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19일 주일
민병덕 목사


로마서12:1-2 
변화-그리스도인의 목표 (Be Transformed)


I. Intro
1. 존경하는 조은석 목사님이 담임하시는 금문교회에서 주일 예배를 인도하고 하나님 말씀을 나누게 되어 감사하게 생각한다. 
오늘 주신 로마서 말씀을 통해 저와 여러분이 함께 은혜를 나누는 시간이 되기를 소원한다.
 
로마서: 사도 바울이 로마교회에 쓴 서신. 복음서와는 달리 믿지 않는 자들에게가 아니라 이미 믿고 있는 그리스도인 들에게 쓴 편지임.  바울이 로마서를 쓴 이유는 로마교인 들에게 “기독교의 진리”를 자세히 알리고, 로마교회를 든든히 세우기 위함이 목적.

2. 로마서의 내용
로마서 전체 16장을 3부분을 설명할 수 있음.
1장-11장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즉 믿음의 문제를 다룬다. 복음, 믿음, 의에 대하여 “기독교 교리”를 다룸.
12장-15장은 믿는 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윤리적, 실천적인 문제를 다루고, 마지막 16장은 개인과 교회에 대한 문안인사

특히 12장 1-2절은 1장-11장까지의 교리 부분과 12장 이후의 실천 부분을 “연결하는 고리”로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았는데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리스도인의 삶의 가장 중요한 원리와 기본을 가르쳐 주는 말씀이다.

II. 본문의 내용
오늘 본문—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3가지 측면에서 다루고 있다. 
첫째는 하나님과의 관계면
둘째는 세상과의 관계면
셋째는 내 자신의 측면에서 다루고 있다. 

1. 하나님과의 관계면 (12:1)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면에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예배자로 살아가야. 
예배—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기면서 살아가는 것, 아니 우리의 삶 자체가 바로 예배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인정하고, 우리모두가 피조물임을 인식, 인간의 부족함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한다”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인간의 모습—가장 인간다운, 인간 본연의 모습

2. 둘째, 세상과의 관계면 (12:2) 에서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세상 사람들이 사는 것처럼 살지 말고 다르게 살라, 즉 세상의 가치관과 흐름을 따르지 말라고 말씀한다. 

3. 세째, 내 자신의 측면에서는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은 자로 살아가야 한다고 말씀한다. 

사실 오늘 본문은 최소한 세번의 설교를 통하여 다루어져야 하는 분문이다. 
그러나 저는 오늘 특별히 세번째, 우리 자신이 변화된 자로 살아가야 한다는 측면에 촛점을 맞추어 말씀을 전하고자 한다.

12:2 말씀을 다시 한번 읽겠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한국어 성경은 : “분별하도록 하라”는 말씀(명령)에 촛점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원어인 Greek 성경은  : “변화를 받으라” (Be transformed, 변화해라”) 는 명령의 말씀임. 

우리 한글 성경보다는 영어 성경이 Greek 원어의 뜻을 더 잘 살리고 있다.
“Be transformed by the renewing of your mind. Then you will be able to test and approve what God’s will is.” (NIV)

즉 원어에 좀 더 가깝게 번역한다면, 2절의 말씀이 이렇게 된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 그리하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게 되리라”

그리스도인이 세상속에서 올바르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변화하여야 함. 
변화—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가장 중요한 sign이요 증거다

III. 변화:
1. 본문의 변화: 단순히 change가 아니다. “be transformed”를 의미.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완전히 변형되는 것 새로운 존재로 탈바꿈하는 것을 의미. 부분의 변화가 아니라 완전한 탈바꿈을 의미.
여기서 변화를 받으라는 단어의 원어는 μεταμορφόω  (메타모르포-) 라는 단어인데 이 단어의 의미는 그냥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변화하는 것, 완전한 탈바꿈을 말한다.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 나비를 생각해 보자. 
나비—크리스찬의 symbol로 사용. 특히 부활절에 많이 사용되죠. 
나비의 상징—1) 부활, 2) 변화
나비: 알, 애벌레 (caterpillar) 번데기 (pupa) 나비로 변화
나비의 모습—애벌레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다
본문의 변화: 과거를 찾아 볼 수 없는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 나는 것을 의미.

변화: 애벌레 나비가 되듯이 그리스도인의 변화는 새로운 존재로 탈바꿈하는 것

2. 변화의 예: 오늘 로마서를 쓴 사도 바울 자신—transformed: 철저히/완전히 바뀐 것 
(전) 핍박자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 예수의 제자
       원수와 같은 자enemy  사도 (apostle)가 되어 예수를 증거하는 자가 됨

3. 변화: 바울처럼 극단적인 변화  한 순간에 변화
어떤 그리스도인들—바울과 같이 결정적인 체험을 통한 극단적인 변화의 순간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점진적인 변화. 조금씩 변해 간다. 

그런데 변화가 나만이 느끼는 변화가 되어서는 안된다. 주변의 사람이 인정하는 객관적인 인정이 필요하다.

(예화) 제가 존경하는 어느 목사님: 지금은 한국의 대형교회에서 목회 하시는 분 인데, 오래전 뉴욕지역에서 7 가정으로 출발 10년만에 1,500명이상 모이는 대교회로 성장한 교회의 담임목사와의 대화. 교회가 부흥해서 기쁘시겠다는 나의 인사에 그 목사님, 고민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교회는 성장하였지만 교인은 변화하지 않았다”
그 목사님의 고민: 성도들의 변화하지 않은 모습이라는 고백. 그 목사님의 말씀은 저에게 충격적이었고 그 분이야 말로 정말로 교인을 사랑하는 훌륭한 목사라 생각.

 “변화”—성장했다는 표시, 성장의 결과. 아이들—성장하면 변한다. 외모만 변하는 것이 아니라, 인격도 변하고 삶의 모습과 자세도 변함.

우리 그리스도인의 변화 두 가지로 나타나야 한다.
첫째는 인격이 변해야 하고, 둘째는 삶이 변화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변화는 이 두 가지로 나타나야 한다.

4. 그럼, 첫째, 인격이 어떻게 변할 수 있을까? 
누구나 타고난 성품이 있다. 그래서 성품이 변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나의 결단과 각오만으로 성품과 인격이 변화되기 어렵다. 내 힘만으로, 내 의지만으로는 변화되기 어렵지만 내가 온전히 주님께 순종하면 성령이 함께 하시고,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나의 성품과 인격이 변화될 수 있다. 
어떤 성품, 어떤 인격의 소유자가 되어야 할까?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가르쳐 준다. 주님은 마태복음 11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우리가 닮아가야 할 분은 바로 우리 주님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온유하시고 겸손하신 분이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닮아가고 배워야 할 것은 바로 주님처럼 온유하고, 겸손하여야 한다. 

사람들은 온유한 사람을 좋아하고 겸손한 사람을 좋아한다. 사람들만이 그런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도 온유한 사람을 좋아하시고, 겸손한 사람을 기뻐하신다. 
아무리 교회를 오래 다니고 신앙생활을 오래 했어도 온유하지 않고 겸손하지 않다면 아직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저도 아직 부족하다. 그러나 날마다 더 주님을 닮아가려고 노력한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를 때까지 계속해서 주님을 닮아 가야 한다. 온유와 겸손—이 두 가지를 마음 깊이 새기시고 저와 여러분 모두가 더욱 온유하고 더욱 겸손한 인격과 성품으로 변해 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5. 둘째로, 삶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삶의 변화는 영적 성장을 통해 이루어진다. 
영적 성장: 지적 성장이 아니다
현대 그리스도인의 착각: 지적 성장 영적 성장으로 오해
성경지식이 높아졌을 때 “가분수”가 될 수 있다. 지식 오히려 교만을 초래
설교 은혜받았다고 하면서 내 삶에 변화가 없다면 그 것은 지적 욕구를 충족하는 것에 그침: 듣기만 하는 신앙 귀만 높아가는 신앙
사실, 신앙은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가야 한다.
인간에게 가장 가깝고도 먼거리: 머리와 가슴의 거리, 20-30년도 걸리고, 평생동안 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신앙은 머리의 문제가 아니라 가슴의 문제다.

어떤 분—큰 교회에 다니면 자신의 믿음도 큰 줄로 착각. 아니다. 작은 교회가 오히려 영적으로 성장하기 더 좋은 환경이다. 

영적 성장을 보여주는 변화의 모습 두 가지:
1) 가치관이 변한다. 
내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가?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인생의 목적은?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과 목적이 무엇인가?  발견하여야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나의 인생의 목적을 세워가야
예화: 집을 짓는 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산 사람의 경우  이것이 진정한 인생의 목적일 수 있을까?
Westminster 신앙고백중 소요리 문답중 첫번째 질문: 사람의 첫째 목적은 무엇입니까? “사람의 첫째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기는 일입니다.”
우리 인생의 목적과 가치를 하나님 안에서 찾아야 한다.

2) 두 번째 변화—삶의 자세가 변하고 생활이 변화한다. 
세상에 속했을 때 좋아하던 것들을 단절함: 갈 곳-안갈 곳을 구별한다
친구가 달라진다: 세상 친구 (동창, 직장)  교회 친구 [한국방문과 서울 동창모임]
절제하는 생활: 내것이라고 마음대로 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인정하고 절제한다. 
은혜/사랑을 받은 자 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는 자, 주는 자, 나누는 자로 변화.
생활의 패턴  life style이 달라진다. 나의 물질과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것이 달라진다.

6. 영적 성장: 성숙을 의미함
아들이 성장해서 성숙해 지면 아버지에게 말하는 것이 달라진다. 어느날 아들이 이렇게 말한다.  “아버지, 더 이상 저에게 아무 것도 해 주실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는 제가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해드리겠습니다.” 
아버지: 내 아들이 이제 성숙했구나, 아버지가 기뻐한다. 
이러한 고백,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우리의 고백이 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고백

어느 분이 성숙한 사람—미숙한 사람을 이렇게 비교:
미숙한 사람—자기가 좋아하는 일만 찾지만, 성숙한 사람—자기가 해야 할 일을 찾는다.
미숙한 사람—좋고 싫고를 따지지만, 성숙한 사람—옳고 그르고를 선택해 산다
미숙한 사람—자신의 과거를 바라보지만, 성숙한 사람—미래를 내다본다
미숙한 사람—날이 흐린 날 구름만 쳐다 보지만, 성숙한 사람—구름에 가려진, 구름 너머있는 태양을 바라본다
미숙한 사람—세상이 잘못되었다고 불평하지만, 성숙한 사람—자신을 먼저 변화시킴으로 세상의 변혁을 꿈꾼다

IV. 맺음말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저는 교도소의 채플린으로 사역하는 목사다. 
미국의 형법은 한국의 형법과 달라 종신형, lifer 가 많다. 20-life, 30-life, 50-life, 등. 이들이 최저 형기를 채우면 가석방 청문회에 가서 청문회를 거쳐 가석방으로 석방될 수 있다. 이 가석방 청문회에서 이들을 평가하는 첫번째 기준이 바로 “변화”다. 과거의 범행에 대한 생각의 변화, 교도소 생활에서 얼마나 변화했는가, 변화를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가 등이다. 제가 하는 사역의 한 중요한 부분은 바로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변화 하도록 돕는 것이다. 

저희 교도소에는 남자만 5,600 명 정도 수용되어 있다. 저희가 3개의 채플에서 주일 예배를 7번 드린다. 영어 예배 4번, 스패니쉬 예배 3번. 주일 예배 출석 인원이 약 700-750명정도다. 이들 가운데 감옥에 들어온 후 예수를 믿은 사람들이 훨씬 많다. 제가 지나간 5년동안 370 여명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이들이 세례받고 교회에 나오는 것은 한 가지 이유다. 그동안 자신의 생각대로 살았지만 그 결과는 실패하고 감옥에 들어왔기에 이제는 내 생각 내 마음대로가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성령으로 새롭게 살고 싶은 열망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정말로 변화하기를 원하고 갈망한다. 

교도소에 갇힌 재소자들의 변화를 위해 여러가지 프로그램들이 제공된다. 많은 재활 프로그램들이 주정부와 외부 기관들을 통해 제공된다. 미국의 많은 범죄는 마약, 알콜, 성적 중독 등으로 인해 일어난다. 그래서 그들을 위해 AA, NA 등의 프로그램이 제공되고 또 저희 채플에서도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저희가 제공하는 Celebrate Recovery Inside  같은 치유와 회복을 위한 프로그램, 또 Transformation Class을 통해 많은 형제들이 변화하고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난다. 

많은 재소자들의 성장 과정이나 가정배경을 보면 결손 가정이나 좋지 못한 부모 아래 자란 경우가 많다. 제가 아버지날이나 어머니날 설교를 하면 일반 교회에서 설교하는 내용과 좀 다르다. 어릴 때 부모의 학대와 무관심, 마약중동, 알콜 중독 의 부모아래 자란 사람들이 많아 그들에게 부모를 존경하고 잘 섬기라는 말씀만으로는 부족한다. 그들에게 그래도 당신의 부모를 통해 당신이 생명을 얻었으니 그것으로 감사하고, 이제 부모를 용서하라, 부모와의 관계를 회복하라는 설교를 하게 된다.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게 자란 사람, 아버지로 부터 늘 매를 맞으면서 자란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들에게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의 아버지와 다른 분이라고 가르치고 설교해야 한다. 이런 형제들이 어떻게 좋은 아버지가 되겠는가?
루이지아나주에 앙골라 교도소가 있다. 아주 악명 높은 교도소이다. 여기에 갇힌 재소자들이 하루는 교도소장과 대화하는 가운데 소장에게 부탁한다. 
우리에게 좋은 아버지가 있었으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우리의 자녀들을 위해 우리가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다, 좋은 아버지가 되도록 가르치고 돕는 프로그램이 있으면 좋겠다. 소장이 알겠다, 내가 도와주겠다 라고 약속을 한다. 그 분이 그리스도인이었는데 여기저기 알아보지만 마땅한 책이나 프로그램이 없다. 그러다가 Awana Life  라는 기관을 알게 된다. Awana 는 많은 미국 교회들이 진행하고 있는 어린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어린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든 사역기관이라면 부모에 관한 프로그램도 있겠다 싶어 Awana 에 접촉한다. Awana 측에서 그런 프로그램은 없지만 만들어 보겠다, 그래서 생긴 프로그램이 Malachi Dads 라는 프로그램이다. 구약 성경 맨 마지막 말씀, 말라기 4:6,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그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는 말씀에 바탕을 둔 프로그램이다.  

저희 교도소에서도 제가 채플린으로 사역하면서 시작하여 지금까지 4-5년간 약 300명 정도가 참여했고 지금도 진행중인 프로그램이다.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하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닮아야 함을 가르친다. 좋은 아버지가 되는 것,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닮아가는 것—엄청난 변화를 가지고 온다. 제 자신도 이 프로그램에 함께 하면서 하나님 아버지를 더욱 깊이 경험하고 좋은 아버지가 되도록 배우고 있다. 

변화—그냥 오는 것이 아니다. 변화를 갈망하는 마음이 먼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변화하겠다는 결단이 필요하다. 본문: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믿음의 결단이 필요함.-->  변화하겠다는 결단

그리스도인의 첫 출발—새로운 삶을 향한 결단과 각오
날마다 새로와 져야 한다—“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 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인이 되신 후 무엇이 변화하셨는가? 또 앞으로 어떻게 변화되시기를 원하시는가?

제가 이민 교회를 섬길 때 “변화” 에 대한 설교를 하면 대개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기 보다는 다른 사람을 생각한다. 우리 남편이 변해야 하는데, 우리 시어머니가 변해야 하는데, 저기 김집사가 변해야 하는데,,, 자신을 돌아보기 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생각한다. 본인은 별로 변해야 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 사실 그럴까요?
저도 교도소 사역을 하면서 아쉽게 생각하는 것의 하나는 일반 목회때 교인들에게 변화를 더 강조하고 강조했어야 하는데 하는 마음이 들었다. 교도소에 갇힌 사람이 더 간절히 변화를 갈망하는데 밖에 있는 우리는 변화에 대한 간절함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분은 어떠신가?  
정말로 변화되고 싶지 않으신가?
저는 저의 인격이 변하고 성품이 변하여 그리스도를 좀 더 닮고 싶다. 또 저의 삶도 주님의 삶의 모습을 더욱 닮아가고 싶다.

오늘 저는 여러분들께 변화를 갈망하시며 사시기를 부탁드린다. 무엇보다 나 자신이 먼저 변화하기를 원하라. 내가 변하면 우리 가정이 변화될 것이다. 내가 변하면 우리들의 교회가 변하고, 우리의 일터가 변하고, 우리를 통해 이 사회도 조금씩 변화되어 가게 될 것이다. 
 
어떻게 변할 것인가, 변하기 위해서는 먼저 변화를 갈망하는 심령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변화하기로 결단하고 마음을 새롭게 하시기를 바란다. 

오늘 본문의 말씀 가운데 주동사는 변화를 받으라, Be Transformed  즉 수동태다. 다시 말씀드린다면 변화는 내가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성령께서 역사하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말한다. 
그러나 그 첫 출발은 우리에게 있다. 우리가 마음을 새롭게 할 때 성령께서 도와 주실 것이다. 우리 안에 성령께서  함께 하시고 역사해 주실 것이다. 

우리의 결단과 성령의 도움심을 통해 우리가 조금씩 조금씩 더 예수님을 닮아가고 우리의 인격과 가치관, 그리고 삶의 모습이 변해 갈 것이다. 그리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게 될 것이다. 
 
저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날마다 변화를 갈망하며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우리의 인격과 가치관, 그리고 삶이 변화되는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