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편7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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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 주일설교 #팔복과 복음 마태 5:1-20

  • 작성자 : pastor
  • 조회 : 6,079
  • 14-02-22 03:22

2014223

금문교회 주일예배

조은석 목사

#팔복과 복음

마태복음 5:1-20

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2.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팔복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박해와 상급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소금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율법과 선지자

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본문 1절입니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마태복음 5:1

예수님께서 무리를 보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세 가지 천국복음전파사역(가르치심, 선포하심, 치유하심) 중에 특히 예수님의 치유에 집중했습니다. 열광했습니다. 그래서 모여 온 사람들입니다.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마태복음 4:24

주님의 소문이라면 당연히 천국복음, 곧 예수님 당신에 대한 소문이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병이 낫는다!”

무료다!”

그 소문이 온 수리아(Syria)에 퍼졌습니다. 수리아라 함은 당대 넓은 의미에서의 가나안 지역과 아람 지역을 포함하는 곳입니다.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강 건너편에서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마태복음 4:25

갈릴리는 가나안 북쪽입니다. 데가볼리는 요단강 동편입니다. 예루살렘은 사해바다 서쪽입니다. 유대는 예루살렘을 포함하는 가나안 남쪽입니다. 요단강 건너편은 데가볼리를 포함하는 드넓은 지역입니다.

말하자면 사방 곳곳에서무리가 모여들었습니다. 모두 병자들이거나 병자들의 친구들, 친척들, 혹은 병 고침에 관심이 많은 무리들이었습니다. 거기에는 바울 때처럼 나도 저런 의술 하나 배워서 평생 먹고 살아볼까?” 그런 사람도 있었겠지요.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 무리를 떠나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그 무리와 함께 계속 계시다가는 그들의 필요만 충족시켜 주셔야 하는데, 그것이 주님께서 오신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병고침 자체보다는 천국이 급선무였습니다. 아니, 천국이 궁극적 목적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의 어느 지점에 앉으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주님을 찾았습니다. 주님 앞에 나아왔습니다. 주님께서 비로소 입을 열어 가르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 말씀은 군중을 상대하심이 아니라 제자를 상대하신 말씀입니다. “제자의 도가 무엇인지 깊이 헤아리게 하신 것입니다. 기적이 아니라 설명입니다. 행동이 아니라 말씀입니다.

무리/군중은 군중심리로 사건기적에 집중합니다. 예수님 자신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하나씩 불러 모아 제자가 되게 하신 주님께서는 이렇게 조그만 무리로 모이게 하시고, 천국복음을 가르쳐 주십니다. 천국복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 스스로를 계시하시는 것입니다.

산상수훈. 이 귀한 말씀은 예수님의 사역(가르치심, 선포, 치유)의 근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당신 자신이심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아울러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알고 나서 제자들이 예수님의 그 길을 자기의 길로 걸어가게 하신 가르치심이었습니다. 이것은 순종입니다. 산상수훈의 결론을 미리 읽어 보지요: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마태복음 7:24-29

본문으로 돌아갑니다.

첫째로, 어째서 무리가 예수님을 따랐을까요?

그들의 주님에 대한 이해는 아직 표면에 불과했습니다. 자기중심적인 이해였습니다. 병을 고쳐주시니까, 세상의 모든 병자들은 물론 그를 구경하려는 사람들로 큰 무리가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그들을 피하셨습니다. 이것도 바른 교육의 한 방법입니다. 교사와 학생이 이해가 상충할 때 일단 시간과 공간적 거리를 두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52어로 5천명을 먹이셨을 때 그들이 예수님을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그들을 피하여 홀로 산으로 가셨습니다.

분리입니다. 현상이 아니라 현상을 만들어 내는 말씀을 보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떨어져 계심이 필요했습니다.

둘째로, 왜 주님께서 산으로 오르셨을까요?

기도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람들과의 시간도 필요하셨지만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 대화가 필요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 순종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말씀순종은 자기이해에 집착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여쭙고 또 여쭙는 것이 필요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소통입니다.

셋째로, 어떻게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까요?

제자들이 주님께 나아왔다고 해서 주님께서 그들에게 발견되신 것이 아닙니다.

무리들에게와는 달리 제자들에게는 당신 스스로를 드러내신 것입니다.

참고로, 요한복음 6장에 따르면, 산에 가셨다가 제자들에게 나아올 때, 물 위를 걸으셨습니다. 모두 놀랐을 때, “나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요한복음 6:20

여기서 내니로 번역한 에고 에이미는 중요한 선언입니다. 이 말씀은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당신 스스로를 계시하신 것과 같은 뜻입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출애굽기 3:14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기적과 재앙 등을 통해 당신 스스로를 드러내시기를 원하셨습니다.

다시 마태복음으로 본문으로 돌아갑니다.

기적을 본 군중들의 환호했습니다. 병이 더 낫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육신의 치료를 통해 영의 치료를 구해야 했는데, 그저 육신에 집중하고 또 집중했습니다.

주님께서 그들로부터 떨어져 산에 오르셨습니다. 홀로 기도하신 주님. 그 후에야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제자들이 주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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