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1 주일설교 "네가 나를 위하여?" 요한 13:21-38
- 작성자 : pas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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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08-11 19:34
2013년 8월 11일
금문교회 주일예배
조은석 목사
네가 나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겠느냐?
요한복음 13:21-38
2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이 괴로워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
22. 제자들이 서로 보며 누구에 대하여 말씀하시는지 의심하더라.
23.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가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
24. 시몬 베드로가 머릿짓을 하여 말하되, 말씀하신 자가 누구인지 말하라, 하니
25. 그가 예수의 가슴에 그대로 의지하여 말하되, 주여 누구니이까?
2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떡 한 조각을 가져다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적셔서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주시니
27. 조각을 받은 후 곧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28. 이 말씀을 무슨 뜻으로 하셨는지 그 앉은 자 중에 아는 자가 없고,
29.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궤를 맡았으므로 명절에 우리가 쓸 물건을 사라, 하시는지, 혹은 가난한 자들에게 무엇을 주라, 하시는 줄로 생각하더라.
30.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31. 그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도다.
32. 만일 하나님이 그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으면 하나님도 자기로 말미암아 그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
33. 작은 자들아, 내가 아직 잠시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을 것이나 일찍이 내가 유대인들과 너희들에게 너희는 내가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너희에게도 이르노라.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사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36.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37.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라갈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38.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예수님께서 심령이 괴로우셨습니다.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라고 암시하신 말씀은 제자들 중 누군가 예수님을 팔 것이라는 뜻이었습니다.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말씀, 즉 제자들 중 하나가 주님을 팔 것이라는 말씀을 하실 때 주님의 심령이 괴로우셨습니다. 이어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여기서 제자들이 서로 “그가 누구인가?” 의심하면서 살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 곧 “요한”이 예수님 곁에 있었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그에게 머릿짓을 했습니다. “그가 누구인지 여쭈어 보라!” 그 사랑하시는 제자가 주님께 여쭙습니다. “주여, 누구입니까?”
그때 주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니라.” 그리고 바로 떡 한 조각을 적셔서 가룟유다에게 주셨습니다. 그 즉시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갔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유다가 그 떡 조각을 받고 나갔는데, 밖은 밤이었습니다.
제자들은 그가 나간 이유도 몰랐습니다. 억측했습니다.
여기까지 가만히 정리해 보겠습니다.
적어도 본문만 보더라도, 제자들과 예수님 사이에는 “엇갈리는” 부분이 대단히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 주님께서 떡을 적셔서 그에게 주는 바로 그가 배반자라고 하셨는데도, 그가 그 밤에 떡을 받고 나가는 목적을 오해하였습니다. 도대체 제자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아는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요한복음 전체가 다 그렇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제자들은 예수님을 바로 알지 못했습니다. 마치 양들이 목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이런 전체 흐름에서 본문을 읽습니다.
가룟유다가 나갔습니다.
그 후에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도다!”
이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께서 받으신 영광은 무엇이며, 하나님께서 받으신 영광이 그 무엇입니까? 그것은 “배반” 아닙니까? 그 밤에 가룟유다가 나갔습니다. 이제 모든 것은 계획된 대로 실시될 것입니다. 그 배반은 십자가의 길에 “첫 단추”입니다. 그래서 “지금” 영광을 얻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세상의 눈으로 볼 때 그것은 “굴욕의 영광”입니다.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내가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하신 말씀을 상기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가는 곳에 올 수 없다.”
이어서 “서로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서로사랑. 이것은 예수님의 제자 된 증거입니다.
서로사랑. 이것은 서로를 사랑함으로써 자기를 사랑하는 법칙입니다.
이에 베드로가 여쭙습니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쿼바디스 도미네?
이 질문은 “주여, 어디 계십니까?”와 관계가 있습니다.
주여, 어디 계십니까?
와서 보라!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따라와서 보라!)
그런데 주님께서 대답하시는 말씀은 이렇습니다: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다. 그러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지금 주님께서 가시는 길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십자가가 예수님의 길입니다. 골고다의 길입니다.
그 십자가의 길을 “지금은” 따라올 수 없습니다. 왜요? 그에게 성령님께서 임하지 않으셨습니다.
역시 베드로가 즉각 반발합니다: “주여, 제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라갈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이쯤하면 베드로가 예수님의 죽으심을 豫想했다는 뜻 아닙니까? 그리고 죽음을 불사하고 주님을 따르겠다는 각오를 밝힌 것 아닙니까?
그러나 주님께서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그 말 자체는 귀합니다. 사람이 귀한 말을 하는 것과 그 말을 지키는 것은 일치하지 않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이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닭은 새벽에 웁니다. 밤이 깊어가다가, 어느 시점에 이르면 새벽이 오는데, 그 때 닭이 웁니다. 그 닭이 울기 전에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할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豫告하신 것입니다.
베드로의 호기(豪氣)를 잠재우신 이 말씀!
아직 성령님께서 임하지 않으셨는데, 아직 십자가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데, 호기를 부리는 그 말을 끊어내 버리시는 무섭도록 단호한 말씀입니다: 닭이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주님께서 가시는 곳이면 “따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자가 묻는 질문입니다.
지금은 따라올 수 없다. 후에는 따라오리라.
지금과 후. 이 두 시기 사이에 무엇이 일어났습니까?
십자가
부활
성령세례
주님과 함께 죽었다가 주님과 함께 살아나는 것. 이 십자가와 부활을 경험하고, 성령세례를 받고 난 이후에야 베드로는 주님을 따라갈 수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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