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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 성탄설교 (요한 21:1-14)

  • 작성자 : pastor
  • 조회 : 5,188
  • 13-12-20 21:01

20131222

금문교회 성탄주일 1부예배

조은석 목사

153

요한복음 21:1-14

1.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은 이러하니라.

2.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들이 함께 있더니,

3.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4.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5.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6.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7.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8. 다른 제자들은 육지에서 거리가 불과 한 오십 칸쯤 되므로, 작은 배를 타고 물고기 든 그물을 끌고 와서

9.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하시니

11.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12.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라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13.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14.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오늘 2부예배는 스페니시 베레아교회와 연합예배로 드립니다. 지금 우리는 1부예배로 모였습니다. 성탄의 참된 뜻을 주님의 부활과 그 이후의 사건 하나와 함께 나눕니다. , 주님께서 디베랴 바다에 다시 나타나신 사건입니다.

본문을 천천히 다시 읽어보면, 우리가 전혀 몰랐던 다 알았던 것처럼 보이지만 생소한 부분이 눈에 들어옵니다.

디두모라 하는 도마도 갈릴리 출신으로 어부였습니다. 보통 우리는 베드로와 안드레, 요한과 야고보 이렇게 넷을 갈릴리 출신으로 생각했습니다.

나다나엘도 갈릴리 출신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장 후반부에서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요한 1:46) 라고 빌립에게 묻던 나다나엘도 바로 그 사람입니다 생각해 보니까, 자기 고향을 자기가 잘 아는데, 거기서 누구도 그런 선한 분이 나지 못했다는 경험에서 난 말이었습니다.

배의 오른편에 던지라 하신 명령은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하신 말씀과 비슷하지만 상황이 다릅니다. 갈릴리 출신 제자들을 처음 부르셨을 때 깊은 곳을 지적하셨고, 오늘은 배의 오른편입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하신 것은 잡숫고자 하심보다는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나 되는 사실을 지적하시려는 뜻인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고, 떡 있는 곳으로 가셔서”(13) 떡을 그들에게 주셨습니다.

이런 찬찬히 성경읽기에서 얻는 의외의 수확은 참 큰 기쁨을 안겨줍니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거리에서, 찻집에서 성경을 펼쳐놓고 읽는 무리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기쁨입니다. 그때 그 디베랴 바닷가, 그 해변은 동이 터올 무렵이었습니다.

주님께서 해변에 서 계셨습니다. 주님께서 오랫동안 서서 바라보시고 계신 것은 제자들의 배들이었습니다. 삐거덕 거리는 소리와, 그물을 던지는 촤악하는 소리, 탄성소리와 한숨소리가 어울린 제자들의 지친 목소리. 그런 것들이 모두 주님의 눈에, 귀에, 마음에 물결처럼 계속 와 닿았습니다.

주님께서 물으셨습니다. “얘들아!” 파이디아! 정말 선생님께서 아이들을 부르듯 아이들아!” 하신 것입니다. 마치 여자여!” 라고 막달라 마리아를 부르셨을 때 그것이 따뜻한, 정감이 넘치는 부르심이었던 것처럼.

그런데도 제자들은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제자들의 마음이 어두웠습니다. 어둠에 속한 자가 빛을 보는 것이 이처럼 어려운 것입니다. 빛 되신 주님께서 구체적으로, 권능으로 임하실 때만 가능한 사건입니다.

제자들이 말씀에 순종해서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고 나서 그물을 들 수 없을만큼 많은 고기를 잡은 후에야 비로소 그분이 주님이심을 알았습니다(7). 그 사실을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가 먼저 알아보았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알아보게 하시기 위하여 이런 기적을 사용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방금 전에 주님께서 막달라 마리아를 마리아야!” 부르신 주님이셨습니다. 그전에 여자여!” 하셨는데, 그건 막달라 마리아가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주님께서 이미 다 아시는 내용입니다. 그들에게는 고기가 한 마리도 없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밤새 그들은 고생했고 보람이 전혀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던지신 이 짊운 그들의 현실을 돌아보게 했습니다.

그리고 반신반의 하면서 그물을 던진 제자들이 그물을 들 수도 없을 만큼많은 큰 물고기를 잡게 되었을 때에 비로소 주님을 알아보았습니다. 그것도 사랑하시는 제자가 먼저!

요한복음의 주제 중 하나는, 참 목자가 양을 알아보는 것입니다. 양을 숫자가 아니라 이름으로 불러냅니다. 다른 하나는, 양이 참 목자의 음성을 알아 듣는 것입니다. 자동적으로, 양에게 그런 인지능력이 있거나 지혜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목자가 양에게 찾아가셔서” “침투하시는 적극적 능력으로써 양에게 깨달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흔히 명상종교는 스스로의 각성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런데 그 각성의 대상이 참 하나님일 때 그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가 않습니다. 인간에게 참 하나님을 보고 알고 깨닫는 인지능력이 기본적으로 없습니다. 주님께서 강압적으로 침투하시고 흔드시고 모든 뼈를 떨리게”(참고. 예레미야 23:9) 하실 때만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네 인생에게는 기적이 날마다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만물에는 질서우주의 법칙그리고 자연현상만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빙산의 일각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기적이 날마다 넘쳐나는 소식으로 우리 눈앞에 펼쳐지는 것입니다! 그 모든 기적들은 우리에게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비극 중의 비극입니다.

153.

오늘 우리 말씀의 주제입니다. 이것은 “0 vs 153”의 구도입니다. 제자들은 합심해서 노력햇지만 그 열매는 제로였습니다. 주님의 명령으로 제자들의 그물 아래로 모여든 물고기의 수는 153마리였습니다. 이것은 기적입니다.

153. 이 숫자는 단순한 어떤 기적의 수가 아닙니다. 주님께서 당신을 베드로에게 스스로 계시하신 사건의 숫자입니다.

모나미 153의 볼펜을 1970년대 한국 사람들이 사용했습니다. 그 회사의 사장은 153이라는 숫자를 바로 오늘 본문에서 따왔다고 간증했습니다. 영적인 의미를 파악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당신이 구세주이심을 드러내는 사건의 숫자로서.

주님께서 이 기적을 제자들의 가슴 속에 확실히 심어주시기 위해 하신 일이 있습니다. 제자들을 아침 상으로 초대하신 것입니다. 이미 주님께서는 숯불을 피워 놓으셨고, 그 위에 떡과 생선을 구우셨습니다. 주님의 손으로 직접 장만하신 숯불에 떡과 생선! 이는 밤새 지친 제자들의 마음을 위로하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좋은 음식은 위로가 됩니다. 나는 어머니를 잃고 첫 심방 갔을 때, 그 가정에서는 정성껏 차린 음식으로 우리 목회팀을 대접했습니다. 그날 그 음식 테이블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맛있는 음식은 위로입니다. 제자들은 정말 위로가 필요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주님의 고난에 뿔뿔이 흩어져 도망했습니다. 부활 이후에도 두 번씩이나 주님을 직접 뵙기도 했지만, 아직 주님을 구주로 따를 믿음이 없었습니다. 믿음보다는 두려움이 더 컸습니다. 그래서 생업을 위하여 본래의 직업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런 소득도 없는 노력을 밤새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처음부터 깨달은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그들의 필요를 충분하게(more than enough) 채워주시고 난 이후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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