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07

금문교회 주일예배

조은석 목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로마서 15:14-21

 

 

1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

15. 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더욱 담대히 대략 너희에게 썼노니,

16.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17.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

18.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그 일은 말과 행위로

19.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20.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21. 기록된 바,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운전할 때는 도로를 잘 읽어야 합니다. 도로를 읽는다는 말은, 마치 교과서를 읽듯이, 도로의 전체 흐름을 파악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도로가 구부러졌는지 직선인지, 바닥은 고른지 물기나 눈이 덮였는지 알아야 합니다. 백미러와 사이드미러를 자주 확인해서 앞차와 옆 차의 상태를 파악해야 합니다. 졸음운전하거나 술 취한 차는 없는지, 뒤에 바싹 따라붙거나 크락숀을 울리며 달려드는 차는 없는지 파악해야 합니다. 자기 혼자 운전 잘 하는 사람은 운전 잘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도로를 잘 읽어야 합니다.

 

영화관에서도 영화의 흐름을 읽어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영화를 다 보고 나와서 도대체 무슨 이야기였어?” 묻습니다. 그렇게 물을 거면 집에서 기다렸다가 물을 거지, 시간 쓰고 돈은 돈대로 다 내고 그 무슨 꼴입니까?

 

책을 읽듯이, 도로를 읽어야 하고 영화를 읽어야 합니다.

대화도 그렇습니다. 남들이 하는 말을 귀담아 들으면서 자기 말을 해야지, 자기 말 할 순서만 기다렸다가 달려드는 사람과는 대화가 되지를 않습니다. 아이폰을 만지작거리면서 딴청 부리는 자도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아닙니다. 눈을 맞추면서 울 때 같이 제일 슬피 울고 웃을 때 세상에서 가장 기쁘게 웃어주는 사람, 아십니까? 그런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그리운 사람입니다.

 

로마서 1514절에서 21절까지 읽고 나서, “그래, 사도 바울이 자기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썼는데, 왜냐하면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했어. 그러니 나도 교회 있는 곳에는 개척하지 말아야지한다면, 그는 로마서를 읽은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 15:14-21은 로마서 15:1-33 중의 한 부분입니다. 로마서 15장은 로마서 1-16장의 한 부분입니다. 로마서는 사도바울의 제3차 선교여행의 전체 흐름 중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돌아서서 출발지였던 안디옥이 아니라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로에 있었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다시 출발하여 제4차 선교여행을 기획, 스페인까지 가려고 마음먹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스페인까지 가려면 시간도 노력도 경비도 모두 만만치 않습니다. 바울은 로마까지 가면 그때부터 로마교회의 도움을 얻을 계획을 세웠습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로마교회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알고 있다고 썼습니다. 바울이 새삼스럽게 무슨 교육을 할 만큼 문제가 있는 교회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더욱 담대히 대략 너희에게 썼습니다. 말자면 리마인드(remind) 시켜줄 모양으로 로마서를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에게는 로마도 남의 터인 셈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를 지나서다음 행선지로 가려는 것입니다.

 

바울이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않는계획을 세운 것은, 첫째로 자기가 교회를 세워 교회가 존재하는 고린도 지방에 일할 곳이 없었습니다. 일군을 세웠기 때문에 오히려 그가 없어야 스스로 독립할 수 있는 처지였습니다. 둘째로, 자기가 세우지 않았지만 로마에는 이미 교회가 존재하고 성장하고 있습니다. 소위 호랑이 굴에 해당하는 로마는 온갖 핍박에도 불구하고 그 소문이 자자할 정도로 은혜 가운데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셋째로, 서바나(스페인)는 상대적으로 복음의 불모지였습니다. 따라서 고린도나 로마가 아니라 스페인으로 가려는 목적을 세운 그에게 고린도나 로마는 남의 터인 셈입니다.

 

이런 맥락을 무시하고, 무조건 교회가 있는 도시나 지방에서는 사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운다면, 로마서를 잘 못 읽은 것입니다. 그가 떨치고 일어나 가야 할 사명, 이방인을 이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15:16)동력이 된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자랑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선교사역입니다. 그를 위하여 바울은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하여 역사하신 결과입니다. 바울은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선교의 행진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은혜 때문에 1-3차 선교여행을 감당했고, 로마서를 기록했습니다.

그 은혜 때문에 로마를 거쳐 스페인까지 가려고 합니다.

아니, 무엇보다도 그 은혜 때문에 바울은 생명을 얻었고, 매일 고난을 통과하면서도 끝까지 살아남아 사역해야 할 목적이 생겼습니다.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로마서 15:16

 

남의 터 위에...”

그러면 샌프란시스코는 교회가 많은데, 왜 하필 또 다른 교회입니까? 이 질문은 1994년 금문교회를 개척할 당시 많이 들었던 것입니다. 2년 후 노회에서도 똑같은 질문공세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나의 일관된 대답은, “우리는 불신자들을 주목합니다였습니다.

 

여태까지의 논지 흐름을 따라 이해해야 합니다.

 

로마서 15장만 보겠습니다. 바울의 목적은 분쟁을 피하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형제들끼리 비방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왜 좋은 일 하는데 인간끼리 다툼이 일어납니까? 자랑 때문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도 안에서 모든 자랑을 다 내려놓습니다(18).

자기를 내세울 때 싸움이 일어납니다.

자기를 낮추고, 예수 그리스도만 높이면 다 되는 것입니다.

사명을 잊어버리고 있으면 옛날에 집착하게 되고, 과거의 영화를 확대재생산하여 오늘의 위안으로 삼으려는 어리석은 욕망을 낳습니다. 그렇게 되면 먹느니 먹지 않느니, 이방인이니 이스라엘이니 하면서 분쟁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미 고린도교회에서 이런 분쟁을 겪었습니다.

 

샌프란시스코는 땅 끝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길목입니다. 그러므로 여기는 언제나 낯선 땅, 선교지입니다.

실제로 샌프란시스코는 한인들만 쳐도 교회에 나가는 비율이 20%나 될까?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우리는 소수의 한인들, 특히 그리스도인 한인들을 상대로 교회들 중에 무한경쟁의 불꽃을 튀기는 대신 불신자를 향해 문을 여는 교회로 성장해야 합니다.

 

로마서 전체를 보겠습니다.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 받은 바울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로마교회에 편지를 씁니다. 그것은 믿음으로 구원 얻은 은혜를 전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생각나게 하려는 목적입니다. 왜 바울이 이스라엘을 위한 구원사역 대신 이방인을 위해 달려가고 있는지, 그리고 미지의 땅 로마를 밟으려고 하는지, 그리고 끝내 지구의 끝스페인까지 가려고 하는지, 그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남의 터 위에 건축하는 행위는 곧 분쟁을 말하는 것입니다. 믿는 이들끼리 물고 먹고 싸우는 대신, 불신자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겠다는 말입니다.

 

샌프란시스코 지역에 한인교회가 30개쯤 됩니다. 너무 많은 것입니까? 아닙니다. 샌프란시스코 지역 거주 한인 중에 주일에 교회 나가는 인구는 아무리 많이 잡아도 20%를 넘지 못합니다. 말하자면 믿지 않는 인구가 80%나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위한 구원사역을 감당할 교회는 더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한인교회들은 함께 힘을 다하여 80% 비신자 한인들을 구원하고, 더 많은 비신자 타종족들을 위한 선교의 깃발을 바로 여기서 높이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금문교회는 바로 여기에서 하나의 말씀과 찬양이 아름다운 교회로 성장하는 다이내믹스를 발판으로 삼아, 그동안 콜롬비아, 러시아, 중국, 멕시코, 아프리카 등지로 교육선교의 기치를 높이 걸었습니다. 우리는 복음전파의 행진을 결코 멈추지 않습니다.

 

바울은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그의 동력은 한 자리에 머물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보면 바울과 같습니다. 같아야 합니다. 동력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행하는 하나님의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땅 끝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태복음 28:19:20

 

우리는 세상과 경쟁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우리는 세상을 섬깁니다.

우리는 빼앗지 않습니다. 도리어 줍니다. 그러나 우리는 패배자가 아닙니다. 우리가 용서하고, 우리가 섬기며, 우리가 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승리 때문임을 세상은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일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구원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 들어와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의 구원의 열심이 얼마나 큰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얼마나 변하지 않는 존재인가를 아십니다. 인간은 정말 정말 어쩔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아십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구원의 열심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 동력은 꺼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예수님을 통해 안 사람들은, 그의 사랑의 길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이 걸어 나간 것은 수많은 고난과 환난이 기다리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니, 여태까지 고난으로 부족해?

그래서 로마까지 가겠다는 거야? 그건 호랑이 굴 아니야?

스페인이 어디야? 거기는 복음의 황무지 아니냐?

 

바울은 자기의 생명을 내려놓았습니다. 자기의 자랑도 다 버렸습니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사람은 가장 귀한 것을 붙들었을 때, 그는 동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붙들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이십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 비로소 그 말을 믿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 넓이, 그 높이를 모두 알 수 있는 길은 예수님을 붙드는 길입니다.

바울은 그래서 그 길을 멈추지 않습니다.

 

구르는 돌은 이끼가 끼지 않습니다.

 

샌프란시스코는 한인교회가 30개나 됩니다. 그러면 그것으로 충분하거나 오히려 넘친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예수님의 일은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비결은 운동입니다. 우리는 일함으로써 존재하는 것입니다.

 

복음전도할 대상을 바라보십시오. 언제 우울증에 걸릴 틈이 없습니다.

 

아프려고 해도, 아파 누웠을 시간이 없다!

 

그래서 감기도 지나가고 암도 지나가는 것입니다. 가만히 않아서 건강 걱정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 또 있습니까?

 

며칠 전 신문에 외과의사를 소개했습니다. 그의 말이 디스크의 80%는 치료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했습니다. 일종의 양심선언이었습니다. 손 댈 필요가 없는 것을 손 댔다는 것입니다. 환자는 쓸데 없는 일에 값비싼 진료비를 지불한 것입니다.

 

그러면 묻습니다. 80%는 어떤 일이 생긴 것입니까? 자연치유 된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치유하신 것입니다. 세상에 자연치유라는 것은 존재하지가 않습니다. 저절로 낫는다니! 에너지 보존법칙에 따르면 에너지는 시간이 지나면 상실되게 되어 있고, 사람은 시간이 갈수록 늙어갈 뿐입니다. 병은 시간과 함께 더 깊어지는 법입니다. 그런데 치유라니! 하나님의 능력이요, 기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회복시키시고 고치시는 까닭은, 죽어가는 우리를 살리시는 이유는, 죄를 짓고 또 지으며, 하나님의 뜻을 계속 저버리는 우리를 살려주시는 이유는 구원의 열심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래서 고린도를 떠나 로마를 가려는 목적을 세웠고, 그 로마를 경유하여 스페인까지 가려고 했습니다. 그것은 그야말로 땅 끝까지 가는 목적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건강의 목적이 건강 뿐이라면 그건 그 자체로 시간낭비 아닙니까?

돈 버는 목적이 계속 돈 버는 일이라면 그건 정말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계속 산 위로 밀어올리려는 그리스 신화의 어떤 벌 받은 인간 이야기 아닙니까?

 

우리는 예배까지 가야 합니다.

예배는 수단이 아니라 목적입니다.

바울이 로마를 가려고 하고, 스페인까지 가려고 하는 목적은, 거기서 교회를 세우고,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려는 데 있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면 그의 예배 길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모든 막힌 것을 헐어내실 것입니다. 물이라면 갈라내실 것입니다. 불이라면 꺼버리실 것입니다.

예배를 위하여!

 

샌프란시스코가 존재하는 것은, 예배를 위하여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샌프란시스코를 소돔과 고모라와 비교합니다.

정말로 샌프란시스코가 멸망할 도시라면 여기는 교회가 없어야 하고, 예배드리는 사람이 없어야 합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샌프란시스코에는 주님의 백성들이 많습니다.

모든 주님의 백성들은 서로 경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들의 법칙은 서로 주고” “서로 용서하고” “서로 사랑하는길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 세상에 하나님의 구원이 모두에게 임하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법칙은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여러분을 볼 때, 여러분의 사는 원리는 분명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서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나야 합니다.

그분이 여러분의 비밀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숨겨진 것이 이기심일 때, 여러분은 혐오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깊은 곳에 가려진 것이 명예욕일 때 여러분은 결국 버림받고 말 것입니다.

여러분이 인기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텅 빈 극장 한 구석에서 허전한 마음으로 통곡하는 날이 곧 올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발견된다면, 여러분은 안전합니다.

여러분이 가장 하고 싶은 일이 예배라면, 여러분은 염려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바로 그 사람, 그가 당신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대학이나 대학원, 직장 등의 추천서를 씁니다.

말미에 결론으로 쓰는 말이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그토록 찾던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목사입니다. 여러분을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할 책무가 있습니다. “나는 예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라고 믿습니다라고 말씀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 그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사람입니다. 예배인간입니다.

 

그는 아직도 예배를 모르는 사람을 찾아가는 사람입니다.

이름 난 관광지를 찾아다니는 여행객이 아닙니다.

우리는 돈을 더 벌 목적으로 탐험하는 탐험자도 아닙니다.

우리는 예배를 목적으로 일하는 사람입니다.

예배는 우리의 오늘을 내일로 연결하는 목적입니다.

 

지난 주중에 우리교회 주일학교 김성진 목사님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주일학교 어린이 하나가 굉장히 변했다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나?” 부모에게 물었다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지난 3개월 동안 가정예배 드린 일 외에 아무 일도없었다고 했습니다.

 

가정예배 드린 외에 아무 일도 없었다!

 

우리교회 주일학교는 가정예배를 위해 특별히 기획하고, 교육하고, 설교하고, 학부모들과의 교류를 구체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금문교회 주일학생들이 경험하는 가정예배는 금문교회의 예배와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나는 지난 주중에 어떤 성도로부터 예배 외에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는 고백을 들었습니다.

 

예배 외에 달리 할 일이 없습니다!

 

이건 놀라운 일입니다. 금문교회가 제대로 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어제 새벽예배는 신기록을 깼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예배에 나오기를 바랍니다. 우리교회의 주중 3대예배는 주일예배, 수요예배, 새벽예배입니다. 예배를 목표로 세우기를 바랍니다.

 

왜 하필 교회만인가?

이런 질문은 사탄이 주는 것입니다. 당연한 것을 의심해 보게 만드는 전략, 하와에서 써서 성공했던 바로 그 전략입니다.

 

꼭 교회를 가야 예배를 드릴 수 있나?

집에서는 왜 안돼?

꼭 교회에 가서 기도해야 하나님께서 들으시나?

숲에 가면 더 마음이 정돈되던데. 교회는 시끄러워. 금문교회는 애기들도 많고. 정말 애기들이 많아.

교회는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구원의 방주입니다.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는 이상한 논리를 주장한 사람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그것을 용납하시 않으십니다. 피 흘려 교회를 세우시고, 친히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정면으로 거역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십시오. 교회를 통하지 않고는 구원이 없습니다. 교회는 예배가 있습니다. 예배에 말씀선포세례성찬등의 성례가 있습니다.

교회는 천국의 모형입니다.

여러 가지 불완전한 모습이 있지만, 우리에게는 완전한 성경이 있습니다. 성경으로써 개혁하고 또 개혁하는 교회여야 합니다.

나는 단적으로 말합니다.

교회에서 자주 보는 사람은 천국에서 다시 만날 확률이 그만큼 높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노력하고 확보한 시간을 다시 시간을 위해 쓴다면, 그것은 낭비입니다.

힘써 번 돈을 재투자를 위해 쓴다면, 그건 어리석은 일입니다.

예배를 위해 시간을 쓰십시오.

예배 길을 위해 여러분의 개스를 사용하십시오!

 

어제는 개스를 넣는데, 갤런당 5불이 넘었습니다. 곁에 있는 사람이 조금만 넣고 뚜껑을 닫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 개스로 어디 갈 것인가?”

 

나는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교회를 목표로 시간을 쓰시고, 개스를 쓰십시오.

그러면 그것은 마른 펌프에 퍼붓는 마지막 한 바가지 물이 될 것입니다.

펑펑 물이 쏟아져 올라올 텐데, 그 모든 물을 더 많은 사람들이 예배드릴 수 있는 일에 사용하십시오.

 

나는 올해만 해도 휴가를 얻어 금문교회 예배드리러 온 여러 금문인을 만났습니다.

오늘도 결혼기념일 휴가를 샌프란시스코 호텔로 잡고, 예배드리러 나온 금문인이 있습니다.

지난달에도 있었습니다.

몇 개월 전에는 신혼여행을 금문교회로 와서 예배드리고 간 금문인 부부고 있었습니다. 그들을 미리 한국에서 만나고 그들이 여기 도착하기 전에 보낸 엽서를 통해서 읽었습니다. “금문교회로 신혼여행 간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 사실을 전하면서 그렇게 부러워할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배신혼여행!

세상에 이런 말도 다 있습니까? 예배인간 사이에는 이런 말도 있습니다.

강남스타일이 빌보드차트 1위라고요?

나도 보다가 웃기는 했지만,

그런 노래, 그런 춤이 유행하는 이 세상은 분명히 문제가 있습니다. 말세입니다.

예배, 예배, 예배의 자리로 몰려드는 사람들, 그 물결이 이 세상을 움직입니다!

구원의 행렬, 그 행진에 들어야 합니다.

거기 줄 서야 합니다.

그게 살 길입니다.

 

나는 금문교회가 기드온의 용사 비전이 이뤄질 것을 믿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바깥에서 그 300명이 채워지는 비전이 아니라, 기존의 금문인들이 모두 변화되어, 주일예배, 수요예배, 새벽예배에 몰려드는 데서 이뤄지는 것임을 믿습니다. 다른 누가 새롭게오지 않아도 바로 여러분이 교회예배를 사랑하고 사모하는 동안 부흥은 바로 여러분의 인생에서, 여러분의 가정에서, 여러분의 진로에서 활짝 열리게 될 것입니다.

 

수요예배는 주일과 주일 사이의 시험을 방지할 목적입니다. 한국교회는 전통적으로 삼일예배라고 불렀습니다.

새벽예배는 하루를 주님께 드리겠다는, 주님과 동행하겠다는 믿음의 결단입니다.

시험에 들었습니까? 삼일예배로 나오십시오.

자주 시험에 빠집니까? 삼일예배로 나오십시오.

더 자주 시험에 듭니까? 당신은 틀림없이 새벽예배 깜입니다.

 

예배를 사모하십시오.

사도바울처럼, 그리스도 예수 안에 드러난 하나님의 일을 붙드십시오.

그리고 그 일을 위해 전진하십시오. “행진하십시오.

 

여태까지의 고생이 아직도 부족하냐?”

그런 질문에는 이렇게 답하십시오.

 

나는 아직도 배고프다.”

 

가데스 바네아에 선 여호수아와 갈렙은 외쳤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밥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들, 곧 우리의 적, 우리의 문제, 우리의 고통, 우리의 고난, 이 모든 것들은 우리의 밥입니다. 먹고 소화하여 힘을 내어 주님의 일을 하도록 하는 양식입니다. 우리가 달궈지도록 태우는 연료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기회를 주셨는가, 생각해 보십시오.

왜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그 소중한 , “직장, “비자, “건강, 주셨는가 생각해 보십시오. 왜 하나님께서 그처럼 잘 나가는 를 주셨는지, 그 차에 개스를 넣을 수 있는 을 주셨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데도 그 결론이 예배에 있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예배를 위하여 교회로 차를 몰고 달려나오는 대신, 쓸데없는 데 가고, 쓸데 없는 사람 만나고, 쓸데 없는 말을 하고, 쓸데 없는 일에 집중하는 당신은 도대체 어떤 사람입니까?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시편 49:20

 

나는 교회를 사랑합니다.

처음 이 교회당을 받았을 때, 주차장 자리는 쓰레기장이었습니다.

나는 펜스를 걷어내고, 매일 삽질과 낫질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흙바닥에 엎드려 뒹굴면서, 부르짖었습니다.

 

주님, 여기로 차가 들어가게 해 주세요!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아니, 함께 뒹굴며 흙일과 페인트, 먼지를 뒤집어 쓰고 노동하던 우리 소수의 금문인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20088, 공사가 시작된 바로 그달부터 시작된 미국의 불황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금문교회 공사는 4년 지난 지금 다 끝났습니다! 할렐루야!

 

우리교회는 불황을 통과한 것입니다!

그동안 새벽예배 불길을 끄지 않았습니다. 단 두 사람이 모일 때도 많았지만 우리는 기도의 불을 끄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는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두 하셨습니다.

 

나는 여러분을 영적으로 도전합니다.

예수님께서 가시밭길을 헤쳐나가 우리를 구원하신 것처럼,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를 벗어나, 로마를 향해, 그리고 로마를 거쳐 스페인까지 가는 길을 기획한 것처럼, 오늘 우리는 예배의 자리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다니엘을 사자에게 밥이 되어 죽인다는 법령을 알고도 예배를 드렸습니다.

내가 이등병 때입니다. 사단장의 특명으로 사단 전체가 주일 오전에 작전을 나갔습니다. 간첩이 출몰했다는 것입니다. 나는 예배시간이 되었는데 산에서 머무는 것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누구에게도 보고하지 않고 부대교회를 향해 걸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산을 다 내려오고, 부대 정문을 통과해 교회까지 가는 한 시간 동안 누구도 나를 제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늘에 속한 사람> 저자 윈 형제가 경찰서를 그렇게 빠져나왔다는 것을 나는 믿습니다. 내가 그 증인이었으니까요. 그뿐 아니라, 그 일이 있은 지 한달 후, 나는 연대본부 교회에 비공식 파견 나가 수요예배 설교를 맡았습니다. 맨 앞자리에 앉아 예배드린 사람이 연대장이었습니다. 나는 그에게 대표기도를 시켰고, 그는 순종했습니다.

 

교회로 나오십시오. 이렇게 아름답게 만들어 주신 주님의 교회를 향해 나오십시오.

 

여러분이 지금 당하는 모든 고난과 문제, 질병과 인간관계의 고통은 교회 예배를 통해 해결될 것입니다. 그래도 예배드리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영영 그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주신 모든 아름다운 기회는 예배를 드리라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거역하면 배반하는 것입니다.

 

예배시간은 반드시 엄수해야 합니다. 처음부터 축도까지, 그 시간에 집중하십시오. 딴 생각을 버리십시오.

 

도로를 읽는 사람은 운전을 잘 하는 사람입니다.

영화를 읽는 사람은 영화를 잘 보는 사람입니다.

예배를 읽으십시오. 찬양에 집중하고, 기도에 집중하십시오. 그날 주시는 영의 만나에 흠뻑 젖어드십시오. 만나를 즐기고 즐기십시오. 마음 깊이 빨아들이십시오.

 

한국 사람은 참 이상합니다. 먹는 자리에서 먹는 이야기를 합니다.

예배드리면서 딴 생각 하는 것은 더 이상합니다. 말씀에 집중하십시오.

 

나는 어떤 사진을 전공한 젊은 금문인이 앉는 자리를 따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자리가 목사님을 가장 잘 보고 그 소리를 가장 잘 들을 수 있는 자리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여러분의 앉는 자리를 지정석으로 해 드리고 싶습니다. 거기는 목사의 얼굴이 가장 잘 보이고, 거기는 목소리가 잘 들리고, 거기는 가장 깊이 말씀에 집중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런 자리를 찾아내셨나요? 지금 앉은 자리, 거기가 거기입니까?

 

아니면 어쩔 수 없이 앉았습니까? 늦어서? 아니면 남들 눈치가 보여서? 아니면 축도 전에 빠져나가기 좋아서? 아니면, 아니면?

 

예배!

예배가 동력입니다. 예배가 목적입니다. 예배인간으로 살아가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을 부르신 목적입니다. 그를 위해 여러분을 흙으로부터 지어내셨고, 죄악의 죽음으로부터 구해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라는 엄청난 값을 지불해 내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예배로 초청하시는 사랑의 주님을 거역하지 마십시오. 주님을 배반하지 마십시오. 거역과 배반의 삶은 지나간 삶으로 이미 충분하지 않습니까?

 

기도

은혜의 주님

주님을 사랑합니다.

교회로, 예배의 자리로 언제나 나아오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세상에서 시험에 들지 않게 하옵소서.

예배의 자리로 달려가는 목적을 주시옵소서.

온 세상 사람들을 복음전도의 기회로 삼게 하옵소서.

그래서 지치지 않고 완주하게 하옵소서.

당신의 자녀들에게 참된 행복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