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편7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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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주일설교#복음과 하나님 나라#마가 1:1-20

  • 작성자 : pastor
  • 조회 : 7,484
  • 15-02-07 12:08

201528

금문교회 주일예배

조은석 목사

복음과 하나님 나라

마가복음 1:1-20

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2.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3.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4.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5.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6.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7. 그가 전파하여 이르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8.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

9.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10.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11.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하시니라.

12.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13.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14.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하시더라.

16.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18. 곧 그물을 버려두고 따르니라.

19.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그들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20. 곧 부르시니,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군들과 함께 배에 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

복음기쁜 소식입니다.

그런데 그 복음은 수식어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복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십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왜요?

인간의 죄를 당신의 십자가 죽으심으로써 사해주시려는 목적입니다.

이 목적은 구약성경 전체를 통해 이미 예언된 내용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그 내용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에 관한 모든 것입니다. 그 기쁜 소식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삼일 만에 부활하셨고, 하늘로 승천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승천하신 그 모습대로 다시 재림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같은 복음의 소식을 세상에 먼저 알린 사람은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창세기 3장에 그 첫 번째 복음소식 기록이 있는데,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밟으시리라는 것과, 하나님께서 범죄하여 죽을 수 밖에 없던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다는 것입니다. 그를 기록한 사람이 모세입니다. 모세 이후 수많은 예언자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실 것을 예언했습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예언자가 바로 오늘 본문에 소개된 세례요한입니다.

모세부터 세례요한까지, 예언자의 역사는 일관되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제 세례요한은 그 예수님을 직접 눈으로 본 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가셔서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주님께서 오심의 모든 예언을 완성하셨습니다.

물론 모세 이전에도 예수님의 오심을 예언한 역사가 있습니다. 문제는 글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예언의 전역사”(prehistory of the prophecy)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전역사 및 역사를 통틀어,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구약성경은 일관되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을 예언했습니다. 구약의 모든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았고, 줄기차게 기다려 왔습니다. 이 기다림은 막연하게 하늘만 본 것이 아니라, “제사를 드림으로 신앙의 삶안으로 깊이 들어왔습니다.

정결한 동물과 정결한 곡식으로 드리는 제사를 통해, 저들은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니까, 저들의 동물과 곡식 제사가 모든 죄를 궁극적으로사하는 제사라고 믿은 것이 아니라, 그 제사는 하나의 유일하고 영원한 제사(one, unique and eternal sacrifice),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을 기다림이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들의 모든 동물 및 곡식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모형이었습니다.

레위기 1-7장은 바로 이 다섯 가지 제사에 대한 내용설명과 제사드리는 방법설명의 본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제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구체적인 삶의 길을 걸어간 것입니다.

오늘 세례요한이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합니다.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

세례요한의 세례는 물세례입니다. 이것은 앞선 동물와 곡식으로 드린 5대 제사와 같이 궁극적인 세례를 기다리는 모형으로서의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푸실 성령세례는 당신의 몸으로써 행하신 바, 십자가 위에서 피흘리심의 제사를 의미합니다. 아울러,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내실 보혜사 성령님의 임재까지 포함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이 사실은 오랜 기다림이라는 흐름에서 보아야 훨씬 더 정확하게 우리 가슴에 와 닿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이 사실은 이 세상이 주님의 십자가의 길을 원하지 않았음을 극적으로 드러냅니다. 이 세상은 공중의 권세 잡은 세력, 곧 사탄의 손 아래 있습니다. 훗날 대제사장들과 서기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 등 모든 유대인들과 그 지도자들이 주님을 반대하고 박해하고 끝내 십자가에 못 박은 사실을 통해 분명해집니다. 그런데 아이러니칼하게도 오늘 본문에 간단하게 표사된 시험의 내용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소개된 바, 세 가지입니다. 1. 돌을 떡으로 바꾸어 먹으라. 2. 성전에서 뛰어내리라. 3. 산 위에서 마귀에게 경배하라. 누가복음은 2-3의 순서가 마태복음과 다르지만, 내용은 한가지입니다. 모두가 십자가의 길을 방해한 것입니다.

이상하지요? 십자가에 못 박기를 간절히 구했고, 실제로 그 일에 앞장섰으면서도 십자가의 길을 방해했다는 것은! 이것은 정말 그들은 그들이 하는 것이 무슨 뜻인지전혀 알지 못했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이 잡혔습니다. 다른 복음서에 따르면, 그는 헤롯 왕의 불의를 참고 넘어가지 않고 직언했습니다. 그 결과 미움을 받아 투옥된 것입니다.

그 후에 주님께서 복음선포를 시작하셨습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보십시오. 때가 찼습니다. 는 언제입니까? 크로노스 같은 수평시간보다는 카이로스라는 수직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그 때가 온 것입니다. 십자가의 때입니다. 이제 인간이 해야 할 것은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사역의 모든 과정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복음을 믿기 위해서는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주님께 고백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회개라는 말의 헬라어는 메타노이아입니다. 화살이 날아가는 방향을 돌아서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진정한 회개를 드릴 수 있을까요? 성령님의 감화감동 없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시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성령님을 기다림은 우리의 몫입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빈들에 마른 풀같이 시들은 나의 영혼

주님이 약속한 성령 간절히 기다리네.

찬송가 183

예수님께서 어부들을 찾아가셔서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갈릴리 해변으로 가셔서, 시몬과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셨습니다.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두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인생은 연약합니다. 완전한 순종을 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해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오늘 우리를 찾아오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우리의 순종은 어떤 것이어야 합니까? 즉각순종이어야 합니다.

또한 주님께서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을 보셨습니다. 그들은 아버지 세베대와 다른 품군들과 함께 그물을 깁고 있었습니다. 물고기 잡을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곧 부르셨습니다. 부를까 말까 고민하지 않으시고, 곧 부르셨습니다. 오늘 우리를 부르심도 우리 속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당신의 뜻을 따라 부르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종이 된 것은 우리 안의 어떤 재능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후회하심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로마서 11:29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로마서 8:30

여러 가지로 부족하고, 다혈질이고, 신실함이 없던 그들이었지만, 끝내 그들은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아름답게 사용된 종이 되었습니다. 진실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된 것입니다.

제자를 부르심은 무슨 뜻입니까?

오늘 우리 이름은 시몬이나 안드레, 야고보나 요한이 아닙니다. 그러나 오늘 주님께서 이 말씀을 우리에게 주신 것은, 바로 우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부르심의 은혜를 깊이 깨닫고, 그 뜻을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우리는 물가에서 태어나 물고기를 잡다가 평생 그렇게 늙어가야 할 처지였습니다. 주님 만나기 전에는 그랬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셨고, “불러주셨습니다.

주님의 뜻을 따라, 주님의 놀라우신 은혜의 해를 선포할 주님의 종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가 취해야 할 바른 태도는 무엇입니까? “즉각 드리는 응답입니다.

곧 그물을 버려 두고 따르니라.

마가복음 1:18

부르심을 들은 시몬과 안드레의 태도였습니다.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군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

마가복음 1:20b

보시자마자 부르신 주님께 대한 야고보와 요한의 태도였습니다. 그들은 아버지와 품군들이 아직 배에 있는데, “버려두고주님을 따라갔습니다.

이후에 어떤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주님을 따르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즉각따르기를 요구하셨는데, 그들은 말했습니다.

죽은 아버지를 장사하고 나서 오겠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마태복음 8:22

주님을 따르는 자는 산 자입니다. 살아있는 자는 살아있는 자를 낚을 생각에 가득 차 있습니다. 살아 있는 자는 죽은 자를 위한 무덤 만들기에 골몰하지 않습니다. 죽은 자들이 어디를 가야할지 그것으로 고민하지 않습니다. 대신 살아 있는 사람들이 천국가는 길을 위해 힘쓰는 것입니다.

고대문명을 가만 들여다 보면, 죽은 자들이 죽은 자들을 장사하고 있다는 주님의 표현을 실감합니다. 고대문명이 대개 죽은 문명인 것은, 저들은 산 사람들을 잡아다가 죽은 자들을 위해 강제노역 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죽은 자들을 위해 거대한 무덤이나 기념건물을 짓는 자들은 대개 독재자여서, 살아있는 백성들의 필요를 외면합니다. 죽은 자를 위해 치장하는 사람들은 대개 저들의 거짓과 위선, 부정과 부패를 위장하려는 숨은 목적이 큽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곧 부르셨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을 곧 따랐습니다. 바로 이 즉각성입니다.

성도 여러분. 인생이 얼마나 짧습니까? 송구영신 예배를 드린 것이 바로 어제 같은데 오늘 벌써 우리는 20152월의 두 번째 주일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함께 예배드리고 있는 우리가 훗날오늘을 기억하면서, “그 때가 정말 좋았어!” 그럴 날이 결코 멀지 않았습니다. 바로 오늘 우리가 즉각성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기회가 없을 것입니다.

오늘 주님을 위해 예배드리고, 오늘 봉사하고 섬기고, 오늘 주님을 위해 전도해야 합니다.

2015년 우리는 이 빈 자리를 모두 채울 수 있어야 합니다. 2016년에 하기로 할까요? 아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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