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편7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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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강단, 시편 109편

  • 작성자 : pastor
  • 조회 : 7,173
  • 13-10-06 21:45

시편 109편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1. 내가 찬양하는 하나님이여 잠잠하지 마옵소서.

2. 그들이 악한 입과 거짓된 입을 열어 나를 치며 속이는 혀로 내게 말하며

3. 또 미워하는 말로 나를 두르고 까닭 없이 나를 공격하였음이니이다.

4. 나는 사랑하나 그들은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

5. 그들이 악으로 나의 선을 갚으며 미워함으로 나의 사랑을 갚았사오니

6. 악인이 그를 다스리게 하시며 사탄이 그의 오른쪽에 서게 하소서.

7. 그가 심판을 받을 때에 죄인이 되어 나오게 하시며 그의 기도가 죄로 변하게 하시며

8. 그의 연수를 짧게 하시며 그의 직분을 타인이 빼앗게 하시며

9. 그의 자녀는 고아가 되고 그의 아내는 과부가 되며

10. 그의 자녀들은 유리하며 구걸하고 그들의 황폐한 집을 떠나 빌어먹게 하소서.

11. 고리대금하는 자가 그의 소유를 다 빼앗게 하시며 그가 수고한 것을 낯선 사람이 탈취하게 하시며

12. 그에게 인애를 베풀 자가 없게 하시며 그의 고아에게 은혜를 베풀 자도 없게 하시며

13. 그의 자손이 끊어지게 하시며 후대에 그들의 이름이 지워지게 하소서.

14. 여호와는 그의 조상들의 죄악을 기억하시며 그의 어머니의 죄를 지워 버리지 마시고

15. 그 죄악을 항상 여호와 앞에 있게 하사 그들의 기억을 땅에서 끊으소서.

16. 그가 인자를 베풀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가난하고 궁핍한 자와 마음이 상한 자를 핍박하여 죽이려 하였기 때문이니이다.

17. 그가 저주하기를 좋아하더니 그것이 자기에게 임하고 축복하기를 기뻐하지 아니하더니 복이 그를 멀리 떠났으며

18. 또 저주하기를 옷 입듯 하더니 저주가 물 같이 그의 몸 속으로 들어가며 기름 같이 그의 뼈 속으로 들어갔나이다.

19. 저주가 그에게는 입는 옷 같고 항상 띠는 띠와 같게 하소서.

20. 이는 나의 대적들이 곧 내 영혼을 대적하여 악담하는 자들이 여호와께 받는 보응이니이다.

21. 그러나 주 여호와여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나를 선대하소서 주의 인자하심이 선하시오니 나를 건지소서.

22.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여 나의 중심이 상함이니이다.

23. 나는 석양 그림자 같이 지나가고 또 메뚜기 같이 불려 가오며

24. 금식하므로 내 무릎이 흔들리고 내 육체는 수척하오며

25. 나는 또 그들의 비방 거리라 그들이 나를 보면 머리를 흔드나이다.

26.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시며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구원하소서.

27. 이것이 주의 손이 하신 일인 줄을 그들이 알게 하소서 주 여호와께서 이를 행하셨나이다.

28. 그들은 내게 저주하여도 주는 내게 복을 주소서 그들은 일어날 때에 수치를 당할지라도 주의 종은 즐거워하리이다.

29. 나의 대적들이 욕을 옷 입듯 하게 하시며 자기 수치를 겉옷 같이 입게 하소서

30. 내가 입으로 여호와께 크게 감사하며 많은 사람 중에서 찬송하리니.

31. 그가 궁핍한 자의 오른쪽에 서사 그의 영혼을 심판하려 하는 자들에게서 구원하실 것임이로다.

다윗이 드린 시다. 이것은 훗날 인도자를 따라 예배 때 부르는 찬송이 되었다.

다윗은 찬양드린다. 그러나 찬양드리는 다윗을 둘러싼 무리들은 그를 괴롭힌다.

다윗은 까닭없이 괴롭히는 원수들로 둘러싸여 있다(3).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그들을 사랑했다(4절상). 그러나 그들의 괴롭힘은 그치지 않는다(4절중). 다윗은 여기서 기도드릴 뿐이다(4절하)

다윗의 기도는 저주기도처럼 보인다. 이해하기 어렵다. 어째서 이럴까? 이런 저주기도가 응답될까? “저주가 그에게는 입는 옷 같고 항상 띠는 띠와 같게 하소서”(19). 어떻게 예수님 믿는 사람들이 원수들을 저주하는 기도를 드릴 수 있을까? 그러나 이건 주님과 나만의 관계 속에서 난 것이다. 이것은 예배 중이다. 모든 원망과 저주가 다 예배언어 중에 들어 있다가 거기서 화목케 하심의 은혜로써불태워져 버린다. 그러므로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우리는 원수를 우리 손으로 갚지 않는다. 원수 갚는 것이 주님께 있다(로마서 12:19). 우리는 주님 앞에 슬피 우는 것만으로도 우리 원수를 주님의 손에 맡겨드리는 것이다.

다윗은 스스로 가난하고 궁핍하다(22절상). 그의 중심은 언제나 상해 있다(22절하). 그는 석양 그림자 같이 지나가고, 메뚜기처럼 불려간다(23). 그는 금식한다(24절상). 그래서 무릎이 흔들리고 육체는 수척해졌다(24절하). 그는 비방거리라. 사람들은 그를 보며 머리를 흔든다(25). 이쯤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둘러싼 무리들이 비방하고 머리를 흔들던 모습이 연상된다(마가복음 15:29). 다윗의 찬양시는 예수님의 찬양시가 되었다.

그러나 26-27절에서 다윗은 주님께 간구드린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다윗을 건져주셔서 이 구원하심이 사람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임을 온 세상이 알게 해 달라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구원을 간구드릴 때, 우리를 십자가의 보혈로써 기적처럼 그 은혜로써 구원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온 세상에 선포할 것임을 약속드리면 된다. 그것이 진정한 서원이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그리하시면 주님께서 나를 살리셨다고 온 세상에 전파하겠습니다. 십자가 외에 다른 구원의 이름이 없다고 선포하겠습니다. 이 서원을 하나님께서 반드시 들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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