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12

금문교회 주일예배

조은석 목사

 

묵상말씀: 요한복음 1:1-12

 

 

하나님은 빛이시라

요한11:1-10

 

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2. 이 생명이 나타내신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5.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라.

6.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7.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8.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10.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요한복음 기자 요한이 요한1-3서를 기록했습니다. 물론 요한계시록도 기록했습니다. 소위 요한문서의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입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도, 그 주제도 하니님은 빛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것입니다. “사랑,” 이 두 가지는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로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빛이시라면, 빛이 온 세상에 완전하게 드러나듯이, 하나님도 드러나십니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만큼 분명하게, 뚜렷하게, 확실하게.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요한11:1-2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빛이신 그 생명의 말씀. 이에 관하여 말합니다.

 

우리가 들었고, 눈으로 보았고,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졌습니다.

 

우리는 초대교회입니다. 초대교회가 듣고, 보고, 자세히 보고, 그들의 손으로 만진 바로 그 생명의 말씀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내 보이신 하나님의 빛입니다.

 

이런 점에서 초대교회는 증인들의 공동체입니다. 의심할 바 없는 확증을 가진 자들이 모인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 증인들의 정체와 그 역할이 문제가 아니라, 그들에게 그토록 분명하게 밝혀 보여주신 하나님의 계시가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교회에게 분명하게 드러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증인들에게 달린 문제가 아니라 증인으로 부르시고 증거 하게 하신 하나님께 달린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셨습니다. 가장 분명하게, 가장 확실하게, 가장 뚜렷하여, 누구도 의심할 수 없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임마누엘 하심으로써! 예수님의 모든 사역과, 십자가와 부활로써!

 

이 생명이 나타내신바 된지라.

 

생명은 생명 자체가 능력이 있습니다. 스스로 드러내시는 능력입니다. “여호와하나님게서 모세에게 당신을 계시하신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당신 스스로를 드러내셨습니다.

 

에고 에이미!

I am!

 

순간을 살아가는 사람, 죽을 인생”(mortals)이 어떻게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를 봅니까? 어떻게 그 영원”(Eternality)을 접촉(contact) 합니까? 예로부터 그것은 예외 없이 죽음을 불러왔습니다. 발화! 섬광! 섬뜩! 그런 한 순간으로만 존재했다가 사라지는 그 허무함이 그 열매여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 죄인이 그 거룩하신 이를 보고, 듣고, 느끼고, 자세히 볼 수 있었다는 말입니까?

 

여기는 비밀이 있습니다. “그분의 허락하심입니다. 그분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사랑이 되는 비밀입니다.

 

그곳은 빛과 사랑이 언제나 넘치옵니다.

찬송가 491장 중에서

 

빛이 사랑이 아니라면 그것은 심판일 것입니다. 어둠에 대한 심판 말입니다. 어떤 어둠이 빛 가운데 설 수 있겠습니까? 죄인으로 태어나, 죄에 익숙하며, 죄를 물 마시듯이, 빵 먹듯이 마시고 살아온 인생이 어떻게 그 빛으로 나아가며, 그 빛을 이해하며, 그 빛의 길로 갈 수 있습니까? 그것은 부르심 받아야 가능한 일이며, 붙들림으로써만 열리는 길입니다.

 

세상 일로 분주하던 우리를, 죄악에서 더 큰 기쁨을 발견하던 죽을 수밖에 없던 인생을, 그 거짓과 그 죽음의 길에서 해방하셔서, 진리와 생명의 길로 나아갈 수 있게 하신 것은 온전한 은혜입니다. “신학Theology, 하나님 공부입니다. 그 고귀한 은혜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모든 성도들들을 이끌어 주신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찬양을 받으셔야 합니다.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그 영원한 생명을 본 우리가, 이제 그 증언자의 길로 나섰습니다.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노라.

For we cannot help speaking about what we have seen and heard.

사도행전 Acts 4:20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친 이후 베드로와 요한이 공회 앞에 서서 선포한 말입니다. 바로 이 요한이 오늘 본문을 기록한 그 요한입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요한11:3

 

이제 밝힙니다. 왜 우리가 보고 들은 바, 그 빛 되신 하나님을 증거하는가? 그것은 사귐때문입니다. 무슨 사귐입니까? “성도의 교제입니다.

 

성도가 교통하는 것과

 

사도신경 중에 우리가 고백하는 한 대목입니다. 성도는 교제해야 합니다. 소통해야 합니다. 서로 받은 은혜를 나누어야 하고, 격려해 주어야 하며, 또 가르치고 생각나게 해 주어야 힙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교제의 배경에는 성령님께서 계십니다. “성령님바람,” “으로도 번역이 가능한 루아크입니다. 소통이 아니라면 존재를 결코 느낄 수 없습니다. 바람이 여기까지 왔다가 멈춘다면 바람은 누구도 느낄 수 없습니다. 숨이 들어가고 나오지 않는다면 그는 죽은 사람입니다. 이런 점에서 의 소통은 성령님의 존재방식입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을 성령행전으로 이해하며, 성령충만한 사도들이 증인의 사명을 가지고 땅 끝까지 달려가는 것입니다. 성령충만 받은 사람은 누구나 사귐을 위해 일합니다. 사귐이란, 기왕에 친구 된 이들과 교제를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귐이란 원수 되었던 자들과 화해하여 사귀어가는 새로운 일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전도는 전혀 알지 못하던 이들을 방문하여, 그들과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친구를 삼아가는 모든 과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그렇습니다. 성령님의 감화감동으로써 이루어지는 성도들의 사귐에는 아버지 하나님과 그 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누리는 사귐입니다. 기억하십니까? 노아의 홍수 때 사람들은 서로 먹고 마시고 시집 가고 장가 들면서 하나님을 소외시켜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설 자리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거기서 하나님의 분노가 나타났습니다. 우리는 모든 일에 하나님을 인정해 드려야 하고, 범사에 그분께 감사해야 마땅합니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In all your ways acknowledge him,

and he will make your paths straight.

잠언 Proverbs 3:6

 

범사에 감사하라.

Give thanks in all circumstances.

데살로니가전서 5:16

 

코람 데오

Coram Deo

 

이른 라틴어 코람(coram)과 데오(Deo)를 합친 말입니다. In the presence of God. 그렇게 번역할 수 있습니다. 영성 높았던 우리 믿음의 선조들은 언제나 코람 데오의 의식 속에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랬고, 욥이 그랬으며, 다윗이 그랬습니다.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사도행전 27:25

 

풍랑 속에서 일어난 바울이 외친 이 말 중에, 그는 그 거친 파도를 맞이하면서도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있다는 분명하고 뚜렷하며 놀랍고 두려운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콜롬비아 정글을 걷거나, 중동의 거친 사막을 지나거나, 아프리카 산길을 걷는 선교사들의 마음속에 이런 확신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모든 복음 전도자에게 물어보십시오. 그들의 심장은 이렇게 요동치고 있습니다.

 

코람 데오!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요한11:4

 

요한이 이 사실을 적는 까닭이 드러납니다. 그의 기쁨이 넘쳐 흘러나서, “충만한 분량에 이르게 되기를 원하는 까닭입니다. 기쁨은 샘물 같습니다. 막을 도리가 없습니다. 흘러넘치는 기쁨으로써 이 글을 쓰는 것입니다. 이 글쓰기는 어떤 의무가 아닙니다.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라.

요한11:5

 

그러면 묻습니다. 증인으로서 요한은 무슨 메시지를 가지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빛이시라는 것입니다. 이전에도 밝혔지만, 지금도 외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빛이시다. 그래서 그분께는 어둠이 조금도 없다.

 

흔히 사람들은 전쟁이나 기근, 동족상잔이나 수많은 전쟁, 자연재해 등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계신가?”을 묻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시다면 이런 악이 어째서 존재하는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악하신가? 그분께 어둠이 존재하는가?

 

아닙니다. 세상의 모든 악은 하나님의 손에서 나지를 않습니다. 하나님은 선(good)하십니다.

 

God is good.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시다 함은, 창조 때 매일 좋았더라!” 라고 묘사되었던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선하신 하나님께서 선한 세상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이후 6-10절은 다섯 개의 가정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 가정문들을 이렇게 늘어놓아 결합함으로써 하나님의 속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아울러 하나님 앞에 선 우리 자신은 어떤 존재들인지 숨기지 않습니다.

 

1가정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첫째로,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귄다 하고 어둠에 행한다 합시다. 그러면 우리는 거짓말을 하는 자요, 진리를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자는 결코 어둠에 행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빛 가운데 계십니다.

 

2가정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한11:6-7

 

그처럼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한다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입니다.

3가정

8.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요한11:8

 

그러나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스스로 속이는 일입니다.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않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죄인 아닙니까?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For all have sinned and fall short of the glory of God.

로마서 3:23

 

누가 스스로 죄가 없다고 주장하겠습니까? 죄인 아니고? 용서 받은 죄인은 나는 죄인이라고 고백합니다. 용서 받지 못한 죄인은 내 죄가 없다!” 주장합니다. 거짓말입니다.

 

4가정

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한11:9

 

그러나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한다면? 그분께서는 미쁘시고(faithful) 의로우십니다(righteous). 그래서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십니다.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Come to me, all you who are weary and burdened,

and I will give you rest.

마태복음 11:28

 

5가정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요한11:10

 

누구든지 나는 죄를 지은 일이 없다!” 한다면, 그는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이로 만드는 행위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인생은 모두 죄인이라!” 선포하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I reared children and brought the up, but they have rebelled against me.

The ox knows his master, the donkey his owner's manger,

but Israel does not know.

이사야 1:2-3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빛으로 오신 것은 어둠에 속한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이 그 목적입니다. 창조 때 그렇게 하셨고, 출애굽 때 그렇게 하셨습니다. 출애굽의 컨텍스트에서 하나님의 새 창조가 빛났습니다.

 

물론 어둠에 끝까지 속하던 바로와 애굽은 멸망당했습니다. 그러나 이것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은 결국 애굽도 구원을 얻게 하시려는 목적이었습니다.

 

그 날에 이스라엘이 애굽 및 앗수르와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 주시며 이르시되,

내 백성 애굽이여, 내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지어다, 하실 것임이라.

In that day Israel will be the third, along with Egypt and Assyria, a blessing on the earth. The Lord Almighty will bless them, saying, "Blessed be Egypt my people, Assyria my handiwork, and Israel my inheritance."

이사야 19:24-25

 

요한은 빛 되신 하나님을 선포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밧모섬에서 순교하기까지 그는 그 증인의 삶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보고 들은 것을 증거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빛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심판하여 멸망에 이르게 하심이 아닙니다. 감싸고 용서하고 구원하시는 것이 그 목적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볍게 여겨선 안 됩니다. 그 사랑을 멸시해서도 안 됩니다.

 

사랑한다 하면서 어둠과 빛을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자녀를 사랑한다면 그의 정직과 진실을 일깨우고, 그의 거짓과 죄악을 관용해서는 안 됩니다. 이처럼 빛 되신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인생에게 임하셨지만, 결코 적당히 얼버무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엄격하시고(strict) 분명하셨습니다(clear). 질투하셨고(jealous) 분노하셨습니다(angry).

 

그러나 때리시고 어루만지시는 참 사랑이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하나님께서 치셨다면, 그건 도로 감싸실 일입니다.

 

야곱의 족속아,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거하자.

Come, O house of Jacob,

let us walk in the light of the Lord.

이사야 2:5

 

빛에 거하는 길은 말씀에 서는 것입니다.

 

빛은 진리입니다.

The light is the truth.

Verum lumen.

 

진리는 말씀입니다.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이니이다.

Your word is truth.

요한복음 17:17

 

진리말씀으로 살아가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But his delight is in the law of the Lord,

and on his law he meditates day and night.

시편 1:2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어둠의 일을 벗어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합니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And do this, understanding the present time. The hour has come for you to wake up from your slumber, because our salvation is nearer now than when we first believed. The night is nearly over; the day is almost here. So let us put aside the deeds of darkness and put on the armor of light. Let us behave decently, as in the daytime, not in orgies and drunkenness, not in sexual immorality and debauchery, not in dissension and jealousy. Rather, clothe yoursleves with the Lord Jesus Christ, and do not think about how to gratify the desires of the sinful nature.

로마서 13:11-14

 

회개합시다. 죄인임을 인정하고, 그 죄를 고백합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나아갑시다. 하나님과 사귐이 있도록 늘 기도합시다. 십자가의 은혜로 나아갑시다.

 

함께 기도드리겠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게 하옵소서. 세상의 기쁨을 버리고 말씀의 즐거움에 사로잡히게 하옵소서. 세상의 친구들을 버리고 말씀증거의 참된 사귐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하나님과 사귐이 있으며, 참된 사랑으로 살게 하옵소서. 모든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