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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9 주일설교 "네가 날 사랑하느냐?" 요한 21:15-25

  • 작성자 : pastor
  • 조회 : 5,682
  • 13-12-29 06:29

20131229

금문교회 송년주일 설교

조은석 목사

네가 날 사랑하느냐?

요한복음 21:15-25

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하시고,

16.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20.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님, 주님을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더라.

21.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23. 이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하였으나, 예수의 말씀은 그가 죽지 않겠다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하신 것이러라.

24. 이 일들을 증언하고 이 일들을 기록한 제자가 이 사람이라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된 줄 아노라.

25.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세 번 물으셨습니다. “네가 날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예수님께 세 번 대답 드렸습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십니다.”

이 대화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 대화를 근거로, “내 양을 먹이라”-“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는 세 번에 걸친 주님의 명령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아가페필로스의 차이를 무시합니다. 신약성경에서 이 두 개의 단어는 사랑이라는 뜻으로 별로 차이가 없게 사용되었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같은 단어라고 해도 그 뉘앙스가 중요합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사용되는가도 중요합니다.

주님께서 세 차례 네가 날 사랑하느냐? 물으셨습니다. 처음 두 번은 아가페로 물으셨습니다. 세 번째는 필로스로 물으셨습니다.

이렇게 세 번째 단어를 바꾸신 이유는, 베드로가 처음부터 끝까지 세 차례 모두 필로스로 자기의 사랑을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제가 필로스 합니다가 아니라, “주님께서 제가 필로스 하는 줄 아십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니까 베드로의 이해로, 주님께서 필로스와 아가페를 분간하여 사용하고 계시다는 것이며, 적어도 베드로가 그 두 단어의 차이를 이해하고 대답하고 있음을 분명히 드러내는 정황입니다.

이를 근거로, 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화를 재구성 해 보기로 합니다.

첫 번째 대화:

네가 이 사람들보다 더 날 아가페 하느냐?

주님. 그렇습니다. 제가 주님을 필로스 하는 줄 주께서 아십니다.

내 어린양을 먹이라.

두 번째 대화:

네가 나를 아가페 하느냐?

주님, 그렇습니다. 제가 주님을 필로스 하는 줄 주께서 아십니다.

내 양을 치라.

세 번째 대화:

네가 나를 필로스 하느냐?

(주님께서 세 번째에는 네가 나를 필로스 하느냐 하시므로 근심하여)

주님. 제가 주님을 필로스 하는 줄 주께서 아십니다.

내 양을 먹이라.

적어도 이 세 번의 대화에서 아가페필로스가 다른 뉘앙스를 가지고 사용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주님께서 처음 두 번을 아가페로 물으셨고, 베드로는 세 차례 내내 필로스라고 대답한 점과, 주님께서 세 번째는 필로스로 물으셨을 때, 베드로가 근심한 것을 보아서 그렇습니다.

왜 베드로가 근심했을까요?

한 두 번도 아니고 세 번씩이나 물으셔서? 같은 질문을? 아닙니다. 본문을 잘 보십시오. 17절 중반부입니다.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여기서 사랑필로스입니다. 그러니까, 베드로가 근심한 내용은 같은질문을 세 차례나 물으셔서가 아니라 세 번째는 필로스라고 단어를 바꾸셔서, 그 바꾸신 의중을 이해했기 때문에, 베드로가 근심한 것입니다. 같은 단어를 세 번째도 쓰셨더라면 그렇게 근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이해하는 주님의 의도는 바로 필로스에 달려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미 베드로의 사랑이 예수님께 자신있게 말씀드렸던 그 사랑과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아셨다는 사실, 그것을 베드로가 알게 된 것입니다. 그 사실이 마음에 근심이 된 것입니다.

장면을 조금 뒤로 돌려보겠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자신있게 사랑한다고 장담하던 장면입니다. 요한복음 13:31-38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요한복음 13:34-35

요한복음 13:34-35에 사용된 모든 사랑이라는 단어는 다 아가페입니다.

바로 이 말씀 후에 베드로가 여쭙습니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이것이 그 유명한 쿠오바디스 도미네?”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그러자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라갈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그러니까 바로 지금 아가페사랑을 약속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아가페 단어를 써서 사랑하라고 당부하신 직후에 목숨 버림을 약속드린 것이니까요.

바로 그때, 주님께서 네가 나를 위해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하셨습니다.

적어도 오늘 본문인 요한복음 21:15-25는 물론 요한복음 13:31-38에서 지금 예수님과 베드로 사이에 문제가 된 이슈는 사랑입니다. 그것도 아가페사랑.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처음 두 차례, “네가 나를 아가페 하느냐?” 물으셨고, 베드로는 각각 필로스라고 고백했습니다. 이전에 목숨을 걸겠다고 장담하던 아가페가 아니라. 그런데 주님께서 세 번째는 방향을 바꾸셔서 네가 나를 필로스 하느냐?” 물으시니, 베드로는 근심이 되었습니다. “다 아시면서 왜 그러셨을까?” “이제 필로스 하느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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