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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주일설교#믿음이없느냐#마가4:35-41

  • 작성자 : pastor
  • 조회 : 1,234
  • 20-04-14 02:43

2020419

금문교회 주일예배 GGPC Sunday Service

조은석 목사 Rev. Eun Suk Cho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Do You Still Have No Faith?

마가복음 Mark 4:35-41

35. 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That day when evening came, he said to his disciples, “Let us go over to the other side.”

36. 그들이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Leaving the crowd behind, they took him along, just as he was, in the boat. There were also other boats with him.

37.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A furious squall came up, and the waves broke over the boat, so that it was nearly swamped.

38. 예수께서는 고물에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Jesus was in the stern, sleeping on a cushion. The disciples woke him and said to him, “Teacher, don’t you care if we drown?”

39.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He got up, rebuked the wind and said to the waves, “Quiet! Be still!” Then the wind died down and it was completely calm.

40.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He said to his disciples, “Why are you so afraid? Do you still have no faith?”

41.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They were terrified and asked each other, “Who is this? Even the wind and the waves obey him!”

할렐루야!

부활주일을 지난 첫째 주일입니다. 부활신앙을 가지고 이제 이후의 인생을 살아가시는 성도 여러분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부활절 이후 50일이 지나면 오순절입니다. 성령강림의 은혜가 있는 때입니다. 기도하면서 주님과 동행하시고, 성령충만 받으시기 바랍니다.

제자들은 두 차례 놀랐습니다. 첫 번째는 바람과 파도 때문이었습니다.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A furious squall came up, and the waves broke over the boat, so that it was nearly swamped.

마가복음 Mark 4:37

보통 바다에서 태어나 자랐고, 거기에서 생업을 이어가던 어부들이라면 웬만한 파도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예수께서는 고물에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Jesus was in the stern, sleeping on a cushion. The disciples woke him and said to him, “Teacher, don’t you care if we drown?”

마가복음 Mark 4:38

그들은 스스로 해결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급기야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우리가 죽게 되었습니다!” 전문가 어부들이 죽음공포에 사로잡힐 정도였으니, 바람이 정말 거칠고 파도가 높았던 것이 분명했습니다.

두 번째는 그들이 예수님을 보았을 때였습니다.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They were terrified and asked each other, “Who is this? Even the wind and the waves obey him!”

마가복음 Mark 4:41

오늘 본문은 사실 두 번째 두려움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바다에 있어서 바람과 파도는 일상문제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바람과 파도에게 명령하고, 그들이 그 사람에게 순종하는 일은 전혀 들어보지도 못한 일입니다.

제자들이 경험한 첫 번째 두려움은 서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오늘 코로나바이러스처럼, 세상 모두가 다 아는 두려움의 경우입니다.

첫 번째 두려움은 믿음이 없어서 생기는 두려움입니다. 바람과 파도를 다스릴 수 있는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곁에 계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여기서 제자들은 꾸지람을 들었습니다.

주님께서 두 차례 꾸짖으셨습니다. 첫째는 바람과 파도에게. 두 번째는 제자들에게!

세상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과 동등이신 예수님께서 계신데 바람과 파도가 덤벼든 셈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꾸지람을 들어야 했습니다!

두 번째의 경우가 심각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알았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그런데 그 지식이 없다는 사실은 꾸지람을 듣기에 충분했습니다.

주님께서 그들을 꾸짖으신 것은 비난이 아니었습니다. “믿음을 심어주시려는 영적 도전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에게 있어서 두 번째 두려움은 비밀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문제는 풀리지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 스스로 말씀해 주시기 전에는!

여기서 계시의 필요성이 대두합니다. 두 번째 두려움은 하나님의 말씀아니고는 결코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그러고 보면, 두 번째 두려움은 믿음에 이르는 두려움입니다.

오늘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해야 합니까? 코로나바이러스입니까? 코로나바이러스를 물리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까?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The fear of the Lord is the beginning of knowledge, but fools despise wisdom and discipline.

잠언 Proverbs 1:7

우리는 배를 타고 저편으로 건너가는 사람들입니다. 이 뱃길은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길입니다.

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That day when evening came, he said to his disciples, “Let us go over to the other side.”

그들이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Leaving the crowd behind, they took him along, just as he was, in the boat. There were also other boats with him.

마가복음 Mark 1:35-36

그러므로 이것은 안전한 길입니다. 출발지부터 도착지까지 모든 것이 결정된 것이 아닙니까?

바울의 경우, 그는 예루살렘을 떠나 로마에 이르기까지, 그의 여정은 이미 결정된것이었습니다. 그는 로마로 가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파선의 공포 중에서 평화를 되찾은 것은 사명감 재인식이었습니다. 로마로 가는 그는 사명이 있었습니다. 황제 앞에 서야 하는 사명감!

황제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해야 하는 사명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바다에서 죽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지금 제자들은 바다 저편으로 가자!”는 주님의 명령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저편에 도착하기도 전에 바다에서 죽을 수는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명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구우일모라는 말이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 풀면 아홉 마리 소에 털 하나라는 뜻입니다. 소가 아홉 마리이면 털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 많은 것 중 하나에 불과한 문제, 그것은 사소한 것입니다.

고대 중국에 사마천(Sima Qian, 145-86 BC)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고대 한나라(Early Han Dynasty, 206 BC-AD 220)의 역사가입니다. 그의 아버지 사마담(Sima Tan)이 아들에게 준 유언이 있었습니다. “사기”(complete history of China)를 집필하여 완성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궁형에 처해집니다. 궁형은 사형에 걸맞는 죄인에게 내리는 형벌로서, 몸의 일부를 제거하는 형벌입니다. 사람들은 궁형에 처해진 사람에게 돌을 던지거나 침을 뱉었습니다. 아이들이 따라가며 조롱합니다. 인간대접은 결코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이런 경우 많은 사람들은 수치를 이기지 못하고 자결하고 맙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친구 임소경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말을 씁니다.

구우일모!” 지금 내가 겪는 고난은 내가 가진 사명에 비하면 아홉 마리 소의 털 전체에 비교한 단 하나의 털이다!

사소한 것에 목숨 건다!” 그런 말이 있습니다. 진정으로 중요한 일에 최선을 다해야 옳습니다. 사소한 것은 지나쳐도 상관이 없습니다. 이렇게 되든 저렇게 되든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지나가게 버려두어도 좋습니다. Let it go!

그는 그 사명의 중요성을 철저하게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개인의 고난을 이겨냈습니다.

He was acutely aware of the importance of his work to posterity and its relationship to his own personal suffering. (en.m.wikipedia.org, April 14, 20)

정말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사명인데, 지금 제자들에게는 바다 저편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명령하신 것이 아닙니까? 거기 가서 어떤 사역을 감당하시려는 것이 아닙니까? “전도라면, 주님께서 내가 이를 위해 왔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그들의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쫓으시더라.

Jesus replied, “Let us go somewhere elseto the nearby villagesso that I can preach there also. This is why I have come. So he traveled throughout Galilee, preaching in their synagogues and driving out demons.

마가복음 Mark 1:38-39

오늘 본문을 건너 다음 장면을 미리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다 건너편 거라사인의 지방”(the region of the Gerasenes)에 이르셨습니다. 배에서 나오시자,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군대”(Legion) 마귀에 들린 그 사람을 고쳐주시고, 그를 집으로 돌려 보내주셨습니다. 그 사람은 집에 돌아가서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셨는지 데가볼리 지역(Decapolis)에 전파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놀랍게 여겼습니다. 마가복음 5:1-20절 말씀입니다.

그 일을 마치시고는 곧 주님께서 다시 맞은편으로 돌아오셨습니다. 큰 무리가 모여들었고, 회당장 야이로(Jairus)가 자기의 어린 딸을 위해 주님께 간구 드렸습니다.

보십시오. 지금 바다를 건너가는 길이 거라사인의 지방에 가셔서, 군대 귀신 들린 자를 고치시는 일과, 그가 고향 마을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전도인이 되게 하시는 귀한 일을 하시려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바다 저편으로 가자!”고 명령하신 이유였습니다.

제자들이 그런 어마어마한 사명을 가졌는데, 설마 바다에서 죽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그 사명을 버리게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이라는 관점에서 보고 대범하게 말하자면, 사람은 사명을 다하지 않고 죽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너무 일찍 죽음”(untimely death) 라는 말은 성립이 되지가 않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있는 법입니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There is a time for everything, and a season for every activity under heaven. A time to be born and a time to die, a time to plant and a time to uproot.

전도서 Ecclesiastes 3:1-2

물론 아직도 돌보아야 할 자식이 있는데 교통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났거나, 갓 결혼한 신혼인데 회복되지 못할 병에 걸렸다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께 여쭙게 됩니다: ? 지금?

더구나 그것이 자기 자신의 경우라면 왜 내가?” 이런 고통스러운 질문을 품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으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에 집중하게 하십니다. 그것은 사명이 무엇인가, 그 사명을 향해 가는 우리의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명을 주신 사람은 그 사명을 다하기까지 생명을 거두지 않으신다. 제가 믿는 바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후회하심이 없다, 이 로마서 말씀이 그런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For God’s gifts and his call are irrevocable.

로마서 Romans 11:29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가는 길. 우리교회가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하는 이 말씀을 모토로 삼고 지난 26년을 달려왔습니다. 이것은 아멘신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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