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편73:28)

성도를 온전하게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교회

2-15 주일설교#귀신을 쫓아내심#마가 1:21-45

  • 작성자 : pastor
  • 조회 : 7,990
  • 15-02-14 14:14

2015215

금문교회 주일예배

조은석 목사

예수님께서 귀신을 내쫓으시다

마가복음 2:21-45

21. 그들이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22.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23. 마침 그들의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이르되,

24.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25.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하시니,

26.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27. 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한즉 순종하는도다하더라.

28. 예수의 소문이 곧 온 갈릴리 사방에 퍼지더라.

29. 회당에서 나와 곧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어가시니,

30.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는지라. 사람들이 곧 그 여자에 대하여 예수께 여짜온대

31. 나아가사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그들에게 수종드니라.

32. 저물어 해 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33. 온 동네가 그 문 앞에 모였더라.

34. 예수께서 각종 병이 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쫓으시되,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

35.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36. 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37. 만나서 이르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38.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하시고,

39.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그들의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을 내쫓으시니라.

40.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41.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하시니,

42. 곧 나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진지라.

43. 곧 보내며 엄히 경고하사

44.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네가 깨끗하게 되었으니, 모세가 명한 것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하셨더라.

45. 그러나 그 사람이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니,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으나, 사방에서 사람들이 그에게로 나아오더라.

영상:

팔꿈치 피아니스트 최혜연의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오늘 이 영상은 지난 주 조선닷컴에서 머릿기사로 소개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낙심하고 좌절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한국은 자살율이 세계적으로 높지요. 이럴 때 최혜연 같은 젊은이가 사명을 가지고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습니다. 실력을 뽐내거나, 그걸로 부자가 되고 유명한 사람이 되려는 목적이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되면, 그에게 장애를 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장애를 통해 치유를 하고 있다면, 이미 그는 장애가 치유 받은 것입니다. 아멘.

오늘 설교는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신 의미에 대하여 전합니다. 아울러 병을 고치심을 전합니다.

축귀치유모두는 예수님을 만나 뵙고 일어난 일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뵙기 이전과 주님 뵌 이후를 뚜렷하게 구별하는 말씀입니다.

소위 BeforeAfter의 비교입니다.

이로써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뵌 성도의 삶에 진정한 변화가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아울러, 한번 일어난 변화는 계속되는 변화의 삶의 변화가 되어야 합니다.

성도는 예수님을 날마다 뵙고, 성도의 삶은 날마다 새로운 삶의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버나움

많은 증거를 보이신 곳입니다. 예수님의 고향동네에서 멀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적은 곳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비견하셨습니다.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성이 오늘까지 있었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마태복음 11:23-24

이 말씀을 하시고 주님께서 모든 이들을 부르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 11:28

주님께서 부르신 사람들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입니다. 귀신에 붙들리고 질병에 시달리는 자들입니다. 이들을 쉬게 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이러므로 Before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졌으나, After는 주님 안에서 쉴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병을 고치셨습니다.

더러운 귀신 들린 자를 보시고 더러운 귀신을 그에게서 쫓아내셨습니다.

이제 묻습니다. 더러운 귀신은 누구입니까?

더러운 귀신 들린 자, 그가 말하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이니다.

우선, 몇 가지를 알 수 있습니다.

1. 예수님께서는 귀신과 상관이 없다.

2. 예수님께서는 귀신을 멸하러 오셨다.

3.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시다.

첫째로, 예수님께서 귀신과 상관이 없다는 것은, 예수님께서는 결코 귀신과 어떤 영적인 속성을 공유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귀신과 같지 않으십니다.

둘째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귀신을 멸하십니다. 예수님의 성육신이 귀신을 멸하러 오셨다는 주장은 문제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로 죽게 된 인생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 과정에서 귀신을 멸하시는 것은 오히려 당연합니다.

셋째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거룩한 분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오셨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로써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는 거룩하십니다. 그러나 오늘 주님을 만난 이 귀신은 거룩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귀신을 더러운 귀신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더럽다는 것은 거룩하지 않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러면 거룩한 귀신도 있습니까?

아닙니다. 모든 귀신은 더럽습니다. 모든 귀신이 거룩하지 않습니다.

더러움과 거룩하지 않음은 하나님의 속성에서 벗어난 상태를 말합니다. 죄의 상태이며, 불순종의 상태입니다.

주님께서 오셔서, 인간의 이같은 상태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병든 사람과 귀신 들린 사람을 고치셨습니다.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마가복음 1:25b

예수님께서 드디어 그 귀신에게 명령하셨습니다.

베드로의 장모를 고치셨습니다. 열병이 떠나고 예수님 일행에게 수종들었습니다.

그러므로 병 든 사람은 수종들 수 없는 상태입니다.

베드로의 장모의 병을 고쳐주심은 수종들게 하심입니다.

훗날 베드로와 요한을 통해 일평생 걷지 못하고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을 고쳐주심은 그가 걷고 뛰면서 하나님을 찬양함에 그 이유가 들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람들을 피하여 한적한 곳으로 나가셨습니다.

새벽 미명에 기도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주님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의 인기를 필요로 하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간절히 찾는 그들은 병이 들고 귀신에 시달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을 고쳐주시고 회복시켜 주심이 그 목적입니다. 궁극적으로 죄를 사함 받고 천국에 가도록하시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그러므로 때때로 그들에게서 벗어나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셨습니다.

무리들은 병을 고침 받고 먹을 것을 먹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으로부터 죄를 사함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이끌어, 다른 마을로 가면서 전도하자고 하셨습니다.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전도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신 이유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은 전도입니다. 부르심 받은 목적도 전도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찾아오는 이들을 만나셨을 뿐 아니라, 친히 찾아가셔서 만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어떤 문둥병자를 고치셨습니다. 그가 예수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드렸습니다.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주님께서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셨습니다.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그 문둥병자는 옳은 간구를 드렸습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면! 만일 주님께서 원하신다면 분명히 병을 치료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뜻을 먼저 구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원하노니!” 이 나병 환자는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안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 앞에 나아가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습니다. 주님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주님께서 그의 병을 고쳐주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안 사람의 태도입니다.

제사장에게 가서 보이라.

구약 레위기에 따르면 나병이 발병했을 때와 나을 때 모두의 경우에 제사장이 검진하고 처방을 내립니다. 오늘날 의사의 역할도 제사장이 맡은 것입니다. 그리고 병이 나았을 때 제사장에게 가서 확인을 받아야 합니다. 그때 가져가야 할 예물이 있습니다.

네가 깨끗하게 되었으니

모세가 명한 것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마가복음 1:44b

깨끗하게 된 사람이 제사장에게 가져가야 할 제물은, 살아있는 정결한 새 두 마리, 백향목과 홍색 실과, 우슬초 등입니다. 이것들을 이용해서 제사장은 그가 정결한 것을 확증해 줍니다. 그리고 제7일이 지나고 제8일에는 그가 제물을 가져다가 제사장을 통해 제사를 드립니다. 경제적 수준에 따라 예물의 종류를 정했습니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도 하나님께 나아가 병이 낫고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기억해야 할 것은, 이런 제사드림을 통해서 나병이 낫게 됨을 확증한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십자가 죽으심으로써 나병을 포함한 모든 병을 고쳐주심을 밝혀 보이신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병은 사람이 고치는 것이 아닙니다. 진료하는 의사도 기도하면서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질병은 예수님의 보혈로 씻음 받아 정결케 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레위기에 기록한 치유와 회복의 예언이 비로소 예수님에게 이르러 성취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으로써 성경말씀이 성취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시고 병을 고치시는 모든 것은 이미 구약성경에 예언된 사실이며, 그로써 주님께서 그 모든 예언을 성취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탄을 물리치실 것은 창세기 3장에 예언되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들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창세기 3:14-15

예수님께서 병을 고쳐주실 것은 이사야 53장에 예언되어 있습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이사야 53:3a

여기서 질고는 질병입니다. 본래 히브리어 본문을 질고를 앓는 자라고 번역해야 합니다. 질고를 아는혹은 이해하는분이 아니라, 질고를 친히 앓는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어떤 질고도 앓으실 이유가 없지만, 오늘 우리의 모든 질병을 담당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거룩하신 몸에 우리의 모든 병을 옮겨 가신 것입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이사야 53:4a

우리가 죄를 사함 받은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질병을 고침 받은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질병을 대신 앓으셨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오늘 우리가, 그리고 우리 식구가, 우리 사랑하는 모든 형제 자매들이 당하는 고난은 모두 예수님께서 담당하고 계십니다! 믿으십니까? 그러므로 오늘 내가 신음하며, 오늘 내가 고

댓글목록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