야에 초점을 두려고 합니다.

 

먼저 남 유다 요담(Jotham, 750-731)을 말씀드리지요. 그는 25세에 왕이 되어 16년 동안 다스렸습니다. 그도 공과(功過)가 있었습니다. 정직한 면은 공()으로 지적되었지만, 산당제거를 하지 않은 과()가 있습니다.

 

요담이 죽은 후 그의 아들 아하스(Ahaz, 735-715)가 왕이 되었습니다. 그 때, 아람 왕 르신과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유다를 쳤습니다. 상세한 이야기는 이사야 7장에 나옵니다. 여기서 그 유명한 임마누엘 예언”(74)이 등장합니다. 이 장면은 다음 주 설교 본문인 열왕기하 16장으로 설교할 때 전하겠습니다.

 

이제 북이스라엘 왕들 다섯 명 이야기입니다. 참고로, 북이스라엘은 오늘 등장하는 다섯 명 왕들 외에 호세아”(Hoshea, 732-722) 한 명 더 있습니다. 북 이스라엘 제19대 왕 호세아 때 북 이스라엘이 멸망합니다. 하나님께서 앗시리아를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다섯 명 왕들(14-18) 이야기 속에서 북 이스라엘이 급속하게 쇠퇴하는 장면을 읽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더라면 회복되었을 테지만, 누구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세계정세가 만만하지 않은 오늘, 온 세상이 파괴와 절망으로 치닫는 때, 우리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합니다.

 

북 이스라엘 제14대 왕 스가랴(Zechariah, 753)입니다.

스가랴는 여로보암 2세의 아들입니다. 예후 왕조의 다섯 번째요, 마지막 왕입니다. 그는 rudn 6개월 왕 노릇 하고, 야베스의 아들 살룸의 반역으로 죽임을 당합니다. 하나님께서 예후에게 예고하신 그대로, 예후의 자손 4대가 왕 노릇하는 것으로 한정하셨는데,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북 이스라엘 제15대 왕 살룸(Shallum, 752)입니다.

살룸은 쿠데타를 일으켜 예후왕조를 끝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겨우 한 달 왕 노릇 했습니다. 어쩌면 살룸의 역할은 예후왕조를 마감하는 데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가 계속 왕위에 오를 기회가 있었으나,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했습니다. 살룸의 공과는 따로 기록되지 않았지만,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만한 적극적인 회개와 말씀실천의 삶을 살지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북이스라엘 제16대 왕 므나헴(Menahem, 752-742)입니다. 10년 동안 통치했습니다.

므나헴은 앞선 살룸처럼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왕위에 오른 살룸을 한 달 만에 죽였습니다. 므나헴의 반역 때, 그는 아이 밴 부녀를 가를 정도로 잔혹했습니다. 그는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 1세의 죄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특기할 것은, 앗수르 왕 불(Pul)이 이스라엘을 침공한 사실입니다. 므나헴은 부자들에게서 강탈한 은 1,000 달란트를 앗수르 왕에게 주어, 전쟁을 피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거나, 최소한 마땅한 외교력과 군사력 증강 등으로 전쟁을 방지하는 대신, 돈으로 해결책을 삼은 어떤 좋지 못한 선례입니다. 그 돈 마련을 위해 재벌들을 짜 낸 자가 므나헴이었습니다.

 

북이스라엘 제17대 왕 브가히야(Pekahiah, 742-740)입니다.

므나헴은 다행스럽게 쿠데타를 당하지 않았습니다. 브가히야는 므나헴의 아들입니다. 겨우 2년을 통치했는데, 장관 베가가 쿠데타를 일으킨 까닭입니다. 그는 공이 언급되지 않았고, 대신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 1세를 따라 간 죄가 거론되었습니다.

 

북이스라엘 제18대 왕 베가(Pekah, 752-732)입니다.

그는 쿠데타로 정권을 잡아 20년 동안 권력을 유지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역시 북 이스라엘의 원죄에 해당하는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 1세의 뒤를 그대로 따른 죄과가 있습니다. 그는 쿠데타로 권력을 잃고 목숨도 잃었습니다. 엘라의 아들 호세아(Hoshea)가 그 구테타의 주역입니다.

 

베가가 통치하던 중(752-732)에 앗수르에 새 왕 디글랏 빌레셀(Tiglath-pileser III, 745-727)이 침공했습니다. 여러 성읍을 점령하고, 극 백성들을 앗수르로 옮겼습니다. 소위 사민정책”(徙民政策, migration policy)을 쓴 것입니다. (사민정책은 소위 이주정책으로, 조선 세종 때만 네 차례에 걸쳐 6진 지역으로 이주가 추진되었습니다.)

 

그 성읍들은 이욘(Ijon), 아벨벳 마아가(Abel-beth-maacah), 야노아(Janoah), 게데스(Kedesh), 하솔(Hazor), 길르앗(Gilead), 갈릴리(Galilee), 납달리(Naphtali) 온 땅입니다. 여기서 특기할 것은 갈릴리”(Galilee)입니다. 갈릴리는 납달리 지파에 속한 지역입니다. 베가 때 사민정책을 통해 이주시켰고, 강제결혼으로 피를 섞었습니다. 이후 갈릴리는 멸시와 천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나사렛은 갈릴리에 속한 더 작은 지역입니다.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Nazareth! Can anything good come from there? Nathanael asked. Come and see, said Philip.

요한복음 1:46

 

북 이스라엘이 멸망의 위기에 처하고 있는 모습을 우리가 읽습니다. 므나헴 때 불이 침공했으나, 1000 달란트로 겨우 위기를 넘겼습니다. 그러나 베가 때 앗수르의 새 왕 티글랏 빌레셀의 침공 때는 여러 성읍들이 파괴되었고, 수많은 포로가 잡혀갔습니다. 곧 이어질 사마리아 함락의 전초전이었습니다.

 

그러나 북 이스라엘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람과 연합하여 소위 에브라임-아람동맹을 맺었고, 그 기세를 몰아 유다를 침공했습니다. (이사야서 7장 이후) 또한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앗시리아를 함부로 대항하다가, 끝내 그들의 칼에 멸망당했습니다.

 

그러나, 북 이스라엘의 멸망은 남 유다의 서곡입니다. 남 유다가 사마리아의 멸망을 타산지석으로 삼고, 회개하고 돌아섰어야 합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은 더욱 더 처참했습니다.

 

그러나 구원사의 관점에서 보면, 남북 이스라엘의 멸망은 온 세상에 퍼져나가는 구원 역사의 새로운 시작입니다. 끝이 그 끝이 아닌 것은, 새로운 사명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남은자는 복음증거의 사명이 남았습니다. 복음의 기쁜 소식을 들고 산을 넘는 사명자들입니다. 그 사명의 길에서 오늘 우리가 구원 받았습니다. 우리의 사명은 그 바톤을 이어 받아, 영적 릴레이를 계속 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제 유다 제10대 왕 아사랴(Azariah, 792-740)에 대하여 말씀드립니다.

 

유다 왕 아마샤(Amaziah)의 아들은 아사랴(Azariah)입니다. 달리 웃시야”(Uzziah)라고도 부릅니다. 오늘 본문인 열왕기하 15장으로 국한하면, 13, 30, 32 등 세 차례에 웃시야로 기록합니다. 그러나 1, 3, 6, 7, 8, 17, 23, 27 등 여덟 차례는 아사랴로 불렀습니다.

 

그러나 역대하 26장은 내내 그를 웃시야라고 부릅니다. 이사야 6장에서도 웃시야로 부릅니다.

 

그가 16세인 792년에 왕위에 올라 740년까지, 모두 52년 간 통치했습니다. 통일왕국은 물론, 남북 이스라엘을 통틀어 두 번째 장기 집권한 왕입니다. 참고로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696-642)54년 동안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들 요담(Jotham, 750-731)이 왕위에 오른 것은 주전 750, 그가 죽기 10년 전이었습니다. 따라서 그의 말년 10년은 아들과 공동통치한 기간입니다. 10년 동안 그는 별궁에 갇혀 지냈습니다. 나병, 곧 한센병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여호와께서 왕을 치셨으므로, 그가 죽는 날까지 나병환자가 되어 별궁에 거하고그랬습니다. 오늘 본문 열왕기하 15장에 따르면, 그의 죄과”(罪過)를 살펴보면, 특별한 것이 없어 보입니다.

 

아사랴가 그의 아버지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오직 산당은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그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고

열왕기하 15:3-4

 

여기는 그의 공과(功過)가 기록되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아마샤(Amaziah)처럼 여호와 앞에서 정직했습니다. 이것은 공()입니다. 그러나 산당을 제거하지 않았다는 과()가 추가 기록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공과는 유다 왕들에게 별로 특별하지 않습니다. 산당제거라는 문제를 놓고 볼 때, 겨우 히스기야와 요시야 두 왕 외에 모든 왕이 다 범죄 한 사건이었습니다. 그것도 요시야가 완전하게산당을 제거한 유일한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다 어떤 왕들도 산당을 제거하지 않은 죄로 나병에 걸린 자가 없습니다. 아사랴가 유일합니다.

 

묻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유독 아사랴/웃시야를 그렇게 대하셨을까요? 바로 여기는 하나님의 주권을 깊이 생각해야 할 대목입니다. 하나님 앞에는 어떤 공식도 통하지 않습니다. 수학은 공식이 있습니다. 그러나 수학책 밖으로 나가면 온 세상은 온통 비공식 세계입니다.

 

10년 동안 별궁에 갇혀 지내던 유다의 왕 아사랴를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 열왕기하 15장은 나병과 관계한 그의 특별한 죄를 지적하지 않았습니다. 산당제거를 실시하지 않은 보편적인 죄가 있을 뿐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사랴의 인생 마지막 10년 동안 어떤 배려를 하신 것이 아닐까, 추측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그가 격리된 10년 동안은 그가 왕 노릇을 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대인접촉이 원천 금지되었습니다. 모세오경에 따르면 나병환자는 격리 수용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완전하게 낫기 전에는! 그런데 그는 나병환자로 죽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그는 10년 동안 왕의 신분이지만 통치하지 못했고, 생명이 붙어 있었지만, 거의 죽은 목숨으로 생명만 연명했습니다. 10년은 그에게 무엇입니까?

 

성경은 성경으로 밝힙니다. 놀라운 사실은, 아사랴가 왜 나병에 걸렸는지, 그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역대기하 26장에서 웃시야에 대한 보다 상세한 설명을 읽습니다. 열왕기하 15장에 없는 새로운 사실을 읽습니다. 역대하 26장은 웃시야가 적어도 그의 통치 초기에 하나님을 찾았고, 그동안 하나님께서 그를 형통하게 하셨다고 기록합니다.

 

웃시야가 그의 아버지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며,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가 사는 날에 하나님을 찾았고, 그가 여호와를 찾을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셨더라.

And he did what was right in the eyes of the Lord, according to all that his father Amaziah had done. He set himself to seek God in the days of Zechariah, who instructed him in the fear of God, and as long as he sought the Lord, God made him prosper.

역대하 26:4-5

 

아울러 정치, 경제, 군사의 면에서 큰 성공을 거둔 사실과, 그로 인하여 마음이 교만해져서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 분향하려고 한 것입니다.

 

제사장 아사랴와 다른 제사장 80명이 왕의 뒤에 따라 들어갔습니다.

 

웃시야 왕 곁에 서서, 그에게 이르되, “웃시야여, 여호와께 분향하는 것은 왕의 할 바가 아니요, 오직 분향하기 위하여 구별함을 받은 아론의 자손 제사장의 할 바니, 성소에서 나가소서. 왕이 범죄하였으니, 하나님 여호와에게서 영광을 얻지 못하리이다.”

And they withstood King Uzziah and said to him, "It is notfor you, Uzziah, to burn incense to the Lord, but for the priests, the sons of Aaron, who are consecrated to burn incense Go out of the sanctuary, for you have done wrong, and it will bring you no honor from the Lord God.

역대하 26:18

 

여기서 열왕기하 15장과 역대기 26장의 차이를 주목합니다. 열왕기 본문은 예언자 관점의 역사기술로서, 하나님께서 어떤 죄에 대하여 어떤 벌을 내리시는지, 그 주권이 강조되었습니다. 그런데 역대기 본문은 제사장 관점의 역사기술입니다. 제사가 얼마나 중요한지, 희생제사를 통해 죄를 사해주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강조되었는데, 아사랴/웃시야는 바로 그 제사를 허락하신 하나님을 모독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여기서 그에게 하나님께서 특별한 죄를 내리신 것입니다.

 

제가 그의 인생 마지막 10년에 주목하는 것은, 오늘 우리네 인생의 마지막 부분을 떠올리면서 성경을 읽은 데 부분 기인합니다.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삶. 그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아사랴가 구원 받은 여부는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성경은 그에 대하여 대답하지 않습니다. 역시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그는 대개 이스라엘의 왕들처럼 산당제거 명령을 거역한 죄를 지었고, 또한 성전에 불법으로 들어가 분향하려고 시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병으로 치셨습니다.

 

웃시야가 손으로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 하다가, 화를 내니, 그가 제사장에게 화를 낼 때에 여호와의 전 안 향단 곁 제사장들 앞에서 그의 이마에 나병이 생긴지라.

Then Uzziah was angry. Now he had a censer in his hand tu burn incense, and when he became angry with the priests, leprosy broke out on his forehead in the presence of the priests in the house of the Lord, by the altar of incense.

역대하 26:19

 

그러나 그는 바로 그 때 죽지 않고 10년을 더 연명했습니다.

 

적어도 그가 격리된 10년 동안 그는 절대적으로 홀로 거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는 사람들과 어울려 산당제사를 행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회개하고 죄의 용서를 받은 사실은 추측 이상을 넘어 알 수는 없으나, 그가 적어도 죄를 짓는 일에는 상당한 제한을 받았으리라는 것은 거의 분명한 일입니다.

 

이로써 우리가 생각할 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병을 내리신 것은, 그의 죄에 대한 벌이 분명하지만, 그가 10년을 생존하게 하시고, 게다가 대인접촉을 차단하신 것은, 소극적으로는 그가 범죄를 계속하지 못하게 하심이고, 추측이지만 적극적으로는 그가 회개할 시간을 주심입니다.

 

어쩌면 그가 구원 받도록 회개했다면, 하나님께서 그를 나병에서 고쳐주셨을 수 있습니다. 아람 사람 나아만이 그랬고, 예수님 때 열 명의 나병 환자들이 그랬습니다. 물론 구원과 질병치료는 언제나 함께 가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 받은 자들이 질병을 그대로 품고 살아가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도 바울이 하나의 예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 치유하실 때 구원을 함께 선포하신 일이 있습니다.

 

다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를 치신 이후에도 10년 동안 더 살게 하신 것은 회개할 기회를 주심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웃시야가 그 기회를 살려 회개하고 생명을 얻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하지만 분명한 것은 구원은 회개를 포함한 인간의 행위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회개할 마음이 나는 것도 성령님의 강권하심에 달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사랴/웃시야의 회개행위가 그의 구원을 결정하는 여부라고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다윗처럼 성령님을 거두지 마시기를 기도했는지, 하나님께서 그를 어떻게 보셨는가, 여기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런 생각에 오래 머물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지난 주 설교 때 일본계 미국인 마요미를 소개했습니다. 주일 아침, 등록 미완성으로 버스에 오르지 못해 안타까워 울었던 그 자매가, 그날 밤 자정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5일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했고,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죄 씻음 받음을 성경말씀을 의지하여 믿었고, 이 세상 떠날 때 천국 가게 해 달라는 기도를 주님의 이름으로 드렸습니다. 우리는 그 자매가 지금 천국에 주님과 함께 있음을 믿습니다.

 

그런데 생각할 것은, 그 자매가 그 양로병원에 거주한 2년 동안, 하나님께서는 그녀의 거주를 제한하셨고, 오히려 성경공부에 참여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제가 인도하는 성경공부에 참석하는 펄(Pearl)이라는 은퇴 목사님이 계십니다. 우리교회 예배도 한 차례 참석한 일이 있었습니다. 펄 목사님이 따로 저녁마다 성경공부를 인도했습니다. 우리교회 바비 마틴을 포함, 서너 사람이 참석하는 소그룹이었습니다.

 

예수님 영접 이후 지난 주일, 마요미는 교회 나오기를 기다렸고, 복장을 갖추어 입고 준비했습니다. 차를 타지 못해 슬픈 마음이 들었지만, 하나님의 전을 향한 그리움이 증폭되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주님 안에서 천국 가는 준비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아는 마요미의 지난 2년은 그 자매에게 극히 제한된 삶의 자리였으나, 오히려 그로써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천국에 이르는 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 속에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지난 화요일 성경공부는 많은 시간, 마요미와 관계한 간증이 이어졌습니다. 특히 세 사람이 더 참석했는데, 예수 그리스도 영접기도를 함께 드렸습니다.

 

이틀 후, 화요일, 오후 2, 우리는 양로병원에서 마요미 추모예배를 드리기로 했습니다. 여러 형제자매들이 마요미가 어떻게 구원 받았는지 돌아보고, 자기들의 길도 주님의 축복임을 믿을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참석을 원하시면 예배 후 말씀해 주십시오.

 

우리 자신을 돌아봅니다. 어떤 의미에서나, 우리가 삶의 제한을 받고 있다면,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지은 어떤 죄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치시는 것은 우리를 멸망시키시려는 것보다는 우리가 돌이켜 살기를 원하심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어 있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For God did not appoint us to suffer wrath but to receive salvation through our Lord Jesus Christ. He died for us so that, whether we are awake or asleep, we may live together with him.

데살로니가전서 5:9-10

 

모세의 누이 미리암이 나병에 걸린 일이 있습니다. 민수기 21:1입니다. 그 때 특별한 죄목이 드러났습니다. 그녀는 모세가 구스 여인과 결혼한 사실을 문제 삼아 도전했습니다.

 

통일왕국과 남북 왕국을 통틀어 나병에 걸린 왕은 아사랴가 유일합니다. 그런데 아사랴가 10년 동안 더 살았다는 성경말씀은 어떤 의도가 엿보입니다. 그것은 회개의 기회입니다. 기왕에 우리는 열왕기하 13:1-5에서 이스라엘의 왕 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스(835-796)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셨음을 공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구원자를 이스라엘 땅에 보내셨습니다. 직전에 성경은 그가 얼마나 악행 한 자였는가를 지적하고 있었습니다.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누구라도 회개하고 돌이켜 구원 받기를 원하십니다.

 

성전에 들어가 향단에 분향하려는 죄를 지은 아사랴에게 10년을 허락하신 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의 때였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Or do you show contempt for the riches of his kindness, tolerance and patience, not realizing that God's kindness leads you toward repentance?

로마서 2:4-5

 

원인 모를 고통이 찾아옵니다.

 

하나님께서 과연 계신가?

계시다면 내게 이런 형벌을 어찌 내리시는가?

 

그런 답답한 마음이 들지 모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내게 최선의 시간을 마련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을 따라 기도하는! 보십시오! 지금은 회개와 구원의 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As God's fellow workers we urge you not to receive God's grace in vain. For he says, In the time of my favor, I heard you, and in the day of salvation I helped you. I tell you, now is the time of God's favor, now is the day of salvation.

고린도후서 6:1-2

 

우리 중에 몸이 아프고, 나이가 들고, 경제력이 떨어져서, 마음은 원이지만 극히 제한된 삶의 반경에 머물 수밖에 없는 분들이 계십니다. 어디 폼 나게 여행하면서 젊음을 마음껏 누리고 싶은데, 그게 그렇게 되지 않는 젊은이들도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두 평 쪽방에 갇혀 산다는데, 그게 그렇게 절망적인 이유는 아닙니다. 여기 나이 드신 세대 중에 그런 고생 안 한 분 거의 없습니다. 일제를 겪었고, 한국전쟁 때 피난생활 했습니다. 맨손으로 개척한 이민 초기는 오늘날 남미계 노동자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그런 삶의 여건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것을 오늘 나에게 허락하셨는가? 이 고통은 무슨 뜻이 있는가? 궁리하는 대신, 하나님께 여쭈어야 그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정리합니다.

 

이스라엘 역사는 사람의 역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어떻게 구원하시는가, 그것을 보여주는 하나님의 구원사입니다. (세계사 역시 이 관점에서 볼 수 있습니다. 교회사로 서술하는 방식입니다.)

 

남 유다는 아사랴와 요담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이 개인(아사랴)과 국가(유다)에 어떻게 임하시는가, 보여주었습니다.

 

북 이스라엘은 다섯 명의 왕들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을 떠난 북 이스라엘이 멸망을 향하여 얼마나 빨리 달려가는가, 그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멸망 당한 북 이스라엘은 남아있는 남 유다는 물론 오늘 여기 우리를 포함한 온 세상에 타산지석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Or those eighteen on whom the tower in Siloam fell and killed them: do you think that they were worse offenders tha all the others who lived in Jerusalem? No, I tell you; but unless you repent, you will all likewise perish.

누가복음 13:4-5

 

보십시오! 온 세상이 정치-외교, 경제에 얼마나 민감합니까? 온통 그 뉴스 아닙니까? 그러나 성경은 그런 뉴스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죄인 된 인간,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을 구원하시는 이 놀라운 사실을 뉴스로 삼아야 함을 가르칩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입니다. 성경말씀을 통해 그것이 가능합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우권 받았다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이 그것을 지적합니다. 우리의 사명은 천국복음 증거입니다. 성경말씀에서 우리가 그것을 배웠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오늘 개인과 온 세상을 향하시는, 뚜렷하고 분명한 메시지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마음과 뜻을 다하여 살아가야 할 분명한 목표는 여기 있습니다. 복음을 전파하는 데 모든 것을 걸어야 합니다. 땅 끝까지 우리가 이동해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세상은 인터넷을 통해 무서운 속도로 이제 이동 중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은 이미그 이동을 지시하셨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드립니다. 저희를 구원하시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합니다. 그 보혈의 피로 죄 사람을 얻게 하셨으니 감사드립니다. 세상 정치논리를 떠나, 천국 복음을 전파하는 성도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