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324

금문교회 주일예배

조은석 목사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누가복음 10:25-37

 

25.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27.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리하면 살리라!” 하시니,

29.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3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31.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32.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33.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34.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35.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라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36.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37.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오늘 본문은 어쩌면 성경 이야기 중에 가장 유명한 몇 가지 중에 들겠습니다. 교회 밖 사람들도 대개 듣고 압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입니다. 교회 성극으로도 무대에 자주 올랐습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는 어떤 사람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으로 제시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어떤 율법교사였습니다. 율법을 가르치는 사람이니, 성경에 능통했겠습니다. 그가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을 시험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Teacher, what shall I do to inherit eternal life?

누가복음 10:25

 

정말로 영생을 얻자는 목적을 품었더라면 주님께 여쭈었을 것입니다. 주님을 더 알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의 길이기 때문입니다(요한복음 17:3). 아이러니입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 앞에서 다른 것을 묻고 있습니다.

 

첫째로, 그는 예수님께서 영생을 얻는 길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테스트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대답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직접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율법교사에게 되물으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He said to him: What is written in the Law? How do you read it?

누가복음 10:26

 

되묻기는 하셨지만, 대답이 들어 있습니다. 영생 얻는 길이 율법에 기록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율법은 구약성경 전체를 아우르는 말씀입니다. 당시는 신약이 없던 시절로, 이는 하나님의 말씀전부였습니다.

 

그는 영생을 무슨 행위로 살 수 있는 줄 알았습니다.

 

주님께서 율법을 물으셨습니다. 그는 율법교사답게 정답을 말했습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And he answered, You shall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and with all your soul and with all your strength and with all your mind, and your neighbor as yourself.

누가복음 10:27

 

주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And he said to him, You have answered correctly; do this, and you will live.

누가복음 10:28

 

예수님의 지혜는 율법사보다 한층 높았습니다. 비교할 수 없도록! 예수님께서는 율법사가 스스로 자기의 질문에 대답하게 하셨고, 그 대답을 실천하라고 도전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특히 바리새인들은 율법 공부를 실천보다 우선시 했습니다. 유대교 랍비 아키바( Rabbi Akiba, AD 50-135)의 말을 들어 보십시오.

 

율법 공부는 그것을 실천하는 것보다 높은 차원이다.

Study of the Law is of higher rank than practicing it.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실천하는 일을 젖혀두고 율법 공부에 몰두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실천해야 생명이 있다고 지적하신 것입니다.

 

이번에는 그가 물었습니다. 예수님을 시험하려던 목적이 아닙니다.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했습니다.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But he, desiring to justify himself, said to Jesus, And who is my neighbor?

누가복음 10:29

 

다시 바리새인의 특성이 나옵니다. 아는 것을 앞세우는! 마치 누가 내 이웃인지 알지 못해 그동안 사랑하지 못한 것처럼. 달리 말하면, 자기가 아는 한 모든 이웃을 다 자기와 같이 사랑한 것처럼.

 

여기서 주님께서 어떤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이 이야기는 내 이웃이 누구?”냐고 묻는 율법사에게 대답을 주시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야기 끝에 주님께서 물으셨습니다.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Which of these three, do you think, proved to be a neighbor to the man who fell among the robbers?

누가복음 10:36

 

누가 이웃인가? 지식을 묻는 질문에 율법사는 재빨랐습니다. 그 방면에는 전문가였습니다.

 

자비를 베푼 자입니다!

He said, "The one who showed him mercy."

누가복음 10:37

 

그러자 여기서 주님께서 덧붙이십니다. 영적인 도전을.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You go, and do likewise!

누가복음 10:37

 

생각하지도 못했던 말씀이었습니다.

 

이웃이 누구인가, 그 아는 지식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이웃처럼 가서 행동해야 하는 것입니다. 강도 만난 자의 좋은 이웃은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마리아 사람이 강도 만난 자를 이웃으로 여기고, 그를 자기 자신처럼 사랑했습니다.

 

이제 율법사에게는 말씀실천이 남은 것입니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오늘 우리에게 적용합니다. 이 말씀은 분명히 과거어느 때, 어떤 사람, 곧 율법사에게 예수님께서 주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성경에 기록되어 오늘 우리에게 선포된 까닭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심과 같습니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You go, and do likewise!

누가복음 10:37

 

지식을 넘어서서 실천까지 이르게 하신 이 말씀은 2019년 우리교회 표어가 되었습니다. 2019년 한 해 동안 누가복음-사도행전을 강해하면서, 그 중심에 이 말씀이 있다고 여긴 까닭입니다. 사도행전은 성령충만을 받은 사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땅 끝까지 나아가, 복음을 전파한 이야기입니다. 이들은 말씀만 가르친 것이 아니라, 함께 먹고 함께 살며 삶을 나누었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고, 병든 자를 고쳤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은 사랑입니다. 영생을 얻으려면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세 가지입니다. 하나님, 이웃, 자기 자신입니다.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명령에는 자기 자신이 포함되고 있습니다.

 

물론 병든 자기사랑이 있습니다. 말세의 징조입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But understand this, that in the last days there will come times of difficulty. For people will be lovers of self, lovers of money, proud, arrogant, abusive, disobedient to their parents, ungrateful, unholy

디모데후서 3:1-2

 

건강하지 않은 사랑, 그래서 돈을 사랑하고 자랑하는, 그 밖의 그런 것이 아니라면, 진정한 자기사랑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자신을 스스로도 사랑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세 가지 사랑(하나님, 이웃, 자기) 중에 오늘 본문에서는 이웃이 조명을 받았습니다. 율법사가 그렇게 물었기 때문입니다: “누가 내 이웃입니까?”

 

오늘 우리는 이웃을 사랑하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아프리카 르완다, 남미 콜롬비아, 중국, 그리고 후파와 유락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해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이번 주 수요일-목요일에 우리는 목회자 6명이 후파-유락을 방문합니다. 수요예배를 드리고, 저녁 성경공부, 그리고 목요일 오전 성경공부, 그리고 유락에 건너가 성경공부를 인도합니다. 또한 주일학교 교사와 중고등부 교사를 세우는 교육도 실시합니다.

 

나를 넘어서서 남을 바라보고, 인식하며, 그를 위한 시간을 마련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입니다. 누구를 도울까?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What can I do for you?

 

이 질문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나날은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가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살아가는 삶, 그것이 복입니다.

 

누가 네 이웃이 되겠느냐?

Who will prove to be a neighbor of you?

 

강도 만난 사람의 편에서는 자기를 도와 준 사마리아인입니다. 그는 멸시와 천대를 받던 자입니다. 그러나 차별 받던 그는 다른 사람을 원망과 시비로 대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누구 도와 줄 사람이 없을까?” “어떻게 도와줄까?” 살폈습니다. 그래서 강도 만나 쓰러진 사람을 도왔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에 든 자가 되었습니다.

 

좋은 이웃이 됩시다. 그는 자기처럼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내 삶에 등장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그의 앞에는 제사장이 지나갔습니다. 제사장은 사랑에 있어 직업적인 의무까지 지닌 사람입니다. 세상 모든 죄인을 불쌍히 여겨야 할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가 지나갔습니다. 그는 좋은 이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앞에는 레위인이 지나갔습니다. 제사장이나 레위인 모두가 직업적인 의무가 있습니다. 두 부류 다 생업이 없습니다. 성전에서 제사 드리는 일로 사역이 전부입니다. 그런데 그가 좋은 이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인은 달랐습니다.

1. 그는 불쌍히 여겼습니다.

2. 그는 가까이 갔습니다.

3.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부었습니다. 그 두 가지는 몸에 지닐 수 있는 물건 중에 값비싼 것입니다. 그것을 상처에 부어, “소비했습니다.

4. 그는 싸맸습니다. 몸에 지닌 것으로 그의 몸을, 그의 상처를 감싼 것입니다.

5. 자기 짐승에 태웠습니다. 아픈 사람을 짐승에 태우는 일은 그 자체로 중노동입니다. 자기는 대신 걸었습니다.

6. 주막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 시간은 여행할 시간이었지만, 자기가 만난 상처 입은 사람의 편의를 우선 고려했습니다.

7. 돌보아주었습니다. 다른 모든 일정을 포기하고 이웃의 상처를 돌보는 데 주력했습니다.

8. 이튿날까지 도왔습니다. 어쩌면 밤을 지새웠는지도 모릅니다.

9.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주었습니다. 자기의 여행 경비를 치료비로 쓰고 있는 것입니다.

10. 그리고 말했습니다.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그는 자기가 더 이상 돌볼 수 없는 사정이 되자 다른 사람에게 부탁했습니다. 자기를 위한 부탁은 청탁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섬김을 위한 부탁은 사역 나눔입니다. 혼자 다 맡으려는 욕심을 버렸습니다.

11. 그가 말을 이었습니다.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지금 지급한 비용에 추가되어도 갚을 예산입니다.

12. 그의 말에 내가 돌아올 때라고 했습니다. 그는 여기서 그의 이웃사랑 사역을 마치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기까지 했으니까 충분하다, 그런 자족감이 아니었습니다. 사랑은 그 끝이 없습니다. 그는 일정을 바꾸어 주막으로, 그 강도 만난 사람에게 돌아올 생각이었습니다.

 

이상의 열두 가지 연속하는 행동에서 무엇을 우리가 배웁니까? 예수님이시라면 그렇게 하셨을 것 아닌가? 이 사람이 예수님을 생각하고, 그분의 뜻을 따른 것이 아닌가? 예수님께서 끝까지 사랑하신 것을 배운 것이 아닌가?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Now before the Feast of the Passover, when Jesus knew that his hour has come to depart out of this world to the Father, having loved his own who were in the world, he loved them to the end.

요한복음 13:1

 

십자가 위에서 가상칠언 중 마지막 말씀이, 이 끝까지 간 사랑이었습니다. 주님께서 그 자리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

If then, your Lord and Teacher, have washed your feet, you also ought to wash one another's feet. For I have given you an example, that you also should do just as I have done to you.

요한복음 13:14-15

 

예수님의 사랑은 그것이 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배웠으면, 예수님을 따라 살아갈 일입니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When Jesus had received the sour wine, he said, "It is finished." And he bowed his head and gave up his spirit.

요한복음 19:30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그 모든 사랑을 완성하셨습니다.

 

본문에서 사마리아인이 행한 그 열두 가지는 이 사마리아인이 강도 만난 자에게 행한 사랑의 내용입니다. 분명한 것은 그의 사역이 열두 가지 이상으로 넘어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강도 만난 자의 상황에 따라서. 그가 돌아왔을 때, 그가 완치되었으면 모르지만, 아직도 그의 손을 필요로 한다면 그는 계속 그를 사랑할 것입니다. 사랑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그 사랑을 그치지 않으시는 바로 그것처럼!

 

오늘 본문인 누가복음 10:25-37은 그 배치를 주목해야 합니다. 앞 부분, 10:1-20은 예수님께서 70/72인을 파송하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10:21-24는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드린 감사기도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이 누구인지 아는 것과, 아버지 하나님께서 누구인지 아는 것이 소중한 비밀임을 말씀하십니다.

 

전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I thank you Father, Lord of Heaven and earth, that you have hidden these things from the wise and understanding and revealed them to little children. Yes, Father, for such was your gracious will.

누가복음 10:21

 

여기서 다른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인 유대인들 중에 바리새인이거나 서기관, 그리고 오늘 본문의 율법사 같은 자들을 염두에 두신 것입니다. 이들이 모르는 것을 70/72인이 깨달았습니다. 말씀순종으로써! 그 비밀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다음에 이은 10:38-42는 마르다와 마리아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일로 분주한 마르다보다 예수님 곁에서 말씀을 듣는 마리아를 주목하셨습니다.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Mary has chosen the good portion, which will not be taken away from her.

누가복음 10:42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좋은 편을 택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을 더 알기를 원한 것입니다. 이것은 빼앗기지 아니할 소중한 사역입니다.

 

이제 분명해졌습니다. 10장 전체의 구성입니다:

 

1-24: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비밀

25-37: 누가 내 이웃인가?

38-42: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는 일

 

누가 내 이웃이며, 그를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이 문제는 그 앞과 뒤에 하나님을 배우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이 배치되어 있는 일입니다. , 무슨 사역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아는 일로써 사역이 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0:1-24에서 70/72인은 돌아와서 이렇게 보고했습니다.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Lord, even the demons are subject to us in your name!

누가복음 10:17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Nevertheless

누가복음 10:20

 

수많은 영적인 사역을 감당했지만,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이 더 중요하고, 더 기뻐할 일입니다. 언제 어떻게 우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됩니까?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있을 때입니다. 모르고 하는 수많은 일보다 알고 행해야 옳은 것입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And this is eternal life, that they know you, the only true God, and Jesus Christ whom you have sent.

요한복음 17:3

 

영생, 곧 영원한 삶은 우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입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소중한 이웃사랑 사역은 그가 한 일 때문이 아니라, 그가 하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 지식으로 말미암아 순종한 일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가 행한 일은 말씀순종이었습니다. 스스로 선한 일을 선택하여 실시한 것이 아닙니다.

 

상대적으로 말하면, 제사장도 레위인도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강도 만난 이웃을 지나쳐 가버린 것입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도 품지 않고!

 

그러나 사마리아인은 하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얼마나 간절하게 부르시는지, 그것을 그가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ive his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ould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요한복음 3:16

 

영생. 이것은 율법사가 예수님께 와서 물었던 그 내용입니다.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그런데 요한복음 3:16에서 예수님께서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다고 하셨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So faith comes from hearing, and hearing through the word of Christ.

로마서 10:17

 

지금 율법사는 앞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었어야 했습니다. 자기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왔고, 자기가 스스로 옳은 것을 증명하려고 시도한 그가, 과연 주님의 말씀을 들었을까요?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는 주님께서 주시는 영의 말씀을 바르게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누가 내 이웃입니까?” 그 앞에 주님, 주님께서 누구십니까? 내가 알고자 하나이다!” 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 앉아 말씀을 듣던 마리아처럼.

 

결론입니다.

사람은 행동으로 구원 받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습니다. 그 믿음은 행동을 이끌어냅니다. 주님께서는 나무가 열매를 맺는 것을 행동이라고 하셨습니다. 좋은 나무면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나쁜 나무가 무슨 노력을 해도 좋은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좋은 나무 되기(Being good tree). 이것이 결정적인 문제입니다.

 

좋은 나무 되기는 예수 그리스도께 붙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의 뜻과, 그 뜻과, 그 긍휼을 아는 것입니다. 여기서 열매는 자연스러운 열매맺기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여러분. 우리의 행함은 열매입니다. 그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보여주기 식의 행사가 아니라, “진정한 열매가 되는 길은, 우리 스스로가 하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영생의 자녀가 될 때입니다. 마르다처럼 많은 일에 분주한 대신에 마리아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는 길이 좋은 선택입니다. 이 마리아가 끝내 주님께 옥합을 깨뜨려 부어드리고, 천하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 그 이야기가 언제나 전파되지 않았습니까?

 

지난 주중에 비영 집사님과 테니스 모임에서 20대 청년 아들이 뇌수술 두 번 한 가정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읽기가 안 된다고 했습니다. 내가 물었습니다: “듣기는 가능합니까?” 어느정도는 가능하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모두를 불러 모아 둘러서서 내가 기도를 인도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부모에게 말했습니다.

 

아들에게 요한복음을 읽어주세요.

금문교회가 그를 위해 기도하면서 요한복음을 읽어주는 가정을 기억하겠습니다.

 

젊은이가 뇌수술을 한 것은 분명 불행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로써 요한복음을 읽어주는 부모, 그 말씀을 들으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가정이 된 것은 확실히 큰 복입니다.

 

지난 주 저는 테니스장에서 그 뇌 수술한 가정을 이 시대의 강도 만난 이웃으로 만난 것입니다. 거기서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도록 인도했습니다. 사마리아인이 그 열두 가지 행동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증거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이웃을 위하여 무엇을 할까?

그의 가장 중요한 필요는 무엇일까?

 

생각하고 또 생가하면서 살아가노라면, 우리 앞에 수많은 강도 만난 사람들이 누워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그들에게 나아가,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으로 사역하십시오. 영생입니다. 영생의 은혜를 받은 우리가 영생의 은혜를 전해야 마땅합니다.

 

기도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선한 사마리아인을 말씀하심으로써 저희가 어떻게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매일 저희에게 만나게 해 주시는 강도 만난 이웃을 피하지 않고 다가가, 그의 모든 치료를 돕고, 끝내 주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드러내는 사명을 바르게 감당하게 하옵소서. 주님을 바르게 아는 은혜의 말씀을 늘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