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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4설교#동서남북#창세기13:1-18

  • 작성자 : pastor
  • 조회 : 5,390
  • 16-04-22 23:32

2016424

금문교회 주일예배

조은석 목사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창세기 13:1-18

돌아옴

1. 아브람이 애굽에서 그와 그의 아내와 모든 소유와 롯과 함께 네게브로 올라갔다.

2. 아브람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했다.

3. 그가 네게브에서부터 길을 떠나 벧엘에 이르고, 벧엘과 아이 사이 곧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렀다.

4.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었다.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헤어짐

5.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6. 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함께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7.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퉜다.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주하고 있었다.

8. 아브람이 롯에게 말했다: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9.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않으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겠다.”

10.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보니,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했다.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기 때문에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 같이 보였다.

11.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겼다. 그들이 서로 떠났다.

12.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했다.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다.

13.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다.

동서남북

14.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15.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16.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17.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18.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했다.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다.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위험천만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은혜가 놀랍게 역사했습니다.

이들은 처음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린 바로 그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벧엘과 아이 사이였습니다. 거기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돌아갈 곳이 있어야 합니다. 그 자리는 예배자리여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 아브라함의 종들과 롯의 종들 사이에 다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제한된 목초지와 제한된 물 때문에 서로 불편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제안했습니다.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네 목자나 내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창세기 13:8

과연 아브라함은 평화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 자격이 있었습니다. 평화를 위하여 그가 제안한 것이 있습니다.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창세기 13:9a

헤어짐입니다. 함께 있어서 싸우는 것보다는 헤어져 있어서 서로 평화로운 것이 좋은 법입니다.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창세기 13:9b

이것 보십시오. 그는 삼촌입니다. 족장입니다. 그러면 우선선택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그는 조카에게 주었습니다. 평화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반드시 배워야 할 바른 태도입니다.

롯은 삼촌이며 족장인 아브라함이 배려한 그 우선선택권을 반납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것을 누렸습니다.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창세기 13:10

롯이 자기의 눈을 의지했습니다. 아브라함 같으면 하나님의 지시를 따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롯은 스스로 판단했습니다. 자기의 정보를 종합해 보니, 소알까지 물이 충분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중요했습니다. 그 지역은 소돔과 고모라 지역입니다. 죄악의 도성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멸망시키시기 전이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동산, 에덴동산같았고, 애굽 땅과 같았습니다. 에덴동산은 창세기 2-3장에 묘사된 바 그대로입니다. 이 지상에서 애굽 땅이 에덴처럼 풍요로웠습니다.

이쯤해서 롯은 마치 하와가 선악과를 보니,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했다는 창세기 3장 말씀이 기억납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창세기 3:6a

문제는 스스로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게 하신 것을 보았다면 그 판단에 오류가 없었을 것입니다. 롯은 하나님께 여쭙지 않고 스스로의 정보와 스스로의 판단력을 의지했습니다.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창세기 13:11

아브라함과 롯이 헤어졌습니다. 롯은 동쪽으로 떠났습니다. 구약성경에서 동쪽은 이방인의 땅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사람이 없고, 하나님의 축복이 없는 지역입니다. 예배가 없습니다.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창세기 13:12

아브라함은 그 자리 그대로 머물렀습니다. 벧엘과 아이 사이 장막 친 곳입니다. 예배드린 자리입니다. 처음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떠나 가나안에 왔을 때도, 이후 가뭄 때문에 애굽에 들어갔다가 나왔을 때도 거기서 예배 드린 바 있습니다.

묻습니다. 소돔성은 어떤 곳입니까? 그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

창세기 13:13

그 사람들은 하나님의 눈으로 보실 때 악했습니다. 하나님의 판단이 그러하셨다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또한 큰 죄인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소돔과 고모라에 롯이 갔습니다. 왜요? 물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요새 말로 하면 경제가 되는 지역이었습니다.

최근 한국의 야당들이 선거에서 이긴 요인도 경제문제에 초점을 제대로 맞추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돋보입니다. 빌 클린턴이 문제는 경제야!” 라는 말로 미국인들의 관심을 사로잡은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풍요를 좋아합니다. 아니, 섬기는 신으로 삼습니다. 구약의 바알이나 아세라 같은 신들은 풍요를 약속합니다. 아니, 여호와 하나님을 제외한 모든 신이란 결국 우상에 불과하니, 사람들이 풍요를 사랑한 나머지 신을 창조하고 그를 섬긴 것입니다.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런데, 롯이 아브라함을 떠난 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만나주셨습니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창세기 13:14-15

확실히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편에 섰습니다. 그는 거룩한 예배인간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보여주십니다. 롯은 스스로 보았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그대로 보았습니다. 동서남북이었습니다.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창세기 13:16

하나님께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하신 약속을 주신 바 있습니다(창세기 12:2a). 지금 하나님께서 큰 민족땅의 티끌로 형상화하십니다. 약속을 주시고, 그 약속을 눈으로 그릴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과연 하나님께서는 인생에게 믿음을 주시고, 그 믿음을 온전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히브리서 12:2a

이렇게 믿음을 형상화 하도록 이끄셔서, 그 믿음의 실증을 지니도록 하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음은 가지나 형상화 하지 못해서 그것을 오래 품지 못합니다. 믿음을 가지지만 걱정과 근심이 더 커져서 끝내는 믿음이 결실하지 못합니다.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

마태복음 13:19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마태복음 13:20-21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마태복음 13:22

믿음의 형상화를 이루지 못하면 예수님의 네 가지 밭 비유에서 적어도 처음 세 가지에 해당하는 비극입니다.

그런데 여기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더욱 더 확고하게 하시는 방법을 사용하십니다.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창세기 13:17

약속을 주셨을 뿐 아니라, 그것을 형상화시키셨고, 그리고 아브라함이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니게 명령하셨습니다.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창세기 13: 17c

그리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이렇게 아브라함에게 믿음을 주시고, 그 믿음을 강화하시고, 또 동행하심으로써 확증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

이런 일이 언제 일어났습니까?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창세기 13:14a

그렇습니다. 롯과 아브라함이 헤어진 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믿음에 확증을 주셨습니다. 롯과 함께 있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일입니다.

이제 생각합니다. 왜 아브라함과 롯이 헤어졌을까요? 함께 살면 얼마나 더 좋을까요? 종들이 다툰다면 종들을 불러 따끔하게 교육하면 될 것 아니었습니까? 왜 종들 싸움이 주인들 싸움 되어 헤어지는 걸 선택하고야 말았습니까? 아무리 사이좋게 헤어졌다고 해도 그것은 함께 살면서 잘 지내는 것보다는 차선책에 불과한 법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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