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722

금문교회 주일예배

조은석 목사

 

아하시야

열왕기하 1:1-18

 

1. 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이 이스라엘을 배반하였더라.

2.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 있는 그의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매, 사자를 보내며 그들이게 이르되, “가서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이 병이 낫겠나 물어보라,” 하니라.

3. 여호와의 사자가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이르되, “너는 일어나 올라가서, 사마리아 왕의 사자를 만나, 그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

4.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엘리야가 이에 가니라.

5. 사자들이 왕에게 돌아오니, 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돌아왔느냐?” 하니,

6. 그들이 말하되, “한 사람이 올라와서 우리를 만나 이르되, ‘너희는 너희를 보낸 왕에게로 돌아가서 그에게 고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네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려고 보내느냐? 그러므로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하더이다.”

7. 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올라와서 너희를 만나 이 말을 너희에게 한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더냐?”

8. 그들이 그에게 대답하되, “그는 털이 많은 사람인데, 허리에 가죽 띠를 띠었더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그는 디셉 사람 엘리야로다.”

9. 이에 오십부장과 그의 군사 오십 명을 엘리야에게 보내매, 그가 엘리야에게로 올라가 본즉, 산 꼭대기에 앉아 있는지라. 그가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왕의 말씀이 내려오라하셨나이다.”

10. 엘리야가 오십부장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너와 너의 오십 명을 사를지로다,” 하매, 불이 곧 하늘에서 내려와 그와 그의 군사 오십 명을 살랐더라.

11. 왕이 다시 다른 오십 부장과 그의 군사 오십 명을 엘리야에게 보내니, 그가 엘리야에게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왕의 말씀이, ‘속히 내려오라하셨나이다,” 하니,

12. 엘리야가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너와 너의 오십 명을 사를지로다,” 하매, 하나님의 불이 곧 하늘에서 내려와 그와 그의 군사 오십 명을 살랐더라.

13. 왕이 세 번째 오십 부장과 그의 군사 오십 명을 보낸지라. 셋째 오십부장이 올라가서 엘리야에 이르러, 그의 무릎을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원하건대 나의 생명과 당신의 종인 이 오십 명의 생명을 당신은 귀히 보소서.

14.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전번의 오십부장 둘과 그의 군사 오십 명을 불살랐거니와, 나의 생명을 당신은 귀히 보소서,” 하매

15. 여호와의 사자가 엘리야에게 이를되, “너는 그를 두려워하지 말고, 함께 내려가라,” 하신지라. 엘리야가 곧 일어나 그와 함께 내려와 왕에게 이르러

16. 말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사자를 보내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려 하니, 이스라엘에 그의 말을 물을 만한 하나님이 안 계심이냐? 그러므로 네가 그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하니라.

17. 왕이 엘리야가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죽고, 그가 아들이 없으므로 여호람이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니, 유다 왕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의 둘째 해였더라.

18. 아하시야가 행한 그 남은 사적은 모두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오늘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왜 어떻게 죽었는가, 그 이야기입니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인물 이야기를 한 장 가득 실은 동기가 궁금합니다.

 

세 차례 반복해서 나온 하나님의 말씀으로 요약합니다.

 

이스라엘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

그런데 살고 죽는 문제를 죽은 우상 신에 불과한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는 것은 옳지 않다.

 

그의 아버지 아합과, 그의 어머니 이세벨의 뒤를 따라 우상숭배 하는 아하시야로서는 하나님이 아니라 바알세붑에게 묻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럽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오늘 본문에 드러난 하나님의 뜻은 이렇습니다: 우상숭배 자체는 죽음일 뿐이다. 그가 병들었기 때문에, 그 병으로 죽기도 하지만, 설령 건강하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그를 쳐서 죽이신다.

 

그의 아버지 아합이 어떻게 전장에서 죽었는지(왕상 22:29-40), 그의 어머니 이세벨이 어떻게 바닥에 던져져 죽임을 당했는지 (왕하 9:30-37), 그것을 알면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게 보입니다.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 있는 그의 집 다락 난간에서 떨어졌습니다. 병이 들었습니다. 사자들을 보냈습니다. “이 병이 낫겠나, 물으라!” 그가 보낸 것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이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엘리야에게 말을 했습니다. “너는 일어나 올라가라. 사마리아 왕의 사자들을 만나라. 그들에게 말하라: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

 

참고로, 아하시야가 보낸 사자들은 복수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자는 단수입니다. 갈멜산 때 대결처럼, 하나님 쪽이 소수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숫자가 아닙니다. 참과 거짓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엘리야에게 전하라고 준 메시지는, 아하시아갸 반드시 죽으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여호와 하나님을 찾지 않고 우상을 찾았다는 데 있었습니다.

 

우상을 만들어 섬기지 말라.

 

십계명 제2계명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계명은 생명과 관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 생명이 있습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But whose delight is in the law of the Lord, and who meditates on his law day and night.

시편 Psalm 1:2

 

주의 말씀대로 나를 붙들어 살게 하시고, 내 소망이 부끄럽지 않게 하소서.

Sustain me, my God, according to your promise, and I will live. Do not let my hopes be dashed.

시편 Psalm 119:116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God. He was with God in the beginning. Through him all things were made; without him nothing was made that has been made. In him was life, and that life was the light of all mankind.

요한복음 John 1:1-4

 

세상 이치가 그러한데, 아하시야는 그의 사자들을 바알세붑에게 보냈습니다. 죽은 우상이 산 자 인간의 살고 죽음을 어찌 알겠습니까?

 

오늘 우상이 무엇입니까? “물질입니다. 철학사를 한 눈으로 보면, 헤겔에게 두 제자가 있었습니다. 키에르케고르와 마르크스입니다. 둘 다 실존주의를 열었습니다. 키에르케고르는 신본주의 실존이며, 마르크스는 인본주의 실존입니다. 인본, 곧 인간 중심인데, 사람이 인간을 중심으로 두면 그 물질에 집착하는 법입니다. 물질이 인간을 결정한다는 주장입니다.

 

사람이 물질을 주장한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천지창조 하시면서 인간에게 허락하신 축복입니다. 그런데 물질이 사람을 주장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정반대로, 뒤집은 것입니다.

 

인본주의와 물질주의. 이것은 오늘 세태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이론입니다. 현대문화가 모두 자기중심의 문화입니다. 인간이 자기를 알고, 자기를 세상에 과시하며, 삶의 가치와 성취감을 누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도구가 물질입니다.

 

학교 이야기를 해 봅시다. 좋은 학교를 진학하려는 그 무서운 집념이 어디서 나옵니까? 거기서 진정한 삶의 가치를 배우고, 훌륭한 인격으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까? 그렇다면 소위 명문대학들은 그런 진정한 가치를 가르치고 휼륭한 인간으로 길러내는 학교입니까?

 

그것이 아닌 것은 우리 모두가 다 압니다. 좋은 대학을 나오면 직장을 잘 잡을 수 있습니다. 좋은 직장이란 연봉이 높은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모든 대학이 직업학교에 지나지 않습니다. 슬픈 이야기입니다.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물질중심주의를 벗어나고, 신본주의 철학을 지녀야 합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세상을 보아야지요.

 

사람들은 전쟁이나 각종 사회변동을 통해서 무엇을 봅니까? 영적으로 예민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읽습니다. 성경을 읽다가 급변하는 세상을 볼 때, 세상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뵙습니다. 그러나 물질주의에 붙들린 자들은 돈 벌 궁리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사회 격변기에 오히려 더 많은 돈을 법니다. 사람들은 죽고 굶주리고 아우성인데, 돈벌이 궁리에 바쁜 자들이 소위 엘리트라면, 세상의 미래가 어디 있습니까?

 

참고로 아하시야가 보냈던 바알세붑의 정체를 알아보겠습니다. “바알이라는 뜻은 를 말합니다. “세붑파리들입니다. 에그론의 불레셋 사람의 신이었습니다. 마태복음 12:24에서처럼 바알세불이라고도 읽기도 합니다. 같은 신입니다.

 

바알세불, 파리대왕1954년에 출간한 소설책 이름이기도 합니다. 윌리엄 골딩(William Golding)Lord of the Flies. 이 책으로 그는 1983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참고로, 한 해 전인 1982년에는 콜롬비아 출신 소설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Gabriel Garcia Marquez)가 노벨문학상 수상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배경입니다. 전쟁을 피하던 영국 소년들이 비행기 추락 사고를 당합니다. 무인도에 머물던 그들의 살아가던 이야기입니다. 초반에는 13세 랄프(Ralph)의 지휘를 받아 어른들이 세운 질서를 따라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후반에는 바알세불의 화신으로 표상된 잭(Jack)의 지도력에 따라 모두 야만인으로 전락해 버립니다. 결국 서로 죽이고 고문합니다.

 

아이들 이야기지만, 이들을 통해 타락한 어른들의 모습을 보여준 작품입니다. 2차 세계대전에서 보인 참상을 다른 각도에서 묘사한 것입니다. 1차 세계대전과 마찬가지로 2차 세계대전의 배경도 민족주의의 탈을 쓴 인본주의와 물질주의였습니다.

 

인간이 오늘처럼 인본주의와 물질주의의 극으로 치닫는다면, 결국 새로운 전쟁이 일어날 것입니다. 소위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에도, 지금 세계 곳곳은 끊임없는 전쟁의 온 땅에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길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누구신지 알아야 합니다. 또한 인간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은 서로 물고 먹는 파리 떼에 지나지 않은 것입니다. 이런 소망 없는 인간을 구원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e and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al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요한복음 3:16

 

아하시야가 그 죽고 사는 위기에서 오히려 하나님을 만났더라면 참 좋았을 것입니다.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사람의 길이 자신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

Lord, I know that people's lives are not their own; it is n ot for them to direct their steps.

예레미야 Jeremiah 10:23

 

오늘 본문에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아하시야가 엘리야를 알아 보았습니다. 자기의 사자들이 되돌아와서, 그 이유를 묻자 이렇게 생긴 사람이 길을 막고, “네가 죽으리라!” 했다고 전했습니다. 그는 털이 많은 사람인데(사실은 털옷을 입은 사람이었습니다), 허리에 가죽띠를 띠었습니다. 그 스타일은 엘리야 스타일이었습니다. 아하시야가 그것을 알아보았습니다.

 

참고로, 이런 엘리야 스타일을 그대로 따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세례요한입니다. 실제로 그는 구약에서 다시 오리라 한 엘리야”(이사야 40, 말라기 4) 바로 그 사람이었습니다.

 

아하시야는 엘리야를 부르라고 사람을 보냈습니다. 오십부장과 그의 군사 오십 명을 보냈습니다. 모두 51명입니다.

 

그러나 엘리야가 그 오십부장에게 말합니다.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너와 너의 오십 명을 사를지로다.” 그러자 불이 곧 내려와 살랐습니다.

 

이렇게 두 차례를 반복했습니다. 우리는 열왕기상 18장에서 갈멜산 대결을 읽었습니다. 거기서 엘리야는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시며, 자기가 하나님의 사람이며,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임을 드러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불이 하늘에서 내렸습니다.

 

오늘 두 차례 내린 불도 그런 맥락이었습니다. 아하시야가 그렇게 우습게 여겼던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불을 내리는 분이심을 증거한 것입니다.

 

세 번째 오십부장은 달랐습니다. 그는 엘리야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 모습은, 그 오십부장이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고, 엘리야가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을 인정한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그는 앞선 두 오십부장들과 달랐습니다. 그의 주인이며 이스라엘의 왕인 아하시야와도 달랐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이스라엘 백성들과도 달랐습니다.

 

바로 여기서 그의 생명이 구원 받는 사건이 생겼습니다. 그 뿐 아니라, 그의 부하 오십 명이 모두 생명을 건졌습니다. 앞선 102명의 경우는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를 통하여 바른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심과, 엘리야가 하나님의 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토록 잔인하신가? 왜 그 죄 없는(?) 102명을 죽이셨나? 하늘의 불로써? 이런 생각에 사로잡히면 성경읽기가 답답해집니다. 이런 질문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좋은 질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의심하게 만들고, 신앙을 부서뜨리는 나쁜 질문입니다.

 

누구라도 예외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는 일의 소중함을 깨닫는 자는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주의 종을 함부로 여기는 자는, 그 생명을 담보할 길이 없습니다.

 

엘리야가 아하시야 왕에게 이르렀습니다. 그는 처음 하나님의 사자를 통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말씀 그대로(왕하 1:3) 전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사자를 보내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려 하니, 이스라엘에 그의 말을 물을 만한 하나님이 안 계심이냐? 그러므로 네가 그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열왕기하 1:16

 

본문 17절은, 그가 죽었다고 기록합니다. “엘리야가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사람은 아하시야나 누구를 막론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 생사가 갈립니다.

 

아하시야의 행적은 모두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었다고 본문 18, 마지막절이 기록했습니다. 그의 행적이 어땠는지, 더 알고자 한다면 그 책을 참고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그 책은 오늘까지 전해 내려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성경은 꼭 필요한 말씀만 기록했습니다. 오늘 말씀은, 아하시야가 하나님 대신 우상 바알세붑을 찾은 자였다는 것,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를 치셨다는 것, 그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하시야 이야기는 바로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살고 죽는 문제를 하나님께가 아니라 우상에게 가져간다면, 우리는 죽고 말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섬기는 우상의 극명한 예가 물질입니다. 2018년 샌프란시스코는 그런 세상입니다. 올해 완공하여 위용을 드러낸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 건물이 Salesforce.com입니다. 영적 가치가 추락하고 물질가치가 급상승하는 지역입니다. 교회당이 문을 닫고, 그 자리에 상업건물이 들어서고 있습니다. 교회가 예배 드릴 공간이 없습니다. 우리교회 건물을 빌어 예배드리는 교회 면면을 보시면 압니다. 우리교회는 그런 점에서 피난처 역할을 맡은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죽음을 무서워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로 나와야 합니다. 교회로 나와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성경책을 읽고 또 읽어야 합니다. 모든 생명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기 때문입니다.

 

빛이 있으라!

창세기 1:3

 

그 말씀대로 세상에 빛이 생겨났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빛을 만드신 것입니다. 세상 만물은 말씀으로 지으셨습니다. 그런데 그 현상에 불과한 만상에 골몰하며, 그 현상을 일으킨 말씀을 도외시하는 것, 그것이 지혜로운 자가 할 일입니까?

 

아하시야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감사하게도 우리에게 성경책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날마다 묵상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온라인 성경에 늘 접속하여 말씀을 듣고 읽으시기 바랍니다. 비행기를 탈 때면, 이 기회에 시편 한 권 읽는다, 그런 목표를 세우시기 바랍니다. 조깅할 때도, 말씀 묵상의 기회로 삼으시기를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Then the Lord replied: Write down the revelation and make it plain on tablets so that a herald may run with it.

하박국 2:2

 

책으로 된 성경을 많이 읽으면, 운전하면서도 그림처럼 그 페이지를 넘길 수 있습니다. 말씀을 그림처럼 묵상할 수 있다면, 그는 어떤 위기에서도 말씀의 능력과 말씀의 지혜를 얻습니다. 난간에서 떨어졌어도, 그는 고침을 받습니다.

 

바울 때 어떤 청년이 죽었지만 살아났지 않았습니까?

 

베드로는 현상을 극복하고, 오히려 말씀에 의지하여그물을 던지지 않았습니까?

 

 

기도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어떤 순간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에 의지하여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