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1 주일설교#하나님 나라에서 멀지 않다#마가 12'28-34
- 작성자 : pas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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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10-09 19:22
2015년 10월 11일
금문교회 주일예배
조은석 목사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마가복음 12:28-34
28. 서기관 중 한 사람이 그들이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잘 대답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31.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32. 서기관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
33.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34. 예수께서 그가 지혜 있게 대답함을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하시니, 그 후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서기관 중 한 사람이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입니까?
이번에는 주님께서 피하지 않고 대답하셨습니다. 왤까요? 그의 질문에 “진정성”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 중에 “니고데모”가 있었던 것처럼 모든 서기관이 다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첫째와 둘째로 나누어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는, 하나님 사랑입니다.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소위 “쉐마”라는 신명시 6:4-9에서 나온 말씀입니다.
둘째는 레위기에서 나온 말씀입니다.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그러니까, 이 사람 서기관이 물은 것은 “첫째” 되는 계명이었는데, 예수님께서는 두 가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두 가지는 십계명의 열 가지를 둘로 요약한 것이었습니다.
1-4 계명은 하나님사랑입니다.
5-10 계명은 이웃사랑입니다.
십계명은 모세오경의 613개의 계명을 열 개로 요약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열 가지를 두 가지로 요약해 주신 것입니다.
이 서기관은 “제일” 되는 것을 여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첫째와 둘째를 말씀하심으로써, 모두를 “요약”하셨습니다. 말하자면, 이 두 가지로써 모두를 “포함”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성경말씀을 대할 때 일반적으로 빠지는 함정은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가장 중요한 한 가지만 가지고, 나머지는 무시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것도 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대답은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이어야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었습니다.
왜 이웃 사랑입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신 이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께서 사랑하신 이웃을 사랑함이 마땅한 것입니다.
처갓집이 좋으면
처갓집 말뚝을 보고 절한다.
이것은 한국 속담입니다. 말뚝이야 어디나 있지요. 그러나 처갓집의 말뚝은 다릅니다. 바로 처갓집 곁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이웃 사랑”은 거기 하나님의 사랑이 묻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처럼 “미루어 아는” 사랑이 소중한 것을 깨닫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16
여기서 “세상”은 헬라어 “코스모스”입니다. 이것은 “우주”로 번역이 가능하지만, 그리스 문화에서 “인간”은 우주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랑하신 인간, 바로 그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 사랑에 버금가는 중요한 일입니다.
하나님을 보았다지만, 사람을 보지 못한 것, 그것은 슬픔입니다.
그런데 인생의 새로운 단계에 이르면, 비로소 보지 못했던 것이 보입니다. 그것은 인간입니다.
노벨문학상 후보에 여러차례 올랐던 고은의 시 한편입니다.
그 꽃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본래 없었나요? 아닙니다. 있었습니다. 그런데 보지 못했습니다. 올라갈 때는 마음이 분주했습니다. 그런데 그 분주한 갈망이 마음에 들어찬 이후, 내려가는 길에 꽃이 보였습니다. 무시했고 함부로 여겼던 바로 그 꽃이었습니다.
서기관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마가복음 12:32-33
이 서기관은 예수님께서 주신 말씀을 이상과 같이 정리했습니다.
니고데모처럼, 이 서기관은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지혜 되시는 예수님 앞에서 지혜를 배웠습니다.
주님께서 기뻐하셨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그가 지혜 있게 대답함을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하시니,
그 후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마가복음 12:34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모든 것 중에 중심이 “하나님 나라” 아닙니까? 지금 주님께서 그 서기관을 “하나님 나라에서 멀지 않다”고 평가해 주셨습니다. 최고의 평가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과 후가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이웃에 대한 사랑을 배웠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참된 비밀입니다. 그 점에서 이 서기관이 하나님 나라에서 멀지 않다는 주님의 평가는 참 귀한 것이었습니다.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비밀입니다. 오늘 우리가 깊이 새기고 묵상해야 할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생각해 봅시다.
분명히 서기관들은 모두 주님을 덫에 걸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바른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그러다가 이런 사람 하나를 만나게 되어 얼마나 기쁜 일인가요?
예수님께서 그를 깨우치신 것은 “하나님 말씀”이었습니다. 성경 전체의 핵심은 모세오경입니다. 모세오경의 중심은 십계명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십계명을 두 가지로 요약하셨습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바로 여기에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 땅에 이루어져서, 죽음의 언저리를 살아가며 끝내 죽음을 면치 못하는 죄인 인생들이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품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에게 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 공로 의지하여 그 나라에 가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순간의 나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영원의 나라입니다.
순간의 나라에 속한 죄인 인생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영원토록 주님과 살게 되는 신비는 무엇입니까?
떨어지는 낙엽을 밟으면서, 그 사각거리는 소리에 부서지는 낙엽을 보면서, 오늘 우리는 낙엽보다 조금도 나을 것이 없는 순식간의 인생을 바로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무의미한 인생을 영원한 인생으로 “질적인 변화”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아야 합니다. 감사해야 합니다.
어떻게 이런 순간의 인생이 영원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까? 양이 질로 변화하는 법칙이 있습니다. 물리학에서는 이를 “양질변환의 법칙”이라고 합니다. 양이 반복되면 어느 순간에 질로 변환되지요. 반복(repetition). 마치 비등점이 물을 수증기로 변환시키는 것고 마찬가지로, 어떤 순간이 오는 것입니다.
이런 양질변환의 법칙을 영적으로 풀면, 그것은 “십자가의 법칙”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린도후서 5:17
순간에 불과한 인생이 영원을 바라보게 된 것도 “십자가의 능력”을 힘입어 가능해진 “양질변환의 법칙”으로야 설명이 가능합니다. 말씀을 날마다 묵상하고 또 묵상하면서 인생 전부를 주님께 드리는 “온전한 헌신”을 경험할 때입니다. 누가복음 7장에 나타난 어떤 “죄인” 여성의 헌신처럼, 우리 인생의 옥합을 깨뜨려 우리 가진 모든 향유를 “모두” 주님께 부어드리는 전적인 헌신(total devotion, herem) 말입니다.
전적인 헌신은 성별입니다.
성별은 거룩함입니다.
sinful한 상태에서 godly 한 상태로 변환되는 것입니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이전 것으로부터 새 것은 질적인 변화를 겪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묻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마땅합니까?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어졌음이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골로새서 3:1-4
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골로새서 3:5-6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들에게 마땅한 바니라.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에베소서 5:3-6
위를 보는 대신 땅엣 것을 죽여야 합니다. 그것은 음란, 부정, 사욕, 악한 정욕, 탐심 곧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이런 것들로부터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그들과 함께 하는 자가 되지 말라.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에베소서 5:7-9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에베소서 2:3
그러나 이제는 축복의 자녀로 질적인 변환이 이루어졌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에베소서 5:16
오늘 우리 주변을 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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