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의 우물
- 설교자: 조은석 목사
- 본문: 창세기 26:1-35
- 설교일: 10-27-21
이삭이 우물을 팠습니다. 그랄 지역 목자들이 "자기들 것"이라고 우겼습니다. 이삭은 그 이름을 "에섹"이라고 불렀습니다. "다툼"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자리를 옮겼습니다. 이삭은 다른 우물을 팠습니다. 그들이 또 시비를 걸었습니다. 그래서 "싯나"라고 불렀습니다. "대적"이라는 뜻입니다. 이삭은 다시 자리를 옮겼습니다. 우물을 팠는데, 거기는 다툼이나 대적이 없었습니다. "르호봇"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넓다"는 뜻이지요.
다툼이거나 대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 되는 것을 시기하는 자들에게서 납니다. 그럴 때는 마주 대적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오른편 뺨을 치면 왼편도 돌려대라고 하셨고, 겉옷을 요구하면 속옷도 주라고 하셨습니다. 이삭은 양보했습니다. 파는 곳마다 물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길입니다.
장사를 할 때, 잘 되면 누가 맞은편에 동종의 가게를 엽니다. 시비를 거는 셈이지요.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이삭처럼 주고 떠나라고 하십니다. 그 다툼의 자리에서 복이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이동한 자리에도 대적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양보해 주는 겁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비하신 것은 "르호봇," 곧 넓은 은헤입니다.
야베스의 기도 기억하십니까?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역대상 4:10). 히브리어로 "좁다"는 말은 "억압" 내지 "우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좁으면 그는 어디를 가든지 불행한 법입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넓은 마음을 주신 것입니다.
"고린도인들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어졌으니, 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니라.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것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고린도후서 6:11-13).
이삭이 기근 중에 그랄로 내려갔던 터였습니다(창세기 26:1-11). 오죽하면 아내를 누이라고 해야 생명이 부지되는 지경이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해를 받지 않도록"(시편 23) 그를 지켜주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나올 때 풍성한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너그러운 마음으로써 우물을 팠고, 계속 양보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마음이 너그럽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 아닙니까? 들어보십시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립보서 2:5).
댓글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