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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7#설교#용서받은죄인#마가 6:14-29

  • 작성자 : pas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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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13 02:30

2020517

금문교회 주일예배 GGPC Sunday Service

조은석 목사 Rev. Eun Suk Cho, Pastor

용서 받은 죄인 The Sinner Forgiven

마가복음 Mark 6:14-29

14. 이에 예수의 이름이 드러난지라. 헤롯 왕이 듣고 이르되, “이는 세례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도다. 그러므로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일어나느니라하고

King Herod heard of it, for Jesus’ name had become known. Some said, “Joh the Baptist has been raised from the dead. That is why thses miraculous powers are at work in him.”

15. 어떤 이는 그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는 그가 선지자니, 옛 선지자 중의 하나와 같다하되

But others said, “He is Elijah.” And others said, “He is a prophet, like one of the prophets of old.”

16. 헤롯은 듣고 이르되, “내가 목 벤 요한, 그가 살아났다하더라.

But when Herod heard of it, he said, “John, whom I beheaved, has been raised.”

17. 전에 헤롯이 자기가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에게 장가 든 고로 이 여자를 위하여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잡아 옥에 가두었으니

For it was Herod who had sent and seized John and bound him in prison for the sake of Herodias, his brother Philip’s wife, because he had married her.

18.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하였음이라.

For John had been saying to Herod, “It is not lawful for you to have your brother Philip’s wife.”

19. 헤로디아가 요한을 원수로 여겨 죽이고자 하였으되 하지 못한 것은

And Herod had a grudge against him and wanted to put him to death. But she could not.

20. 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하며, 또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을 하면서도 달갑게 들음이러라.

For Herod feard John, knowing that he was a righteous and holy man, and he kept him safe. When he heard him, he was greatly perplexed, and yet he heard him gladly.

21. 마침 기회가 좋은 날이 왔으니, 곧 헤롯이 자기 생일에 대신들과 천부장들과 갈릴리의 귀인들로 더불어 잔치할새

But an opportunity came when Herod on his birthday gave a banquet for his nobles and military commanders and the men of Galilee.

22. 헤로디아의 딸이 친히 들어와 춤을 추어 헤롯과 그와 함께 앉은 자들을 기쁘게 한지라. 왕이 그 소녀에게 이르되, “무엇이든지 네가 원하는 것을 내게 구하라. 내가 주리라하고

For when Herodia’s daughter came in and danced, she pleased Herod and his guests. And the king said to the girl, “Ask me for whatever you wish, and I wil give it to you.”

23. 또 맹세하기를, 무엇이든지 네가 내게 구하면 내 나라의 절반까지라도 주리라하거늘

And he vowed to her, “Whatever you ask me, I will give you, up to half of my kingdom!”

24. 그가 나가서 그 어머니에게 말하되, “내가 무엇을 구하리이까?” 그 어머니가 이르되, “세례요한의 머리를 구하라하니

And she went out and said to her mother, “For what should I ask?” And she said, “The head o John the Baptist.”

25. 그가 곧 왕에게 급히 들어가 구하여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 곧 내게 주기를 원하옵나이다하니

And she came in immediately with haste to the king and asked, saying, “I want yo to give me at once the head of John the Baptist on a plater.”

26. 왕이 심히 근심하나, 자기가 맹세한 것과 그 앉은 자들로 인하여 그를 거절할 수 없는지라.

And the king was exceedingly sorry, but because of his oaths and his guests he did not want to break his word to her.

27. 왕이 곧 시위병 하나를 보내어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명하니, 그 사람이 나가 옥에서 요한을 목 베어

And immediately the king sent an executioner with orders to bring John’s head. He went and beheaded him in the prison.

28. 그 머리를 소반에 얹어다가 소녀에게 주니, 소녀가 이것을 그 어머니에게 주니라.

And brought his head on a platter and gave it to the girl, and the girl gave it to her mother.

29. 요한의 제자들이 듣고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니라.

When is disciples heard of it, they came and took his body and laid it in a tomb.

오늘 말씀의 초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용서 받은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ou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요한복음 John 3:16

모든 죄는 용서 받아야 합니다. 그냥 두면 안 됩니다.

죄가 용서받으면 그 유익은 무엇입니까? 첫째는 그 죄의 값을 더 이상 치르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죄가 그냥 남아 있다면, 즉 죄가 용서 받지 못한다면, 그는 다른 죄를 계속 지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죄는 죄를 낳습니다. 그 속도도 빠르지만, 그 범위가 엄청나게 커집니다. 그 죄의 파장의 폭은 시간에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증가(exponential increase) 합니다. 눈 깜빡할 사이에 기하급수적으로(exponentially) 죄가 증가합니다. 손을 쓸 수도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헤로디아(Herodia)의 죄입니다. 그녀의 살인행위입니다. 그녀는 세례요한을 목 베어 죽였습니다. 자기의 딸이 헤롯의 잔치 자리에서 춤을 추어, 헤롯이 보상을 약속했을 때, 모든 사람들 앞에서 공개한 그 약속의 빌미를 잡아, 딸에게 세례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담아 상급으로 달라는 요구를 헤롯에게 하게 한 것입니다.

헤롯은 요한을 감옥에 가두기는 했지만, 그것까지는 그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물은 엎질러졌습니다! 어쩔 수 없이 그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여기서 헤롯의 죄를 생각합니다. 그는 헤로디아와 결혼한 죄가 있습니다. 그 죄가 용서받지 못했습니다. 그 용서받지 못한 죄는 급기야 세례요한을 감옥에 가두는 또 다른 죄를 짓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께서 그에게 보내셔서 그에게 목숨을 걸고 의로운 말을 해 준 그 예언자를 감옥에 가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또다시 정면으로 거역한 죄였습니다.

그런데 헤로디아의 죄를 또 생각합니다. 그녀가 헤롯과 결혼한 데는 헤롯의 뜻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여자의 뜻도 컸습니다. 본문을 행간까지 읽으면, 세례요한이 헤롯에게 의로운 말로 도전했을 때, 헤로디아는 세례요한을 죽일 생각까지 품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헤롯은 거기까지는 아니었습니다. 세례한의 말이 마음에 아팠지만, 그래도 즐겁게 드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자기의 죄를 부분적으로는 인정했다는 말입니다. 이런 사람이 회개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헤로디아였습니다.

이 일에 헤롯은 방관자(bystander)였습니다. 비판을 달갑게 들었으나, 아직도 그를 감옥에 두었다. 그는 생각했겠지요. 헤로디아는 이 남자를 죽이려고 한다. 내가 그를 가두어 둠으로써 그를 지킨다. 사실 오늘 본문에 그렇게 지적한 바가 있습니다.

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하며.

For Herod feared John, knowing that he was a righteous and holy man, and he kept him safe.

마가복음 Mark 6:20a

보십시오. 헤롯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1. 알고, 2. 두려워하며, 3. 보호했습니다. 이것은 놀랍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의의 열매를 맺는 데까지 이르지 못했습니다. 어째서 그랬을까요?

죄를 회개하지 못한 자가, 아직 그 죄 가운데 있으면서, 의로움에 대한 어떤 콤플렉스를 품는, 그런 수준입니다. 이것으로 그는 결코 구원에 이르지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뵙고, 그분의 사죄의 은총을 받기 전에는!

헤롯은 끝내 한 여자의 악한 계획 아래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두 여자입니다. 헤로디아와 그녀의 딸!

빌라도도 그랬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보호하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끝내 그는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무리의 외침과 위협! 무리에게 손들고 마는 그 정도 가지고는 구원을 이룰 수 없습니다.

헤롯이 세례요한을 보호했다면 누구로부터 어떻게 보호했다는 말입니까? 헤로디아입니다. 헤로디아가 세례요한을 죽이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제안을 들었겠지만, 그때마다 거절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는 대신 세례요한을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싶었겠지요.

헤로디아! 나도 그에게 대하여 분노해!

보라구. 나는 그래도 그를 감옥에 가두었어!

이건 불의한 자가 그가 실제로 소속한 불의에 대하여 스스로 정당화 하는 방법입니다. 그는 당시의 남자였고 그는 당대의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여자의 간악함 앞에 무릎을 꿇고 만 그는 약한 사람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믿음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보십시오. 믿음 없는 사람은 누구라도 바람에 밀려가는 안개, 광풍 앞에 먼지 아닙니까?

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니, 그들을 위하여 캄캄한 어둠이 예비되어 있나니

These are waterless springs and mists driven by a storm. For them the gloom of utter darkness has been reserved.

베드로후서 2 Peter 2:17

악인들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The wicked are not so, but are like chaff that the wind drives away.

시편 Psalm 1:4

그러면서 그는 그것이 세례요한을 보호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건 불의한 자가 그가 소속하지 못한 정의에 대하여 스스로 정당화 하는 방법이지요.

이 일은 구약성경에서 야곱의 첫째 아들 르우벤”(Reuben)의 행위를 연상시킵니다. 형제들이 요셉을 죽이려고 했을 때, 루우벤은 구덩이에 넣자고 제안한 사람입니다. 요셉을 구덩이에 던져 넣는 벌을 내림으로써 그를 죽이려고 했던 다른 형제들에게 배반자로 낙인찍히고 싶지 않았던 이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를 몰래 구덩이에서 빼내어 아버지께로 돌리려는 다른 계획도 있었습니다.

르우벤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피를 흘리지 말라. 그를 광야 그 구덩이에 던지고 손을 그에게 대지 말라하니, 이는 그가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출하여 그의 아버지에게로 돌려보내려 함이었더라.

And Reuben said to them, “Shed no blood. Throw him into this pit here in the wilderness, but do not lay a hand on him.” That he might rescue him out of their hand to restore him to his father.

창세기 Genesis 37:22

그러나 그의 계획대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보통 이런 악한 계획은 연속하여 성취되는 법이 없습니다. 그가 없는 사이에 유다가 주도하여 요셉을 애굽에 종으로 팔아 버린 것입니다.

르우벤이 돌아와 구덩이에 이르러 본즉, 거기 요셉이 없는지라. 옷을 찢고, 아우들에게로 와서 이르되, “아이가 없도다! 나는 어디로 갈까!”

When Reuben returned to the pit and saw that Joseph was not in the pit. He tore his clothes. And returne to his brothers and said, “The boy is gone. And I, where shall I go!”

창세기 Genesis 37:29-30

이런 르우벤은 끝내 자기 아버지의 아내를 범하는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헤롯도 그런 생각일지 모릅니다. 헤로디아 몰래 결국 세례요한을 살려내 보내려는!

그런데 이것 보십시오. 르우벤 때처럼, 이번에도 일은 그렇게 마음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헤롯이 실시한 투옥이 헤로디아의 살인행위에 빌미를 제공했습니다. 이 또한 악한 자로서, 그의 악한 계획은 연속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허락하시겠습니까? 이런 점에서 헤롯은 결국 헤로디아의 공범자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조금만 더 헤롯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헤롯은 자기가 죽인 세례요한에 대하여 깊은 영적 심리적 괴로움이 있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그의 말은 모두 옳은 말이거든요!

예수님의 소문을 듣자 그는 곧 그 세례요한이 죽었다가 살아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종류의 정신적 착란(mental confusion)에 대하여 들어보셨습니까? 자기가 죽였지만 그는 정말 죽지 않은 것이 아니라는! 이런 경우 누가 이겼습니까? 죽인 사람? 혹은 죽은 사람?

루마니아(Romania)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 게오르규(Constantin Virgil Gheorghiu, 1916-1992)<25> (The 25th Hour, 1949)를 썼지요. 그가 쓴 다른 소설이 <키랄레싸의 학살> (The Death of Kyralessa, 1966)입니다. 사람들은 어떤 정의로운 사람 보고밀을 죽였는데, 사람들은 그가 죽지 않고 살아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손에 피를 묻힌 자의 착란현상(confusion)입니다.

보십시오. 예수님에 대하여 다른 종류의 착란도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께서 엘리야”(Elijah)라고 했습니다. 죽지 않고 이 세상을 떠난 엘리야가 돌아왔다는 생각입니다. 이런 착란(confusion)은 그래도 신빙성이 있습니다. 말라기서(Malachi)에 바로 그 엘리야가 돌아온다는 예언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하필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엘리야라는 것은 착란에 불과합니다. 성경 어디서도 메시야께서 엘리야와 동일인물로 묘사된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말라기가 선포한 그 엘리야는 메시야의 길을 준비하기 위여 오는 것이지, 메시야 자체는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예언자”(prophet)라고 했습니다. 구약의 예언자들 중 하나가 지금 내려온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도 헤롯과 비슷한 것이, 엘리야를 제외한 모든 예언자들은 죽었습니다. 그 죽은 자가 살아났다는 것은, 그런 생각도 놀랍기는 하지만, 아직 하나님의 뜻에 큰 거리가 있습니다. 그들이 죽은 예언자가 살아났다고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행하시는 이 새로운 일을 맞이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과거의 어떤 때가 지금 재현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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