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85

금문교회 주일예배

조은석 목사

 

북이스라엘-모압 전쟁

열왕기하 3:1-27

 

1. 유다의 여호사밧 왕 열여덟째 해에 아합의 아들 여호람이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을 열 두 해 동안 다스리니라.

2.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그의 부모와 같이 하지는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그의 아버지가 만든 바알의 주상을 없이하였음이라.

3. 그러나 그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를 따라 행하고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4. 모압 왕 메사는 양을 치는 자라. 새끼 양 삼만 마리의 털과 숫양 십만 마리의 털을 이스라엘 왕에게 바치더니,

5. 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 왕이 이스라엘 왕을 배반한지라.

6. 그 때에 여호람 왕이 사마리아에서 나가 온 이스라엘을 둘러보고

7. 또 가서 유다의 왕 여호사밧에게 사신을 보내 이르되, “모압 왕이 나를 배반하였으니, 당신은 나와 함께 가서 모압을 치시겠느냐?” 하니, 그가 이르되, “내가 올라가리이다. 나는 당신과 같고,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같고, 내 말들도 당신의 말들과 같으니이다,” 하는지라.

8. 여호람이 이르되, “우리가 어느 길로 올라가리이까?” 하니, 그가 대답하되, “에돔 광야 길로니이다,” 하니라.

9. 이스라엘 왕과 유다 왕과 에돔 왕이 가더니, 길을 둘러 간 지 칠일에, 군사와 따라가는 가축을 먹일 물이 없는지라.

10. 이스라엘 왕이 이르되, “슬프다. 여호와께서 이 세 왕을 불러 모압의 손에 넘기려 하시는도다,” 하니,

11. 여호사밧이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께 물을 만한 선지자가 없느냐?” 하는지라. 이스라엘 왕의 신하들 중의 한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전에 엘리야의 손에 물을 붓던 사밧의 아들 엘리사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12. 엘리사밧이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있도다,” 하는지라. 이에 이스라엘 왕과 여호사밧과 에돔 왕이 그에게로 내려가니라.

13.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의 부친의 선지자들과 당신의 모친의 선지자들에게로 가소서,” 하니, 이스라엘 왕이 그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여호와께서 이 세 왕을 불러 모아 모압의 손에 넘기려 하시나이다,” 하니라.

14. 엘리사가 이르되, “내가 섬기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만일 유다의 왕 여호사밧의 얼굴을 봄이 아니면 그 앞에서 당신을 향하지도 아니하고 보지도 아니하였으리이다.

15. 이제 내게로 거문고 탈 자를 불러오소서,” 하니라. 거문고 타는 자가 거문고를 탈 때에 여호와의 손이 엘리사 위에 있더니,

16. 그가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이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 하셨나이다.

17.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너희가 바람도 보지 못하고, 비도 보지 못하되, 이 골짜기에 물이 가득하여 너희와 너희 가축과 짐승이 마시리라,’ 하셨나이다.

18. 이것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작은 일이라. 여호와께서 모압 사람도 당신의 손에 넘기시리니,

19. 당신들이 모든 견고한 성읍과 모든 아름다운 성읍을 치고, 모든 좋은 나무를 베고, 모든 샘을 메우고, 돌로 모든 좋은 밭을 헐리이다,” 하더니,

20. 아침이 되어 소제 드릴 때에, 물이 에돔 쪽에서부터 흘러와 그 땅에 가득하였더라.

21. 모압의 모든 사람은 왕들이 올라와서 자기를 치려 한다 함을 듣고, 갑옷 입을 만한 자로부터 그 이상이 다 모여 그 경계에 서 있더라.

22. 아침에 모압 사람이 일찍이 일어나서 해가 물에 비치므로, 맞은편 물이 붉어 피와 같음을 보고,

23. 이르되, “이는 피라. 틀림없이 저 왕들이 싸워 서로 죽인 것이로다. 모압 사람들아, 이제 노략하러 가자,” 하고,

24. 이스라엘 진에 이르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일어나 모압 사람을 쳐서, 그들 앞에서 도망하게 하고, 그 지경에 들어가며, 모압 사람을 치고,

25. 그 성읍을 쳐서 헐고, 각기 돌을 던져, 모든 좋은 밭에 가득하게 하고, 모든 샘을 메우고, 모든 좋은 나무를 베고, 길하레셋의 돌들은 남기고, 물매꾼이 두루 다니며 치니라.

26. 모압 왕이 전세가 극렬하여 당하기 어려움을 보고, 칼 찬 군사 칠백 명을 거느리고 돌파하여 지나서, 에돔 왕에게로 가고자 하되, 가지 못하고

27. 이에 자기 왕위를 이어 왕이 될 맏아들을 데려와 성 위에서 번제를 드린지라. 이스라엘에게 크게 격노함이 임하매, 그들이 떠나, 각기 고국으로 돌아갔더라.

 

 

모압은 소국입니다. 에돔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북 이스라엘에게 조공을 바치던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이 북 이스라엘을 배반했습니다. 상대적으로 아합 때보다 북 이스라엘의 군사력이 약화되었던 까닭에, 새로운 왕을 얕잡아 본 것입니다.

 

북 이스라엘 왕은 여호람입니다. 성경은 그를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 왕으로 평가합니다. 그렇지만 그는 그의 부모들보다는 덜했다고 평가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의 아버지 아합이 만든 바알 주상을 제거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이스라엘의 원죄에 해당하는,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북 이스라엘이 모압을 치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는 북 이스라엘 수도 사마리아에서 나와 온 북 이스라엘을 둘러보았습니다. 아무래도 연합군을 결성해야 할 필요를 거기서 느낀 것 같습니다.

 

북 이스라엘의 왕 여호람은 사신을 보내 남 유다의 왕 여호사밧에게 말했습니다. “모압 왕이 나를 배반했습니다. 당신은 나와 함께 가서 모압을 치겠습니까?”

 

여호사밧이 여호람의 말에 동의했습니다. 앞서 열왕기상 22장에서 여호사밧이 여호람의 아버지 아합에게 한 말과 같습니다.

 

나는 당신과 같고,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같고, 내 말들도 당신의 말들과 같습니다.

왕상 22:4

 

내가 올라가겠습니다. 나는 당신과 같고,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같고, 내 말들도 당신의 말들과 같으니이다.

왕하 3:7

 

두 번째 추가된 것은 내가 올라겠다는 말입니다.

 

또한 여호사밧이 북 이스라엘 왕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신지 여쭈어 보라고 권면한 것도 같습니다. 아합 때는 미가야였다면, 아합의 아들 여호람 때는 엘리사입니다.

 

미가야 때는 아합의 패전과 그의 죽음이 예고되었다면, 엘리사 때는 아닙니다. 북 이스라엘의 승리입니다. 어쩌면 여호람이 비교적 그의 부모들과 달리 그리 악하지 않은 데서 하나님께서 배려 해 주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무엇이 어떻게 되는가 하는 현상 보다는, 일을 일이 되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뜻, 그것이 어떠한가를 살피는 것이 옳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그대로 이루어 주십니다.

 

여호람이 모압 치는 길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여호사밧이 에돔 광야 길을 제시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북 이스라엘, 남 유다, 그리고 에돔 이렇게 세 나라가 연합한 연합군이 형성되었습니다.

 

전쟁을 위해 행진하던 지 7일 되었습니다. 그런데 물이 다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북 이스라엘 왕이 탄식했습니다. “슬프다! 여호와께서 이 세 왕을 모아 모압의 손에 넘기시는구나!”

 

그 때였습니다. 여호사밧은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여기 여호와의 뜻을 물을만한 선지자가 있습니까?” 물었습니다.

 

그 때, 여호람의 신하 중 하나가 대답했습니다. “엘리야의 손에 물을 붓던 사밧의 아들 엘리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손에 물을 붓는다는 것은, 그의 시종이라는 뜻입니다.

 

여호사밧이 말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있다!” 적어도 여호사밧은 몇 가지 점에서 북 이스라엘 왕보다 뛰어났습니다. 첫째로, 전쟁이나 위기의 때에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한다는 것과, 둘째로, 바른 선지자에게 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합 때는 미가야에게 물었고, 여호람 때는 엘리사였습니다.

 

세 연합군 왕들이 엘리사를 만나러 내려갔습니다.

 

엘리사가 북 이스라엘 왕 여호람에게 말합니다. “내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당신의 부친의 선지자들과, 당신의 모친의 선지자들에게 가십시오.”

 

그러자 여호람이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우리 세 왕을 모압의 손에 넘기려고 하십니다.” 여기서 여호람이 분명히 그의 부모 세대보다 영적으로 깨끗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엘리사가 비꼬는 데도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여호사밧의 추천을 받아, 엘리사의 말을 들으려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습니다.

 

엘리사가 말합니다. “내가 섬기는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합니다. 여호사밧 왕이 아니었다면 당신을 볼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북 이스라엘 땅에 사는 예언자 엘리사였지만, 예언자로서 그는 북 이스라엘 사람으로 국한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오히려 남 왕국 왕 여호사밧을 고려했습니다.

 

그리고 엘리사가 말했습니다. “거문고 탈 자를 불러 오라고 요구했습니다. 물론 거문고는 한국 전통의 악기입니다. 이스라엘에 그런 악기가 있을 리가 없습니다. 우리 말 번역 때 그 단어를 고른 것입니다. “현악기의 일종입니다.

 

악사가 연주하는 동안, 하나님의 신이 엘리사에게 임했습니다. 이 현상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악기 종류는 알았지만, 음악 내용은 전혀 여기 기록에 없습니다. 연주자가 어떤 자세로 얼마동안 연주했는지, 그것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음악이 연주되는 동안 엘리사가 성령님에 감동되었다는 것뿐입니다.

 

그러면 오늘 이것을 우리가 어떻게 적용할 수 있습니까? 성령님께서는 음악이, 그것도 현악이 연주되는 동안에 역사하십니까? 칼 바르트는 모차르트를 좋아했습니다. 마틴 루터는 스스로가 음악가였습니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를 작사, 작곡했습니다. 알버트 슈바이처는 음악학 학위를 가지고 있었고, 오르간 연주에 능했습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요한 사바스첸 바흐의 음악을 좋아합니다. 실제로 바흐는 기독교인으로서, 창세기-출애굽기는 물론 이사야서 같은 책의 메시지를 음악으로 표현했습니다. 나는 신학교 때 바흐: 성경 해석가라는 3학점 수업을 들었습니다. 한 학기 내내 교수가 직접 연주하는 파이프 오르간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엘리사가 현악기 연주자를 요청하고, 현악기가 연주되는 동안 성령님에 감동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따른 것입니다. 일반화 시킬 수 있는 어떤 것도 없습니다. 엘리사 말고 다른 어떤 선지자가 음악을 요구한 적도 없습니다.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왕을 삼을 때, 사무엘의 한 말이 고대에서 음악-예언의 어떤 관계를 암시할 수 있습니다.

 

네가 그리로 가서 그 성읍으로 들어갈 때에 선지자의 무리가 산당에서부터 비파와 소고와 저와 수금을 앞세우고 예언하며 내려오는 것을 만날 것이요

As you approach the town, you will meet a procession of prophets, coming down from the high place with lyres, tambourines, flutes and harps being played before them, and they will be prophesying

사무엘상 10:5

 

물론 다윗의 경우, 각종 악기에 능한 연주자였습니다. 그는 시편의 대표 기자입니다. 그는 적어도 시편의 절반에 가까운 시를 기록하였고, 대부분은 특정 음악기호를 표기하여 연주법도 지정했습니다. 그리고 대개 므나체아크라는 합창 지휘자도 지정했습니다.

 

그러나 역시 다윗에게도 음악은 필수내용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결론은, 아무래도, 그 때 당시에 하나님께서 엘리사에게 악기 연주자를 동원하여 음악을 연주하게 하신 어떤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땅에 글씨를 쓰셨던 주님 이야기처럼, 우리는 그 배경을 정확하게 모릅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아실 것입니다.

 

우리가 열왕기상하를 강해하면서, 내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 주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지금 엘리야의 후계자로서 엘리사를 선택하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그에게 지금 3개국 연합군의 진로에 대하여 계시 말씀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음악이, 그것도 현악기가 어떤 중요한 변수를 제공하고 있다는 가설은 마땅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 그것을 묵묵히 지켜볼 따름인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우리가 파악할 수 있는 어떤 원칙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거기 매이셔야 할 그 어떤 원리도 성경은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종 엘리사가 그것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엘리사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너희가 바람도 보지 못하고, 비도 보지 못한다. 그러나 이 골짜기에 물이 가득하여 너희와 너희 가축과 짐승이 마시리라!”

 

비바람이 없는데, 물이 이 골짜기를 메울 것이다. 모두 먹고 남을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7일 동안 행군하다가, 물이 다 떨어져, 이제는 죽음만 남은 것 같던 연합군에게 이것은 희소식이었습니다.

 

이 물줄기는 단지 연합군의 갈증만 해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물줄기는 모압이 착각하여 긴장을 풀고 달려들게 한 결정적인 속임수였습니다. 인간 누구도 그런 아이디어를 내거나, 그런 작업을 하지 않았습니다. 온전히 하나님의 뜻이었고, 하나님께서 친히 모압을 착각하게 하셨습니다.

 

물이 없어 스스로 멸망하게 된 연합군을 넘치는 강물로써 살려내셨고, 모압을 이 강물 효과로 무장해제시켜 버리신, 그래서 그들이 전멸하게 만드신 이 전쟁은 여호와 하나님의 전쟁이었습니다. 모든 전쟁은 여호와께 속했다, 그런 고백이 분명히 들어맞는 대목입니다.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의 손에 넘기시리라.

All those gathered here will know that it is not by sword or spear that the Lord saves; for the battle is the Lord's, and he will give all of you into our hands.

사무엘상 17:47

 

아침이었습니다. 소제 드릴 시각이었습니다. 물이 에돔 쪽에서 흘러와 그 땅에 가득했습니다.

 

모압 사람들이 전쟁 준비하러 모두 모인 때였습니다. 아침 이른 시각, 솟아오르는 태양이 물에 비쳤습니다. 그러자 물이 피처럼 보였습니다. 모압 사람들이 착각한 것입니다. 서로 싸워서 피를 흘린 것으로!

 

어째서 이런 착각을 했을까요? 우선 비나 바람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리고 물이 솟아나는 우물이 있는 곳도 아닙니다. 더욱이 솟아오르는 태양이 비쳐 붉은 색이 완연했습니다. 그렇다면 물이 아니고 피다!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더욱이 에돔은 붉은 색흙으로 유명합니다. 에돔이라는 말이나 에서라는 말이 모두 붉다는 어근을 가지고 있습니다. 솟아오르는 해도 붉고, 흙도 붉으니, 피라는 확신을 더하고 더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모압인들의 눈을 현혹시킨 것도 있습니다. 그것이 더 큰 이유였습니다. 그들은 두 번 더 생각하지도 않고 저들의 확신 그대로 행동했습니다. 전쟁터로 달려가는 긴장을 모두 풀고, 다 이긴 전쟁터에서 전리품 수확하는 자세가 되었습니다. 이런 자들은 공격 당하면 오합지졸이 되고 맙니다.

 

북 이스라엘 군대가 앞장서서 모압의 성읍들을 쳐서 헐었습니다. 그리고 돌을 던져 좋은 밭을 못쓰게 만들었습니다. 샘을 모두 메웠습니다. 그리고 좋은 나무를 베어 버렸습니다. 길하레셋의 돌들은 남겼습니다.

 

물매꾼이 두루 다니며 쳤습니다. 돌들이 많으니, 그 돌들을 다 총알 삼아 날렸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엘리사에게 주신 말씀 그대로였습니다. 오늘 본문 18-19절입니다.

 

이제 모압 왕 차례입니다. 그는 전세가 극히 불리해진 것을 보았습니다. 순간적으로 역전된 것입니다. 자연지형의 효과를 보아, 연합군이 갈증을 이기지 못하고 기진하여 쓰러지게 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물이 쏟아져 흘렀고, 그것을 피로 착각한 모압군이 무장을 해제하는 바람에 몰살 당했습니다.

 

그는 칼 찬 700명 군인들을 사용하여, 포위망을 뚫고 에돔 쪽을 돌파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에돔이 이전의 에돔이 아닙니다. 그것도 여의치 않았습니다.

 

모압 왕이 최후의 작전을 썼습니다. 그것은 자기의 뒤를 이어 왕이 될 아들, 세자를 성 위에서 희생제사 드린 것입니다.

 

바로 그 때, “격노함이 이스라엘에게 크게 임했습니다. 연합군이 각각 자기 길로 돌아갔습니다. 이 대목을 묵상합니다. 무슨 격노함이 왜 이스라엘에게 임했습니까? 그리고 그것이 왜 연합군을 각각 흩어지게 했습니까?

 

1. 모압의 격노함

 

왕의 아들, 그것도 세자를 불 태워 죽이는 제사를 성 위에서 실시했다면, 모압의 모든 군사가 다 보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를 갈아붙이며 연합군, 특히 북 이스라엘에게 대들었습니다. 그것이 전세를 뒤집은 것입니다.

 

다른 각도의 해석도 가능합니다. 적군의 왕 아들을 불태워 죽이는 제사를 연합군이 보았습니다. 그 무시무시한 광경에 전의를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달려드는 모압군에 쫓겨 연합군은 파죽지세가 되었습니다.

 

2. 하나님의 격노하심

 

다른 학자들은 “qtsf gdwl”“good wrath”로 이해합니다. 그리고 신명기 29:27, 예레미야 21:5; 32:37; 스가랴 1:15; 7:12 등에서 하나님의 진노로 묘사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셨을까요? 하나님의 전쟁에 참여한 이스라엘에게 내리신 신명기적 명령에 대한 불순종을 보고 진노하셨다는 것입니다.

 

신명기적 명령은 헤렘으로 드러난 바, “전멸”(total destruction)입니다. 그리고 온전한 헌신”(total dedication)입니다.

 

그러므로 여호람은 북이스라엘-모압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마지막 순간에 연합군을 흩어버리심으로써 하나님께서 불완전한 승리를 허락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간이 여리고 전쟁 때 전리품 일부를 남김으로써 하나님의 분노가 격발한 사건과 비교할 수 있습니다.

 

길하레셋의 돌들은 남기고, 물매꾼이 두루 다니며 치니라.

Only Kir Hareseth was left with its stones in place, but men armed with slings surrounded it and attacked it as well.

열왕기하 3:25

 

바로 이 부분이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전적 헌신을 순종하지 않은 모습입니다.

 

왕하 3:19

왕하 3:25

당신들이 모든 견고한 성읍과 모든 아름다운 성읍을 치고 모든 좋은 나무를 베고 모든 샘을 메우고 돌로 모든 좋은 밭을 헐리이다.

그 성읍들을 쳐서 헐고, 각기 돌을 던져 모든 좋은 밭에 가득하게 하고, 모든 샘을 메우고, 모든 좋은 나무를 베고

 

길하레셋의 돌들은 남기고 물매군이 두루 다니며 치니라

 

길하레셋은 Kir-hareseth로 읽는데, “강한 도시라는 뜻으로, 모압의 수도입니다. 이사야 16:11, 예레미야 48:31 등에 나옵니다. “모압 기르라는 이름으로는 이사야 15:1에 나옵니다.

 

길하레셋의 돌들은 남기고를 직역하면, “until only Kirhareseth remained”입니다. 길하레셋까지 포함하여 파괴했어야 했는데, 그걸 남긴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 적용합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사, 우리를 강하게 하시고, 모든 전쟁에서 이기게 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이 전적인 파괴와 온전한 헌신을 드리지 않는다면, 이 악한 세상이 마지막 작전을 사용하도록 부추킬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아들을 불사름입니다. 모두가 보는 데서!

 

그런 혐오스러운 모습이 두 가지 효과를 냅니다. 하나는 당사자들의 사기를 올리는 것입니다. 건강한 사기가 아니라 자살적인 사기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 편에 선 자들의 사기가 꺾이는 것입니다. 혐오스러운 모습에서 스스로 설 자리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분노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합니다. 세상이 그런 이치로 세상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악한 영은 자기의 자식도 우상에게 던져 태워버리는 잔혹함으로 승부를 겁니다. 그래서 그들은 피를 보고 난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힘을 얻고 또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전략은 이전에도 있었고, 내내 인류의 역사에 존재했습니다. 전쟁사를 보면 이런 방식의 독려가 대단히 큰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백제의 계백장군이 자기의 식구들을 몰사하고 전투에 임했다는 것은 하나의 예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리스도인의 전투 방식입니다. 그런 세상의 작전을 충분히 이해하고, 대책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선한 싸움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장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임이 아니라 살림으로써 영적 싸움을 싸우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미움이 아니라 사랑을 가지고 전쟁에 임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약하지만 예수님께서 강하십니다. 우리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모든 일에 능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의 힘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다 드리는 전적 헌신, 전쟁의 형식과 내용을 다 구성합니다. 우리는 그런 전쟁을 수행해야 하고, 전쟁의 결과물을 모두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이쯤해서 우리는 우상숭배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우상숭배는 자기파괴에 다름 아닙니다. 스스로를 위하는, 극도의 이기주의가 우상숭배의 본질이지만, 결국 그것은 자기의 파멸의 길에 다르지 않습니다. 스스로도 죽고, 자기의 아들도 딸도 죽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사망의 구덩이에 몰아넣는 행위입니다.

 

여호수아-열왕기하에 이르는 예언적 역사서의 중심이, 한 하나님, 한 성전, 한 백성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첫째가 되는 한 하나님에는 모든 우상을 제거하라는 명령이 들어 있습니다. 우상파괴.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사명입니다. 그런데 우상숭배의 현장에서 도리어 겁을 먹고 돌아서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지은 화려한 건물, 그들의 엄청난 힘, 그런 것들에 주눅 들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여행을 합니다. 그러나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그런 건물들이나 세력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그들의 간증은 어떠한가? 보고 듣고 참여하며 느껴야 합니다.

 

엘리사를 돌아봅니다. 그는 왕에게 조금도 눌리지 않았습니다. 자기는 계급장 없는 예언자입니다. 예언자는 사회적 신분이 전혀 보장된 바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심, 그뿐입니다.

 

엘리사는 그대로 이루어지는 말씀을 받은 자입니다. 오늘 우리는 누구입니까?

 

 

기도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말씀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 말씀을 들고 세상으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모든 전쟁을 주관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저희들의 영적 전쟁에서 날마다 승리하게 하옵소서. 말씀만 의지하고, 그 말씀대로 전진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