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818

금문교회 주일설교

조은석 목사

 

오늘 구원이 이 집에

누가복음 19:1-10

 

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3.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4.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7.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오늘 우리는 어떻게 기도할까?” 시리즈로 삭개오의 기도를 소개합니다. 과부가 악한 재판관에게 도움을 받아낸 것처럼, 쉬지 말고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난 주에 우리는 맹인 바디매오가 주님께 보기를 원하나이다!” 부르짖은 장면을 소개했습니다.

 

삭개오 이야기는 누가복음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은 예수님께서 특히 소외된 자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시는 모습을 묘사했습니다. 가난한 자, 병든 자, 여자, 세리, 죄인 등입니다.

 

삭개오, 그는 부자였습니다. 그런데 앞서 어떤 부자 관리가 예수님 앞에 와서 영생을 구하다가 심히 근심하지 않았습니까? 어렸을 때부터 경건하게 자라, 계명의 모든 것을 다 지켰다고 자부하는 그가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주님께서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고 말씀하시고, 재산을 모두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고 예수님을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이 부자는 영생을 찾아 구한 자였고, 그래서 예수님께 왔지만, 그는 바로 거기서 걸려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그에 대하여 주님께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불가능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 등장하는 삭개오는 같은 부자였지만, “구원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가 어떤 점에서 달랐습니까? 어째서 그는 부자였는데, 그 불가능한 문을 통과할 수 있었습니까?

 

첫째는 예수님께 나아간 자세가 달랐습니다. 둘째는, 재물에 대한 태도와 그 처리방식이 주님의 마음에 꼭 들었습니다.

 

첫째로, 삭개오는 예수님께 나아갈 때, 간절함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어떤 사람들이든지 예수님께 나아가 구원 받은 자들의 특징입니다. 그 간절함을 예수님께서는 믿음으로 평가하셨습니다.

 

아시는 대로 삭개오는 주님을 뵙는 데 장애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키가 작은 사람입니다. 그는 시야가 넓지 못했습니다. 둘째는 예수님께서 무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직접 뵈려면 사람을 뚫고 지나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세리를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접근하는 것을 한사코 막았을 것입니다. 본인 스스로도 사람들 모인 데 썩 나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장애물을 극복하였습니다.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간 것입니다.

 

이것은 지붕에 올라가 중풍병자 친구를 침상에 누운 그대로 끌어올리고 지붕을 뜯고 침상을 예수님께로 내려뜨린 친구들의 행위와 족히 비교가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침대와 함께 중풍병자 친구를 지붕에 올리고, 거기서 지붕을 뜯어 내린 일은 모든 사람들의 비난거리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간 세리장이는 모든 이들의 비웃음거리가 되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가뜩이나 사람들이 멸시천대 하던 차에, 나무에 올라가 예수님을 내려다보는 그의 모습은 희극 중에 희극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방법을 선택한 삭개오는 그만큼 절박함이 있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하며 살아오기는 했으나, 그는 부자였습니다. 큰 집을 지니고 살았고, 비싼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렇다면 나름대로 자존심이 높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가 체면을 다 버리고 나무에 올랐다는 것은, 그가 곧 보여줄 엄청난 변화를 예고하기에 충분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것은 부자가 자기의 곳간을 열어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기로 한 것입니다.

 

부자가 자기 재산을 아무런 대가도 없이 가난한 자들에게 자기 재산을 절반이나 풀어 나눈다! 이것은 역사에 길이 남을만한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나무에 올라가기를 연출함으로써 그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가 자기의 재산을 절반 풀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기로 한 것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것을 네 갑절이나 갚겠다고 약속해 드린 것은 예수님께서 그의 집에 오시고 난 이후였습니다. 사건의 순서를 추적해 보겠습니다.

 

예수님 1

예수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셨습니다.

 

삭개오 1

삭개오가 예수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달렸습니다. 그리고 돌무화과나무 위에 올라갔습니다.

 

예수님 2

예수님께서 그곳에 이르셨습니다. 그리고 나무 위에 있는 삭개오를 쳐다보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삭개오 2

삭개오가 급히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즐거워하며 영접했습니다.

 

예수님 3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렸습니다.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삭개오 3

삭개오가 주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습니다. 속여 빼앗은 것을 네 갑절이나 갚겠습니다.”

 

예수님 4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예수님 1-3과 삭개오 1-3을 읽을 때, 이 사건의 흐름에서 예수님께서 삭개오의 행위를 이끌어내신 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고 평가하시는 것으로 이 사건은 결론을 맺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삭개오가 구원 받은 이 사건의 총체적인 결론은 마지막 절에 들어 있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누가복음 19:10

 

이 결론으로써 분명해진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신 것은 삭개오가 사는 지역으로 접근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지난 주 설교 중에 맹인이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맹인과 삭개오에게 가까이 다가가셨던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삭개오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그가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께 나아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기회를 주셨을 때 그 범위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다 그 맹인이나 삭개오처럼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 아닙니다. 바리새인들처럼 주님을 책잡기 위해 시험한 무리들도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라는 평가를 받은 맹인이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하신 삭개오 같은 사람이 조명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삭개오를 찾아오셨습니다. 이것은 목자가 잃어버린 양을 찾아 골짜기에 내려가고, 가시덤불에 긁히며, 강을 건너는 행위와 비견됩니다. 아니, 사실은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낮고 천한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 어떤 비유로도 설명이 가능하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삭개오가 예수님을 보고자하고, 자기의 키가 작은 것과, 무리가 둘러싼 것, 그런 장애물을 느끼고, 나무를 타고 올라간 행위, 그것은 예수님의 오심과 비교하면 씨 중에 가장 작은 겨자씨에나 견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주님께서 그 겨자씨 같은 믿음을 주목해 보셨다는 데 있습니다. 나무 위에 올라앉은 삭개오. 그를 올려다보시는 주님을 떠올려 보십시오. 무시할 수도 있고 비웃고 지나갈 수도 있는 장면을, 가시던 길 멈추고 서서 올려 바라다보신 예수님!

 

오늘 우리가 가진 믿음이란 결국 겨자씨한 알 이상이 되지 못합니다. 그걸 내세울 수도 없습니다. 자랑한다면 그건 도리어 어리석음입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주님께서 그 겨자씨 한알 같은 믿음을 눈여겨보셨다는 데 있습니다.

 

삭개오의 집에 구원이 임했습니다. 그가 예수님 앞에 말씀드린 것이 있었습니다. 자기의 재산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으며, 남의 것을 속여 빼앗은 것이 있다면 네 배로 갚을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그의 재산 50%는 가난한 자들을 위해 도네이션 했습니다. 나머지 50%를 가지고, 그동안 그가 속여 빼앗은 것이 있다면 400% 갚겠다고 했습니다. 당시 세리들의 행태를 놓고 미루어 볼 때, 그는 나머지 50%의 재산 전부를 다 내려놓겠다고 말씀드린 것이나 결국 다를 바 없습니다. 그는 재산 전부를 내놓은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그때 그 부자 관리와 여기 삭개오가 대비되고 있습니다. 그 부자 관리는 영생얻는 길을 주님께 여쭈었지만, 그는 예수님께서 제시하신 그 에 도리어 걸려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네 가진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라!” 그는 그 말씀을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큰 근심이 그를 사로잡고 말았습니다.

 

결국 말씀순종이 구원의 길입니다.

 

삭개오를 생각할 때마다 오늘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구원 얻게 하려고 오신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누가복음 5:32

 

이 말씀으로써, 우리가 예수님께서 여리고로 내려가신 그 목적이 분명해졌습니다. 의인을 만나러 가신 것이 아닙니다.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삭개오를 만나러 가셨습니다.

 

그러면 생각합니다. 그 둘러싸 함께 걷던 그 수많은 무리들은 다 누구입니까? 어째서 그들은 예수님을 자기의 집으로 영접하지 않았습니까? 어째서 그들의 오늘은 구원의 날이 되지 못했습니까?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이 날은 어떤 날입니까? 누가 어떻게 결정한 날입니까? 삭개오가 특별한 열심을 가지고 주님께 접근한 날입니까? 아닙니다. 주님께서 삭개오에게 오신 날입니다.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죄인에게 오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오셨다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양들을 모두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도 남김없이!

 

그렇다면 은혜구원의 날은,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세상 모든 사람에게 다 열려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특별하게 삭개오가 조명을 받습니다. 이 사람은 앞선 관리 출신 부자와 달리 구원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에서 삭개오가 칭찬 받아야 합니까?

 

아닙니다. 설령 삭개오에게 어떤 남다른 점이 있다고 해도, 오늘 우리는 그를 찾아주신 예수님께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삭개오가 지닌 믿음은 겨우 겨자씨정도로 작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작은 믿음을 발견하시고 그것으로써 거대한 겨자나무처럼 자라나게 하신 분이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어떤 구원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이것은 이 세상을 다 주고도 결코 바꿀 수 없는 굉장히 놀랍고 큰 일입니다. 삭개오가 잔치를 열었다면 우리 모두도 잔치를 열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셨기 때문입니다.

 

옛날 시골에서 초등학교 선생님이 가정방문을 오셨거나, 교회 목사님이 심방을 오셨다면, 그건 그 집에 경사가 난 일 아니었습니까? 그 경사는 찾아오신 손님 때문이지, 그 집안의 어떤 자랑거리가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구원은 우리 안에 있는 어떤 장점 때문이 아닙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자칫 자력신앙운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종교 중에 불교가 있습니다. 스스로 자기를 구원할 수 있다는 잘못된 신앙입니다. 보십시오. 사람은 결코 자기를 구원할 지혜도 능력도 없습니다. 사람은 다 죄인이며, 그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문제는 돈이었습니다. 재산이 무엇이라고, 그것 때문에 예수님께서 찾아오셨는데 큰 근심을 한다는 말입니까?

 

여러분! 예수님을 보십시오. 그리고 우리를 찾아오신 그분을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지난 금요일 저녁 여덟시 8. 아내와 나는 카니강 목사님 집을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18분 전 하나님께서 이미 그분을 하나님 나라로 부르셨습니다.

 

이미 2년 가까이 암으로 투병해 왔습니다. 그런데 지난 수요일, 그분은 두 손을 높이 들고 기도드렸습니다. “주여, 저를 천국으로 인도하소서!” 소파에 누워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잠든 것처럼 편안했습니다. 오랫동안 괴롭히던 고통도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손을 잡고 천국으로, 그 아름다운 나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의 맨발을 보고, 맨손을 보면서,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사람은 이 세상에서 많은 것을 지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다 두고 가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제법 가치가 있었고, 사람들의 부러움을 살만한 어떤 권세가 있었을지라도, 하나님 나라에는 쓸데가 없기 때문입니다. 본인은 가져가려고 한다고 해도, 주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다 버리고 오라!

 

지금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천국을 경험하고자 하십니까? 그러면 지금부터 다 버리라! 그리고 나를 따르라!”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지금부터! 그것은 그 날이 닥쳐올 때 정말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바로 그것입니다. 지금부터 다 버리라! 그리고 나를 따르라!

 

지금 삭개오가 그랬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이르렀다!”

 

여러분의 오늘은 지금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삶에, 마음에, 가정에, 여러분의 생각이 미치는 모든 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삭개오의 고백입니다. 그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는 길입니다. 아멘.

 

 

기도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감사와 찬양을 돌려드립니다. 오늘 저희의 삶에 찾아오신 예수님을 환영합니다. 저희의 작은 믿음을 소중히 여기신 주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다들 멸시하고 천대하는 저희의 집에 친히 오셔서, 구원을 선포해 주신 주님, 주님께서 저희의 목자 되심을 고백합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주님께서 오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영접하여 모시기만 하면, 그 집에 구원이 임할 것입니다. 그분의 말씀을 순종하면 구원이 임할 것입니다. 이 기쁜 소식을 온 세상에 전파할 수 있도록, 주여 저희를 도우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