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329

금문교회 주일예배 GGPC Sunday Worship Service

조은석 목사 Rev. Eun Suk Cho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Pay Attention to What You Hear!

마가복음 Mark 4:21-34

 

21.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사람이 등불을 가져오는 것은 말 아래에나 평상 아래에 두려 함이냐? 등경 위에 두려 함이 아니냐?

And he said to them, “Is a lamp brought in to be put under a basket, or under a bed, and not on a stand?

22. 드러내려 하지 않고는 숨긴 것이 없고, 나타내려 하지 않고는 감추인 것이 없느니라.

For nothing is hidden except to be made manifest; nor is anything secret except to come to light.

23.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If anyone has ears to hear, let him hear!

24. 또 이르시되,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며, 더 받으리니

And he said to them, “Pay attention to what you hear: with the measure you use, it will be measured to you, and still more will be added to you.

25.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

For to the one who has, more will be given, and from the one who has not, even what he has will be taken away.

 

26. 또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And he said, “The kingdom of God is as if a man should scatter seed on the ground.

27.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He sleeps and rises night and day, and the seed sprouts and grows; he know not how.

28.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The earth produces by itself, first the blade, then the ear, then the full grain in the ear.

29.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라.

But when the grain is ripe, at once he puts in the sickle, because the harvest has come.

 

30. 또 이르시되,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교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까?

And he said, “With what can we compare the kingdom of God, or what parable shall we use for it?

31.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It is like a grain of mustard seed, which, when sown on the ground, is the smallest of all the seeds on earth

32.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나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

yet when it is sown, it grows up and becomes larger than all the garden plants and puts out large branches, so that the birds of the air can make nests in its shade.

 

33. 예수께서 이러한 많은 비유로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대로 말씀을 가르치시되,

With many such parables he spoke the word to them, as they were able to hear it.

34.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혼자 계실 때에 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하시더라.

He did not speak to them without a parable, but privately to his own disciples, he explained everything.

 

 

예수님의 관심은 하나님 나라에 있었습니다. 오늘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관심 또한 하나님의 나라여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마땅히 빛으로서 이 세상을 밝히고 소금으로서 맛을 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빛과 그 맛은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한 자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특권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말씀 드립니다: 오늘 이 시대를 살피며, 도우며, 이끌어갈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가진 사람입니다.

 

지금 세상이 참 어렵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예수님 당시의 팔레스타인보다 더 할까요. 그 때는 로마 식민지 통치 때였습니다. 병든 사람이 갈 병원이 마땅히 없었고, 가난한 자들이 거리에 넘쳤습니다. 헐벗은 아이들이 산과 들을 헤집고 다니며 먹을 것을 찾았습니다. 로마 군인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함부로 대했습니다. 로마 전국에서 노예들이 인구의 40퍼센트까지 차지했습니다.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집중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셨습니다. 또 가능한 비유를 들어 알기 쉽게 풀어 이야기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큰 무리들을 가르쳐 주신 방법입니다.

 

그런데 혼자 계실 때, 제자들이 찾아오면, 그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해 주셨습니다. 믿음에 이르도록 하셨습니다.

 

생각해 보면, 주님께서 당신의 사람들 소수에게 편애를 하신 것이 아닌가, 궁금해집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큰 무리는 진리말씀 듣기에 한계가 있습니다. 수천 명이 모인 자리에서 서너 명에게 할 수 있는 교육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또한 예수님을 가까이 따르던 사람들은 자기의 집과 식구를 버리고 주님을 따른 자들입니다. 이들은 말하자면 들을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23절에 말씀하신 것처럼.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If anyone has ears to hear, let him hear!

마가복음 Mark 4:23

 

지난 주 설교 때 본문인 마가복음 4:1-20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두 무리로 나눌 수 있습니다. 1-9절에서 비유를 베푸셨습니다. 10-20절에서 홀로 계실 때 함께 한 사람들이 열 두 제자와 함께 와서 그 비유들에 대하여 여쭈었습니다. 그들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인 마가복음 4:21-34에서도 같은 패턴을 발견합니다. 21-25, 여기는 먼저 제자들에게 설명해 주십니다. 그리고 26-32, 여기서 큰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해 주십니다.

 

지난주에 비교하면 순서가 바뀌었습니다. 지난주에는 말씀해 주신 비유에 대한 구체적인 해석이 잇따랐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주님께서 어떤 말씀을 해 주셨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유가 잇따랐습니다. 그러므로 그 비유에 대한 어떤 해석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21-25절을 자세히 묵상하면, 거기 바로 하나님 나라가 그 주제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소수의 제자들에게 주신 21-25절이 곧 큰 무리에게 비유를 베푸신 26-32절을 미리 준비시킨 해석임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21-25절을 살핍니다.

사람이 등불을 가져온다면, 그것은 높은 데 두려는 것입니다. 말 아래나 침대 아래 숨겨두지 않습니다. 여기 모두가 동의하는 것은, “빛은 비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동의하는 이 말씀을 하신 것은 그 다음 말씀을 위한 전제입니다.

 

드러내려하지 않고는 숨긴 것이 없고, 나타내려 하지 않고는 감추인 것이 없느니라.

For nothing is hidden except to be made manifest; nor is anything secret except to come to light.

마가복음 Mark 4:22

하나님의 나라는 등불과 같아서, 그것은 상식적으로 비추는 기능을 감당하도록 해야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일부러 무시하고 감추려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도, 결국 그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에 드러나고 말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드러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 온 세상에 드러날 것이다.

지금 숨겨지고 지금 감춰진 것은 그대로 영원히 굳을 것이 아니다.

숨겨진 것과 감춰진 것은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언젠가 폭발하고 말 화산처럼!

 

이것이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의 뜻입니다.

 

그런데 지금 숨긴 것은 그 목적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드러내려 함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지금 두시지만, 곧 드러내실 목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결국 드러나고야 말 것입니다. 그 때가 오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는 자에게는 그 비밀이 지금드러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마음을 닫은 자들에게는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그러나 끝내 그 날이 오고야 말 것입니다.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온 땅을 덮을 그 날이!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They shall not hurt or destroy in all my holy mountain; for the earth shall be full of the knowledge of the Lord as the waters cover the sea.

이사야 Isaiah 11:9

 

문제는 너무 늦게 알게 되지는 말아야 하는 데 있습니다. 모든 천국 비유에서 너무 늦은 경우가 있습니다. 기름 없는 등을 가진 미련한 다섯 처녀의 경우가 한 예입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If anyone has ears to hear, let him hear!

마가복음 Mark 4:23

 

사람이 귀가 있다고 다 듣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의 귀가 있어야 합니다. 그 중심이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며, 그 말씀을 기다리는 자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는 자, 그들이 들을 귀가 있습니다.

 

여기서 들을 귀를 강조하신 것은, “모든 사람이 다 들을 귀를 가져야 한다!”는 당위성보다는, “성령님의 감화감동으로 귀가 열린 자는 반드시 들어야 한다는 영적 도전입니다.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지금 주님께서 두 그룹의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계십니다. 한 그룹은 큰 무리로 모여 다니면서 주님을 만납니다. 이들은 자기들의 이익중심으로 주님을 만납니다. 떡을 먹어 배가 부르거나, 병을 고침 받는 경우 등입니다.

 

다른 그룹은 작은 무리로 주님께 가까이 와서 그 말씀의 깊은 뜻을 여쭙습니다. 지난 주 소개한 베뢰아 사람들처럼.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Now these Jews were more noble than those in Thessalonica; they received the word with all eagerness, examining the Scriptures daily to see if these things were so. Many of them therefore believed.

사도행전 Acts 17:11-12a

 

들으십시오. 우리는 어떤 그룹에 서야 하겠습니까?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Blessed is the man who walks not in the counsel of the wicked, nor stands in the way of sinners, nor sits in the seat of scoffers; but his delight is in the law of the Lord, and on his law he meditates day and night. He is like a tree planted by streams of water that yields its fruit in its season.

시편 Psalm 1:1-3a

 

이 복잡하고 문제 많은 세상에 살지만, 이 세상에 빠지지 않고, 천국말씀에 모든 귀를 기울이는, 살아있는 그리스도인의 태도입니다.

 

또 이르시되,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And he said, “Pay attention to what you hear!

Mark 4:24a

 

세상에 마음을 두고, 세상을 들으면,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결코 듣지 못할 것입니다.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며, 더 받으리니,

With the measure you use, it will be measured to you, and still more will be added to you.

마가복음 Mark 4:24b

 

헤아림이란 판단입니다. 사람이 헤아린다는 것은 자기의 판단이 앞장세우는 경우입니다. 자기중심으로 판단합니다. 이럴 경우 그 또한 판단 받을 것입니다.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

For to the one who has, more will be given, and from the one who has not, even what he has will be taken away.

마가복음 Mark 4:24-25

 

이 말씀은 달란트 비유 중에 마태복음 25:29에 주신 말씀과 같습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19:26에 므나 비유에서도 발견합니다. 그러나 오늘 마가복음에서는 그 뜻이 말씀에 들어 있습니다.

 

묵상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쁨으로 받을 마음이 있는 자는 받을 것입니다. 만일 그런 마음이 없다면, 그 받은 말씀도 빼앗기고 말 것입니다. 들었으나 전혀 듣지 않은 것과 똑같아지고 말 것입니다.

이제 비유 말씀으로 들어갑니다.

 

첫째는 26-29절로, 자라나는 씨 비유입니다.

 

둘째는 30-32절로, 겨자씨 비유입니다.

 

이 두 가지 비유는 큰 무리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이 비유 말씀은 무엇을 드러내는 것보다는 오히려 숨기는 것처럼보입니다.

 

사실 비유라는 말은 헬라어로 parabole입니다. 어떤 것을 다른 어떤 것 곁에 두는 것입니다(a placing of one thing by the side of another, juxtaposition). 전쟁할 때 배들이 서로 나란히 서는 것처럼.

 

두 개의 물건을 땅에 동시에 던지는 행위로도 설명이 가능합니다. 하나는 본질이고, 다른 하나는 설명하기 위한 도구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두 개를 던져놓고, 그 둘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순서가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알리기보다는 도리어 숨기는 기능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본문 22절에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드러내려하지 않고는 숨긴 것이 없고, 나타내려 하지 않고는 감추인 것이 없느니라.

For nothing is hidden except to be made manifest; nor is anything secret except to come to light.

마가복음 Mark 4:22

 

오늘 우리는 감사하게도 소수의 그룹에 속했습니다. 본래 금문교회가 작은 교회이기도 하지만, 모든 성도들이 말씀을 사모하고,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는 예수님을 사랑하고 따르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26-29, “자라나는 씨의 비유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습니다. 씨를 뿌린 사람이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랍니다. 그렇지만 그 사람은 그 과정을 모릅니다.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습니다. 처음에 싹이 나오고, 그 다음에 이삭이 나오고, 그 다음에는 곡식입니다.

 

열매가 익으면, 그 때가 추수의 때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낫을 가지고 추수합니다.

 

이 모든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들의 손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실시하시는 능력입니다.

 

여기서 씨앗의 신비한 능력(“a mysterious power of the seed to grow and produce a crop without human intervention or understanding,” Mark. L. Strauss, 2014:197)이 주목받아야 합니다. 사람이 어떤 노력을 기울이거나 하지 않아도 스스로자라나는 하나님의 능력,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자라는 것은 신비입니다(the nature of the kingdom’s growth is a mystery, Strauss, 198). 하나님의 일은 신비입니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Where were you when I laid the foundation of the earth? Tell me, if you have understanding.

욥기 Job 38:4

 

욥기가 제시하는 메시지는 하나님의 신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이 그러하고, 이제 다시 오는 새 하늘과 새 땅이 그러합니다.

 

그리고 30-32절의 겨자씨 비유입니다.

 

땅에 심길 때는 매우 작습니다. 그러나 자랐을 때는, 공주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만큼 됩니다. 시작은 미약했지만, 그 결국은 이처럼 크고 놀랍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메시지는 구약에서 예언자들을 통해 선포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메시지에 귀를 기울인 사람들의 수는 극히 적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 탄생하셨을 때도 주목하여 보고 경배한 사람들이 극히 적었습니다. 동방에서 박사들이 몇 명 왔고, 이스라엘에서는 들에 자던 목자들 몇 명이 전부였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셨을 때, 그 따르는 자들이 수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보다는 이 땅을 더 사랑했습니다. 영의 양식보다는 육신의 양식을 더 사모했습니다. 죄의 용서보다는 육신의 치료를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한적한 자리로 피하셨습니다. 무리들을 가르치실 때도, 배를 타고 거리를 유지하기도 하셨습니다. 모두 주님께서 그들의 일차적인 요구, 곧 육신적인 필요를 거부하심으로써 영적인 필요의 단계로 업그레이드 하시려는 목적에서 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작게 시작한 하나님 나라의 운동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온 세상에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땅 끝까지 복음이 전파되었고, 이제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이 온 것입니다.

 

지난 주중에 어떤 백인 노인에게 이런 글을 써서 보냈습니다.

 

Dear J. Thinking of you, such a good person, good friend to me, I deeply wish you get my utmost value, the salvation that Jesus only gives. Hope this not a bothersome but a goodness. Who would have known how I a pastor have come into your life? God know. Good night, my friend.

 

이분은 자선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후파에도 탁구대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결코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세상 모든 종교는 다 똑같다고 주장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다 진리가 있다고 말합니다. 왜 하필 예수 그리스도냐? 그건 편견이다! 이렇게 주장합니다. 내가 지옥을 말하니, 거기도 사람 사는 데가 아니냐? 그러니 가야 한다면 가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마음의 평화를 유지한다고 했습니다.

 

내가 물었습니다. 당신이 신이냐? 이 세상이 바이러스 하나 때문에 온통 공포에 시달리고 있는데, 인간이 무슨 힘이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에 이르라!

 

지난 주중에 보낸 그 메시에 아직 답이 없습니다. 말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고, 이제 문자를 보낸 것입니다. 나는 그와 관계가 위험에 빠지더라도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언젠가 그가 구원주에 대하여 생각하고, 누군가를 찾아야 할 때가 오면, 내 말이 기억되고, 내가 전한 예수 그리스도가 기억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 때가 너무 늦지 않게 오기를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지러운 세상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오히려 기쁜 소리를 듣습니다. 이 기쁜 소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척박한 이 땅, 전쟁과 슬픔이 가득한, 어둠의 땅에 십자가가 세워졌습니다. 그 십자가에 예수님께서 달리셨습니다.

 

나는 모든 비유를 내려놓고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증거 하는 요한복음을 사랑합니다. 들으십시오. 밤중에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주님께서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바로 말씀하십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And as Moses lifted upo the serpent in the wilderness, so must the Son of Man be lifted up,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may have eternal life.

요한복음 John 3:14-15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ould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요한복음 John 3:16.

 

오늘 우리가 복음을 증거 하는 삶이 이렇습니다. 여태까지는 숨겨졌다고 해도, 이제부터 드러나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등불은 등경 위에 올라가야 합니다. 여태까지 비밀이었던 것이 이제 온 세상에 드러납니다.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입니다. 아멘.

 

두 개의 그룹이 있습니다. 큰 그룹과 작은 그룹. 세상 일을 사랑하는 큰 무리와 주님을 사랑하는 소수의 제자들. 넓은 길과 넓은 문을 향해 달리는 수많은 사람들과, 생명의 좁은 길을 가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소수의 그리스도인에게 천국비밀을 다 알려주셨습니다. 들을 귀 있도록 성령님께서 역사하셨습니다. 우리의 귀가 영의 신비한 비밀을 깨달을 수 있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이 고난의 때, 주님의 귀한 말씀에 귀를 기울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원하셔서 부르신주님의 백성입니다. 우리가 우리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드러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 나라는 우리가 소망해야 할 영원한 나라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교회를 보십시오. 세상이 다 무너진 것 같은 이 시대. 하나님의 교회가 우뚝 서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 증인입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을 하십니다.

 

겨자씨처럼 작아 보인 하나님 나라가, 마침내 온 세상을 덮어버리는 큰 능력이 될 것입니다. 아멘.

 

너희가 무엇을 듣느냐? 스스로 삼가라!

Pay attention to what you hear!

마가복음 Mark 4:24a

 

세상의 소문을 듣고, 그들의 두려움에 동화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 길은 패닉에 이를 뿐입니다.

 

어두운 세상, 죄악의 땅 위에 세워진 십자가. 십자가가 있음은 우리의 소망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Let us fix our eyes to Jesus, the founder and perfector of our faith, who for the joy that was set before him endured the cross, despising the shame, and is seated at the right hand of the throne of God.

히브리서 Hebrews 12:2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어지러운 세상 중에 기쁜 소리 들립니다.

 

어지러운 세상 중에 기쁜 소리 들리니

예수 말씀하시기를, 믿는 자여 따르라.

Jesus calls us, o’er the tumult or our life’s wild, restless sea

Day by day His sweet voice soundeth, saying, Christian, follow Me!

찬송가 340

 

사순절입니다. 우리가 이보다 더 심각하게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할 때가 있었습니까? 그러므로 오늘의 모든 고난은 주님의 은혜가 분명합니다.

 

주 달려 죽은 십자가 우리가 생각할 때에

세상에 속한 욕심을 헛된 줄 알고 버리네.

When I survey the wondrous cross, On which the Prince of glory died

My richest gain I count but loss, And pour contempt on all my pride.

찬송가 149

 

 

기도

 

아버지 하나님. 은혜와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주님께서 허락하신 모든 말씀을 가장 가까이에서 듣고 배우는 금문교회 성도들을 축복하옵소서.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하나님 나라를 바라는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